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98화
“이게 대체 무슨 말이야, 봉태윤.”
“아침에 사장님 만났다고?”
“후속활동? 우리가 모르는 우리 후속활동이 있어?”
“너…… 맛집 간다는 거랑 조깅한다는 거 다 거짓말이야?”
형들이 내 쪽으로 다가오며 점점 범위를 좁힌다.
다들 얼굴 표정에 배신당했다는 감정이 넘실거린다.
특히 연훈이 형은 아직 파리채를 잡고 있는 상태였다.
저 파리채 손잡이 부분으로 맞으면 진짜 아픈데.
아니, 지금은 차라리 맞는 걸로 끝낼 수 있으면 다행인 거려나.
“형들. 일단 차분하게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세요.”
어떻게든 대화로 풀어야 한다.
궤변이 됐든 뭐가 됐든 일단 설득시켜야 한다.
꼴이 꽤 우스워지긴 했다만 일단 살아야 할 거 아닌가.
무엇보다 지금 설득 못 시키면 후속활동도 못 하고 트리플 크라운도 못 하는 걸 테고 말이다.
해서,
“전…… 올해 대상 받고 싶어요, 형들.”
그냥 냅다 아무거나 질러 버렸다.
최대한 지금 사안과 관련 있어 보이면서도 인지부조화를 불러일으킬 만큼 파격적인 단어들을 골랐다.
대상.
그해 데뷔한 신인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영예다.
“뭐?”
“……대상?”
“아니, 진심이야?”
“뭔…… 소리를 하는 거야?”
형들은 내 도발에 잠깐 스턴이 걸린 모양들이었다.
이 사이에 난 연훈이 형 손에 들려 있던 파리채를 뻇어왔다.
“어어? 파리채 도로 안 내놔?”
“우리 대화로…… 대화로 풀어요, 형.”
연훈이 형은 잠시 날 째려보다가 한숨을 쉬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진심으로 대상을 받고 싶어 한다고? 진짜로?”
“아니, 데뷔한 해에 바로 대상을 어떻게 받아.”
“1년 차에 바로 대상 받는 사람이 어딨어.”
나도 저 의문들에 모두 동의한다.
사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올해 대상 받겠다는 생각 자체도 없었다.
약 1분 전에 만들어낸 소망이니 말이다.
하지만 지금 던진 이 화두를 놓치는 순간 난 아침에 왜 사장님 만나러 갔는지에 대한 설득을 실패하게 된다.
사력을 다해 이 화두를 붙잡아야 한다.
“올해 상반기에 저희랑 온리원 말고 초동 50만 장 넘긴 가수나 그룹 있었나요?”
“갑자기?”
“흐음…….”
“……잠시만.”
“……없네?”
“없구나.”
형들은 우리가 신인인 걸 넘어 상반기에 가장 화제되었던 아이돌임을 자각한 모양이었다.
“이제 신인이냐 아니냐는 그닥 중요치 않아요. 지금 이 흐름 잘만 이어갈 수 있고 하반기에 활동량 남들보다 훨씬 많이 늘리면 대상 충분히 노려봄 직해요.”
이건 사실 궤변은 아니고 꽤 논리적인 설득이었다.
실제로 내가 회귀하기 전 2022년 대상을 탄 신인이 있었다.
그해에 데뷔한 걸그룹이었는데 우리랑 상황이 여러모로 비슷했다.
데뷔 초동도 좋았고 후속활동도 거의 1달에서 2달 텀으로 계속 냈으며 대형 가수들은 피해서 대부분의 가요계를 장악했다.
그 결과 신인임에도 대상을 받는 기염을 토해냈고 말이다.
‘생각해 보니까 그 그룹 원래 7월에 컴백 아니었나.’
아마 내가 회귀하면서 그 그룹도 운명선에 변화가 생겼나 보다.
암튼 신인인데 대상 받는 거 분명 가능하다.
여러 지표로 보자면 우리가 그 걸그룹보다 나은 점도 분명 있다.
“지금 저희 신인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임팩트는 다 보여줬잖아요.”
“그렇지.”
“여기서 이 흐름 안 잃고 텀 없이 바로 후속활동 이어간 다음에 1달 쉬고 다시 미니 앨범이나 더블타이틀 싱글 앨범 내고, 정규 한 장 내고, 리패키지 내면 올해 대상 진짜 가능할지 몰라요.”
“……너 미쳤구나?”
“그건 대상 받는 계획이 아니라 도승이 암살 계획일지도 몰라, 태윤아.”
“대체……. 나한테 몇 곡을 쓰라는 거냐, 봉태윤.”
형들은 말도 안 되는 스케줄에 기겁하며 말한다.
만일 내가 형들 입장이었어도 저 스케줄 들으면 욕을 했을 거다.
저렇게 살다간 10년 내로 과로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평생 저렇게 살잔 것도 아니고.
딱 1년.
