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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04화 (204/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04화

형들과 음악방송 생방송 무대를 마쳤다.

“꺄아아아아아!”

엔딩 포즈를 잡는 동안 객석에선 환호성이 쏟아졌다.

숨은 적당히 가빠오고 조명 빛에 시야가 조금 흐릿하다.

무대를 끝내고 난 후의 감상은 이토록 번잡스럽고 정신없지만 벅차오른다고 할 수 있다.

난 엔딩 포즈까지 끝낸 후 형들과 눈을 맞췄다.

다들 좋은 무대를 했다는 것에 만족한 건지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우린 객석에서 우리 무대를 봐준 세일러들과 눈으로 인사를 나눈 후 백스테이지로 이동했다.

“흐아아아! 끝이다!”

동준이 형이 백스테이지로 들어오자 이리 소리쳤다.

“고생 많았어~”

“고생 많으셨어요.”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우린 만나는 스태프분들에게 고생 많았다는 말을 외치며 대기실로 이동했다.

“이제 오늘 하루도 어떻게 끝이 났네.”

“그러니까요.”

“다들 고생 많았어. 오늘 유독 긴 하루였네.”

소파에 앉아 늘 그렇듯 오늘 하루 고생 많았다는 말들을 주고받았다.

다만 형들과 내 신경은 사실 그런 것 따위에 가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린 공기 중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들 그 생각 하고 있죠?”

먼저 운을 뗀 것은 동준이 형.

“……당연하지.”

그다음 그 말을 받은 것은 도승이 형이었다.

“후우우.”

연훈이 형의 긴장 섞인 한숨이 울리고.

“……잘 될 거야……. 잘…….”

마치 자기암시 같은 운이 형의 혼잣말이 대기실에 울린다.

우리가 이토록 신경 쓰는 주제는 한 가지.

오늘 음악방송 1등이 가능한가에 대한 거다.

방금 막 우리가 무대를 마치고 내려왔으니 엔딩까지는 1팀 남은 셈이다.

엔딩 팀은 우리보다 앨범 판매량이나 뮤직비디오 조회 수가 많은 팀은 아니다.

다만 7년 전 가요계 정상이었던 보이그룹의 재결합이었던지라 방송사에서 전관예우 느낌으로 엔딩 무대를 잡아준 거였다.

우린 괜히 온리원과 엔딩 무대로 묘한 신경전 안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하는 중이었고.

암튼 이제 곧 엔딩 무대도 끝이 날 거다.

그렇다면 남은 건 1위 발표식뿐이다.

오늘 1위 후보로 올라간 만큼 생방송 중간에 올라가서 인터뷰를 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MC분은 각각의 팀 리더들에게 공약에 대해 물었고, 연훈이 형과 강현성은 이미 대중들도 잘 알고 있을 공약에 대해 다시 한번 읊어줬다.

-저희는 태윤이의 유머 영상 업로드와 제 커버 영상 업로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아!

-저희 팀은 1등 시 유머 영상의 2탄을 SNS에 게시하겠습니다.

색다를 것은 없는 공약 발표 시간이 될 줄 알았지만 강현성은 본인들 공약이 너무 약하다 느낀 건지 한마디를 더 공개하기도 했다.

-또한 아직 어디에도 공개된 적 없던 저희 멤버들의 내추럴한 아침 루틴을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공개했던 유머 영상 모음집과 비슷한 느낌이긴 한데 좀 더 특화된 주제에 맞춘 영상이었다.

그 멘트에 객석에서 잠시 웃음인지 환호인지 모를 것이 터져 나오긴 했다.

이후 해당 인터뷰는 각자 팀의 포인트 안무를 한 번씩 추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1위 후보 인터뷰를 할 때까지는 별로 긴장되지 않았는데 이제 1위 후보 발표를 한다고 하니 심장이 옥죄어 오는 느낌이었다.

“어? 이제 선배님들 무대 거의 끝나간다.”

멍하니 티브이를 보고 있던 연훈이 형이 이리 말했다.

위에서 엔딩 무대를 장식하고 있을 팀의 무대가 거의 끝나가고 있단다.

이내 무대가 완전히 종료되고 난 후.

“1위 발표 무대 스탠바이하겠습니다! 다들 복도로 나와서 대기해 주세요!”

우린 1위 발표식을 앞두게 되었다.

* * *

세이렌의 한 팬은 집 침대에 앉아 핸드폰으로 음악방송을 보고 있었다.

