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10화
동준이 형과 나는 숙소 거실에 어색하게 앉아 있다.
소파에는 형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고 말이다.
지금 시각은 새벽 1시.
경찰서에 가서 자세한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하고 이런저런 서류들을 작성하고 돌아오니 이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형들은 이 시간까지 나와 동준이 형을 기다리고 있었고.
이 시간까지 자지 않고 기다렸던 것은 오늘 지하주차장에서 무슨 일이 있던 것인지를 설명해 주란 뜻이렷다.
형들은 경찰서에서 돌아온 나와 동준이 형을 한 번씩 꼭 끌어안고, 다친 곳은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까지 마친 후, 지금 이 거실 바닥에 우릴 앉혔다.
이후 형들은 소파에 앉고, 우린 거실 바닥에 앉은 채, 아무 말 없이 이 침묵을 견디는 중이었다.
먼저 입을 뗀 건 연훈이 형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지하주차장에서?”
“…….”
“…….”
“자동차 키 사라져서 혹시 차에 두고 왔나 싶어서 내려갔다가…… 진짜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
“하하…….”
“대체 무슨 일이었던 거야. 왜 태윤이는 바닥에 쓰러져 있고, 주변에 칼이니 야구방망이니 하는 것들이 흩어져 있고, 경찰분들이 와 있던 건데.”
형들 입장에선 당연히 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갈 거다.
지하주차장에 자동차 키 찾으러 갔다가 경찰들이랑 같이 있는 우리를 본 거니까.
당연히 걱정도 될 거고, 무슨 위험한 일이 휘말린 건지 속상하기도 할 테며, 이런 중차대한 일을 어째서 공유해 주지 않은 것인지 억울하기도 할 터였다.
한데, 우리라고 딱히 할 수 있는 말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경찰서에는 묻지마 범죄로 신고를 한 상태였다.
함께 경찰서에 간 동준이 형에게도 묻지마 범죄였다고만 말을 해둔 상태였고.
경찰들은 그 남자의 행동이 묻지마 범죄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차를 타고 잠복해 있다가 습격했다는 점에서 이는 묻지마 범죄가 아닌 계획형 범죄에 가깝다는 게 경찰들의 중론이었고, 동준이 형조차 묻지마 범죄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라고 내게 말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사람이랑 따로 면식이 있던 관계는 아니라는 것과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면야 원한 관계도 없는데 그런 식으로 습격을 해올 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해서 경찰도 일단은 묻지마 범죄라는 것으로도 가능성을 열어둔 채 수사를 해보겠다고 했다.
다만 그들은 끝까지 묻지마 범죄라고는 믿지 않았고 차라리 원한 관계에 있는 다른 사람이 브로커를 통해 사주를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거 같았다.
물론 그거야 경찰분들 사정이니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고.
나한테 중요한 건 그 자리에서 동준이 형을 설득하는 거였다.
경찰서를 나오며 동준이 형이 몇 번이나 물었다.
‘진짜 묻지마 범죄 맞아? 일면식도 없던 거야?’
‘네. 맞아요.’
‘진짜로?’
‘형도 봤잖아요. 진짜 갑자기 튀어나와서 유리창 깨부수고 우리 습격한 거.’
‘아니……. 근데 이런 식의 묻지마 범죄에 당할 확률이 너무 희박하잖아. 그리고 뭔가…… 어디서 본 느낌이 나는 것도 같고…….’
‘근데 저는 그 사람이랑 일면식도 없어요. 딱히 살면서 누구랑 원한 관계 될 만한 삶도 아니었고요. 물론 저 싫어하는 사람 한 사람 있긴 한데 브로커까지 써가며 이런 짓 벌일 만한 사람은 아니라서요. 그럴만한 깡도 없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결국 반복적인 대답 끝에 동준이 형은 ‘그래……. 알겠다……. 묻지마 범죄로 치자 일단은.’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처음엔 동준이 형에겐 그 남자가 우릴 죽일 뻔했던 그 트럭 기사라는 것을 알려줄까 생각도 했었다.
어쨌든 위험한 상황을 함께 극복한 사람이니까.
하지만 괜히 누군가가 우리 목숨을 노리고 있단 사실을 알려줘서 불안함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 남자가 ‘어차피 너부터 죽여야 하긴 했어. 그게 미션이었으니까.’라는 말을 한 걸로 보아 형들끼리만 있을 때는 비교적 안전할 수 있을 것 같았고 말이다.
해서 동준이 형에겐 우선 말하지 않기로 했다.
암튼 그건 그거고.
