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02화
세이렌의 로드 매니저를 담당하고 있는 윤승연은 카메라 세팅에 한창인 봉태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녀가 이쪽 일을 많이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돌아다니면서 듣는 이야기는 많다.
어느 팀에 누가 누구랑 그렇게 더럽게 논다더라.
혹은 어느 팀에 누가 그렇게 사고를 많이 친다더라.
심한 경우엔 누구랑 누구가 상습 마약을 한다더라.
혹은 혼전 임신을 했다더라.
기타 등등등.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추잡한 소문들이 자꾸만 귀에 들어온다.
윤승연은 듣고 싶지 않음에도 필연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이 바닥은 좀체 깨끗하게 있으려야 깨끗하게 있을 수 없는 바닥이었고, 동시에 누군가의 추락을 가장 즐거워하는 바닥이었으니 말이다.
처음 데뷔 땐 순수함을 간직한 채 데뷔한다 쳐도 2년, 아니, 1년만 굴러도 그 순수함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다만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이긴 했다.
어린 나이.
외적으로 훌륭한 이성들을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는 곳.
분기마다 꽂히는 천문학적인 금액들.
활동기와 비활동기로 나눠지는 확실한 여유시간까지.
이런 조건이 갖춰졌을 때 순수함을 간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연애를 하는 것을 뭐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 나이이니 연애를 하는 거야 원천봉쇄 할 순 없다 생각한다.
하지만 범죄로 나아가게 되거나, 사회 통념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행위들로 이어지게 되면, 그때부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되는 것 같다.
단순히 그 행위들을 했다는 것 자체만 문제인 것은 아니다.
그런 행위를 하는 순간 사람의 본질이 뒤틀려 버리는 것이 느껴진다.
처음 데뷔 때의 열정이나 순수함이 증발해 버린다고 해야 하나.
복도에서 마주치거나 주차장, 흡연장 등등에서 마주치는 연차가 꽤 쌓인 아이돌들 중 눈이 죽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 열이면 열 한 달도 안 되어 방송가에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세이렌분들 중에도 그런 사람 나오면 어쩌나 싶었지.’
윤승연이 경계한 것은 그거였다.
세이렌 중 과연 그 선을 넘을 사람이 아예 없을까.
지금이야 괜찮겠지만 이렇게 가파르게 성공하는 와중에 한눈 한 번을 못 돌릴까.
약 반년 만에 아이돌판에서 가장 핫한 신인 남자 아이돌이 된 세이렌이었다.
신의 도움인지 아니면 멤버들 개개인의 피나는 노력 덕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든 상황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
초반의 짠내돌이라는 이미지도 씻어버렸고, 짠내를 나게 만들던 회사조차 대기업으로 갈아 끼웠다.
이젠 초동 50만 장을 찍어내고 뮤직비디오 조회 수도 수천만 단위를 넘보는 그룹이다,
잠재가치로 환산하자면 세이렌의 가치는 수백억을 넘어설 것이고, 몇 년쯤 이런 폼을 유지한다면 어쩌면 수천억을 호가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과정 중에 과연 단 한 명도 어긋나지 않을지.
빗나가게 되진 않을지.
만일 빗나가게 된다면 그건 누굴지.
윤승연에게 신기 같은 건 없기에 그런 걸 미리 알 수는 없었다.
그렇게 눈치가 좋은 편도 아니라 예측할 수도 없었고.
하지만 세이렌에서 가장 불안해 보이는 사람을 꼽으라면 한 사람을 꼽을 수 있었다.
“승연 님. 저기 조명 스위치만 켜주실 수 있으세요?”
“아, 네네.”
막내, 봉태윤이었다.
그 사람 자체가 허튼짓을 할까 불안하단 뜻이 아니었다.
다만 어딘가 선을 걷듯 위태로운 분위기였다.
고작 열아홉 살이 인생에 풍파가 얼마나 많았던 건지 가늠조차 안 됐다.
탁.
윤승연은 조명을 켜며 생각했다.
제발 이 팀이 언제까지고 밝게 빛났으면 좋겠다고.
* * *
카메라와 조명 세팅까지 외부 인력 없이 우리끼리만 마쳤다.
실제 카메라 감독과 조명 감독이 보면 기겁할 일이다.
순식간에 어지간한 프로들이 만들 만한 세팅이 뚝딱 만들어졌으니까.
‘통찰 잃게 되면 이런 것도 끝이네.’
