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07화
동준이 형이 헤실헤실 웃으며 날 쳐다봤다.
마치 난 아무것도 듣지 않았어라고 과하게 티라도 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아니지.
그냥 내가 괜히 찔려서 평소의 동준이 형 같은 얼굴인데도 확대해석 하는 걸지도 모른다.
혼란스럽다.
동준이 형은 아까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앞장서 걸었다.
운이 형과 도승이 형도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동준이 형을 따라 걸었고.
이미 서로의 비밀을 다 알고 있으면서, 괜히 딴청을 부리며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전에도 이런 일 있었던 것 같은데.’
어딘가 기시감이 든다.
일전에 숙소 거실에서 첫 번째 회귀자였던 도승이 형과 만났을 때.
그때에도 동준이 형이 갑자기 튀어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새벽에 마라탕 시켜 먹겠다면서 말이다.
그때엔 잘 넘겼다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때부터 들켰던 거려나?’
걱정이 들기 시작하니 한도 끝도 없이 타고 올라간다.
그때 동준이 형이 입을 열었다.
“우리 대기실 가면 바로 1등 기념 라이브 방송 켤 거래요. 연훈이 형이.”
“아 진짜?”
“오.”
“좋네요.”
“길게는 안 하고 짧게 한 2, 30분 정도만 할 거 같아요.”
“좋지.”
“좀 더 길게 해도 나쁘진 않을 거 같긴 한데.”
“우리 다음에 대기실 쓸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그치. 자리 비켜줘야지.”
어색하고 뚝딱거리는 대화가 자꾸 이어진다.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은 어떻게든 일상적으로 보일 수 있는 대화 주제를 이어가려고 안달인 모습이다.
한데 대화를 이어가려고 안달을 낼수록 더더욱 어색하게 보일 뿐이었다.
난 차라리 지금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들었다면 지금 이런 대화가 다 무의미한 것 아닌가.
“형 혹시 비상문 밖에서 저희가 나누는 대화 들었어요?”
해서 대놓고 물어봤다.
그러자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이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뒤돌아본다.
마치 얼굴로 너 미쳤어? 라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다만 지금 아니고 언제 물어본단 말인가.
동준이 형이 뒤돌아본다.
그러곤 해맑은 표정으로 말했다.
“응. 들었지~”
동준이 형의 말투와 표정에 잠시 인지부조화가 왔다.
“아…… 들었구나.”
이게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
대충 ‘응? 하나도 못 들었는데?’ 라고 하거나, ‘응……. 들었어…….’라고 할 줄 알았다.
저토록 해맑게 들었어~ 라고 말할 줄은 몰랐다.
만일 들었다면 저렇게 해맑은 반응이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되어 혼란스러운 반응이 나와야 하는데.
저렇게 해맑게 나오니 오히려 내 쪽에서 혼란이 생긴다.
복도를 걷는 동안 우리 사이엔 침묵만 돌았다.
“근데 뭐라 하는지 잘 안 들렸어. 방화문 방음도 잘되더라~”
그때 동준이 형이 말을 덧붙였다.
듣긴 들었지만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안심이라도 되었던 걸까.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이 마치 기다렸단 듯 말을 이어갔다.
“아, 그래?”
“하하하……. 그치…… 방화문 두꺼우니까…….”
“우리 별 얘기 안 했어. 그냥 뭐 이런저런 안무나 곡 이야기 잠깐 했어. 우리 셋이 각각 작곡, 작사, 코레오 담당하잖아. 그래서…….”
대체 이 형들은 수십 번의 회귀를 하면서 왜 거짓말하는 능력은 못 키운 건지 싶다.
누가 들어도 저렇게 뚝딱거리며 말하면 다 거짓말인 줄 알 텐데.
난 괜히 나서기보단 그냥 지켜만 봤다.
사실 아무리 생각해도,
‘동준이 형, 제대로 들었네.’
지금 동준이 형이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단 생각밖에 안 들었다.
다만 동준이 형이 듣는다 해서 과연 무슨 큰일이라도 생기느냐.
그건 아니다.
동준이 형이 돌변해서 갑자기 우리한테 해코지할 것도 아니고.
해서 일단 지켜볼 생각이었다.
“저희 일단 대기실로 들어가죠. 연훈이 형 기다리겠어요.”
“아, 그러자 그러자.”
“맞네. 연훈이 형 기다리겠네. 얼른 들어가자.”
“들어갑시다~”
우린 다 같이 대기실로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연훈이 형이 우릴 반겨준다.
