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199화
“마라샹궈를 반대한다고 봉태윤……?”
동준이 형이 당장에라도 날 죽일 것처럼 쳐다봤다.
도승이 형은 속이 다 시원하단 듯 날 바라봤고 말이다.
화기애애한 팀 분위기를 망친 것 같아 미안하다.
하지만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내일 음악방송 1위를 해야 하는데 아침부터 마라샹궈가 가당키나 하냔 말이다.
요즘 실시간 문자투표 비중이 줄었다고는 해도 1위와 2위를 가르는 중요한 지점으로 작용하기엔 충분한 비중이다.
특히나 온리원과 우리처럼 음원 스트리밍 횟수와 음반 판매량과 뮤직비디오 조회 수 등등이 거의 동률로 유지되는 경우엔 더더욱이나 말이다.
이럴 경우엔 당일 문자투표에 얼마나 많은 팬분들이 문자를 해주냐에 따라 갈라질 가능성이 충분한데, 그런 중요한 날에 마라샹궈 먹고 얼굴 부어서 나갈 수는 없다.
물론 누군가는 예민하다 할지도 모른다.
다만,
“넵. 전 반대합니다.”
통찰을 회수해 가는 미션이 걸린 마당에 예민해지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자그마한 불안함 하나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형. 잠깐만 차 좀 세워줘요. 제가 내려서 막내 정신 교육 좀 시키고 올게요.”
동준이 형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만
“연훈이 형. 빨리 갓길에 차 대주세요, 저도 동준이 형 교육시키고 오겠습니다.”
나도 물러설 곳이 없다.
사실 간절함을 따지자면 내 쪽이 더하다.
형이야 그냥 먹고 싶은 거 한 번 참으면 되는 거다.
하지만 난 우리 팀의 운명을 건 상황이란 말이다.
통찰 없이 이 험악한 미션을 이어나갈 자신이 없다.
“뭐 임마!”
“마라샹궈 안 된다고요!”
“일단 둘 다 진정하자.”
운이 형이 운전 중인 연훈이 형을 대신해 나와 동준이 형을 말렸다.
사실 나는 별로 말릴 것도 없었는데 동준이 형이 진심으로 씩씩대고 있었다.
진짜 마라샹궈를 먹고 싶었나 보다.
그간 스트레스 많이 받았는데 먹고 싶은 것도 못 먹으니 그럴 수 있다.
특히 동준이 형처럼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들은 더더욱이나.
지금은 그렇다면 채찍이 아닌 회유를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형. 무턱대고 마라샹궈 반대해서 미안해요.”
“…….”
“그런데 진짜 저도 이유가 있어서 그랬어요.”
내가 내일 있을 음방에서 1등을 노리고 있단 걸 형들은 모르고 있다.
그러니 그 목표를 다 같이 공유하는 게 먼저일 거다.
“저희 이제 2주차잖아요. 이제부터 1위 후보로 올라갈 수 있는.”
“……맞지.”
1위 후보라는 한 마디에 동준이 형뿐만이 아닌 다른 형들의 관심도 모인다.
음방 1위라는 게 누군가는 매번 밥 먹듯이 하는 거지만 우리 같은 신인에겐 의미가 남다르다.
아이돌로서 자리를 분명하게 잡았다는 일종의 보증서 같은 느낌이니 말이다.
매년 수십 수백 팀이 데뷔하였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 살아남았다는 뜻이니 의미가 깊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만일 1위 후보로 올라가게 되면 어쨌든 엔딩에서 다 같이 화면에 잡힐 텐데, 그때 얼굴이 띵띵 부어서 나갈 거예요?”
난 우리가 1등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말하진 않았다.
강한 압박은 강한 반발을 불러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대신 스스로 생각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옆에 온리원 서 있는데 우리만 얼굴 보름달 같아져 있으면 세일러들이 우리한테 투표해 주고 싶을까요?”
“…….”
“꼭 1등을 할 것까진 없지만 세일러들이 화면 볼 맛은 나게 해줘야죠.”
“……설득당해 버렸네.”
동준이 형은 한숨을 푹 쉬더니 결국 선언했다.
“마라샹궈 안 먹겠습니다.”
“오.”
“진짜?”
“네…….”
도승이 형과 운이 형도 놀랄 정도로 빠른 승복이었다.
“막내한테 이런 말 들으니까 체감 확 되네요. 미안하다, 태윤아. 내가 철없이 굴었다.”
“아뇨. 괜찮아요.”
그렇게 팀 내 마라샹궈 소동은 잠시 일단락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화두는 하나.
“근데 우리 진짜로 1등 할 수 있을까?”
“흐으음.”
“1등이라…….”
우리가 과연 내일 있을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할 수 있느냐에 대한 거다.
“1위 후보라도 가능할까, 우리가?”
연훈이 형은 다소 자신감 없는 말을 내뱉기도 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 있어서 나는 꽤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1위 후보는…… 무조건이겠지.’