이런 기적도 통찰이 사라지면 더 이상 행할 수 없게 된다.
통찰을 잃으면 안 될 이유를 또 하나 가슴에 새기게 된다.
난 완성된 화면을 보며 형들을 불렀다.
“화면 봐봐요. 어때요?”
“……봉태윤?”
“너 진짜 뭐냐?”
“아니…….”
“역시 봉씨라 카메라를 잘 만지나…….”
형들도 세팅된 화면을 보고 놀랄 정도였다.
앵글의 사이즈나 조명의 때깔 모두 현역급이었으니까.
“연훈이 형, 가서 앉아봐요.”
“아, 응! 알았어.”
스튜디오 중앙에 놓인 스툴형 의자에 연훈이 형이 앉았다.
난 연훈이 형 몸이 화면에 꽉 찰 수 있게끔 다시 카메라를 세팅했다.
이후 조명도 다시 미세조정 하고 나니 최종세팅이 약 20분 만에 끝이 났다.
“근데 진짜 나 혼자 부르면 되는 거야, 태윤아?”
“네.”
“다른 애들은?”
“차차 공개해야죠. 한 번에 다 공개하면 어떻게 해요. 저희 음악방송 아직 5개나 더 남았고, 활동도 3주나 남았어요.”
“아, 그렇구나.”
오늘 스튜디오에서 찍을 영상은 연훈이 형이 혼자 부르는 우리의 타이틀곡이었다.
여름 시즌에 맞춰서 낸 시즌송이자 드라이브하면서 듣기에도 나쁘지 않은 곡이었다.
실제로 도승이 형이 이 곡을 쓸 때에도 그런 느낌으로 썼다고 했다.
휴가 가는 사람들의 차량 안에서 울려 퍼졌으면 좋겠단 마음으로 말이다.
당연히 탑라인이 간질간질하고 시원한 느낌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템포도 사람들이 따라부르기 쉽게 미디엄 정도에 맞춰져 있었다.
그래설까.
이 곡은 나오자마자 어쿠스틱 버전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드라이브라는 게 꼭 낮에만 하는 건 아니고, 밤에 드라이브하는 사람들도 많으니 말이다.
다만 밤에 듣기에는 이 곡은 너무 발랄한 편이긴 했다.
그래서 조금 톤을 낮춘 어쿠스틱 편곡 버전이 너튜브 등에 많이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식은 아니고 팬들이 만들어낸 버전들이었다.
다행인 점은 만능천재 강도승 씨가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해 둔 게 있었다는 거다.
그간 공식 없이 떠돌기만 하던 어쿠스틱 버전의 을 오늘 녹화해서 풀어낼 예정이었다.
“동준이 형. 이리로 와서 카메라 녹화 버튼만 눌러줄래요?”
“오키오키.”
“전 저쪽 가서 피아노 칠게요.”
난 피아노 앞에 가서 악보를 설치한 뒤 통찰을 사용했다.
통찰을 쓸 때마다 치트키를 쓰는 느낌이긴 하다,
‘이걸로 차라리 수능을 봐서 의대에 들어갈까.’
약 5초 만에 이 곡의 피아노를 어떻게 쳐야 할지 머릿속에 전부 들어왔다.
“그럼 녹화 시작하겠습니다!”
동준이 형이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누르고.
그에 맞춰 도승이 형과 내가 연주를 시작했다.
어쿠스틱 버전으로 편곡된 의 전주가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
스툴에 앉아 있던 연훈이 형은 금세 감정을 잡았다.
어쿠스틱 버전 같은 거 따로 레코딩해 본 적도 없을 텐데 이미 이 곡이 익숙한 사람처럼 그루브를 타고 있었다.
어떤 곡에든 그 정서를 빠르게 이해하고 몰입하는 게 연훈이 형의 천재적인 면이었다.
이내 전주가 끝나고 노래가 시작되었을 때.
‘하길 잘했네.’
조금 오바스럽더라도 이렇게까지 판을 벌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오후 1시.
학교든 직장이든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른하게 여유를 보내고 있을 그 시점.
세이렌의 공식 너튜브와 뉴스타그램, 파랑새 등등에 일괄적으로 영상 하나가 올라갔다.
직장에 다니는 직장인이든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든 누구든 여유롭게 영상 하나쯤은 볼 수 있는 시간대였다.
사람들은 자연스레 세이렌이 올린 영상을 확인했다.