실시간 문자투표와 사전투표는 진작에 했고 친구폰, 부모님폰, 동생폰을 다 뺏어서 투표도 했다.

사실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투표에 임하는 편은 아닌 그녀였다.

우리 애가 1등 하면 좋은 거지만 사실 본인이 한다 해서 그렇게까지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주의였으니 말이다.

그녀는 애초에 헤비하게 덕질을 하기보다는 라이트하게 덕질을 하는 팬이었고, 매번 앨범 나오면 종류별로 한 장씩 사보거나 팝업스토어 가서 럭드 정도만 뽑아보는 팬이었다.

다만 이번엔 세이렌의 1위 여부에 과몰입을 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보고 싶은 유머 영상과 커버 영상이 있기도 해서이지만,

“제발…… 우리 애들 진짜 지금 간절해요……. 하나님…… 진짜요…….”

그 영상들을 보며 팬으로서 느껴지는 애들의 간절함이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이 애들을 그토록 간절하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사실 오늘 1등 안 해도 다른 날에 충분히 1등 할 수 있는 애들이니 말이다.

한데 세이렌은 오늘 음악방송 1등에 그룹 사활이라도 걸린 사람들마냥 열을 올렸다.

그 덕일까.

투표에 크게 관심 없던 세이렌 팬들까지 죄다 끌어올 수 있었고 심지어는 인터넷상에서 화제까지 된 덕에 중도층까지 끌어올 가능성도 생겼다.

안 좋은 점이라면 세이렌 팬덤이 끓어오르는 만큼 온리원 팬덤도 끓어올랐다는 거다.

-우리 애들 1등 절대 지켜!

-온리원 1등 안겨주자

-현성이 트로피 받고 우는 거 보면 성불할 듯;;

이제 세이렌 팬덤과 온리원 팬덤 사이에서는 어느 그룹이 먼저 1등을 차지하느냐가 하나의 대결 주제로 정해진 느낌이었다.

데뷔일이 같으니 이런 것마저 사소하게 다 경쟁이 붙게 되는 것 같다.

데뷔일 기준으로 음악방송 1위까지 걸린 시간을 하루라도 더 앞당겨야지 이기는 게임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뭐가 됐든 짜릿한 맛은 있으니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때마침 엔딩 무대가 끝이 나고.

“헉! 올라왔다!”

1위 후보들을 비롯한 아이돌 그룹들이 무대 위로 일제히 올라왔다.

MC들이 나와서 의례적인 멘트를 내뱉고.

“이번 주 1위 후보 세이렌과 온리원의 점수, 지금 공개하겠습니다!”

1위 결정에 중요한 점수들을 하나씩 공개하기 시작했다.

가장 많은 파이를 차지하는 음원 점수가 먼저 공개되었다.

-세이렌 : 8,095

-온리원 : 7,894

세이렌이 앞서 있긴 하지만 큰 차이는 벌어지지 않은 점수였다.

다음으로 나온 것은 음반 판매량 점수.

-세이렌 : 2,092

-온리원 : 2,504

이 항목은 온리원이 앞서 있긴 하지만 역시나 큰 차이가 난다고 말하긴 어려웠다.

뮤직비디오 점수도 마찬가지였다.

-세이렌 : 3,522

-온리원 : 3,401

빠르게 암산이 가능한 사람들이라면야 이것들을 실시간으로 다 더해봤겠지만 대부분의 일반인들은 그런 실시간 암산이 불가능하다.

세이렌의 팬인 그녀 또한 거의 동률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만 하며 점수판을 따라갔다.

사전투표 점수까지도 이와 같은 양상은 비슷했다.

-세이렌 : 1,502

-온리원 : 1,485

세이렌 팬들도 온리원 팬들도 애타는 가운데.

마지막.

실시간 투표 점수가 공개되었고,

-세이렌 : 3,997

-온리원 : 1,755

“어?”

처음으로 눈에 확 띄는 점수 차가 발생했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다가 반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낌이 오기 시작했다.

아직 정확한 계산을 때려본 것은 아니지만, 세이렌이 1위 할 거 같다는 느낌이 왔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세이렌 : 19,208

-온리원 : 17,039

최종 점수에서는 세이렌이 꽤 눈에 띄는 차이를 벌리며 1등을 차지했다.

“꺄아아아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본인이 1등을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온몸에 전율이 도는 순간이었다.

* * *

펑!

하늘에서 꽃가루가 떨어진다.

우리도 모니터로 우리가 좀 더 높은 점수를 미세하게 받아가고 있음을 눈치채긴 했다.