이제는 ‘묻지마 범죄에 당한 것일 뿐’이라는 주장을 연훈이 형, 도승이 형, 운이 형 앞에서 또 반복해야 할 차례였다.
“묻지마 범죄에 당한 거였어요.”
“묻지마 범죄?”
“주차장에서?”
“네.”
“보통 그런 건 거리에서 일어나지 않나……?”
“뭐 범죄자들이 장소 신경 쓰겠어요?”
형들은 여전히 석연치 않은 표정이었다.
내 변명이 충분히 납득이 되지 않는단 얼굴들이다.
한데 여기서 내가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냥 밀고 나가야 하는 거다.
“일단 저는 그 사람이랑 일면식도 없었고, 동준이 형도 마찬가지였어요. 누군가가 폭행을 사주해서 우릴 습격한 걸 수도 있을 텐데……. 사실 그런 사주 받을 정도로 저랑 동준이 형 둘 다 악하게 살진 않았고요.”
동준이 형은 경찰서에서 돌아오는 길에 질리게 들었던 말이라 그런지 별 감흥 없는 얼굴로 듣고만 있었다.
반면 연훈이 형 도승이 형 운이 형은 생각이 많아진 얼굴이었다.
“근데…… 확률적으로 묻지마 범죄에 당할 일이…….”
일단 먼저 나온 건 이런 의문이다.
이건 아까 동준이 형에게서도 나왔던 의문이다.
해서 더 뻔뻔하게 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희박한 확률인 거지 존재하는 일이잖아요. 그냥 재수가 좀 많이 없었다……. 그거죠.”
“그래도…….”
“근데 이미 벌어진 일인데 확률 따지는 건 의미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
“묻지마 범죄에 휘말렸지만 다친 곳 없이 돌아왔으니 그걸로 충분한 거 아닐까요?”
형들은 서서히 수긍하는 분위기로 변하고 있었다.
사실 이 자리가 우리한테 진실을 추궁하는 자리는 아니고, 그냥 무슨 일이 있던 건지 브리핑해 달라는 자리였으니 진위 여부를 두고 공방을 주고받을 필요는 없었다.
형들은 이제야 조금은 얼굴에 드리워진 걱정을 걷어냈다.
“진짜 몸 괜찮은 거지?”
“네.”
“어디 맞은 곳은 없지?”
“아……. 그 팔 조금 맞긴 했는데…….”
“뭐?”
“아 근데 다치진 않았어요.”
난 재빨리 말을 이었다.
다쳤다는 말을 꺼냈다간 바로 병원으로 실려 갈 거 같았으니까.
그러면 오늘은 밤에 잠도 못 자고 내일 사녹 따러 나가야 할 수도 있을 거다.
난 급히 형들을 잠재우곤 다시 말을 이었다.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근데 사실 저희도 예상 못 한 일이었어요.”
“그치…….”
“너희가 무슨 잘못이 있겠냐.”
“맞아……. 태윤이랑 동준이 탓은 아니지.”
“미안해, 이렇게 막 추궁하듯이 물어봐서. 너희도 그냥 피해잔데.”
“아니에요. 이해해요.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면 저 같아도 상황파악부터 하고 싶어질 거 같아요.”
형들과 빠르게 화해 모드로 들어갔다.
사실 화해하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그냥 큰일이 벌어져서 잠깐 분위기가 얼어붙었던 거지.
“그럼 일단 자자. 내일은 아마 바쁜 날이 될 거 같으니까.”
“네.”
“아, 너희 경찰서 간 거 승연 씨랑 현아 씨한테 말씀은 드렸지?”
연훈이 형의 말에 동준이 형과 내가 우뚝 멈춰 섰다.
괴한이니 습격이니 이런 걸로 하도 정신이 없다 보니 보고하는 걸 잊었다.
“아.”
“맞다.”
나와 동준이 형이 동시에 멈춰설까.
형들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우릴 바라봤다.
“말씀 안 드렸다.”
“하아…….”
“아이고…….”
“일 났네.”
형들과 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지금 분명 승연 씨도 현아 씨도 자고 있을 거다.
이 사람들도 우리랑 스케줄을 같이 수행하다 보니 매일매일 잠이 부족한 사람들이니까.
그렇다면 지금 연락해서 잠을 깨우는 게 맞는가.
아니면 어차피 벌어진 거 내일 아침까지 뒀다가 말하는 게 맞는가.
하지만 이런 선택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조차 사치였다는 걸 깨닫게 됐는데,
지이이잉.
나와 동준이 형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각각의 발신인은 승연 씨와 현아 씨.
