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06화
미션 내용이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았다.
다시 들어보려고 생각하니 이 망할 시스템은 미션 내용을 친절하게 다시 읊어준다.
하지만 다시 들어봐도 동일하다.
빌보드 핫 100을 3개월 안에 진입해야 한다.
실패 시에는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이 사망하고, 기껏 붙여둔 세계선들이 내게서 떨어져 나가게 된단다.
이런 뭣 같은 미션을 던져줘 놓고서는 성공 보상 따윈 없었다.
이건 밸런스고 자시고 그냥 죽으라고 등 떠미는 수준이었다.
왜 이런 미션이 나온 거냐.
짚이는 바는 하나다.
‘내가 세계선에 다가가서인 거야?’
그 짧은 순간 세계선을 보고 온 것이 이런 미션을 불러왔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마치 보면 안 될 것을 보았으니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든 아니면 죽든 하라는 말 같았다.
미션 듣고 다리에 힘 풀린 적은 없건만,
“봉태윤?”
오늘은 백스테이지로 내려오는 길에 잠깐 다리가 풀렸다.
“뭐야? 왜 이래?”
계단에서 넘어질 뻔한 걸 도승이 형이 붙잡아준 덕에 사고로 번지진 않았다.
“태윤이 다칠 뻔했어? 괜찮아?”
“어디 다친 곳은 없지?”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오늘은 진짜 보양식 먹어야겠다.”
“오늘만큼은 진짜 우리 치팅 합시다!”
“……맛있는 거 먹는 거 좋죠. 하하.”
난 이 분위기를 망칠 순 없었기에 형들 바이브에 맞춰줬다.
동준이 형과 연훈이 형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기실로 이동하고,
날 부축해 준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이 뒤에 남았다.
“우리도 가죠, 형. 오늘은 축하할 날이니까 좋은 기억만 남겨야죠.”
난 형들에게 이리 말했다.
괜히 1등 한 날에 형들 기분 망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한데,
“봉태윤. 괜찮냐?”
“무슨 일이야, 너.”
형들이 날 붙잡았다.
난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을 각각 바라봤다.
직감적으로 눈치챌 수 있었다.
“형들?”
“너…… 이상한 미션 받았냐?”
“대체 뭐길래 그래.”
지금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은 회귀자와 스위칭 된 상태였다.
* * *
도승이 형, 운이 형과 함께 비상 계단으로 이동했다.
지금 이 근방에서 가장 사람이 없는 곳은 여기였다.
이미 갈 만한 사람들은 다 퇴근했을 시간이기도 하고, 딱히 기념샷 같은 걸 찍을 만한 구조물도 없는 곳이니 말이다.
위아래 층으로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난 후에야 우린 대화를 시작했다.
“무슨 일인데?”
먼저 물은 건 운이 형이었다.
“……빌보드 핫100 미션 떴어요.”
“빌보드?”
“지금?”
내 입에서 빌보드란 이름이 나가자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의 눈이 둘 다 동그래졌다.
“지금 뜰 리가 없는 미션인데?”
“그거 대상 받고 난 후에야 뜰 텐데……. 이제 막 음방 1등 한 너희한테 그게 왜 떠?”
형들 말을 들어보면 역시나 지금 뜰 만한 미션이 아닌가 보다.
난 이 미션의 실패 패널티에 대해서도 말해줬다.
“우리가 죽어?”
“둘이 동시에 죽는 미션은 처음인데…….”
세계선 분리도 패널티이긴 했으나 딱히 말하진 않았다.
그거까지 설명하다 보면 할 말이 너무 길어지기도 하거니와 당장 필요한 정보는 아닐 수 있으니 말이다.
“……왜 네 회귀는 과정이 이상하냐, 혼자.”
“뭔가…… 시스템이 작정하고 죽이려는 느낌이야.”
도승이 형과 운이 형 둘 다 걱정스러운 눈길로 날 쳐다봤다.
“생각해 둔 방법은 있어?”
“아뇨. 방금 막 들은 미션이라 생각해 보고 자시고 할 겨를도 없었어요.”
“기한은?”
“3개월이요.”
“3개월 안에 빌보드 핫 100 진입이라…….”