하지만 실제 암산을 해내진 못했으니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최종 점수가 나오고.

우리가 온리원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음이 확인되고 난 후.

그 순간 속에서부터 무언가 뜨거운 게 솟아올랐다.

이내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꽃가루가 떨어지고, 사방에서 환호성이 들려왔다.

“이번 주 1위는 세이렌의 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우리가 기어이 1등을 또 한 번 해내고야 말았다.

“아…… 아아…….”

기쁜 건지 놀란 건지 목소리가 제대로 안 나온다.

1등을 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줄 알았다.

얼추 예상도 다 했고, 이거 하나를 받아내기 위해 진짜 별의별 난리를 다 쳤으니 말이다.

한데 막상 받으니 누군가 심장을 주먹으로 세게 퍽 치고 간 느낌이 들었다.

난 고개를 돌려 형들을 바라봤다.

“흐으읍. 흐읍! 우우우우…….”

연훈이 형은 이미 울고 있었고.

“하아…….”

도승이 형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꽃가루를 보는 척하며 애써 눈물을 안구 뒤로 밀어넣고 있었으며.

“끄아아아아악!”

동준이 형은 이 기쁨을 숨길 마음 따위 없단 듯이 비명을 질렀다.

“말도 안 돼…….”

운이 형은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입을 가린 채 놀란 눈으로 우릴 훑어보는 중이었다.

“이리 와 애들아…….”

그때 연훈이 형이 울먹거리며 우리를 모았다.

우린 마치 자석에 끌리듯 자연스레 연훈이 형 주위로 다가갔다.

“고생 많았어……. 너무너무 고생 많았어, 애들아.”

형의 그 한마디에 울컥하고 속에서 치솟아 오르는 것이 있었다.

고생 많았다는 뻔한 한마디인데.

그 말 속에 오랜 시간 담아온 응어리가 느껴지는 듯했다.

데뷔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 채 기다리던 연습생으로서의 나날들.

매주가 경쟁이었던 더쇼케이스2.

그 순간들을 뚫고 여기에 닿았다는 것이 체감되었다.

환호성을 지르던 동준이 형도 지금에 와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운이 형도 남들 몰래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아 냈다.

“여기…… 트로피……!”

“아!”

우리끼리 뭉쳐 있다 보니 트로피 받는 것도 잊고 있었나 보다.

우리의 영광스러운 첫 번째 음악방송 1위 트로피다.

연훈이 형이 대표로 트로피를 안아 들자 마이크가 들어온다.

소감 발표하란 거다.

“흐읍. 음. 네.”

형은 마이크 앞에서 눈물을 잠시 밀어넣고는 보다 차분하게 입을 뗐다.

“이 1위……. 정말 받고 싶어서 노력 많이 했는데 드디어 받게 되어 너무너무 기쁩니다. 우리 멤버들 다 너무너무 고생 많았고…….”

연훈이 형은 말을 하다 다시 울먹거리는가 싶더니 겨우 진정하고 입을 뗐다.

“언제나 저희 서포트해 주시는 승연 매니저님, 현아 매니저님 너무너무 감사하고, 저희 넥스트 웨이브 식구분들도 모두…….”

형은 감사한 사람들의 명단을 죽죽 말하며 수상소감을 이어갔다.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 보니 연훈이 형도 오늘 1위 할 줄 알고 미리 대본 짜뒀나 보다.

감사 인사 리스트가 끝난 후.

“앞으로도 계속해서 잘하는 세이렌 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은 보다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때맞춰 MC들은 퇴장.

무대엔 앵콜을 위한 우리 곡의 반주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순간,

[미션 성공]

[음악방송 1위를 차지했습니다.]

[성공 보상을 수령합니다.]

음방 1위를 했으니 보상을 준단다.

‘왜 하필 지금…….’

생각해 보니 이걸 간과했다.

미래시가 이제 다시 주어질 텐데…….

‘이거 아프잖아.’

참는다고 참아질 수준이 아닐 정도로 아프다.

난 지금 음악방송 무대 위다.

여기서 미래시를 받는다?

대국민 앞에서 고문받는 걸 생중계하는 거나 다름없는 거다.

첫 1위를 한 역사적인 순간을 이렇게 망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런 선택은 거의 본능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시스템이 보상을 수령하라는 멘트에 맞춰, 나도 모르게 통찰을 사용했다.

지이잉-

그리고 이 선택은 일종의 오류 현상으로 이어졌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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