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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05화 (205/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05화

[허락되지 않은 접근입니다.]

[허락되지 않은 접근입니다.]

[허락되지 않은…….]

난 반사적으로 통찰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이유는 거창할 게 없었다.

아플 것 같았으니 말이다.

누군가 때릴 것이 예상되면 본인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되는 경우가 있지 않은가.

그와 같은 매커니즘이었다.

해서 이런 상황이 나온 것이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미래시가 부여되는 순간.

거의 동시에 들어간 통찰의 사용은 어딘가 시스템의 작동에 오류를 일으킨 모양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무대 위에 서 있었건만, 지금 나는 우주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이젠 웃기지도 않네.’

일전에 한 번 이런 식의 광활한 공간에 와본 적이 있다 보니 전만큼 놀랍지는 않았다.

또 한 번 내 눈앞에는 기다란 선이 하나 놓여 있었다.

이전에도 봤던 바로 그 ‘선’ 말이다.

중간이 뚝 끊긴 채 우주 한가운데 놓여 있던 바로 그것.

다가가려 해도 다가가는 만큼 멀어져서 접근조차 할 수 없던 바로 그 선이었다.

이전과 다른 것이 있다면 내가 그 선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점 정도다.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다가가는 만큼 멀어졌던 것이, 지금은 정직하게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

‘대체 뭘까. 지금 이게.’

사실 정리되지 않은 상황이라 나도 혼란스럽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이게 시스템도 예상하지 못한 어떤 한 찰나의 순간이란 거다.

시스템은 아무리 봐도 컴퓨터에 비유해야 할 무언가 같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은 그러한 컴퓨터가 살짝 다운된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야 없다.

경비병이 사라졌으니 이때가 아니면 언제 집을 털어보겠는가 말이다.

이전부터 궁금했다.

이 광활한 우주 한가운데 놓인 저 기다란 선이 무엇인지 말이다.

대충 상상해 보건대 뭐 세계선 같은 그런 것이지 않을까 싶었다.

전직 웹소설 작가로서 나름 상상력을 발휘해 본 거였다.

세계가 움직이는 커다란 운명들을 엮어 만든 기다란 선.

세계는 이 선에 따라 움직이고 이 선에서 벗어나는 것들은 제거한다.

내가 만일 작가라면 이런 설정을 만들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내 추론은 꽤 정확하게 들어맞았는지,

‘……이게 진짜 세계선인 거야?’

선에 다가갈수록 마치 환영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그림들이 있었다.

이는 인류사의 중대한 순간들인 것도 같았고, 아주 소소한 일상적 순간들인 것도 같았다.

난 선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펼쳐지던 것은,

‘……미친.’

아주 잠깐 손을 댔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로써 잠정적으로 난 이게 진짜 세계선이라고 결론지을 수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인류 역사를 모아둔 아카이브인 셈이다.

이 아카이브 안에는 역사적 대사건부터 아주 일상적인 순간들까지 산발적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손을 대는 순간 난 전장 한가운데에 서 있기도 했고, 한 가정의 식탁에 앉아 있기도 했으며, 어떤 부부의 결혼식장에 있기도 했고, 누군가가 죽는 순간을 보기도 했다.

어떤 사건은 누가 봐도 역사적 대사건이었으나, 또 어떤 사건들은 너무 일상적이라 세계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사소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바로 저거다.

이 기다란 선이 세계선이라면, 저기 뚝 끊어진 바로 저 지점은 무엇이란 말인가.

난 뚝 끊어진 지점을 향해 걸었다.

아니, 실제 걸었다기보단 걷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관념체에 가까운 듯한 내 몸이 그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난 세계선의 뚝 끊긴 바로 그 지점 앞에 섰다.

그리고 여기까지 와보니 보이는 것은

‘……뭐야.’

이전까진 하나의 선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세계선이, 뚝 끊겼던 지점에서부터는 사방으로 갈라지며 산개해 있단 거였다.

우주 전체를 메울 듯이 뻗어나가는 그 세계선에 난 잠시 압도되는 느낌마저 받았다.

그 모습이 마치 거미줄이 퍼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알이 깨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으며, 커다란 벽면에 크랙이 생기는 것도 같았으니 말이다.

난 그곳을 향해 손을 뻗었다.