사실 1위 후보가 되냐 안 되냐는 지금 우리에게 있어 문제가 될 건은 아니라 생각한다.
음반판매량, 음원 순위, 뮤직비디오 조회 수 등등 주요 1위 후보 기준상에서 우리보다 나은 팀이 거의 없으니 말이다.
더 나아가 ‘돌발 미션’과 같은 것은 아예 불가능한 것을 미션으로 던져주진 않는다.
맥락과 상황을 보고 간당간당하게 가능한 것을 늘 미션으로 던지니 말이다.
즉 시스템이 보기에도 우리가 1위 후보는 충분히 가능하다 판단하는 거다.
“전 1위 후보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봐요.”
“그래?”
“네.”
“그럼…… 내일 음악방송 점수 기준표 누가 찾아서 알려줄 수 있어?”
내일 방영하는 음악방송은 GBS에서 하는 <더 뮤직 쇼>였다.
“잠시만요~”
연훈이 형의 부탁에 동준이 형은 <더 뮤직 쇼>의 점수 산정 기준표를 찾아서 연훈이 형에게 알려줬다.
<더 뮤직 쇼>의 점수 산정 기준은 이러했다.
음원 40%, 음반 10%, 뮤직비디오 조회 수 20%, 사전 투표 15%, 실시간 투표 15%.
다른 음악방송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음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사전 투표와 실시간 투표의 비중이 꽤 높단 거다.
즉 방송을 까보기 전까지는 활동 성적들만 가지고는 1등을 점치기 어려운 구조란 거다.
“여기서 저희가 해볼 수 있는 건 실시간 투표뿐이겠네요.”
“맞아.”
“흐음.”
음원이나 음반이나 뮤직비디오 조회 수 등등은 우리가 이제 뭘 더 할 수 없다.
우리가 뭘 더 한다 해서 앨범 안 살 사람들이 추가로 더 사진 않을 것이며, 음악 안 듣던 사람들이 더 듣진 않을 테니 말이다.
아니지, 더 사거나 더 들을 순 있겠지만 당장 내일 있을 그 음악방송에까지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긴 어려울 거다.
그러니 현실적으로 우리가 1등을 위해 사활을 걸어야 하는 부분은 실시간 투표 부분이다.
“실시간 투표 올리려면 우리가 뭘 할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일단 SNS에 사진이나 투표 독려 같은 글들 올려볼까요?”
“그건 당연히 해야 하는 건데……그거 말고 추가로 뭘 더 해야 할 거 같은데요.”
“흐음.”
형들이 어떻게 하면 1위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뭐 재밌는 영상 같은 거라도 올려볼까요? 팬서비스 차원이기도 하고, 아이돌 팬덤 자체에 어필해 볼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재밌는 영상?”
“네.”
난 우리가 지금 실시간 투표로 끌어올 대상은 외부 팬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외부 팬덤이 얼마나 우리에게 투표해 줄지는 모른다.
그러니 외부 팬덤을 대놓고 겨냥하기보다는 내부 팬들을 위해 올린 영상이지만 외부에도 소문날 수 있을 만큼 재밌는 영상이면 될 것 같았다.
“저희나 온리원이나 팬덤 크기 자체는 비슷하잖아요, 그러면 내부 동원력을 끝까지 끌어올린다 해도 결국 비슷비슷한 수치일 거 같아서요. 결국 외부 팬덤 가져오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내 의견을 말하자,
“재밌는 영상.”
“흐으음.”
“웃긴 거. 웃긴 거어…….”
형들은 잠시 웃긴 영상이 무엇일지에 대해 고찰하는 듯했다.
이윽고,
“태윤아.”
“봉태윤.”
“봉봉보로보로봉봉봉.”
형들 시선이 내 쪽으로 모인다.
“원래 웃긴 건 평소에 안 웃기던 애가 해야 더 웃긴 법이래.”
동준이 형의 그 싸한 한마디에.
“아.”
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 * *
온리원의 숙소 거실.
저녁 연습을 끝내고 돌아온 온리원 멤버들은 다 같이 모여 개인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다 같이 모여’ ‘개인 시간’을 보낸다는 말 자체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말이었다.
모인다는 것과 개인 시간이란 것은 양립 불가능한 단어니까.
하지만 그 어려운 걸 온리원은 해냈다.
각자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하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친구와 채팅을 나눈다.
다 같이 함께 있지만 무언가를 같이 하진 않는다.
온리원이 이런 식으로 다 같이 개인 시간을 보내게 된 데에는 리더 탓이 컸다.
말이 많지 않고 단체 활동을 그리 즐기지 않는 강현성 탓에 말이 많고 단체 활동 좋아하는 온리원의 멤버들은 알게 모르게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팀답게 저녁 시간만큼은 함께 보내자! 라는 팀원들의 의견을 조율하여 이런 식의 시간이 만들어진 거였다.
