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00화
세이렌의 팬들은 자정이 넘어서 올라온 영상 하나에 의문을 표했다.
-???
-이게 뭐임?
-이 시간에 뭘 올려?
-뭐임 지금?
아이돌들이 SNS에 게시물 올리는 데에는 시간 대중이 없다고는 하지만 한창 활동기인데 자정 12시에 무언가를 올리는 건 흔치 않았다.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세팅하고 나가야 하는데 자정에 깨어 있기도 어려우니 말이다.
한데 세이렌은 SNS에 게시글이 아닌 동영상을 업로드했다.
-세이렌 멘탈 트레이닝. 팩폭에 강해져라! (봉태윤 편)
동영상의 제목은 이러했는데 그 썸네일이 짜치다 못해 옹졸한 수준이었다.
-아닠ㅋㅋㅋㅋ애기들 뭘 한거얔ㅋㅋㅋ
-태윤앜ㅋㅋㅋㅋ
-이게 뭐임 진짜로?
-아닠ㅋㅋㅋㅋㅋㅋ
-막내한테 뭘 시킨거야 또ㅋㅋㅋㅋㅋ
동영상 속 썸네일은 봉태윤이 정직하게 서 있는 거였다.
한데 그 구도와 화질 등이 마치 20여 년 전의 아마추어 UCC 영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정쩡하게 서 있는 봉태윤과 정면보다 살짝 위에서 찍는 구도로 인해 다리는 짧고 상체는 길어 보이며 머리는 평소보다 1.3배 정도 커다랗게 나왔다.
요즘 Y2K가 유행하며 일부러 화질 등을 떨어뜨리는 일이 잦긴 하다.
일종의 영상 기법으로써 말이다.
하지만 이건 Y2K를 너무 충실하게 재현해 버렸다.
-얘네 이때 유치원생 아니었음?
-ㅋㅋㅋㅋㅋㅋ대체 이 감성은 어케 아는 거얔ㅋㅋ
-저 어정쩡하게 서 있는 거 알려준 거 누구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태윤이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거 같은데
-막내한테 제발 이상한 거 시키지 말라곸ㅋㅋㅋㅋㅋ
썸네일을 본 사람들은 영상을 클릭하지 않을 수 없었다.
클릭한 영상에는 썸네일 그대로의 봉태윤이 서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제는 움직이고 말을 한다는 점뿐.
한데 동영상의 내용이 썸네일보다 더욱 충격이었다.
-봉태윤 씨. 지금 당신은 어려운 임무를 앞둔 요원입니다.
-제가요?
-네.
-잠옷 입고 있는데요?
-네. 민가로 잠입해 대한민국의 일반 시민들의 생활 수준을 알아오는 것이 미션입니다.
-……그걸 요원까지 써가며 알아올 필요가…….
-조용히 하세요!
이 말도 안 되는 대화는 듣는 이로 하여금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거지 한번 의심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대화의 주체는 봉태윤과 우연훈이었다.
보통은 박동준이 나서서 이런 일을 주도해 나가겠으나 논란이 있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당장 며칠은 자중하자고 이야기가 나온 탓에 우연훈이 앞장선 채였다.
-근데 그 임무 내용이 좀 께름칙한데요?
-무엇이 께름칙하죠?
-대한민국 일반 시민들 생활 수준 알아오란 임무는 보통 간첩들이나 받는 거 아닌가요?
-……아!
-아니…….
-…….
-…….
-동무! 입조심하라우!
-세상에.
아무런 대본도 없이 냅다 콩트를 찍어버리는 세이렌에 팬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금 뭘 보는 거야?
-아니진짜이게뭐야
-얘네 진짜 왜 이래
-너무 당황스러워서 웃음도 안 나옴
-난 개웃긴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보통 음악방송 전날에는 내일 투표 부탁한다는 정석적인 글이나 올리고 만다.
팬들을 위한 셀카 몇 장도 함께 첨부해서 말이다.
한데 세이렌은 음악방송 전날 윈X우 무비 메X커로 만든 듯한 퀄리티의 조악한 영상을 올렸다.
그 내용물은 더더욱 조악했고 말이다.
-동무는 이제부터 밖으로 나가서 남한 동포들의 생활상을 알아와야 한다우.
-이제 그냥 간첩으로 가기로 한 거예요?
-……웃기지 마!
영상의 내용은 갈수록 해괴해지기 시작했다.
-남한 사람들은 재밌는 걸 좋아한다는 첩보가 있어.
-그게 왜 첩보예요. 재밌는 걸 싫어하는 국가가 어딨냐고요.
-우리를 웃겨보면 임무에 나갈 수 있게 해주겠네.
-이젠 제가 미션을 간청하는 입장이 된 거예요?
-아니……. 그게…….
-아깐 그냥 나가라고 하더니.
-이이익! 도승아!
결국 우연훈이 물러나고 강도승이 등장했다.
-본 교관은 훈련생에게 실망했다.