분기점들이 갈라지기 시작한 딱 한 지점을 향해 말이다.

그 순간 보고 온 것은,

‘……이건 ……진짜로?’

우리가 속초에서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났던 그 교통사고 장면이었다.

사실 내심 예상은 하고 있었다.

세계가 하나의 선으로만 죽 이어진다고 하기에는 난 이미 너무 많은 회귀자들을 봤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저기 퍼져 나가 있는 저 세계선들은 다 형들이 살아나간 여러 개의 우주들인 셈인 거다.

난 그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길게 뻗어가다가 갑자기 사라진 선도 있었고.

좀 더 길게 뻗어가다가 사라진 선도 있었으며.

굉장히 복잡하게 이런저런 각도로 꺾이는 선들도 있었다.

그 선의 모양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세계가 어떤 세계였을지가 예상이 가는 듯했다.

분명 난 뻗어 나간 세계선 사이를 걷고 있는 것인데 마음만큼은 묘지에 간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공허하며 쓸쓸했고, 조금의 경외심과 애틋함이 들었다.

난 걸음을 옮기다 다시 멈춰 섰다.

수많은 분기점들이 갈라지며 사방으로 뻗어 있는 선들 사이, 기형적인 선 하나가 있었다.

‘설마.’

세계선은 속초 사건 이후로 뚝 끊어지더니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형태를 유지 중이었다.

즉 응집되지 않고 확산되는 모양을 유지하는 중이란 거다.

한데 가장 끝에 있는 선 하나가, 다른 선들을 잡아먹는 중이었다.

그것도 꽤 많은 수십 개의 선들을 말이다.

아니, 잡아먹는다기보다는,

‘억지로 붙여놨어?’

다른 선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겨서 붙여둔 것 같았다.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이게 나구나.’

손을 뻗어 내용을 볼 필요조차 없었다.

이건 내 세계를 보여주는 선이며, 이 선 옆에 붙은 다른 선들은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의 선일 테니 말이다.

그러자니 드는 의문은.

‘내가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의 선은 내 쪽으로 끌어당겼는데, 그거 외에 지금 이 수많은 선들은 다 뭐지?’

내 선과 내 선 주위에 붙은 세계선들 외에, 지금 이 공간에 있는 이 수많은 세계선들은 대체 다 누구의 것이냔 말이다.

우리 멤버가 총 5명.

그중 나를 제외하면 4명.

이 넷 중 절반에 해당하는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면, 단순히 계산해 보자면 절반에 해당하는 세계선이 내게 붙어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게 붙은 선들은 이 커다란 분기점들 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런 추론이 가능해진다.

‘누군가가 수천 번, 아니 어쩌면 그 이상 회귀를 했다고?’

소름이 돋으며 지나쳐 왔던 세계선들이 궁금해진다.

과연 누구의 세계선인가 싶어서 말이다.

동준이 형? 연훈이 형?

아니면 또 다른 누군가?

그 순간,

[허락되지 않은 접근입니다.]

‘하필 지금?’

시스템이 복구되었다.

그냥 지나쳐 왔던 방대한 세계선들을 확인해 보지도 못했건만.

서둘러 확인해 보려 했지만 복구된 시스템은 내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금 세계선은 내가 다가가려 하면 그만큼 멀어지는 형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이내 온몸에 추락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 우주와 같은 공간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거다.

이전에도 한 번 겪어 봤던 거지만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난 멀어지는 세계선을 바라봤다.

떨어지는 그 순간까지 지켜봤다.

만일 저게 세계선이고, 내가 그 산발적으로 뻗어 나가는 그 모든 선들을 내 쪽으로 잡아 당겨올 수 있다면.

‘……미션을 끝낼 수 있을까?’

시스템이 내게 바라는 그 본질적인 무언가에 닿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난 끝까지 세계선을 노려봤다.

이내 원래 내가 있던 무대 위로 돌아오고 나자,

[미래시 부여가 취소됩니다.]

[성공 보상이 달라집니다.]

[성공 보상 산정 중입니다.]

[잠시 기다려 주시길 바랍니다.]

성공 보상 수령이 지연되었다.

미래시가 지금 들어오면 아플 것 같아 썼던 통찰인데, 나름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게 아닌가 싶었다.

“태윤아. 여기 마이크…….”

