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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95화 (195/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95화

봉태윤이 면담을 요청하고 있단 말에 유원동은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르고 말았다.

그때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유원동이 모든 열정을 버리고 사장실 폐인으로 전락하기 전에 말이다.

제이퀸과의 콜라보를 추진하려다가 대차게 까이고.

세이렌 애들에게 우리가 실적 알아서 물어다 줄 테니 입 다물고 일이나 하라는 무언의 시그널을 받았다.

세이렌이 면담을 하겠다며 찾아와서 말이다.

그건 면담의 탈을 쓴 일방적 협박이었다.

칼만 안 들었지 강도나 다름없었다.

그때 이후부터 유원동은 사내에서 의견을 개진하는 데에 있어 검열을 자주 하게 됐다.

이 의견이 정말 맞는지 부하직원들에게 여러 차례 물어야 했고,

그 묻는 과정 중에 자연히 대표로서의 후광은 조금씩 줄어갔으며,

어느 순간부터는 회의에서도 조금씩 발언권을 잃어 갔다.

윗선이 실무 모르고 사업하는 건 원래 흔한 일이다.

실무진들이 관리자들 실무 못한다며 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하지만 그런 뒷담화가 오가든 말든 원래 관리자급은 뻔뻔하게 회의를 주도해야 하고 사업을 하달해야 한다.

한데 넥스트 웨이브에서는 다들 유원동이 실무 감각 없음을 숨어서 비웃기 시작하니 그런 뻔뻔한 태도를 유지할 수가 없었다.

그가 연예계를 모른다는 게 제이퀸 사건 이후로 전부 탄로 나 버렸으니 말이다.

이후 팀장급들을 불러다가 자기 의견이 괜찮은지 100문 100답을 시킨다는 게 소문까지 나버렸다.

직원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아 사장님 그게 아니라요…….’ 였으며 ‘여기 자료를 보시면 아실 수 있듯이…….’ 와 같은 거였다.

이것만 봐도 넥스트 웨이브 직원들이 유원동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건 마치 자신들의 일에 도움을 주는 든든한 대표이사가 아니라, 자신들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최종 관문 같은 거였다.

연예계를 전혀 모르는 이 50대 꼰대를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야 일 할 수 있다! 라는 게 넥스트 웨이브의 사내 분위기로 자리 잡힌 지 오래였다.

유원동은 그런 분위기에 질려 버려 이젠 결재 기계가 되어 도장만 찍는 중이었고.

한데,

“……봉태윤이 면담을 와요?”

“네. 면담 요청 중입니다.”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펼쳐지는 중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세이렌 전원이 아니라 봉태윤 혼자 왔다는 점뿐이다.

한데 이전 면담에서도 봉태윤이 가장 이야기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결국 다를 건 없단 거다.

“하아…….”

유원동은 인터넷 창을 끄고 생각했다.

이걸 안 받자니 직원들이 뒤에서 뭐라 할까 걱정이고.

받자니 만나서 어떤 협박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고민이 깊어질 무렵,

똑똑똑.

누군가 대표실 문을 두드렸다.

이내 대답도 안 했건만,

끼익.

문이 열리더니,

“들어가도 될까요?”

봉태윤이 머리를 집어넣으며 대놓고 눈치를 줬다.

언제까지 밖에 세워둘 거냐는 듯이 말이다.

결국,

“아, 하하하! 태윤 씨! 어서 오세요. 면담 요청한다고 했죠? 들어와서 앉아요.”

유원동은 봉태윤을 안으로 들일 수밖에 없었다.

* * *

오전 9시 30분이 되자마자 바로 넥스트 웨이브 사옥으로 올라갔다.

나름 합리적으로 계산한 시간대가 9시 30분이었다.

9시에 출근하고 커피도 내리면서 책상 정리까지 하는 데에 15분쯤 걸릴 테고.

본격적인 업무 시작 전에 인터넷 서핑 좀 하는 데에 10분 정도 걸릴 거라 생각했다.

해서 어느 정도 주변 정리가 된 시각이 9시 30분일 거라 예상한 거였다.

10시부터는 오전 회의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니 지금 이 시간이 아니면 면담하기 어려워질거라 생각해 전략적으로 쳐들어갔다.

사실 미리 전화해서 이날 들를 테니 대화 좀 하자는 약속을 잡는 게 먼저였겠지만 지금 같은 긴박한 상황에 그딴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애초에 소속 가수가 인성 논란 터졌는데 지금까지 우릴 안 부른 얘네가 이상한 거지.’

한데 올라가서 면담 요청하니 15분이 넘게 답이 없었다.

그제서야 느껴지는 게 있었으니,

‘……설마 나랑 면담하는 걸 고민하나?’

유원동이 나와의 면담을 망설이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전 면담에서의 결과가 좋지 않게 끝나서인 것 같았다.

