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11화 (211/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11화

다들 서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아주 애매하고 어색한 순간이 지나간다.

쉬는 날이 생겨서 좋긴 좋다만, 이게 좋은 일로 쉬는 게 아니니 섣불리 좋은 티를 내긴 애매하니 그런 거다.

하지만 그런 거 눈치 보지 않는 사람이 한 명 있었으니.

역시나 동준이 형이었다.

“안 좋은 일로 쉬는 거긴 하지만 어쨌든 활동 중 휴식하는 날이 생긴 거잖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눈치 보지 말고 푹 쉬는 게 낫잖아요~”

형은 그리 말하며 소파에 몸을 묻었다.

동준이 형의 말이 맞긴 하다.

우리가 쉬는 이유가 좋은 이유는 아니다만 어쨌든 하루의 시간이 생겼다.

그렇다면 이 하루를 잘 쓰는 것이 앞으로의 활동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푹 쉬어도 되겠고, 다음 활동을 위한 아이디어 회의를 해도 될 것이며, 우리끼리 그간 해보고 싶었지만 해보지 못했던 일을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그렇긴 하지. 이왕 쉬는 거면 안 좋은 분위기에서 쉴 필요는 없잖아.”

“사실 우리가 잘못한 건 없는 거잖아요. 그 범죄자가 문제였던 거지…….”

“이왕 이렇게 된 거 태윤이랑 동준이 놀란 마음 진정도 시킬 겸 힐링하는 시간이라도 가질까요?”

연훈이 형, 도승이 형, 운이 형 사이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기 시작한다.

난 어떤 아이디어가 나오든 사실 별 상관은 없었다.

그냥 쉬어도 좋고, 어딜 가도 좋고, 뭘 먹어도 좋다.

내가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내일 9시 넘어서까지 잘 수 있다는 것이니까.

“일단은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 볼까요? 지금 우리 22시간째 깨어 있는 건데.”

“아. 맞다, 맞다.”

“잠부터 자야겠네.”

“잠부터 잡시다아~”

난 형들의 아이디어 회의를 잠깐 멈췄고, 일단은 자고 일어나서 이야기를 더 해보기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린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이불을 펼쳤다.

“잘 자, 태윤아.”

“네.”

“오늘 정말 고생 많았어. 큰일 날 뻔했던 건 안 좋은 기억이겠지만…… 내일 일어나서 그 기억만 훌훌 털어버리자.”

“고마워요, 그렇게 말해줘서.”

“아냐. 그럼 잘 자.”

운이 형과 나는 마지막 밤 인사를 나눈 후 잠에 빠져들었다.

오늘 별일이 다 있어서 그런가.

잠은 순식간에 쏟아졌다.

* * *

일어나고 난 후 제일 먼저 한 일은 공식 카페에 글을 올리는 거였다.

올릴 글의 문구는 어제 승연 씨와 현아 씨와 함께 만든 문구였다.

물론 기계처럼 받아 적은 것은 아니고, 어떤 단어를 써야 팬들을 안심시킬 수 있을지를 함께 의논하여 만들어낸 게시글이었다.

글을 올리고 나니 그제야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는 경향이 보였다.

-진짜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음방 1등 한 날 괴한 습격이 뭔데 진짜로……

-우리 애들 진짜 진짜 잘 되려나 보다

-액땜했다 생각하자 얘들아ㅠㅠㅠ

-안 다쳐서 너무 다행이야 정말로

데뷔 후 첫 1등과 괴한 습격까지 하루 만에 일어났다 보니 팬들이 더 맘고생을 한 것 같았다.

불과 몇 시간 간격으로 꽃길과 가시밭길을 오간 느낌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덕질은…… 조금 매운 맛일 거 같은데…….’

오늘 게시글을 올리다 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었다.

만일 나였다면 이렇게 빡센 그룹은 덕질 안 했을 거 같긴 한데.

그럼에도 우릴 좋아해 주시니 더 고맙고 미안해질 뿐이었다.

“글들은 다 올렸어?”

“네.”

“일단 밥부터 먹자.”

오늘 아침은 간만에 도승이 형이 차린 밥이었다.

메뉴는 우리가 연습생 때부터 먹던 바로 그 된장찌개.

내가 회귀 전에도 레시피를 복제해서 끓여 먹던 바로 그 맛이었다.

일단 이걸 된장찌개라고 부르긴 하지만 100% 퓨어한 된장찌개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일반적인 된장찌개들과는 조금 다른 맛이 나는 찌개니 말이다.

뭐 그 분류가 어찌 되든 간에 맛 하나는 분명 기가 막힌 된장찌개였다.

“와……. 진짜 맛있다.”

“이거 왜 이렇게 오랜만에 먹는 거 같지?”

“도승이 형, 제가 투자할 테니까 진짜 된장찌개 집 차릴래요?”

“됐어, 임마.”

“이걸 우리만 먹는 건 진짜 범죈데…….”

동준이 형은 그리 말하며 두부 한 모와 차돌박이 한 줌을 가져가 밥에 올려 쓱싹쓱싹 비비기 시작했다.