“하이고…….”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의 얼굴 위로 수심이 드리워진다.
“형들은 가장 빨리 빌보드 진입한 게 몇 년 차예요?”
“3년 차.”
“나도.”
“그래요?”
“2년 차 마지막에 대상 받고 난 후, 3년 차 됐을 때 정규로 빌보드 200 먼저 진입했어.”
“빌보드 핫 100 진입은 조금 더 걸렸던 거 같아.”
형들의 말을 들으니 더더욱 암담해졌다.
온갖 역경을 뚫고 몇 번의 회귀를 반복했던 형들조차도 빌보드 진입은 3년 차에나 가능했단다.
심지어 핫 100은 좀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하기도 하고.
즉 나에게 3개월 안에 핫 100에 진입하라는 것은 말 그대로 미션을 포기하고 회귀를 처음부터 다시 하라는 거나 마찬가지인 말이다.
형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걸까.
“……태윤아.”
“……흐음.”
“이런 말 하기 진짜 좀 그런데……. 이런 미션까지 떴으면 빨리 미션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은 내게 미션을 포기하라 말한다.
“회귀도 처음 되돌릴 때에만 어렵지, 한번 돌리고 나면 조금씩 익숙해져.”
“차라리 지금 이런 말도 안 되는 미션 나왔을 때 포기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멤버 누구 때문에 미션 실패해서 다시 회귀하거나, 외부의 사건 때문에 미션 실패해서 다시 회귀하면 마음속에 증오만 커지거든.”
“맞아. 지금은 진짜 시스템이 던진 어처구니없는 미션 탓에 실패하게 되는 거니까 누구 원망할 필요도 없잖아. 차라리 회귀하는 게 답일지도 몰라.”
난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형들 말이 틀린 말은 아님을 알고 있다.
한데…….
“싫어요.”
“태윤아?”
“흐음…….”
“전…… 회귀 두 번 안 할 거예요.”
이미 한 번 잃었던 것을 두 번 잃고 싶진 않았다.
형들은 이미 몇 번의 회귀를 거쳤으니 저런 말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첫 번째 회귀도 제대로 거치지 않은 내가 듣기에는 사실 꽤나 거부감이 드는 말이다.
“최대한 이번 회귀 한 번으로 전부 끝낼 거예요.”
“…….”
“……끝낸다고?”
내가 끝을 낸다는 말을 하자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이 의아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끝은…… 없는데?”
“미션은 끝나지 않고 이어진다고 말하지 않았어?”
형들은 내가 끝낸다는 말을 하는 게 허황된 꿈을 꾸는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도 알고 있다.
형들 말에 따르자면 미션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미를 들든 월드 레코드를 갱신하든 미션은 계속 다음 스텝을 요구한다.
마치 어디까지 네가 버틸 수 있을 건데라는 걸 시험하듯 말이다.
“최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 시스템이 허락해 주는 한에서 몇 번의 생을 반복해 보는 것뿐이야. 최소한 그 시간 만큼은 행복할 수 있잖아.”
“누구는 한 번도 살지 못하는 삶인데 여러 번 기회가 주어진 거라 생각하면 편해.”
난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오늘 처음으로 형들에게서 나와 다른 어떤 분위기를 느꼈다.
늘 든든한 조언자와 같은 포지션일 줄 알았는데,
‘그치…… 이게 정상이지.’
잊고 있었다.
형들은 이미 10번이 넘는 회귀를 한 사람들이란 걸.
그 과정 중에 마음이 상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분명 인간성의 한구석이 닳았을 수밖에 없을 텐데. 내가 그걸 간과하고 있었다.
난 형들을 바라봤다.
다소 애틋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서 말이다.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을 존경하고 동시에 좋아하는 마음도 있지만,
“전 그렇게 생각하기 싫어요.”
한 번 회귀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마인드 세팅이 있었다.
회귀를 반복하는 순간부터 아이러니하게 미션 클리어에선 멀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황될지라도 미션이 끝나는 순간을 생각해 보려 했다.
“그럼…… 어떻게 끝낼 생각인데. 이 끝도 없는 미션을.”
운이 형이 내게 질문했다.
“일단…… 구체적인 방법까진 모르겠지만. 지금껏 해왔던 거랑 비슷하게 해보려고요.”