아니, 그래도 소속사 사장이 소속 가수와의 면담을 고민하다니.

사장으로서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를 안 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대로 가다간 시간만 잡아먹을 것 같아서 행동으로 옮기기로 했다.

끼익.

문을 열고 머리부터 들이미니 그제야 날 안으로 들였다.

“아, 하하하! 태윤 씨! 어서 오세요. 면담 요청한다고 했죠? 들어와서 앉아요.”

표정이나 말투, 눈빛 등을 보아하니 내 예상이 맞았던 거 같다.

‘진짜 고민했나 보네.’

나와의 면담에 이런저런 고민한 흔적들이 얼굴에서 읽혔다.

“김 비서는 나가 있어도 괜찮아요. 태윤 씨랑 이야기 좀 나눌게요. 태윤 씨 뭐 마실래요? 커피?”

“아뇨. 괜찮습니다.”

“알았어요. 그럼 여기 물이라도 한 잔 해요.”

유원동은 내게 생수병 하나를 건네줬다.

“아, 네. 감사합니다.”

난 생수병을 받아 테이블 구석에 놓은 후 유원동을 바라봤다.

“제가 왜 왔는지 아시죠, 사장님?”

난 설마 이 사람이 우리 논란 터진 것도 모르고 있을까 싶어 물었다.

이런 합리적 의심이 가능한 이유는 유원동의 얼굴색이 달라진 데에 있었다.

일전에 만났을 때에는 어딘가 평화로운 시대의 장군님 같은 안색이었다.

포동포동하고 자신감 넘치는 평화에 찌든 장군 같은 느낌이랄까.

한데 지금은 그런 여유와 자신만만함은 사라지고 주변 눈치나 보고 쓸데없는 고민만 많은 일개 병사가 된 느낌이었다.

해서 우리에게 어떤 논란이 터진 건지도 체크하지 못하고 있을 줄 알았다.

“아, 동준 씨 인성 논란 터졌던 것 때문 아닌가요?”

“네. 맞습니다.”

다행히 논란 터진 것도 모르고 있진 않았나 보다.

“원래 오늘쯤 해서 회사에 불러서 이야기도 나눠보고 해당 사안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의견도 들어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렇군요.”

“근데 아침에 극적으로 해결이 되어 있어서 상황 파악을 먼저 한 다음에 부를 생각이었죠.”

“아…… 네.”

상황 파악이 끝났어도 우릴 불렀으려나.

그건 확신은 못 하겠다.

“어쨌든 일 잘 마무리된 것 같은데…… 왜 굳이 아침부터 면담을 요청한 건가요?”

“사장님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부탁이요?”

부탁이란 소리에 유원동이 흠칫하고 놀란다.

“네. 부탁이요. 부탁을 하면 안 되는 건가요?”

“……아뇨. 아니죠. 부탁해도 되죠. 제 자리가 부탁 들어주는 자리 아닙니까.”

난 유원동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애써 감추려고는 하지만 어딘가 기쁜 기색이 얼굴에서 드러난다.

고작 부탁이라는 말 하나 했다고 말이다.

대체 부탁 들어달라는 말 하나에 화색이 돌 정도면 회사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단 말인가.

이제 감이 잡히기 시작한다.

유원동의 얼굴색이 달라진 것부터.

어딘가 미묘했던 회사 분위기와.

나와의 면담을 꺼려했던 것까지.

‘지금 유원동…… 회사에서 왕따당하나?’

이런 중학생 같은 어휘로 유원동의 상황을 축약해 버리는 게 옳을까 싶긴 하다만 어쨌든 이거 외에 할 말이 없었다.

해서 자그마한 부탁 하나에도 설레는 마음을 숨기지 못한 것 같다.

진짜 왕따라기보다는 대표로서의 면을 못 세우는 상황 같달까.

한데 그럴 만도 한 것이,

‘형들이랑 내가 전에 와서 뻘짓 하지 말고 우리가 하는 거 지원이나 잘하라고 했으니까.’

유원동은 대표이사로 부임 후 처음 한 프로젝트를 내부적으로 거하게 말아먹고 자숙 중인 상태다.

직원들 사이에서 능력에 대한 의심이 싹트기에는 충분했다.

유원동은 연예계 사업에 대한 이해도도 부족하고 실무 감각도 없는 데다가 첫 프로젝트까지 개쪽당하고 파기했으니 사내에서의 입지가 팀장들보다 쪼그라들었을 게 분명했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나와의 면담은 망설여졌을 것이다.

오늘은 어떤 개쪽을 당할지 모르니까.

‘왜 운이 형이 유원동이 적으로 돌아서면 피곤해질 거라고 한지 알겠네.’