그러곤 숟가락 가득 입안에 밀어넣으며 진실의 미간을 구겼다.

“진짜……. 형은 이 찌개를 만들 수 있단 것만으로도 존재의 이유를 다 한 거 같아요.”

“고작 내 존재의 이유가 이 찌개야?”

“무려 이 찌개인 거죠.”

“……이게 칭찬인가.”

모처럼 맞는 여유로운 아침에 다들 편안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약 30여 분간의 식사를 마친 후.

우린 바로 식탁에서 일어나지 않고 그대로 한참을 엉덩이를 뭉개고 있었다.

방금 막 밥을 먹어 배가 부르기도 하거니와, 모처럼의 휴일인데 굳이 바쁘게 움직이고 싶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그러자니 자연스레 나오는 대화의 주제는 과연 오늘 무엇을 하며 보낼지에 대한 거였다.

“다 같이 영화 보러 갈까, 우리?”

먼저 나온 안건은 영화였다.

운이 형이 꺼낸 안건이었다.

“영화요?”

“나 보고 싶던 영화 개봉하긴 했거든.”

“흐음……. 근데 우리 오늘 방송 스케줄은 쉬는데 다 같이 영화 보러 갔다가 걸리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아, 그렇긴 하겠네.”

일단 영화는 패스다.

물론 영화 보러 간다 해서 논란까지 갈 건 아니다.

다만 어디서든 안 좋은 소리는 늘 나올 수밖에 없으니, 억까를 일삼는 사람들에게 억까 할 건덕지 자체를 안 주는 게 베스트다.

“차 빌려서 드라이브 갈까, 우리?”

다음은 연훈이 형의 안건이다.

드라이브라.

이것도 좋긴 하다만…….

“어제 주차장에서 사고 났는데 오늘 바로 차 타긴 좀 그래서……. 하하…….”

동준이 형이 조금 거부반응을 보였다.

어제 차 타고 있다가 사고 났는데 바로 주차장 내려가는 게 아무리 동준이 형이라 해도 조금 꺼림칙한 모양이었다.

“할 만한 게 뭐가 있지…….”

“다 같이 게임이라도 할까요?”

“게임 안 한 지 한참 돼서 기억도 안 난다.”

“흐음…….”

그러다가 내 눈에 밟힌 건 된장찌개였다.

‘된장찌개?’

문득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된장찌개 만들래요?”

“응?”

“뭔 소리야, 갑자기?”

“우리 방금 밥 먹었잖아.”

“아뇨. 우리가 먹을 거 말고요.”

“응?”

“현아 씨랑 승연 씨한테도 대접해 드리면 좋을 거 같아서요. 그리고 우리 팬분들한테도 해주면 좋을 거 같고요.”

“아……!”

“오……!”

내 아이디어에 형들은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특한 생각을 했네……?”

“……그러게요.”

내가 마치 레전드 금쪽이라도 된 것 같은 반응이라 조금 당황스럽다.

이 된장찌개가 개인적으론 우리 팀의 역사를 많이 담고 있다 생각한다.

우리가 가장 자주 먹었던 음식이기도 하고, 늘 생각나는 메뉴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니 이 음식을 우리 팀을 지지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을 뿐이었다.

“근데 승연 씨랑 현아 씨한테 해드린다는 건 알겠는데, 팬분들한테까지는 어떻게 해드리겠단 거야? 우리가 팬분들 앞에 가서 직접 된장찌개를 끓일 순 없잖아.”

운이 형이 된장찌개를 대접한다는 것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이 무엇인지 묻는다.

“아, 저는 아예 레시피 정리해서 밀키트처럼 만들어서 주면 어떨까 싶었어요. 현아 씨랑 승연 씨한테 한 팩씩 주고. 내일 아침 사녹에서 우리 팬분들한테 한 사람씩 나눠주고요.”

내가 생각한 방법은 밀키트 형식으로 만들어서 주잔 거다.

그러면 일도 훨씬 깔끔하고 색다른 선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오……!”

“좋다, 좋아.”

“레시피부터 빨리 정리해 봐야겠네.”

“재료도 사 와야겠다.”

“이왕 밀키트처럼 만들 거 아예 식당에서 쓰는 실링기 같은 거까지 싹 다 사 와서 진짜 밀키트처럼 포장까지 해버릴까?”

“우리 집에 진공포장기 쓰는데 그것도 지금 후딱 가져올까, 얘들아?”

“밀키트처럼 할 거면 진공포장기 무조건 있어야죠.”

“뭔가…… 기대된다……!”

이거 판이 점점 커진다.

내가 화두를 던지자 다들 득달같이 달려들어 어떻게 하면 된장찌개 밀키트를 완성도 있게 만들 수 있을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밀키트 포장지에 우리 사진도 끼워 넣을까요?”

“좋은데?”

“오오.”

“우리 사진 중에 괜찮은 게…….”

이 정도면 무슨 세이렌 굿즈 같은 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회사 MD 팀에서나 할 법한 굿즈 개발 회의를 숙소 식탁에 앉아 된장찌개를 앞에 두고 하고 있으니 다소 웃기긴 했다.

