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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08화 (208/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08화

놀라서 아무런 말이 안 나왔다.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을 거라곤 생각했다.

운이 형과 도승이 형과 내가 비상 계단에서 수상한 대화를 나눴다는 건 알고 있는 눈치였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로 전체 내용을 꿰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나갈까? 봉태윤?”

동준이 형이 나가자고 말한다.

지금은 나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충 정리하고 나와.”

“네.”

난 핸드폰이나 지갑 등을 챙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가면서 계속 생각했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넘겨야 할지.

나는 어떤 자세로 동준이 형과의 대화에 임해야 할지.

과연 모든 걸 오픈하는 게 맞을지, 아닐지.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일단 가야 했다.

직면한 상황에서 도망칠 수 있는 법은 없으니까.

* * *

동준이 형과 내가 들어간 곳은 이전 WD엔터에서 가지고 온 낡은 승합차 안이었다.

연훈이 형이 샤워하는 틈을 타서 차 키를 가지고 내려왔다.

사실 이 근방 어디를 가도 사람이 많을 테고, 우리를 알아보는 사람도 한두 명쯤은 있을 테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다.

동준이 형은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블랙박스의 메모리 카드부터 뺐다.

“영화 보면 이런 거 하더라고.”

“아……. 네.”

이런 순간에도 사람의 장난기는 사라지지 않나 보다.

형과 나는 뒤쪽 넓은 좌석에 각각 앉았다.

백미러를 통해 동준이 형과 자꾸 눈이 맞았다.

난 옆을 돌아보기보단 백미러로 형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일단 형이 들은 데까지 다 말해주세요.”

아마 전부 다 들은 거 같긴 한데 그래도 확인은 필요하다.

“내가 들은 데?”

“네.”

“처음부터 다 들었어.”

“…….”

“빌보드 핫 100 진입 미션이 떴는데, 그 미션을 실패하면 도승이 형이랑 운이 형이 죽는다며.”

“…….”

내 미션 사항을 같은 회귀자가 아닌 타인의 입으로 들으니 아찔하기 짝이 없다.

난 백미러로 동준이 형의 눈을 다시 한번 쳐다봤다.

형은 눈웃음을 지은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도승이 형이랑 운이 형이 무슨 다른 회귀자라고 하던데? 몇 번째 회귀 이런 말도 나왔던 거 같고.”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빠짐없이 다 들었다.

아찔하다 못해 손에 식은땀마저 난다.

“처음엔 나도 뭐 게임 이야기 하나 싶었지. 워낙 현실성 없는 이야기니까. 셋이서 무슨 게임이라도 만들어서 하는 건가 싶었어.”

“게임을 만들어요?”

“뭐 TRPG 같은 거 있잖아.”

“아…….”

“근데 말하는 거 들어보니 그런 느낌은 아니고, 진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말하는 거 같더라고.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 내용이 현실성이 너무 없어서 나도 지금 꽤 혼란스러운 상태야.”

동준이 형은 혼란스럽다는 말을 하는 사람 치고 꽤 평온해 보였다.

난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지금 다 말한다고 해서 믿을까?

아니, 못 믿더라도 믿게 만들 방법은 있다.

통찰을 사용해서 명령 내리는 걸 보여주면 무언가 초자연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이걸 다 까는 게 맞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차장은 어딘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이런 데에서 늘 사람이 죽고 하는 것 같던데.

난 잠깐 샛길로 빠진 생각을 다시 끌고 왔다.

동준이 형은 날 쳐다보는 중이었다.

말하지 말아야 할 이유.

또 말해야 할 이유.

두 가지를 비교해 봤다.

한데 말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따져 보니,

‘……있나?’

동준이 형은 믿을 만한 사람이다.

멘탈이 다른 형들에 비해 튼튼한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굳이 나한테 해코지할 사람도 아니다.

이미 다 알게 된 이상 내가 비밀로 숨길 필요까진 없겠구나 싶었다.

물론 모든 걸 다 오픈할 필욘 없겠지만 당장 필요한 정보쯤은 제공해도 될 것 같았다.