-이건 남한 군대 아니에요? 그냥 군인이면 다 되는 거구나.
-엎드려 뻗쳐!
-와…….
봉태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더니 엎드려 뻗쳤다.
-하나에 정신을 둘에 차리겠습니다. 시작 하나!
-정신을…….
-둘!
-차리겠습니다.
-하나!
-정신을…….
-이제부터 자동.
-자동.
-……자동 하라니까?
-자동.
-자동을 따라 하지 말고 하나둘 하는 걸 자동으로 하라고!
-하나둘.
-아니……. 킹받게 하지 마!
분명 봉태윤이 세이렌 멤버들에게 일방적으로 당해야 하는 컨셉이었다.
하지만 봉태윤은 특유의 논리정연함으로 한 마디도 지지 않고 할 말을 이어갔다.
결국 마지막 타자로 이운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
-엎드려 뻗쳐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처음으로 나온 강압적인 어투가 아닌 다정한 어투에 봉태윤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우리를 웃기시기만 한다면 더 이상의 훈련 없이 종료하도록 하겠습니다.
-웃겨요?
-네.
이운의 정직한 요구에 오히려 봉태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영상 시작 이후 처음으로 봉태윤이 페이스에서 말리는 거였다.
-이런…… 정상적인 요구를 받으니까 오히려 혼란스럽네.
-뭐!
-우리는 비정상이란 거냐, 봉태윤!
-조용히 좀 해봐요, 형들.
-하극상이다!
-아주 군기 다 빠졌어.
-죄다 미필이면서 군기는 무슨.
-…….
-…….
미필 소리에 치명타를 맞은 우연훈과 강도승이 입을 다물고 봉태윤 홀로 고뇌에 빠졌다.
형들을 웃겨야 한다는 막중한 임무에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 같았다.
-그…….
봉태윤이 무언가 입을 떼기 직전.
팟.
화면이 갑자기 암전됐다.
굉장히 허접한 팟- 하는 효과와 함께 말이다.
아마 윈X우 무비메X커의 기초 효과 중 하나로 들어가 있을 법한 허접한 효과였다.
이후 다시 화면이 켜지고, 예상치 못한 장면이 등장했다.
-어헣 아니……. 태윤아…… 하하하하학!
-봉태윤……. 이 미친 인간아…… 하하하하하!
-아…… 아아…… 나 배 찢어질 거 같아…… 진짜…….
개그의 주체라 할 법한 봉태윤은 없고 바닥에 쓰러진 세이렌 멤버들만 있었다.
세이렌 멤버들을 찍는 카메라맨도 이 상황이 웃긴 건지 연신 웃음을 참지 못하고 앵글을 흔들고 있었다.
-으흐흡. 후읍!
웃음을 참으려고 애쓰는 소리로 사람들은 카메라를 잡은 사람이 박동준임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봉태윤은 없고, 봉태윤이 터뜨리고 간 세이렌 멤버들만 있었다.
중요한 건 대체 어떻게 이렇게까지 팀을 폭발시켰는가이다.
-아니 봉떤 어디 간 거임?
-이게 무슨 일이야…….
-아니 저길 자르면 어쩌자는 거임?
-너무 짜치는 편집인데 자존심 상하게 다음화가 궁금해서 개빡침;;
-아니 그래서 봉떤이 뭐 했냐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진짜 얘네 뭐얔ㅋㅋㅋ
-진심으로 얘네 뭐 하고 노는 거야 진짴ㅋㅋㅋ
-진짜 영상 퀄리티 개허접인데 어처구니없어서 보게 됨ㅋㅋㅋ
-그래서 봉태윤이 어떻게 애들 웃긴 거냐고요;;;
-아 나 진짜 장난치지 말고 빨리 잘린 영상 푸셈;;;
-진심 손 떨리네;; 얘들아 나 장난 아니야^^ 빨리 영상 풀어ㅎㅎ;;
사람들은 잘린 영상에 대한 요구를 쏟아냈지만 세이렌 SNS는 영상 하나만 올리고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리고 약 1시간이 지난 후.
새벽 1시.
-내일 음악방송 1등 시 봉태윤의 배꼽 잡는 유우-머 영상 대공개 하겠습니다.
세이렌 SNS엔 이런 글이 올라왔다.
-진짜 1등 엄청 하고 싶나 보네ㅋㅋㅋㅋㅋ
-하아…… 진짜…… 애들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열심히 살자…… 더쇼케2 우승하고도 음방 1등 하고 싶어서 유우-머 영상 찍어 올리는 세이렌처럼…….
-세이렌 컨셉이 언제부터 킹받 이었나요?;;
음악방송 전 공약으로 온갖 공약들이 난무했으나, 본인들이 찍은 유머 영상 업로드를 공약으로 건 팀은 세이렌이 유일무이했다.
그 덕일까.