어젯밤에는 유머 영상 같은 걸 올려서 얘네가 개그맨인지 아이돌인지 헷갈리게 하더니, 이번엔 제법 가수 같은 영상을 올린 상태였다.
- Acoustic ver. (우연훈)
세이렌의 팬들이 오랜 시간 염원해온 의 어쿠스틱 버전이었다.
썸네일에는 우연훈의 얼굴이 한가득 잡혀 있었다.
클로즈업까지는 아니고 바스트샷을 꽤 타이트하게 잡은 듯한 앵글 사이즈였다.
대놓고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만 너무 얼굴만 한가득 잡으면 어색할 수밖에 없으니 타협을 본 듯한 사이즈였다.
-ㅅㅂ연훈이 얼굴 뭐임?;;
-왘ㅋㅋㅋ진짜 썸네일 보자마자 탄성 나왔음
-진짜 이게 복지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진심 소리 지를 뻔함
-말랑복숭아…… 진짜 이게 인간 복숭아 아니면 뭐가 복숭아임……?
썸네일만으로도 사람들은 해당 영상을 공유하며 자신의 피드에 올리기 시작했다.
매번 우연훈이 방송만 나오면 레전드 갱신이라는 말로 사진들이 떠돌아다니곤 하는데, 이번 썸네일은 그 갱신의 정도가 유독 심했다.
-얘는 진짜 매번 방송 탈 때마다 다르게 잘생긴 거 같음
-잘생긴 남자를 보면 기억을 잃는대……잘생긴 남자를 보면 기억을 잃는대……잘생긴 남자를 보면 기억을 잃는대……잘생긴 남자를 보면 기억을 잃는대……잘생긴 남자를 보면 기억을 잃는대……
-얼굴은 4세대 남돌 중 원탑임
봉태윤이 아예 각을 잡고 우연훈 하나만 예쁘게 찍기 위해 카메라를 세팅하고 조명을 깎아낸 결과물이었다.
썸네일에서 일차적인 충격을 주는 데에 성공했다면 이제 다음 충격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상을 시작하고 난 후.
처음 들려온 건 어쿠스틱으로 편곡된 의 전주였다.
원래는 밝고 명랑한 여름 한낮 같은 곡이었는데 어쿠스틱으로 편곡되니 초여름 밤 같은 서늘함이 추가되었다.
템포도 기존의 미디엄 템포보다 한 템포 떨어진 느릿한 정도로 바뀐 상태였다.
여유롭다, 라는 감상을 최대한 주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전주가 흘러가고.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 위로 탑라인을 담당할 피아노 음이 얹어지는 순간.
-우리 둘의 새로운 스토리
-너와 내가 써갈 이야기
-So good- 느낌이 와.
-대체 할 수 없는 순간
-다신 보지 못할 드라마
-지금, 우리 둘 사이야
우연훈의 목소리가 이어폰을 타고, 스피커를 타고, 영상을 보는 사람들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와 음색 ㅁㅊ……
-진심 입 틀어막음
-와아……진짜……우연훈 개미친놈 같음……
기존에 너튜브 등에 풀려 있던 비공식 어쿠스틱 음원들과는 퀄리티가 다른 음색이었다.
아예 어쿠스틱 반주에 맞춰 우연훈이 새롭게 만들어낸 감정선들은 첫 소절을 듣자마자 사람들의 귓가에 아련하면서도 명확하게 울려 퍼졌다.
첫 소절 만에 사람들의 몰입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목소리였다.
사람들은 첫 소절을 듣는 순간부터 영상이 끝날 때까지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여름밤, tonight.
-이 밤의 끝을 붙잡고
-so good, tonight.
-오랜 순간 기다려온 날이야
우연훈의 감정선은 점점 더 구체적인 하나의 이미지를 그려내기 시작했다.
-푸르게 빛나는
-우리의 여름은—ooh──
-Blue summer night
-불타는 밤이야
-서늘하게 번지는
-이 세계의 끝을 바라봐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과 똑같은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게끔 세밀하게 가사 한 줄 한 줄을 내뱉는 것만 같았다.
유독 시원한 여름밤. 간만에 여유로움을 즐기는 그 순간이, 곡을 듣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연스레 그려져 갔다.
다만 2절로 넘어가기 전.
뚝.
영상은 갑자기 끊어졌고,
-2절은 음악방송 1위 시 공개됩니다.
세상 사악한 멘트가 화면에 떠올랐다.
-이런 ㅅ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