“뭐야! 어디 갔었어, 너네! 나랑 동준이가 한참 찾았잖아.”
“그냥 저희끼리 할 얘기가 있어서요.”
“나랑 동준이 빼고?”
“네……. 뭐……. 거창한 건 아니에요.”
“약간 서운하네…….”
“미안해요. 다음엔 꼭 말하고 갈게요.”
우린 연훈이 형에게 대충 왜 늦게 온 건지 말한 후 대기실 소파에 가서 앉았다.
“우리 얼른 라이브 켜자! 1등 트로피도 자랑하고 감사하다는 말도 해야 하잖아.”
그렇게 연훈이 형 주도하에 1등 기념 라이브 방송 준비가 착착 진행되어 갔다.
* * *
라이브 방송은 20여 분 정도 이어지다가 끝이 났다.
라이브 방송 전까지 동준이 형과 묘한 신경전도 하고, 그전에는 비상 계단에 앉아 미션의 끔찍함에 대해 토로하느라 라이브 방송에 집중 못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올라가는 채팅들을 하나씩 눈에 담다 보니 절로 이전 일들은 잊고 방송에 집중할 수 있었다.
-1등 축하해!!
-세이렌 1등!!
-얘들아 너무 고생 많았어
-ㅠㅠㅠㅠㅠㅠ세이렌 꽃길 이제부터 시작이야
작은 화면에 나오는 짧은 채팅들이지만 그것만으로도 가슴에 닿는 게 있었다.
우릴 걱정해 주고 축하해 주는 순애에 가까운 마음들이 보인다 해야 하나.
아마 이런 것 때문에 몇몇 아이돌분들이 라이브 방송에 중독되는 것 아닌가 싶다.
짧게 즉흥으로 시작된 방송이다 보니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가장 중요하게 이야기 나눈 건 아무래도 1등에 대한 소감을 밝히는 거였다.
이날 방송에서의 하이라이트는 1등에 대한 소감을 밝히다가 연훈이 형이 울어버린 거였다.
“세일러분들이 아니었으면 진짜 꿈에도 못 꿨을 성과예요. 더쇼케이스2 때부터 진짜…….흐읍…….”
형의 눈물 버튼은 더쇼케이스2인 거 같다.
아까 무대에서도 더쇼케이스2 이야기하다가 운 것 같은데.
아마 연훈이 형 머릿속에선 그 방송이 우리의 여정 중 가장 힘들고 어렵지만 보람찼던 시간인 거 같다.
문제는 연훈이 형이 눈물을 터뜨린 다음, 운이 형과 도승이 형도 눈물을 훔쳤다는 거다.
울지 않은 건 나와 동준이 형뿐이었다.
“저희 형들이 지금 많이 기쁜 거 같아요.”
“형들이 원래 좀 감수성이 좋아요~”
형들이 우느라 방송이 잠깐 지연되었다.
이후 얼추 눈물을 그쳤을 때.
방송 진행을 이어간 건 나와 동준이 형이었다.
“태윤 씨는 오늘 1등 어떠셨나요?”
“우선 세일러분들 덕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이었다 생각합니다. 더불어 우리 팀 모두가 정말 바쁘게 달려온 것에 대한 보상이었다고도 생각하고요. 이걸 계기로 더 똘똘 뭉쳐서 은퇴하는 날까지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아~ 첫 1등 하는 날 은퇴까지 생각하시는군요?”
“네.”
“저한텐 질문 안 해주시나요?”
“동준 씨는 오늘 1등 어떤 기분이셨죠?”
“저도 가장 우선적으론 우리 세일러들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진짜 세일러들 아니었으면 꿈도 꾸지 못했을 거 같아요.”
동준이 형은 채팅창을 보며 이리 말했다.
그러곤 다음 말을 이어갈 땐 나를 쳐다보며 입을 뗐다.
“오늘 1등 하고 나니까 뭔가 연습생 생활하면서 힘들었던 기억이나, 데뷔하고 나서 어려웠던 기억들이 뿌옇게 ‘블러 처리’ 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 모든 힘든 것들을 싹 잊게 만들 정도로 값지고 기쁜 일이었던 거 같아요.”
난 동준이 형의 말을 듣고 잠깐 귀를 의심했다.
다만 방송에 놀란 모습이 노출되면 안 되니까 최대한 표정 관리를 했다.
블러 처리 되는 것 같다는 말.
그건 비상 계단에서 우리가 마지막에 나눴던 말이다.