그때 연훈이 형이 내게 마이크를 건넸다.

그제야 현실 파악이 되며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체감됐다.

꽤 오랜 시간 우주에서 세계선을 바라보고 왔다 보니 잠깐 잊게 되었다.

난 지금 음악방송 1위를 했고 앵콜 무대를 해야 했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일 났네.’

우리 메인보컬을 포함한 대부분의 멤버들이 우느라 노래를 제대로 못 부를 것 같단 말이다.

결국 내가 마이크를 들고 앵콜 무대를 끌어나갔다.

* * *

세이렌이 1등 기념 앵콜 무대를 이어가는 사이.

은평구 후미진 골목의 한 무인텔에 노숙인과 같은 차림의 남성이 들어갔다.

나이는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성이었으며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과 아무렇게나 덧댄 옷을 입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일반 모텔이라면 이용 자체가 안 될 터이나 무인텔의 경우 돈을 내면 숙박이 가능했다.

남성은 방 열쇠를 챙긴 뒤 본인이 구매한 방으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한 후 입고 있던 옷을 벗고 인근 마트에서 사 온 듯한 새 옷을 꺼내입었다.

그것만으로도 남성의 인상은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칼은 뒤로 모아 고무줄로 꽉 묶었으며, 얼굴 전체를 덮고 있던 수염은 말끔하게 잘려 나가 있었다.

남성은 자신이 입고 온 옷과 이런저런 것들을 비닐봉지에 모아 버렸다.

무인텔 입장 전과 같은 사람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남성은 침대에 걸터앉아 핸드폰을 꺼냈다.

액정이 깨지고 흙이 묻어 작동이나 제대로 할까 싶은 물건이었으나 충전기를 연결한 후 잠시 기다리니 정상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남성은 핸드폰이 켜지자마자 곧장 인터넷에 들어가 하나의 키워드를 검색했다.

-세이렌

이후 그의 서치는 점점 더 구체적이고 거침이 없어졌다.

-세이렌 회사

-세이렌 멤버 인적사항

-세이렌 숙소

-세이렌 실물

-세이렌 사생

-세이렌 봉태윤

50대 남성이 검색하기에는 다소 과하고 어색한 키워드였으나, 남성은 수첩을 꺼내 검색한 정보들을 하나하나 적어 나가기 시작했다.

남성의 이름은 강석두.

올해로 52살인 남성이자, 세이렌의 차량을 밀어버렸던 트럭 기사였다.

* * *

통찰을 사용해 앵콜 무대에서 나름 메인보컬들의 파트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사실 갑자기 이렇게 노래를 잘 불러 버리면 안 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형들이 의심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또 노래는 연훈이 형 포지션인데 내가 괜히 겹치면 안 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위급상황이니 어쩔 수 없기도 하거니와, 의심을 한다면 활동하다 보니 늘었다는 말로 퉁치면 될 것 같아서 냅다 불러 버렸다.

통찰을 쓰면 노래를 잘할 수 있단 걸 알아도 혹시나 의심 살까 제대로 못 쓰는 날들이 많았는데, 오늘 시원하게 할 수 있는 만큼 노래를 불러봤다.

아마 그 탓일까.

“태윤아?”

“……이게 무슨 일이야.”

“넌 왜 무대에서 득음을…….”

형들은 내 노래를 듣다가 놀라서 이런 말들을 내뱉었다.

2절 이후부터는 눈물을 멈춘 형들 덕에 내가 마이크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앵콜 무대를 마친 후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눈물 범벅에 경황도 없고 아주 번잡스런 상황이지만 하나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1등이다아악!”

“으아아아악!”

“됐어! 1등 됐어, 우리!”

짜릿한 고양감이 온몸을 지배한다는 것을 말이다.

이 기분 좋은 느낌을 만끽하고 싶었는데…….

[보상 산정이 종료되었습니다.]

하필이면 시스템이 끼어든다.

그래도 뭐, 보상 준다는 거니 참고 들으려 했는데.

[보상이 취소됩니다.]

[추가 미션이 부여됩니다.]

[추가 미션 발발]

[3개월 안에 빌보드 HOT100에 진입하시오.]

[성공 시, 보상 없음.]

[실패 시, 강도승, 이운의 사망 및 세계선 분리.]

“……뭐?”

피가 차갑게 식는 미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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