아니지, 사실상 6개월에서 8개월 정도다.
그 정도만 열심히 살아보는 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근데 진짜 저 스케줄 소화해 낼 수 있으면 대상 받는 거 가능할 거 같지 않아요, 형들?”
난 형들을 안다.
지금은 다소 놀라서 방어기제를 세우는 중이지만, 이 사람들도 아이돌로서의 향상심이 있다.
예전에 더쇼케2 처음 나갈 땐 그냥 가서 이름만 알리고 데뷔에 도움이나 받자라는 마인드세팅이었다.
하지만 더쇼케2에서 우승하며 형들 심리에도 변화가 생긴 모양이었다.
우리도 하면 되는구나.
진짜 꿈에 다가갈 수 있겠구나.
아마 이런 생각을 조금씩은 하게 됐을 거다.
적어도 내가 봐온 형들은 그랬다.
“대상이에요 형들. 신인이 대상 받는 경우는 제가 아는 한 없었어요. 적어도 현 체재로 개편된 가요계에서는요. 도전해 보고 싶지 않아요?”
“…….”
“대상.”
“……받으면 진짜 대박이긴 할 텐데.”
“장난 아니긴 하겠네.”
형들 표정이 점점 상기되어 간다.
아마 대상 받는 상상이라도 하는 모양이다.
특히 도승이 형은 입가가 조금씩 씰룩거린다.
‘이미 수상소감까지 짜고 있는 거 아니야?’
가오고양이는 상상력이 꽤 풍부한 모양이었다.
지금 타이밍을 놓치면 안 된다.
“지금은 저희가 온리원이랑 비슷한 그룹으로 인식되고 있잖아요.”
“그치.”
“이번에 텀 없이 바로 후속활동 이어 내버리면 대중 인지도 면에서는 저희가 훨씬 앞설 수 있어요. 그렇게 서서히 차이를 벌리는 거죠.”
“…….”
“그리고 연말에서 저희는 대상, 온리원은 신인상에 그치는 거예요.”
난 조금 더 자극을 해보려고 온리원과의 라이벌 의식도 끌어와 봤다.
한데,
“아 근데 그건 온리원분들 조금 불쌍하다…….”
“본인들도 아마 우리랑 직접 비교할 텐데…….”
“우리가 너무 혼자 앞으로 치고 나가면 그쪽도 가랑이 찢어지는 거 아닐까?”
‘낭패네.’
이 사람들이 너무 착하다는 속성을 잠깐 잊고 있었다.
“그래도 대상 받는 건 진짜 기대되긴 해.”
“받으면…… 진짜 엄청 기쁠 거 같아요.”
“사실 태윤이 말대로 우리가 조금만 노력하면 완전 불가능하진 않을 거 같아.”
“어차피 데뷔 첫해에 완전히 자리 못 잡으면 내년은 없는 거잖아. 올해에 좀 더 파이팅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다만 이전에 쌓아둔 빌드업이 형들에게 확실히 각인된 모양이었다.
형들은 대상을 받겠다는 내 계획에 동의했다.
이미 눈동자는 대상을 향해 전력질주 하고 싶은 경주마들 같다.
만족스러운 상황이다.
이제 슬슬 이 대화를 마무리 지어야겠다.
“그래서 제가 아침에 사장님 찾아가서 세이렌 대상을 위한 초석을 잠깐 다지고 온 거였어요.”
이렇게 흘리듯이 이야기하고 우리 대상 받기 위해 다 같이 힘내봅시다, 라는 걸로 잘 빠질 줄 알았으나,
“그래도 그건 안 되지, 봉태윤.”
“…….”
“왜 우리랑 상의도 없이 혼자 사장님한테 간 거야.”
“뭣보다 우리한테 거짓말까지 하려고 음식집 사진들 보여준 것도 괘씸해.”
“이야~ 봉태윤이~ 이거 음식 사진들 인터넷에서 퍼왔네? 조금만 각도 바꾸고 줌으로 땡겨보니까 너가 보여준 거랑 똑같다~”
“봉태윤. 오늘 헬스장 같이 갈까?”
형들은 좀처럼 쉽게 넘어가 주질 않는다.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저기 가서 손 들고 서 있어.”
“……진짜요?”
“어. 가서 손 들어.”
난 이게 정말 합당한 처벌인가 싶었으나 거실 구석으로 가서 손을 들었다.
이런 체벌은 진심 초등학교 때 이후로 처음인데.
다 커서 이러고 있으니 스스로에 대한 모멸감이 솟구친다.
이미 이것만으로도 정신적 내상이 큰데,
“옳지!”
“잘한다.”
“손 잘 드네~”
형들이 손 들고 있는 나를 사진으로 남기기까지 한다.
“아니, 사진은,”
“사진은 뭐?”
“……찍으셔야죠.”
“그럼. 찍어야지.”
치욕의 순간이 데이터로 영원히 남게 되었다.