“지금까지 해오던 거?”
“그게 뭔데?”
“계속 시스템에 도전해 보고, 미지의 영역을 밝혀내고, 그러다 보면 한 번쯤은 틈이 나겠죠. 형들도 알잖아요. 이 시스템이 완벽한 게 아닌걸. 완벽했으면 형들의 기억이 이 세계에 덧씌워졌을 리도 없잖아요.”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은 아무 말 않고 내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형들이 나보다 회귀 횟수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시스템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든 사람은 나였다.
“……그러면 할 말이 없긴 하네.”
“우리랑은 다른 방식으로 미션을 깨고 있으니까……. 결과도 분명 우리랑은 다르겠지.”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조금은 씁쓸한 듯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 핫 100 미션은 어떻게 깰까?”
“회귀 다시 안 할 거면 어찌 됐든 그 미션은 깨야 하잖아.”
“그쵸.”
“일단 우리가 각각 핫 100 진입했던 곡들이라도 알려줄까?”
“네?”
“어쨌든 우리들 곡이니까.”
“맞아.”
형들이 나에게 핫 100 진입했던 곡을 알려주겠단다.
“어떻게 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알고 있으면 도움 될 거 아니야.”
꼭 곡이 좋아야 핫 100에 들어간다는 법은 없지만, 일단 좋은 곡이 있으면 올라갈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 그 탑라인이랑 전반적인 분위기만 녹음해 줄 수 있어요?”
“그래.”
“핸드폰 꺼내봐.”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이 내 핸드폰에 대고 미래의 핫 100 곡들을 불러줬다.
반주도 없이 밋밋하게 부르는 거라 크게 감흥은 없다.
다만,
“……형들.”
“응?”
“혹시 그 곡들 가사 제가 썼어요?”
“오.”
“맞아.”
“역시 작사가는 자기 곡 알아보는 건가.”
놀랍게도 다른 우주에서도 나는 작사를 했나 보다.
저런 단어나 문장 쓰는 건 나 외에 본 적 없어서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뭐 그거야 지금 중요한 건 아니니까.
“그럼…… 이제 대기실로 갈까요?”
“그래.”
“일단 가자.”
“가면 바로 라이브 방송 켜겠죠?”
“오늘 1등 했는데 팬분들 위해서라도 켜야지.”
난 비상 계단 문을 열기 전, 잠깐 멈춰 섰다.
그러곤 문득 든 의문에 대해 물어봤다.
“근데 지금은 형들이 자연스럽게 원래 운이 형, 도승이 형이랑 스위칭 된 상황이잖아요.”
“어.”
“그치.”
“그러면 원래의 도승이 형, 운이 형이랑 다시 스위칭 되면…… 지금 우리가 나눈 이런 대화들은 어떻게 기억되는 거예요?”
“자연스럽게 블러 처리 되는 느낌이던데?”
“블러요?”
“약간 기억 날 듯 말 듯한 옛날의 어떤 일들 떠올리는 느낌으로 처리된다고. 마치 사진에 뿌연 연기 낀 것처럼.”
“맞아. 중요한 부분은 날아가고 그냥 뭐 어디 같이 갔던 것만 기억 나는 느낌으로 남는 거 같아.”
참 편리한 능력인 것 같다.
아니면 이 우주를 관리하는 시스템이 괜한 데이터 충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자연스럽게 완충지대를 만들어주는 걸지도 모르겠고.
뭐 당장에 문제가 안 된다면야 충분하다.
이제 진짜 비상문을 열고 대기실로 나가려 했는데,
끼익.
문을 내가 열기도 전에 바깥쪽에서 먼저 열렸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려던 나는 그대로 바깥쪽으로 딸려 나갈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비상 계단 문 밖에서 문을 돌린 건,
“어? 뭐야? 다들 여기 있었어요? 연훈이 형이랑 한참 찾았잖아요~”
“아……?”
동준이 형이었다.
한데,
‘잠시만…….’
운이 형과 도승이 형과 나는 문 바로 뒤에서 방금 전까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이 문 뒤에 동준이 형이 있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들을 수밖에 없는 위친데?’
이건 100% 우리 대화를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