“그럼 일단 레시피 정해지면 다 같이 마트부터 다녀오자.”

“오오! 마트 나들이~”

“된장찌개 밀키트로 역조공 하는 그룹은 진짜 우리밖에 없을 거 같긴 하다.”

그렇게 된장찌개 밀키트 제작을 위한 계획이 하나하나 짜여지기 시작했다.

* * *

윤승연과 이현아는 아침에 회사에 가서 괴한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끝낸 후 반차를 쓰고 바로 잠들었다.

각자 집까지 갈 정신조차 없었기에 회사 근처에 있는 숙박업소에서 둘이 같이 방을 잡고 잠을 잤다.

세이렌 스케줄이 길어질 때마다 이런 식으로 숙박업소에 와서 쉬는 일이 흔했으므로 둘 다 불편함은 없었다.

“끄으……. 왜 자도 자도 피곤할까요?”

“규칙적이지 않다 보니까 그런 거 같아요.”

“하아……. 여기 또 뾰루지 났네.”

두 사람은 규칙이 박살 난 생활 패턴 탓에 생기는 모든 질병을 고루 안고 있었다.

물론 이렇게 고생하는 만큼 회사에서 연봉과 보너스 등을 챙겨주는 실정이긴 하다.

넥스트 웨이브로 넘어오면서 연봉이 차츰차츰 오르더니 중간에 한 번 더 연봉계약을 다시 하여 이전 회사 대비 2배에 가까운 연봉을 받았으니 말이다.

다만 이게 상승폭이 엄청나서 2배가 되는 것이지, 금액으로 치자면 대기업 직장인들이 받는 일반적인 연봉 수준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곧 이전 회사인 WD엔터가 얼마나 쥐꼬리만 한 연봉을 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일단 퇴실부터 할까요?”

“그러죠.”

윤승연과 이현아는 방을 정리한 뒤 밖으로 나왔다.

“그럼 내일 애들 숙소 앞에서 봬요.”

“내일 봬요~”

두 사람이 각자 인사하고 지하철역 앞에서 헤어지려는 그때.

지잉-

지잉-

둘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발신인은 봉태윤.

봉태윤에게서 연락이 오면 무슨 사건이라도 또 터진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먼저 됐다.

두 사람은 헤어지지 않고 지하철역 앞에 서서 문자를 확인했다.

다만 걱정과 달리 내용은 평범한 거였는데…….

-저녁 안 드셨으면 숙소에 와서 같이 드실래요?

저녁을 같이 먹잔 거다.

“저녁?”

“흐음.”

“일단 가볼까요?”

모처럼의 휴일일 텐데 그날 저녁을 본인들 위해 써준다는데 안 갈 이유는 없었다.

또 무슨 음식을 준비했는지도 궁금했고 말이다.

이내 세이렌 숙소에 도착한 후 현관문을 열자,

“어? 오셨어요?”

우연훈이 먼저 그들을 맞이해 줬다.

다만 우연훈의 비주얼보다도 먼저 그녀들을 사로잡았던 것이 있었는데…….

“지금 된장 냄새가 온 집안에 진동을 하는데요……?”

“이거 대체 뭐예요……? 집에서 된장찌개 공장이라도 차린 거예요?”

온 집안에 진동하는 된장 냄새였다.

동시에,

“자, 다음 키트!”

“예에!”

“실링기로 꾹 눌러!”

“형, 여기 진공 포장 덜 됐어요!”

“아, 거기 두면 내가 다시 할게.”

세이렌은 거실에 일렬로 앉아 재료 포장, 진공 처리, 최종 포장이라는 공정을 각각 수행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가내수공업이었다.

거실 한쪽에는 된장찌개 밀키트가 한가득 쌓여 있었고 말이다.

“저희가 만든 된장찌개 밀키트 하나 드시고 가실래요? 물론 그냥 싸서 집에 가셔도 되고요. 저희가 저녁 한 끼는 대접하고 싶어서요.”

우연훈이 그리 말하며 윤승연과 이현아를 식탁에 앉혔다.

다만…….

“하아…….”

“카메라 챙겨오길 잘했네요, 진짜…….”

윤승연과 이현아는 이미 워커 홀릭의 초기 증상을 겪는 중이었다.

“이런 걸 할 거였으면 진작에 말씀을 해주셨어야죠.”

“내일 역조공 할 품목들인 거죠?”

“와……. 이건 진짜 SNS에 한 번 더 난리 나겠네요.”

“이런 정성 가득한 역조공은 우리가 처음일 거 같은데…….”

“대박이다, 진짜.”

그녀들은 된장찌개 먹을 생각 따윈 하지 않고 가방에서 휴대용 캠코더를 꺼내 설치했다.

“이건 무조건 다음 주에 올라갈 활동 비하인드에 추가해야겠네요.”

“아예 타이틀을 따로 빼서 올려도 좋겠고요.”

그렇게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세이렌과 그들의 담당 매니저들은 자처하여 추가 근무를 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