-실시간 레전드 공약 건 남돌
-음악방송 1위 시 비밀 영상 공개…… 팬들 궁금증 폭발
-청순한 줄로만 알았던 아이돌의 이중 생활
조회 수에 미쳐 사는 SNS 페이지나 너튜브 숏폼 영상 제작자들이 미친 듯 영상을 퍼 날라가기 시작했다.
이는 삽시간에 사람들 사이에 퍼졌고 세이렌 팬덤만이 아닌 다른 아이돌 팬덤, 더 나아가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퍼져 나갔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을 때.
-아니 조회수 무슨 일임?
-이거 조회수 왤케 높음?
-대체 몇 명이 본 거야;;;
-아니 우리 애들 흑역사는 제발 우리만 보자고욬ㅋㅋㅋㅋ
-이게 머선 일임 진짜
세이렌이 올린 영상의 조회 수는 50만 회 이상을 달성했다.
문제는,
-근데 저 조회수 높은 곳 불펌해 간 채널 아님?
-맞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가지가지다 가지가지
그들이 영상을 올린 곳은 파랑새.
그리고 50만 회의 조회 수를 달성한 곳은 처음 들어보는 너튜브 채널이었다.
퍼져 나가는 과정조차 어처구니없는 세이렌의 유머 영상이었다.
* * *
새벽에 일어나 씻는 동안 우리는 파랑새를 비롯한 인터넷에서 벌어진 현상들을 확인했다.
어젯밤에 영상 찍고 편집하느라 다들 늦게 잠들었지만 그걸 상쇄시킬 만큼의 반응이 돌아오고 있었다.
“태윤아, 이거 봤어?”
“네.”
“지금 조회 수 대박이야.”
“그거 근데 오늘 음방 끝나면 채널 신고해야 돼요. 결국 불펌한 곳들이라.”
“그렇긴 하지, 근데…… 와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형들이 아침부터 난리를 피울 정도로 영상의 반응이 좋았다.
사실 어젯밤에 찍을 때에는 그렇게까지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찍는 내내 형들이 너무 콩트를 못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서로 간에 컨셉도 안 맞고 아무 말이나 대충 지어내서 하는 게 너무 눈에 보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도 하고 싶은 말만 대충 하면서 웃겨보라는 지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 고급진 유머를 꺼냈다.
난 정말 그다지 재밌다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형들이 다들 너무 좋아했다.
특히 어제 영상의 1등 공신은 동준이 형이었다.
“지금 그 잘라낸 부분 내놓으라고 사람들 난리야.”
“잘했다, 동준아.”
“제가 이런 거 잘한다니까요~”
해당 부분을 잘라내자 건의한 건 동준이 형이었다.
원래는 잘라내고 말고 할 거 없이 통으로 올리는 게 목표였으니까.
애초에 편집조차 할 생각이 없었다.
한데 동준이 형이 완성된 영상을 보더니 너무 밋밋하다며 노트북을 꺼내 즉석에서 편집을 뚝딱뚝딱 해냈다.
일부러 짜치는 느낌이 들게 화질도 떨어뜨리고, 앵글이 더 어정쩡한 느낌이 들 수 있게끔 모든 샷들의 사이즈를 타이트하게 좁혀 버렸다.
또한 절대 고급진 태가 나면 안 된다며 편집툴도 일부러 윈X우 무비메X커를 사용하는 정성까지 보였다.
‘이런 파급력이면 1등 할 수 있겠는데.’
온리원과 우리의 음반, 음원, 뮤비 조회 수 성적 등은 대부분 동률을 이루고 있다.
부분부분 우리가 더 나은 영역도 있고 온리원이 더 나은 영역도 있지만 합계를 내본다면 거의 동률에 가까울 거다.
그러니 이 실시간 문자투표를 이끌어 내는 게 중요한데 이 정도 파급력이면 문자투표에선 분명히 우위를 점했다 생각해도 될 것 같았다.
‘기다려보자 이제.’
난 조금은 마음을 차분히 먹고 오늘 음악방송을 기다리기로 했다.
사전녹화 촬영을 위해 새벽부터 우린 바쁘게 움직였다.
메이크업 받고 헤어 세팅하고 의상도 착용했다.
그러곤 음방 대기실에 앉아 각자 긴장감도 풀고 무대 안무 점검도 했다.
1등을 해야 하는 중요한 날이니 외모도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써서 관리하고 있었다.
그때,
“어?”
“뭐야, 이게?”
뒤에서 핸드폰을 하던 운이 형과 연훈이 형이 동시에 불길한 말을 내뱉었다.
“오오오!”
“대박!”
“하하하!”
이내 화면을 보며 재밌단 듯 웃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보니,
“태윤아! 이거 봐봐! 온리원 분들도 우리처럼 개그 영상 편집해서 올렸어!”
“……네?”
“이거 진짜 웃긴데?”
온리원이 우리를 따라 개그 영상을 올렸단다.
난 급히 핸드폰을 꺼내 온리원 SNS를 확인했다.
그러곤,
‘망할.’
순식간에 따라붙는 공유와 인용 숫자를 보며 탄식을 금치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