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196화 (196/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96화

유원동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날 쳐다봤다.

면담 때마다 폭탄을 던지고 가니 이제 진심으로 무섭단 듯한 얼굴이었다.

다만 호의적으로 변했던 마음을 바로 폐기할 생각은 아닌 건지 얼굴색을 금세 바꿨다.

“7억이면……. 흐음. 일단 생각해 보죠. 어차피 매 활동마다 7억 이상씩은 쓰니까 다음 컴백 때에 7억 정도 써달란 요구로 생각하고 있을게요.”

유원동은 본인식으로 내 제안을 꽤 그럴듯하게 바꿔 버렸다.

수록곡 후속활동 예산 7억이 아닌 다음 컴백 예산 7억으로 말이다.

이렇게 되면 전혀 파격적인 게 없는 제안이 된다.

원래 우리 정도 되는 아이돌 그룹의 컴백 예산은 5억에서 10억 사이다.

뮤직비디오 제작에 약 2억에서 3억. 홍보비에 1억에서 2억. 음악방송용 의상과 무대 제작, 방송 메이크업과 헤어 세팅에 1억에서 2억. 기타 등등 활동하는 동안 들어갈 예비비까지 이천만 원 정도 예산을 잡아둬야 한다.

이런 기준에서 봤을 때 7억은 굉장히 합리적인 ‘컴백’ 예산이다.

유원동은 내 제안을 ‘수록곡으로 후속활동’을 하겠다는 제안이 아닌 다음 ‘컴백’ 제안이라고 자기 멋대로 해석 중이니까.

다만 난 지금 합리적인 제안을 한 게 아니다.

컴백이 아닌 같은 앨범 수록곡으로 할 후속활동으로 7억을 쓰자고 한 거다.

“아뇨 사장님. 제가 말씀드린 건 다음 컴백에서 7억을 쓰자는 게 아닙니다.”

“후속활동이라면서요.”

“사실 이것도 컴백이라고 억지로 말을 붙이면 컴백일 순 있겠죠. 근데 전 컴백이 아니라 연달아 활동하겠다는 말을 드린 겁니다. 수록곡으로요.”

“…….”

“그러니까 수록곡으로 다시 활동할 테니 그거에 대한 예산만 7억을 배정해 달란 겁니다.”

“……앨범 하나에 두 배의 예산을 들이부으라는 말입니까, 지금?”

“네.”

“이미 앨범 팔 거 다 팔았는데 또 7억을 쓰란 겁니까?”

“네.”

“추가 수익에 그렇게 기대되는 점이 없는데도?”

“네.”

“…….”

보통 효율적으로 가려면 앨범 하나 제작해 두고 그 앨범을 잘 뽕 뽑아서 여러 번 쓰는 게 낫다.

4주 방송활동 끝낸 후 그 곡들로 투어도 돌고, 축제도 돌고, 이렇게 저렇게 바로바로 현금화시키는 거다.

다만 여기에 추가 7억을 배정한다?

앨범 두 장 만들 돈으로 한 장만 만든 채 이렇다 할 수익적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

“사장님.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세요. 지금 투자한 돈이 후에 백배 천배로 돌아올지 몰라요.”

유원동은 무슨 약장수 쳐다보듯 날 쳐다봤다.

다만 여기서 나까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된다.

“저희만 이런 파격적인 행보를 하는 건 아니에요. 실제로 한 앨범으로 두 번 활동하는 팀들 꽤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저도 보고 받은 게 있어서 알고 있어요. 하지만 예산을 7억이나 쓰는 경우는 없죠. 보통 수록곡 중에 반응 좋은 걸로 음악 방송 몇 주쯤 더 하는 거에서 그치겠죠. 7억이나 필요한 일이 아니잖아요.”

생각보다 이런 사업적인 부분은 잘 꿰뚫고 있어서 놀랐다.

무턱대고 약만 팔면 안 되겠다.

“7억으로 새 뮤직비디오 제작하고 홍보 대규모로 돌릴 생각입니다.”