그제야 죄책감이 밀려왔다.
‘우리 때문에…… 잠도 못 자고 깼구나.’
나와 동준이 형은 죄인의 마음이 되어 전화를 받았다.
이내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꽤 격양되어 있었다.
-태윤 씨! 괜찮아요? 어디 다친 곳 없어요? 지금 당장 숙소로 갈까요? 멤버분들 모두 다 괜찮죠? 일단 전달받기론 다친 곳은 없다고 받긴 했는데…….
누구한테서 전달을 받은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사건 상황을 대충 아는 모양이었다.
“아…… 네. 괜찮습니다. 숙소로 오시진 않으셔도 돼요. 지금 형들이랑 다 같이 있습니다. 다친 곳도 없어요.”
-하아…… 진짜 다행이다. 그래도 일단 논의해 봐야 할 게 있으니까 지금 승연 씨랑 같이 숙소로 갈게요.
“논의요?”
뭘 논의한다는 건가 싶었는데,
-아, 지금 SNS 확인 안 하셨어요?
현아 씨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고,
“아.”
그제야 생각했다.
우린 공인이고 연예인이란 걸.
우리가 경찰서 가고 괴한 습격 받은 걸 사람들이 모를 리가 없었다.
‘미치겠네.’
너무 당연한 건데 처리해야 할 게 많다 보니 잠깐 잊고 있었다.
난 떨리는 마음으로 SNS에 들어갔고,
“와.”
나와 동준이 형이 실트 순위를 장악한 것을 확인해 버렸다.
1. 세이렌 괴한 습격
2. 세이렌 경찰서
3. 봉태윤 습격
4. 박동준 습격
여기서 벌써 이만큼의 버즈량을 뽑아낸 거라면 아마 인터넷 곳곳에 퍼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터였다.
* * *
늦은 새벽에 승연 씨와 현아 씨가 숙소에 왔다.
우리가 논의한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내일, 아니지 12시가 넘었으니 오늘이지.
오늘 새벽에 있을 사전녹화와 음악방송에 참여할 것인지 아닌지.
이걸 우선 논의해 봐야 했다.
해당 논의는 순식간에 끝났다.
나와 동준이 형은 나갈 수 있다는 주의였으나 형들과 승연 씨, 현아 씨는 가급적이면 쉬자는 쪽이었다.
“이게 몸 상태만 고려할 게 아니라 회사 이미지도 고려해야 하거든요. 괴한 습격 받은 거 이미 다 아는데 바로 사녹 내보내면 회사 이미지가 진짜 곤두박질치는 거라.”
“그리고 지금은 괜찮을 수도 있지만 내일 아침에 일어나보면 몸 상태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요.”
“이미 너무 늦은 시간까지 못 자기도 했고 그러니까 내일은 음악방송 쉬죠. 피디님들이랑 제작진분들도 이런 사안은 분명 이해해 줄 거예요.”
해서 우리 팀은 단체로 내일 음악방송은 나가지 않기로 했다.
음악방송만 나가지 않는 것이냐.
그건 아니었다.
그냥 오늘 있을 모든 스케줄이 취소됐다.
라디오도, 너튜브 예능도 전부 취소였다.
“지금부턴 저희 공식에 올릴 게시글들 문구 정해보죠.”
마지막으론 동준이 형과 내가 올릴 문구를 정하는 거였다.
괴한 습격의 피해자가 나와 동준이 형임을 모두가 아는 상황이었기에 게시물도 나랑 동준이 형이 각각 올리는 게 맞다는 주의였다.
그렇게 필요한 조취들을 취하고 나니 벌써 새벽 3시였다.
“일단…… 이렇게 진행하기로 하고, 내일은 푹 좀 쉬세요. 저희도 내일 아침에 회사 가서 상황 보고만 하고 반차 낸 후 푹 쉴 테니 걱정 마시고요.”
“……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니에요.”
이후 현아 씨와 승연 씨가 돌아가고.
숙소엔 다시 우리만 남았다.
우리가 잘못한 일은 없으니 아마 시간 지나면 여론은 잠잠해질 거다.
그러니 그 부분은 크게 걱정할 게 없었다.
다만 지금 다들 각자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실에 남아서 서로의 눈치를 보는 것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괴한 습격 받아서 스케줄 취소된 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내일 쉬네요……?”
의도치 않게 휴일을 하루 얻은 셈이다.
동준이 형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한 채로 내일 쉬네요? 라는 말을 하자마자 우리 모두의 시선이 허공에서 어지럽게 부딪히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