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01화
온리원이 올린 동영상은 순식간에 조회 수와 공유 수를 불려 나가며 SNS의 핫토픽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난 온리원이 올렸다는 영상을 클릭했다.
-온리원의 일상 모음집(1)
영상의 포맷은 우리와 꽤 달랐다.
모음집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우리처럼 콩트 형식으로 만든 게 아닌 일상생활 중 웃긴 영상들을 모아서 올린 거였다.
팀 내 막내 멤버인 박영호가 숙소 안팎에서 카메라를 자주 드는 모양이었다.
막내의 눈으로 바라본 온리원 팀의 리얼한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다.
한데,
‘얘네 재미없게 사는 거 아니었어?’
난 강현성이 팀을 꽉 잡고 있어서 별로 재밌게 살진 않을 줄 알았다.
요즘은 좀 풀린 것 같긴 한데 그래도 기 센 사람 하나가 팀 중심 잡으니 엄청 깔깔거리는 느낌은 아닐 줄 알았는데,
-김주현 기상해. 이제 스케줄 가야지.
-우어어어…… 우어어어어…….
-김주현.
-으어어어어어.
-5분 내로 못 내려가면 사녹 지각이라니까.
-그러면 4분만 더…… 자고…… 1분 만에 나갈게요오…….
-……제정신이니?
-으아아우아아우.
-하아…….
내 생각과는 숙소 분위기가 꽤 달랐다.
멤버 김주현이 잠을 못 이겨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자 강현성이 그를 깨우는 영상이었다.
난 강현성 무서워서 다들 칼같이 기상할 줄 알았는데 그건 꼭 아닌 모양이다.
한데 한두 번 말로 한 걸론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설까.
-영호야. 분무기 가져와.
-네!
-기억나지? 못 일어나면 분무기 뿌리기로 한 거?
-으어아우아아우.
-……진짜 제정신 아니네.
이내 강현성은 김주현의 얼굴에 대고 분무기 레버를 눌러댔다.
한데 그러면서 하는 강현성의 멘트가 압권이었는데,
-이러다 얼굴에서 꽃 자라겠다, 주현아.
-어푸후으으르르르.
-얼굴이 꽃 같네?
-푸흐르으르르으.
-우린 꽃을 키울 필요가 없겠네. 너한테 물 주면 되니까.
-혀…… 형님, 살려주세요.
-깼어?
-네. 진짜로. 진심으로.
-가서 세수하고 와.
-넵!
-하하하하하!
저게 과연 미친놈이 아니고 무엇일까 싶다.
다만 강현성이 하는 멘트들이 온리원 멤버들이 보기엔 웃겼나 보다.
영상 속에서 다들 배꼽을 잡고 웃고 있다.
아마 이걸 보고 저 자식의 광기를 본 건 나뿐인가 보다.
SNS 반응들도 다들 가볍게 웃고 넘기는 분위기였으니까.
하긴, 실제로 물고문을 한 것도 아니고 멀리 서서 얼굴에 분무기로 물 뿌린 게 전부니까.
말하는 걸 보니 이미 팀 멤버들끼리 합의도 다 끝난 사안인 거 같고.
-그거 찍고 있었어, 영호야?
-네!
-……혼자만 간직해.
-알았어요!
이게 유머 모음집의 첫 번째 영상이었다.
모음집이라는 이름답게 다음 영상들도 있었다.
다음 영상도 마찬가지로 강현성과 김주현이 주인공이었다.
달라진 점은 배경이 차량 안이 되었다는 것뿐이다.
아마 방금 분무기 사건 이후 바로 이어지는 사건인 것 같았는데,
-주현이 형 잔다, 또.
-어? 그러네?
분무기로 일어난 김주현이 다시 차량 안에서 꾸벅꾸벅 조는 것 같았다.
공교롭게도 옆자리는 강현성이었다.
꾸벅꾸벅 졸던 김주현은 본인도 모르게 강현성 쪽으로 고개를 꺾었다.
보통 고개를 꺾으면 어깨를 내어줄 법도 하건만,
-풉!
-후으읍!
-후웁!
강현성이 손가락 하나를 곧게 펴더니 김주현의 머리가 자신의 어깨에 닿기 전 꾸욱 밀어냈다.
그 자세가 너무 고상하고 엘레강스해 보여서 멤버들 모두가 의문의 웃참을 시작하고 말았다.
-김주현.
-으어어어어.
-……진짜 좀빈가.
-으어우아우.
-……에휴.
마지막에는 옆머리에 대고 있던 손가락을 떼고는 어깨를 내어준다.
난 영상을 좀 더 빨리 띄엄띄엄 넘겨 가며 봤다.
온리원 멤버들끼리 밥을 먹으며 나누는 웃긴 대화 영상들.
온리원 멤버들끼리 밤에 산책을 나갔다가 맞닥뜨리는 웃긴 상황들.
온리원 멤버들끼리 주말에 운동을 가서 맞이하는 재밌는 장면들.
정말 일상에 녹아 있는 자연스럽고 재밌는 영상들이었다.
그리고 이쪽이 아마 더 팬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데에 성공한 모양이다.