“되게 영화 같은 대사라서 막상 입으로 뱉으려니 어색하긴 한데요…….”

난 차분하게 입을 뗐다.

동준이 형도 얼굴에서 장난기를 지운 후 진지한 태도로 내 말을 들었다.

“저는 미래에서 왔어요. 막 아주 먼 미래까진 아니고, 지금으로부터 약 5년쯤 뒤요.”

내가 말을 마치고 나자 동준이 형은 처음엔 평온한 척하다가 이내 서서히 입을 벌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이거 깜짝카메라 그런 거 아니지?”

“네.”

“진짜야? 진짜 미래에서 왔어?”

“진짜로요.”

“증거는?”

“흐음…….”

딱히 증거로 내세울 만한 게 있을까.

당장 쓸 수 있는 거라면,

“형 명의로 된 아파트 강남 말고 과천이랑 용산에 하나씩 더 있죠? 그거 내년에 금리 인상되면서 2-3억 빠질 거예요. 팔든 말든 상관은 없는데 알아만 두라고요.”

“……내가 너한테 과천이랑 용산에 아파트 더 있다고 말했었나?”

“아뇨. 미래에서 들었던 거예요. 형 아버지한테 직접.”

“…….”

당시에 동준이 형 아버님은 내게 그 아파트 중 하나에서 살게 해주겠다고 하셨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게 안타까워서였던지, 아니면 나에게서 동준이 형을 겹쳐 봐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파트 이야기를 들은 동준이 형 눈동자가 급격하게 커진다.

꽤 충격을 받았나 보다.

“……하아. 진짠가 보네.”

동준이 형은 약 1분간 아무 말도 못 하고 입만 살짝 벌린 채 땅바닥을 쳐다보고 있었다.

“5년 뒤의 미래에서 왔다고 했지?”

“네.”

“그럼 5년 뒤에 우린 뭐 하고 있었어? 뭐 빌보드도 타고 그래미도 들고 그랬나?”

“아뇨.”

“응?”

“저 빼고 다 죽었어요.”

“……뭐?”

뒤이어 폭로된 추가적인 사실에 동준이 형은 이번엔 입을 굳게 닫았다.

“죽어?”

“우리 데뷔 전에 다 같이 차 타고 속초 갔다 온 거 기억하죠?”

“어.”

“원래대로라면, 그때 돌아오는 길에 트럭에 치여서 다 사망해요. 저 빼고요.”

“그날 아슬아슬하게 우리 빗겨 갔던 그 트럭?”

“네.”

“하…….”

동준이 형은 어처구니가 없는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럼 넌…… 뭐 하고 살았는데…….”

동준이 형은 본인들이 다 죽은 그 미래에서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가 걱정된 모양이었다.

“처음엔 그냥 죽은 듯 지냈다가…… 진짜 죽을까 고민도 했었다가…… 글을 썼죠.”

“글?”

“네. 믿기 어려울 수도 있는데, 웹소설 썼어요. 나름 그래도 잘 팔았어요.”

“……참나.”

동준이 형은 내가 분위기를 풀기 위해 말을 부드럽게 돌리고 있단 걸 아는 눈치였다.

“그러면 넌 미래를 어느 정도 알고 있던 거였네? 지금까지?”

“맞아요.”

“어쩐지……. 속초 다녀온 날부터 갑자기 너무 어른스러워졌다 싶었네. 너무 똑똑해지기도 했고.”

“하하…….”

“5년 후면 24살이었겠네. 나보다 형 아니야? 내가 형이라고 불러줄까?”

“징그럽게 그러지 마요.”

“태윤이 형~”

“아…….”

“……너무 정색을 하네.”

형과 나는 잠깐 분위기를 푼 후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러면 그 빌보드 미션이라든가, 누가 죽는다든가, 두 번째 회귀 어쩌구 하던 것들은 다 뭐야.”

“미션이란 회귀 이후부터 제가 정체 모를 시스템 같은 거에게 매번 전달받는 거예요. 뭐 어떤 목표를 달성 못 하면 저희 멤버 중 누군가가 죽는다는 식으로요.”