“그러니까 왜 새 뮤비까지 제작하고 홍보까지 크게 돌려야 하냐는 거죠. 제 말은.”

사실 여기서부터 이젠 궤변의 영역이다.

난 동준이 형을 지키기 위해 트리플 크라운을 할 생각이다.

즉 트리플 크라운을 만들기 위해서 7억이나 되는 돈을 공중에 뿌리겠단 계획인 셈이다.

이러한 계획을 최대한 논리적으로 설득시켜야 한다,

“……트리플 크라운이 일단 저희의 목표임을 먼저 말씀드리고 시작하겠습니다.”

두괄식으로 목표부터 바로 꺼내버렸다.

난데없는 트리플 크라운 소리에 유원동은 고개를 갸웃했다.

“정확히는 올킬이 목표죠. 트리플 크라운 올킬이요.”

“왜 그게 목표인 거죠”

“현재 트리플 크라운 올킬을 달성한 팀이 몇 팀이나 되시는지 아시나요, 대표님?”

“그런 건 제안하는 쪽이 공유해 줘야죠.”

예산 이야기가 나오니 확실히 유원동의 워딩이 세진다.

경영인 마인드가 발동하나 보다.

“9팀뿐입니다.”

“많진 않군요.”

“그해에 가장 대중들에게 유명해진 곡을 만들어낸 팀만이 가질 수 있는 영예라고 볼 수 있죠.”

“그런 영예 좋죠. 하지만 수익적 이득이 약하다면 투자할 가치는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단순 영예뿐인 것에 7억이나 쓸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근데 지금 대표님께서는 누구보다 그 영예가 필요한 분 아닙니까?”

내 발언에 유원동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사실 나도 말을 잇다 보니 이렇게 앞뒤가 맞게 돼서 놀랐다.

되는대로 뱉었는데 생각보다 대화가 나한테 유리한 쪽으로 흘러왔다.

“현재 이전 프로젝트 폐기로 인해 사내에서 입지가 좁아지지 않으셨나요, 대표님?”

“……아티스트 귀에도 들어갈 정도군요.”

“그러니, 지금 트리플 크라운 올킬 같은 영예가 대표님에게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믿어주시고 투자해 주시면 그 영예, 가져오겠습니다.”

유원동은 아까보다 더 약장수 보듯 날 쳐다봤다.

하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 시선에 일말의 희망이 보인다는 점이다.

유원동은 미간을 꾹꾹 누르며 고민에 들어갔다.

“어쨌든 태윤 씨 의견은 7억 추가 예산 배정받아서 후속활동을 연달아 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트리플 크라운 올킬을 위해서.”

“네. 믿어주시면 결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아티스트가 강력하게 원하는 요구사항이라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죠? 목표 달성을 못 해도 회사와 아티스트 간의 파트너십을 다질 수 있는 기회로 볼 수도 있을 테니까요.”

“네. 맞습니다.”

“그러면 긍정적으로 고려해 보고, 다시 회신해 줄게요.”

“……진짜 긍정적입니까?”

“네. 진짜 긍정적으로 볼게요.”

유원동은 이쯤 했으면 이제 가란 얼굴로 날 쳐다봤다.

“어쨌든 저를 믿고 이런 이야기 해준 거 아닙니까. 저도 아티스트가 보내주는 믿음에 보답해 보도록 진지하게 고려해 볼게요.”

동시에 질린다는 얼굴만 빼면 꽤 감동스러운 멘트를 내뱉기도 했다.

이 사람이 서서히 엔터테인먼트사의 사장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 같았으니까.

나이가 50이 넘어도 열정이 남은 사람은 결국 성장하게 되는 건가 싶었다.

물론 유원동 성장에 크게 감명받은 건 아니고.

“그럼 일단 회신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찾아올게요.”

“하…… 참.”

“그럼 가보겠습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원동은 어처구니없단 듯 날 쳐다봤다.

“아, 그 폭로자들 고소 건은 나한테 맡기고 이제 신경 쓰지 마요. 그건 정말 확실하게 처리해 줄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유원동은 내가 나가기 전 우리가 이야기한 것들을 정리해 줬다.