무엇보다 치욕적인 것은,
-다신 형들에게 대들지 않겠습니다.(손 들고 있는 봉태윤 사진.jpg)
이 사진을 승연 씨와 현아 씨가 있는 단체방에 올렸다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머…… 태윤 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나의 치욕의 역사는 승연 씨와 현아 씨에게 흘러갔고, 승연 씨와 현아 씨는 회사에서 만나는 직원분들에게 돌아가며 그 사진을 보여줬다는 후일담을 들려줬다.
* * *
그날 오후 스케줄을 끝낸 후 우린 회사로 이동했다.
오전에 승연 씨와 현아 씨가 이야기한 후속활동 회의를 위해서였다.
난 그 회의의 주요 발언자로서 내 의견들을 많이 털어놨다.
사실 대부분이 즉석에서 만들어진 의견들이었으나 어쨌든 오랜 시간 생각해 둔 것처럼 포장을 해내야 했다.
대상을 받고 싶어 안달이 난 막내가 무리해서 만들어낸 회의라는 컨셉이었으니 말이다.
“흐음.”
“예산만 충분하면 될 거 같기도 한데.”
“확실히 마케팅이 중요하긴 하겠다.”
“챌린지도 중요하겠고. 어쨌든 틱택톡이나 너튜브 장악하는 게 엄청 중요하겠네.”
“결국 10대, 20대, 30대를 광범위하게 장악해야 의미가 있긴 하겠구나.”
형들은 트리플 크라운 올킬을 만들어낼 만큼 파급력 있는 활동을 하자는 내 의견에 동의해 줬다.
“그럼 우리 수록곡 중에 고르자고?”
“네.”
“새로 만들지 말고?”
“새로 만들기엔 시간도 시간이고, 개인적으로는 저희 곡 중에 그 곡이 꽤 가능성 있어 보이긴 하거든요.”
“그 곡?”
난 내가 생각 중이던 수록곡을 말해줬고 형들은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지금 이 곡 평도 엄청 좋아.”
“이 곡은 따로 홍보도 거의 안 했는데 차트에 계속 올라가 있긴 하네.”
그렇게 후속활동에 대한 회의는 꽤 길게 이어졌다.
후반에 가선 내 발언이 줄어들고 형들의 발언이 훨씬 더 많아졌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아이돌 활동에 진심인 것은 나보다 형들이었다.
그렇게 3시간이 넘는 회의 후.
시간이 10시가 넘었을 때.
“오늘 회의는 일단 여기서 하죠.”
“더 깊은 이야기는 일단 회사에서 예산 집행되는 거 보고 결정해야 할 거 같아요.”
“고생 많으셨습니다아~”
“고생 많으셨어요~”
우린 후속활동 회의를 종료했다.
이렇다 할 결과물까진 없었으나 팀원들의 의견과 목표가 하나로 모이는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우리 저녁도 못 먹고 회의했네.”
“오늘 저녁 맛있는 거 먹자고 했는데…….”
“그러니까요! 빨리 맛있는 거! 야식!”
“내일 음방이라고 박동준아.”
“……너무하다 진짜.”
형들과 나는 주차장에 세워두었던 승합차에 올라탔다.
연훈이 형이 운전하는 우리 팀을 위한 개인 차량이다.
이전에 WD엔터에서 가지고 온 차량 말이다.
“오늘 저녁만 참고 넘기면 내일 아침에 맛있는 거 먹자 차라리.”
“오.”
“조금 붓더라도 밤에 먹는 것보단 아침에 먹는 게 덜 부을 거야.”
“오오!”
“내일 아침은 무조건 동준이가 먹고 싶어 하는 걸로.”
“그럼…… 마라샹궈도 오케이?”
“오케이.”
“와 연훈이 형……! 감동…….”
“아니, 형 진짜 박동준 때문에 마라샹궈 시킨다고요? 그날?”
“하루만 넘어가자, 도승아.”
“하아…… 어쩔 수 없죠…….”
형들이 내일 아침 먹을 고칼로리 음식에 대한 토크를 하는 동안.
난 그걸 뒤에서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이런 평온한 저녁이 얼마나 갈까 생각 중이었는데,
[돌발 미션 발발]
‘니미럴…….’
평온하다는 말은 금지다.
이건 거의 트리거나 마찬가지다.
무슨 돌발 미션인가 하고 보니,
[명일 음악방송에서 1위를 차지하시오.]
[성공 시, 미래시 재획득]
[실패 시, 통찰 전권 회수]
“……망할.”
통찰의 회수를 건 미션이었다.
동시에 미래시를 재획득할 수 있는 미션이기도 했고 말이다.
한데 명일이라니.
‘내일 1등 하라고?’
이거 문제가 꽤 심각하다.
일단 당장 할 수 있는 건,
“마라샹궈…… 저는 무조건 반대예요, 형.”
“……뭐?”
“봉태윤?”
아침에 짠 거 먹는 것부터 막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