“진짜 죽어?”

“네. 진짜로요.”

“…….”

“그리고 두 번째 회귀 어쩌구 하던 건……. 그 부분은 조금 복잡한데…….”

난 동준이 형에게 모든 걸 다 설명하진 않았다.

그냥 운이 형과 도승이 형도 다른 우주에서 회귀를 했던 회귀자들인데 어쩌다 보니 이 세계에 기억이 옮겨지게 되었다고.

해서 기억이 옮겨진 회귀자로서의 자아와 아무것도 모르는 이 세계에서의 자아 두 개가 어찌저찌 절묘한 공존을 하는 중이라고만 말해줬다.

내게 통찰이란 능력이 있어 다른 세계의 기억들을 옮겨올 수 있었다는 복잡한 이야기는 전부 뺐다.

한데,

“그러면 다른 우주에선 나도 회귀를 했겠네?”

동준이 형은 이게 궁금한가 보다.

다른 우주에서의 본인이 말이다.

“아마 그렇겠죠.”

“그러면…… 내 기억도 ‘어쩌다 보면’ 이 세계의 나랑 연결될 수 있겠구나.”

“……그렇죠.”

형은 내가 절묘하게 정보를 누락해서 말한 부분을 콕 집어서 말했다.

마치 ‘어쩌다 보면’이 아니라 내가 직접 그렇게 만들었단 걸 아는 사람처럼 말이다.

“만일 나도 그렇게 되면, 나한텐 직접 말해줘. 지금 내 안에 다른 우주에서의 회귀자의 기억이 들어와 있다고.”

“진짜로요?”

“어차피 그것도 나잖아. 그냥 내가 나로 바뀌는 건데 불편할 게 뭐가 있어.”

형은 그리 말하곤 내 어깨를 잡았다.

“그리고, 미션 내용 같은 거 있으면 나랑도 공유해 주고. 혼자서 다 짊어지려고 하지 마.”

“……네.”

난 동준이 형을 바라봤다.

회귀자가 아닌 그냥 이 세계의 사람에게 이토록 솔직하게 말해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사실에서 오는 든든함이 있었다.

“그럼 지금 미션이 빌보드 진입인 거지?”

“네.”

“핫 100 진입이 미션인 거야?”

“네. 맞아요.”

“기한은 정해져 있어?”

“3개월이요.”

“……미쳤네.”

형은 미션 내용을 듣고는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거 실패하면 도승이 형이랑 운이 형이 죽는 거지?”

“……그렇죠.”

“……진짜 돌겠네.”

동준이 형과 나는 회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자연스레 미션을 어떻게 하면 클리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핫 100은 미국 현지 반응이 더 중요하잖아.”

“그쵸.”

“3개월이면 지금부터 미국 진출해도 빠듯할 거 같은데…….”

“그래서 저는 차라리 저희가 진출하기보단 그쪽에서 콜링이 오게 만드는 게…….”

그렇게 어떻게 하면 우리가 빌보드 핫 100에 진입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가 길게 이어지려는 와중.

“……잠시만. 태윤아.”

동준이 형이 내 말을 끊었다.

시선은 내가 아닌 내 어깨 너머의 창 밖으로 향해 있었고.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우리 차 문 잠갔나?”

“네? 차 문이요?”

“안 잠갔지?”

동준이 형이 갑자기 이런 말을 한다.

차 문 잠갔냐니.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린가 싶은 와중.

“차 문 잠가!”

형이 소리를 침과 동시에,

탁!

바로 차 문을 잠갔고,

쾅! 쾅! 쾅!

누군가가 승합차 뒷문을 열려다가 실패했다.

난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 있는 얼굴은…….

“이런 미친…….”

속초 고속도로에서 한 번.

그리고 그 인근 야산에서 또 한 번 만났던 얼굴.

그 트럭 기사였다.

“저 새끼가 여길 왜…….”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외관이 좀 더 멀끔해졌다는 것과,

후웅!