‘어차피 같이 있는 게 목표라면 거실에서 각자 할 거 하자.’
‘……그걸 원한 거 아니었는데요, 형?’
‘그거라도 하잔 거야.’
‘……아!’
강현성의 요구가 거래가 아닌 명령임을 깨달은 온리원 멤버들은 그날부터 저녁에 다 같이 모여 개인 시간을 가지게 됐다.
처음엔 이런 처사에 대한 불만이 많았다.
이게 무슨 단체 활동이냐고.
저녁에 풋살을 하러 가거나 한강 산책을 가거나 전시회 같은 데를 가잔 게 목표였는데.
이런 건 그냥 조삼모사나 다름없다, 라고 항변하려 하였으나,
“지금 뭐 간단하게 디저트 먹을 건데 먹을 사람?”
“나.”
“나.”
“저도요~”
“칼로리 각자 계산해 가며 먹어라.”
“네에~”
온리원 멤버들도 깨달아 버렸다.
이런 식의 단체 활동 같은 개인 활동이 무척이나 편하고 안락한 것을 말이다.
의견이 필요할 때는 즉각적으로 소통이 가능하고, 소통을 끝내면 바로 각자가 좋아하는 일에 몰두한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무언가를 같이하고 싶어지면 바로 같이할 수도 있다.
“저 양모펠트 할 건데 같이할 사람 있어요?”
“오! 샀어?”
“어제 배송 왔어요.”
“같이하자. 재밌겠다.”
박영호가 양모펠트 패키지를 꺼내자 김주현이 테이블에 앉아서 세팅을 도와준다.
이렇듯 강현성이 만든 룰에 완벽 적응한 온리원이었다.
특히 이러한 단체 활동을 가장한 개인 활동의 진가는 정보 공유에 있어서 진가를 발휘했는데,
“어? 뭐지?”
“왜요?”
“뭐 있어?”
온리원의 멤버 김시운이 핸드폰을 하다가 이상한 소리를 냈다.
이러한 반응은 예상 못 한 무언가를 맞닥뜨렸을 때 나는 소리였다.
온리원 멤버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김시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강현성도 책을 덮고 김시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SNS에 하다가 세이렌 분들 게시글이 피드에 떴는데…… 이게 뭐죠 진짜로?”
“세이렌?”
“왜?”
세이렌이라는 말에 온리원 멤버들의 관심도가 급증했다.
그들에게 세이렌은 넘어야 할 라이벌이자 동료애가 느껴지는 동지였으며 무엇보다 명절날에만 가끔 만나지만 묘하게 친근한 친척 같은 느낌이었다.
그랬던 그들이었기에 세이렌이 올린 피드에 더욱 고찰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살려주세요 (봉태윤)
“……?”
“살려달라고?”
“이게 무슨 말이에요……?”
“태윤 씨 뭐 게임에서 진 거야?”
전혀 어떤 상황인지 짐작조차 안 가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형. 태윤 씨랑 요즘도 연락해요?”
“잘은 안 해.”
“이게 무슨 말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흐음.”
강현성은 김시운의 핸드폰을 넘겨받은 후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살려달라는 봉태윤의 말.
“뭐 알아서 하겠지.”
강현성은 그리 말하며 핸드폰을 넘겨줬다.
동시에 속으로만 홀로 생각했다.
‘내일 있을 음악방송 때문에 그러나.’
설마 본인들 음방에서 한 번 이겨보겠다고 전날 밤부터 난리부르스를 출 거라곤 강현성도 예상하지 못했다.
* * *
형들과 숙소로 돌아와 회의를 거듭했다.
난 내가 웃긴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건만 형들의 의견은 완고할 수밖에 없었다.
“태윤아. 너가 정면에 나와야 한다니까.”
“가장 안 그럴 거 같은 사람이 나와야 해.”
“아니, 그러면 콘티라도 주고 나오라 하셔야죠. 그냥 무턱대고 제가 나오면 웃길 거란 게 어딨어요.”
“아니, 있다니까. 그냥 네가 나오면 웃길지도 몰라.”
“웃길지도 몰라가 무슨 말이에요, 동준이 형.”
“몰라. 나도 모르겠는데 그냥 느낌이 왔어.”
형들은 어떻게든 나를 웃음의 제물로 바치고 싶어 할 뿐이었다.
아니, 이쯤 되니까 웃긴 영상을 만들자는 건 뒷전이고 그냥 날 제물로 바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목표는 사라지고 각자의 음습한 소망만 난무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회의는 돌고 돌아 어찌저찌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문제는,
“아…… 나 진짜 못 해요. 이거 진짜 아닌 거 같아요.”
난 여전히 납득을 못한다는 것뿐이다.
“시간이 없어.”
“오늘 밤에 올라가야 해.”
“대의를 위해 희생해라, 봉태윤.”
“…….”
막내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팀은 여기밖에 없을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