“7억 예산은 진지하게 한번 고려해 보고 다시 답 줄게요.”

“네.”

“그럼 조심히 들어가요.”

“네. 알겠습니다.”

난 사장실 밖으로 나왔다.

내가 나오자 직원들 몇몇이 날 빤히 쳐다봤다.

그런 거야 아랑곳 않고 난 사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택시를 잡아탄 후 난 숙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를 생각했다.

아마 지금쯤이면 난리가 나지 않았을까 싶다.

새벽 동안 동준이 형 여론이 180도 달라진 걸 확인했을 테니 말이다.

어서 가서 형들 반응을 지켜보고 싶었다.

동시에,

‘후속활동 이야기도 가서 빨리 설득시켜 봐야지.’

유원동에겐 이야기했지만 형들에겐 이야기하지 않은 후속활동 건을 컨펌 받아볼 생각이었다.

약간 순서가 바뀐 느낌이긴 한데 대세에 지장은 없지 않나란 안일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 * *

봉태윤이 유원동과 대화를 나누며 고소와 7억을 협상하고 있는 사이.

세이렌의 숙소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였다.

“동준아! 동준아! 동준아아아!”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우연훈.

그는 일어나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밤사이에 모든 사건이 해결된 것을 보고 바로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으어억?”

그 탓에 같은 방을 쓰던 강도승이 화들짝 놀라서 같이 일어나 버리기도 했고 말이다.

숙소를 시끌벅적하게 울리며 우연훈은 잽싸게 박동준이 있는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박동준은 어젯밤 논란으로 인해 생각이 많아져 쉽사리 잠이 들지 못해 꽤 피로한 상태였다.

한데 갑자기 달려드는 우연훈 탓에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형? 무슨 일이에요…….”

아침부터 이렇게 호들갑 떨 게 있나.

어쩌면 자신의 기분이 다운되어 있으니 억지로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려고 오바 한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우연훈 뒤로 강도승까지 함께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머리에 까치집을 만든 걸 보니 둘 다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모양이었다.

방금 막 일어난 터라 박동준은 우연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정리가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잠이 달아나며 몇 개 단어가 귀에 박히기 시작했는데,

“……네?”

“논란 끝났어!”

“뭐라고요?”

“다 끝났다고!”

우연훈의 말이 귀에 들리긴 하였으나 이게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가 되진 않았다.

이렇게 빨리 끝날 논란이었다니.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어제 저녁 이후부터 박동준은 인터넷 모니터링 같은 건 하지 않고 있었다.

뭘 더 본다 한들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그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손을 뻗어 SNS에 들어갔다.

어젯밤 자신을 욕하던 글들이 전부 다 삭제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동준이 진짜 너무 맘고생 심했을 거 같음

-진짜 빨리 해결돼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트라우마 생겼을 듯

-말도 못 하고 얼마나 억울했을지 진심 너무 안쓰러움

-이 얘기 더 이상하지 말자 동준이한테도 트라우마일 듯

그동안은 자신의 눈에 보이지 않던 팬들의 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글들은 논란이 터진 중에도 꾸준히 있었으나 박동준이 무의식적으로 흘린 탓에 보이지 않던 거였다.

다만 논란이 끝났다는 말을 듣고 나니 그제야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아…….”

너무 놀랐다 보니 아, 라는 말 외에 다른 말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겨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뱉은 말은 이거였다.

“어떻게 된 거예요……?”

하룻밤 사이에 여론이 어째서 이렇게까지 뒤집혔냐는 거다.

“이거 때문인 거 같은데?”

이에 대한 답은 뒤쪽에 서서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 있던 강도승이 대신해 줬다.

강도승은 자신이 찾은 페이지를 핸드폰에 띄운 채 박동준에게 건네줬다.

핸드폰 화면 위엔 네이스판 글들을 캡쳐한 사진이 떠올라 있었다.

“원 게시글은 지워졌는데 캡쳐본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더라고. 보니까 걔네가 쫄려서 사과문 게시하고 튀었어.”