-ㅜㅜㅜㅜ애들 너무 무해하게 노는 거 같음
-ㅋㅋㅋㅋㅋ아니 강현성 양파쿵야 같이 눈 뜰 수 있는 사람이었음?
-ㅋㅋㅋ현성앜ㅋㅋㅋㅋ그런 눈으로 애들 쳐다 좀 보지 맠ㅋㅋㅋ
-강현성 전매특허 무광 눈빛. 인류애 상실한 눈으로 쳐다보기.
-하아…… 진짜 현성아…… 그 생기 없는 눈 너무 좋다……
-주현이 대체 온리원에서 어떤 존재인 거임?ㅋㅋㅋㅋㅋ
-김주현 혼자 애들 잠 다 뺏어간 거 아니야?
-아니 어떻게 사람이 카메라에 걸리는 영상 중 3분의 2가 자는 영상임?ㅋㅋㅋㅋ
-이거 뒤에서 꼼지락꼼지락 찍고 있었을 영호 상상하면 나도 모르게 이모 미소됨;;
-영호 목소리 너무 귀엽지 않음?
-이런 영상 좀 많이 올려주라
팬들은 그간 제대로 공개된 적 없는 온리원의 진짜 일상에 열렬히 환호했다.
온리원은 물 들어올 때 노 젓자는 마인드인지 다음 영상의 공개 조건을 발표했다.
-오늘 음악방송 1등 시 일상 모음집 2탄 공개합니다!
얘네도 우리랑 같은 조건이다.
오늘 있을 <더 뮤직 쇼>의 1위가 다음 영상 공개 조건이다.
“하아아.”
난 영상을 껐다.
이런 말 하기 싫지만,
‘노련하네, 진짜.’
아마 이걸 올리자는 아이디어는 강현성 머리에서 나왔을 거 같다.
이렇게 팬들이 원하는 니즈를 정확히 아는 건 아마 온리원 내에서 강현성 하나뿐일 거 같으니까.
‘이러면 위험한데.’
우리가 어제 먼저 영상을 올린 덕에 선점 효과를 누리고는 있지만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
지금 온리원 영상도 빠르게 조회 수를 올려 가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온리원과 우리의 라이벌 구도로 인해 우리 영상을 통해 유입된 타 팬덤들이 자연스레 온리원 영상으로 유입될 거다.
결국 이 또한 동률을 이루게 될 수밖에 없다는 거다.
‘뭐 하나 더 해야 하나.’
난 가만히 생각해 봤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무언가를 더 할 자신이 없었다.
이제 웃긴 영상으로 아이돌판에 상주하는 타 팬덤에게 어필하는 건 이미 할 만큼 했을 텐데.
더 이상 어디에서 문자투표 파이를 끌어올 수 있단 말인가.
‘남자 팬들 파이를 끌어와야 하나?’
드는 생각이라곤 이거밖에 없었다.
한데 걸그룹 좋아하는 남팬들 파이를 대체 무슨 수로 가져온단 말인가.
그 사람들은 우리가 무대 박살 낼 각오로 춤을 춰도 자신들 최애가 손가락 하트 하나 해주는 걸 더 좋아할 텐데.
한다면 걸그룹과 챌린지 영상이라도 찍어 올려야 할 텐데 사실 그게 별로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남팬들 긁어오는 건 난이도로 따지자면 대중들한테 픽 받는 것보다 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자니 드는 생각은,
‘대중픽?’
이 생각이었다.
생각해 보니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
아이돌이 이제 마니아들만의 문화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음악방송을 보는 사람들 중 일반 대중들이 아예 안 끼어 있을 순 없다.
차라리 그들 표를 가져오는 게 더 나을지도 몰랐다.
아니면 아이돌 문화에 대한 경험치는 있으나 일상이 바빠 잠깐 그쪽 문화를 떠난 사람들에게 픽을 받는 것도 좋은 방법이긴 했다.
‘흐으음.’
그러면 대중픽을 받을 방법을 고안해 봐야 하는데,
“태윤아? 표정이 왜 그래? 뭐 고민할 거 많아서 그래?”
갑자기 눈앞에 너무 잘생긴 사람이 훅 튀어나왔다.
“아.”
연훈이 형 얼굴을 보자 내가 대중성에 대해 너무 깊은 고찰을 했단 걸 깨달았다.
‘사람들 잘생기고 예쁜 거 좋아하지?’
잘생기고 예쁜 걸 대중성이라 한다면 여기 최고의 대중성을 갖춘 사람이 앞에 있었다.
아무래도 영상 하나를 더 찍어야겠다.
* * *
강현성은 사전녹화를 끝낸 후 대기실에 앉아 숨을 돌렸다.
그가 소파에 앉아 있으니 온리원 멤버들도 자연스레 강현성 주변에 가서 앉았다.
“형, 영상 반응 좋은데요?”
“그래?”
“지금 형이랑 주현이 형 너무 웃기다고 사람들 난리예요.”
“……그게 웃긴가.”
“형만 모르는 그런 재미가 있다니까요.”