지금에야 쫄려서 별짓 안 하는 거지만 이런 부정적 상황이 지속되면 활동에 있어 큰 장애물이 됐을 것 같다.

난 유원동을 똑바로 바라봤다.

“지금 사장님 도움이 조금 간절히 필요한 게 있어서요.”

“제 도움이 간절히요?”

이왕 이리된 거 유원동이랑 이번엔 진짜로 좀 친해져 볼 필요가 있을 거 같다.

자존감이 쪼그라들었을 때 손을 내밀어야 한다.

“사실 저희가 아니라 제가 사장님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떤 거죠?”

유원동의 눈빛엔 무슨 자그마한 열망 같은 게 내비치는 것도 같았다.

“동준이 형 글 폭로자들…… 회사 차원에서 고소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형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그 사람들 선처받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아서요.”

난 이 흐름에 올라타 고소 건에 대해 꺼냈다.

고소가 내 입에서 나오자 유원동의 얼굴에 근심이 떠오른다.

이 대목에서 현재 유원동의 유약한 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아…… 그러면 그건 저희 법무팀과 이야기를 해보고, 또 홍보팀 팀장에게 과연 그런 고소가 이미지 형성에 도움이 되는지도 자문을 구한 후에 진행해 보는 게 어떨까요? 그쪽이 그런 것들 전문가니까…….”

자신이 사장인데 의사결정은 팀장들에게 맡긴 거다.

이젠 100% 확신이 들었다.

유원동은 지금 팀장들에게도 의견이 밀리는 입지란 것을 말이다.

“아뇨. 대표님이 결정해 주세요.”

“제가요?”

“네. 사실 저도 이런 고소 건이 꽤 파격적인 건이 된다는 걸 압니다. 사과글까지 올린 사람들을 고소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잖아요.”

“그렇죠.”

“그러니까…… 동준이 형이 고소하는 그림이 아니라 넥스트 웨이브가 해당 사안으로 인해 회사 사익에 크게 손해를 보게 되었다는 것으로 그 둘을 고소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하게요.”

“흐음…….”

“안 되나요?”

“……법에 안 되는 건 없죠. 법조문은 해석하기 나름이니까요. 아무도 모르게 하는 거야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니기도 하고요.”

약간 부패한 변호사 같은 멘트긴 했는데 어쨌든 법대 유원동이 보기에 완전 불가능은 아닌가 보다.

난 유원동에게 이 정도의 힘과 인맥은 있다는 걸 안다.

부자는 망해도 3대는 간다.

아무리 유원동이 지금 회사 내에서 쭈구리같이 있어도 거물은 거물이다.

고소 기사 안 내게 기자들 입 좀 막고 아무도 모르게 그 두 사람 법정 위에 세우는 것쯤은 해낼 수 있을 만한 사람이다.

그런 일도 못 하는데 그 큰 기업의 본부장까지 올라갔을 리도 없고 말이다.

잠시 고민하는 듯 입술을 굳게 닫고 있던 유원동이 다시 입을 열었다.

“……해보죠. 그까짓 거.”

동시에,

‘뭐야.’

패배한 병사 같던 얼굴이 다시 암군 같은 얼굴로 돌아와 있었다.

이 사람에게는 그저 작은 인정이 필요했던 거다.

‘진짜 단순한 사람이네.’

나이 먹으면 다 이렇게 단순해지는 건가.

“이런 아티스트 개인적 고민 같은 것들을 앞으로 자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네요.”

유원동은 그리 말하며 아까보다 훨씬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유원동과 나 사이에 화목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점심이라도 같이 먹을까요, 태윤 군?”

호칭도 씨에서 군으로 바뀌고 밥까지 같이 먹잔다.

“아, 점심은 형들이랑 같이 먹겠습니다.”

다만 밥약은 살짝 오바다.

대신 유원동 기분 좋을 때 한 가지 더 부탁할 게 있다.

“아, 그리고 저희 이번 활동 끝내고 바로 수록곡으로 후속 활동 이어서 하고 싶은데 추가 예산으로 한 5억 정도 쓰는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목표는 트리플 크라운입니다.”

얼추 은근슬쩍 흘리듯 잘 말했다 생각했는데,

“……네? 뭐라고요, 태윤 씨?”

흘리듯이 말하기에 액수가 좀 컸나 보다.

한데 사실 오늘 이거 말하려고 온 거다.

고소 건도 고소 건이지만 트리플 크라운은 동준이 형 목숨이 걸린 미션이니까.

해서,

“5억입니다, 사장님. 최대한 빠르게 후속 활동 연타로 내고 싶습니다. 사실 5억도 적고 7억은 쓰고 싶습니다.”

이왕 당황한 거 더 몰아붙였다.

“……네?”

유원동은 얼굴이 파랗게 질리기 시작한다.

마치 표정으로 이 새끼 진짜 왜 또 이래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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