박동준은 단숨에 사과문 전문을 읽어나갔다.

“하아아…….”

그러곤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우려했던 일이 발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였다.

“진짜 다행이네요.”

“그치 다행이지?”

“전 진짜…… 저 때문에 우리 팀 다 같이 망할 줄 알았어요.”

“아냐. 왜 망해.”

“어쨌든 한창 잘되는 중에 기세가 꺾이면 그대로 재기 못 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박동준이 내부에 쌓아두었을 깊은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일주일 안으로 해결 안 되면 스스로 팀에서 나가려 했거든요.”

박동준의 다짐에 우연훈과 강도승 모두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래서…… 더 다행이에요.”

박동준은 그리 말하곤 눈물을 한 방울씩 떨어뜨렸다.

우연훈은 그런 박동준을 말없이 안아줄 뿐이었다.

얼추 감정정리가 되었을 때 즈음.

우연훈은 강도승이 건넸던 핸드폰에서 재밌는 점을 발견했다.

강도승이 게시글 캡쳐본을 검색하던 포탈 창이 아직 핸드폰에 열려 있던 채였는데,

-친구 위로하는 법

-친수가 힘드ㄹ

-친구가 힘들 때

-우울한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명언

-서울 근교 힐링 명소

의도치 않게 강도승의 검색기록을 찾아보게 되었다.

“뭐야. 도승이 동준이 위로해 주려고 이런 거까지 검색해 본 거였어?”

“……아.”

그 순간 박동준의 눈도 강도승 핸드폰 화면으로 이동했고, 강도승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니, 이게 그러니까. 어쨌든 팀을 지켜야 한단 생각에.”

“와, 개소름 돋네 진짜.”

“……뭐 임마? 이 자식이 지 생각해 줘도 진짜.”

“형이 이런 거 찾으면 소름 돋죠.”

“……이 새끼가.”

강도승이 주먹을 쥔 채 부들부들 떨었고 박동준은 그런 강도승을 보며 미소 지었다.

“죽다 살아난 사람 못 때리쥬?”

“와.”

“오늘 나한테 뭐라 그러면 그건 진짜 사람 아니다. 그쵸 연훈이 형?”

“맞지, 맞지. 오늘은 아무도 동준이한테 뭐라 못 그러지.”

“……하아. ……진짜 참자…….”

그렇게 차오르는 분노에 몸을 떠는 강도승과 그런 강도승을 놀리는 박동준, 우쭈쭈하기에 바쁜 우연훈까지.

정신없는 아침이었다.

뒤늦게 일어난 이운은 이미 논란 해소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간 것도 모르고 후발주자로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허어어억! 동준아아아! 지금 사과문 올라와서 여론 완전히 뒤집혔…… 어?”

“이미 이야기 다 들었어요, 형.”

“아, 그래?”

이운은 머쓱하단 듯 웃고는 박동준에게 다가가 그를 꼭 안아줬다.

“고생 많았다, 동준아.”

“고마워요, 형.”

“근데 태윤이 어디 갔어?”

“아.”

“맞네.”

세이렌의 4인은 그들의 막내가 아침부터 사라져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 * *

택시에서 내려 숙소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잡아타고 올라가는 동안 핸드폰 서치를 시작했다.

동준이 형 여론이 완전히 잡힌 게 보인다.

대충 여론전에서 승리했음을 깨닫고 적당한 성취감에 취하려 했는데,

-엥? 지금 블레슈 데뷔 티저 뜸

-블레슈 티저 퀄리티 뭐임?? ㅁㅊㄷ

-더쇼케2 출신 그룹들 이번 여름에 다 튀어나오는 거임?

-ㅋㅋㅋㅋㅋㅋ와 근데 블레슈 얘네 뭐임? 회사가 돈이 이렇게 많았음?

“……뭐야.”

갑자기 SNS에서 오랜 시간 잊고 있던 이름이 떠올랐다.

블레슈.

우리의 더쇼케2 출연 동기 그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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