강현성은 옆에서 박영호가 재잘재잘 떠드는 걸 들으며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확실히 오늘 올린 영상들 반응이 나쁘지 않았다.
어젯밤 세이렌이 올린 영상을 보고 처음엔 봉태윤이 미쳤나 싶었다.
이놈이 이럴 놈이 아닌데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러는 걸까.
음악방송 1등이야 중요한 일이긴 하다만 사실 지금 세이렌과 본인들은 그렇게까지 1등에 목숨 걸 필요는 없다.
아마 이번 주 내내 번갈아 가며 1등을 가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는 본인들이. 다른 하루는 세이렌이. 이런 식으로 말이다.
꼭 오늘 <더 뮤직 쇼>의 1등 트로피를 차지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가끔씩 봉태윤의 행보가 이해 가지 않을 때가 있다.
일전에 밤에 갑자기 전화 와서는 고속도로로 자신을 데리러 오라는 요구를 할 때도 있었으니 말이다.
해서 무슨 사정이 있겠거니 싶어서 넘기려 했는데,
‘아직도 얘네 영상은 조회 수가 꾸준히 오르네.’
세이렌 영상의 조회 수 오르는 속도와 화제성 타는 범위를 보아하니 이대로 있다간 큰일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번갈아 가며 음악방송 1등을 하는 건 상관이 없지만, 모든 1등을 세이렌에게 빼앗기는 건 문제가 크다.
한번 대중들 인식에 온리원이 세이렌 밑이다, 라는 인식이 생기는 순간 스노우볼은 미친 듯 굴러갈 테니 말이다.
해서 어젯밤에 멤버들을 데리고 급하게 회의를 소집했다.
각자 갖고 있는 영상들 같은 게 있나 물었더니,
‘엄청 많죠.’
‘되게 많은데요.’
‘형 말고 우린 다 찍어뒀어요.’
‘……다행이네.’
강현성 본인 말고 모두가 팀 영상들을 찍어뒀단다.
그중 재밌는 것들을 골라서 모음집 영상을 만들었다.
만들고 보니 대부분이 박영호가 찍은 영상들이었다.
강현성 본인은 이게 뭐가 웃긴지 싶었으나 멤버들이 꼭 이 영상들을 넣어야 한다며 적극적으로 미는 바람에 본인의 영상들이 모음집 영상의 대부분이 되어버렸다.
결과적으로는 세이렌의 유머 영상에 맞불을 놓게 되었으니 성공이라 할 수 있다.
급한 불은 껐다 생각하고 오늘 1등은 하늘의 뜻에 맡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점심을 먹고 난 후의 휴식시간 중, 세이렌의 추가 영상이 올라왔다.
“어?”
“세이렌분들 영상 하나 더 올리셨는데요?”
“와, 뭐야? 퀄리티가 이번엔…… 장난 아닌데요?”
“……그러네.”
이번 영상은 파랑새뿐만이 아닌 세이렌 공식 너튜브와 뉴스타그램 등등을 통해 동시에 올라온 영상이었다.
해당 영상을 본 강현성은 봉태윤이 어떤 상태인지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오늘 1등 못 하면 죽는 병이라도 걸렸나 보네.’
지금 봉태윤은 누구보다 간절하단 것을 말이다.
* * *
급하게 현아 씨와 승연 씨에게 부탁해서 스튜디오 한 곳을 수배했다.
새벽 사전 녹화를 끝낸 후 오후 스케줄이 없는 날이었기에 이런 식의 급 일정이 가능한 상태였다.
스튜디오 수배를 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지금 당장 찍어야 할 영상이 있었으니 말이다.
“여기 악기들이랑 다 있는 거죠?”
“튜닝이랑 관리는 매일 하는 거라고 당장 써도 된다고 했어요.”
“도승이 형, 기타 칠 줄 안다고 하셨죠?”
“그치. 작곡을 기타로 시작했으니까.”
“그럼 제가 피아노 칠게요.”
“……진짜로 친다고?”
“네. 칠 줄 알아요.”
“본 적이 없는데?”
“걱정 마요.”
오늘 1등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우리 팀의 명운을 결정지을 수 있다.
통찰이 날아간다면 난 시스템과 싸울 가장 큰 무기를 잃는 셈이니까.
그러니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야 한다.
“카메라 세팅은 어떻게 하면 된다고요, 태윤 씨?”
“아, 그건 제가 직접 세팅할게요. 전원만 켜주세요.”
우리 팀에서 가장 높은 포토카드 가격과 높은 인지도, 훌륭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건 연훈이 형이다.
연훈이 형의 경우엔 아이돌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꽤 알고 있을 정도로 차세대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는 중이다.
그런 형이 가장 멋있어지는 순간을 고르자면 노래를 부르는 순간이다.
해서 선택한 게 연훈이 형을 통해 음악방송 전, 한 번만 더 SNS를 불태워 보잔 거였다.
“진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믿어줘요.”
난 지금 매우 간절하다.
이번에 내가 준비한 건 연훈이 형의 장점만을 극대화한 일종의 페이스캠 영상이다.
이렇게까지 해서 안 되면,
‘그건 그냥 죽으란 거지.’
진짜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