야구방망이를 들고 있다는 거다.

남자가 있는 힘껏 야구방망이를 내려찍었다.

지금 우리가 탄 차가 아무리 낡았다고는 해도 그래도 차다.

야구방망이 한 방에 유리가 깨질 리는 없다 생각했다.

한데,

쩌저적-!

그 한 방에 이미 80% 가까운 손실이 일어났다.

“당신 뭐 하는 사람이야!”

동준이 형이 소리친다.

그리고 양손으론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112를 누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는 야구방망이를 한 차례 더 내려찍는다.

쾅!

“형! 내려요!”

이번엔 창문이 완전히 박살 났다.

남자의 손이 차량 안으로 수욱 하고 들어온다.

이내 잠금 장치를 직접 해제하더니 문을 열어젖힌다.

다행히 동준이 형이 반대쪽 승합차 문을 연 상태였고, 형과 나는 그쪽으로 먼저 빠져나갔다.

“달려요, 형!”

지금 이 지하주차장을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사람들 눈에 띄는 곳으로 이동해야 할 테니 말이다.

저 남자와 일대일로 맞서는 건 미친 짓이다.

문제는,

“아아악! 왜 차를 지하 3층에 댄 거야!”

지상까지 올라가기엔 너무 차를 깊은 곳에 댔다는 거다.

동준이 형과 나는 무작정 주차장 위로 올라가다 말고 뒤를 돌아봤다.

“형! 형은 빨리 위로 올라가요!”

“뭐 임마?”

“내가 어떻게 해볼게요. 경찰 불러 와주세요.”

“가란다고 내가 진짜 가겠냐?”

“아 좀 가요! 지금 가는 게 도와주는 거예요!”

“……그거 듣고 가면 내가 너무 눈치 없는 놈 같아지잖아!”

“아 가라고요!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니까.”

“미쳤어? 차라리 지금 그냥 같이 덤벼! 둘이서 덤비는데 한 사람은 잡겠지!”

동준이 형은 이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거 같다.

저 인간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둘이서 덤볐다가 오히려 피해만 두 배가 될지도 모른다.

다만 말로 해서 들을 것 같진 않고,

지이잉-

통찰을 사용했다.

동시에,

-올라가서 경찰 불러와요.

나를 두고 달아나 경찰을 불러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제야 동준이 형은 속도를 높여 위로 올라갔다.

난 동준이 형을 보낸 후 우리 쪽으로 달려오는 트럭 기사를 바라봤다.

저 남자와 마주하는 건 그때 이후로 처음이다.

분명 그때 양쪽 팔의 근육이 다 터져서 당분간은 못 움직일 줄 알았는데,

‘뭐야 진짜.’

지금 그때보다 훨씬 건강해진 상태로 돌아왔다.

난 남자를 한참 노려봤다.

신장은 175㎝ 정도. 체중은 80㎏ 정도 나갈 거 같다.

일대일로 붙으면,

‘지지. 당연히, 저쪽은 무기까지 있는데.’

애초에 육탄전은 생각도 안 했다.

대신,

지이잉-!

또다시 통찰을 사용했다.

아주 잠깐이라도 저 남자를 이 자리에 묶어두기만 하면 성공이다.

밖으로 나간 동준이 형이 경찰을 불러올 테니까.

난 통찰을 켠 상태로 명령했다.

-무기 버리고 바닥에 엎드려.

남자는 잠깐 비틀대는가 싶더니 천천히 바닥에 엎드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한데,

“후우우우.”

남자가 심호흡을 한 차례 하더니,

“끄아아아악!”

비명과 함께 통찰로 건넨 명령을 거부했다.

이내,

후웅!

통찰이 외부의 힘에 의해 벗겨져 나갔다.

“……미친.”

이건 좀 심각하다.

이제 방법이 없다.

도망치거나 싸울 수밖에.

한데 도망치기엔,

“아.”

통찰이 내 의사와 관계없이 풀려서 그럴까.

잠깐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 틈을 타,

후웅!

남자가 있는 힘껏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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