단순히 우연하게 저 말이 나왔다?
확률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한다.
블러 처리 된다- 라는 게 일상적으로 흔히 쓰는 말도 아니지 않는가.
난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지금 저 두 형은 회귀자가 아닌 이 세계의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인가 보다.
동준이 형을 보며 아무런 감정적 동요도 일지 않은 얼굴들이다.
“운이 형은 오늘 1등 소감이 어떤가요?”
“저요? 저도 진짜…….”
이후 동준이 형의 주도로 우리 라이브 방송은 쭉 진행되어 갔다.
운이 형이 소감 말하다 한 번 더 울고.
도승이 형도 소감 말하다가 눈물이 차올라 고개를 드는 모습까지 보였다.
이후 짧게 팬분들과 좀 더 소통하고 난 후.
“다음에 또 봐요!”
“금방 올게요!”
“커버 영상 2절이랑 태윤이 개그씬도 곧 올라갈 거예요!”
“잘 가요~”
라이브 방송을 종료했다.
우리가 라이브 방송을 종료하고 나니 승연 씨와 현아 씨가 케이크를 들고 대기실로 들어왔다.
“세이렌 1등 축하해요!”
“급하게 사오느라 이거밖에 없긴 했는데, 그래도 축하에 케이크 빠지면 안 되잖아요.”
“와…….”
“진짜 감사해요.”
“대박.”
형들은 승연 씨와 현아 씨가 가져온 케이크를 보며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다.
보통 이런 고칼로리에 맛있는 음식이 오면 동준이 형이 앞장서서 반응 해야 한다.
한데 오늘만큼은 별 반응 없이 뒤에 서 있기만 했다.
한번 거슬리고 나니,
‘하아……. 골 아프네…….’
동준이 형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거슬린다.
* * *
라이브 방송이 끝나고, 스태프분들과 다 같이 케이크를 나눠 먹은 후 우린 숙소로 돌아갔다.
오늘은 팬사인회가 없는 날이라 좀 더 일찍 돌아갈 수 있었다.
대기실로 돌아가는 차량 안은 평소보다 좀 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우리 다음 앨범은…….”
“곡 컨셉은…….”
“춤은 대충 이런 식으로…….”
오늘 1등 한 게 형들에게 큰 자극이었나 보다.
벌써 다음 앨범 이야기를 한다.
다만,
“그전에 우리 바로 이번 앨범 수록곡으로 후속 활동부터 해야죠.”
다음 앨범도 좋지만 이게 먼저다.
동준이 형 사망 미션부터 벗겨내야 하지 않겠는가.
“아, 알지~”
“후속 활동으로 쐐기골 넣어야지.”
“할 수 있다!”
형들이 다 같이 사기가 넘치니 보기 좋다.
이후 숙소에 도착한 후.
승연 씨와 현아 씨를 보내고 우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으아아~ 집이다아!”
“오늘 진짜 다들 고생 많았어요.”
“오늘 하루 참 길었다…….”
“고생 많았어, 얘들아!”
형들은 다 같이 거실에 쓰러져서 뒹굴거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이후 형들이 하나둘 샤워하러 들어갔다.
이 숙소에도 샤워실은 세 개가 있다.
거실에 하나, 큰방 두 개에 각각 하나.
“형들 먼저 씻어요. 태윤이랑 나는 마지막 순번으로 씻을게요.”
“오 뭐야. 박동준 철 들었냐?”
“철은 형이 헬스장 가서 매일 드는 거고요.”
“……좀 치네?”
형들이 먼저 샤워하러 들어가고, 거실에 남은 건 나와 동준이 형뿐이었다.
동준이 형과 나는 단둘이 소파에 앉아 각자 핸드폰을 했다.
원래라면 동준이 형이 괜히 시비라도 걸거나 하다못해 발가락으로 옆구리라도 찔렀을 거다.
원래 성격이 그런 형이니까.
그때,
“잠깐 나갈까, 태윤아?”
동준이 형이 내게 묻는다.
“우리 할 얘기 있지 않아?”
난 동준이 형을 쳐다봤다.
할 얘기야 있지.
한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동준이 형이 과연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해서 내가 먼저 떠보려고 했는데…….
“태윤아. 근데 회귀자가 대체 뭐야? 두 번째 회귀랑 빌보드 핫 100은 뭐고? 그리고 도승이 형이랑 운이 형은 왜 죽는대?”
“……아.”
떠보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저 형, 다 들었다.
우리 대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