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12화
세이렌의 사전녹화가 있는 날.
방청을 하러 온 사람들은 방송국 앞에 모여 질서를 지키고 있었다.
몇 번 오프 행사를 같이 다녀 얼굴을 튼 사람들 사이에선 하나같이 한 가지의 주제가 흘러나왔다.
“동준이랑 태윤이 어디 다친 곳 없겠죠?”
“그러니까요…….”
“저 아는 분이 이거 기사 쓰신 기자분인데 두 사람 다친 곳은 없대요. 범인이 막 위협하려는 시늉만 하고 도망갔다던데.”
“아, 진짜 그러면 너무 다행이다.”
“저 진심 그거 기사 보고 엥? 이게 뭔…… 하다가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요.”
그들의 대화 주제는 단연 봉태윤과 박동준의 괴한 습격 사건이었다.
세이렌의 사주에 마가 껴도 단단히 꼈다는 누군가의 헛소리가 예전에 SNS에 올라온 적이 있는데, 이런 걸 보면 그 말에 신빙성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음악방송 1등과 괴한 습격이 동시에 일어나다니 말이다.
여타 아이돌들과 다른 행보를 걷는 것은 알겠다만 안 좋은 쪽으로도 다른 행보를 걷는 느낌이라 늘 불안했다.
“액땜했다 쳐야죠.”
“맞아요.”
“애들 뉴스에도 나오고 해서 인지도는 조금 올라간 거 같은데…….”
“괴한 습격돌 이런 걸로 이미지 굳는 거 아니에요?”
“아, 그건 좀.”
사람들은 최대한 이 사안을 좋은 쪽으로 해석하려 했다.
“원래 좋은 일 생기면 안 좋은 일 생기고, 안 좋은 일 생기면 좋은 일 생긴다잖아요.”
“진짜 이러다 올해 말에 대상 받는 거 아니에요?”
“그럼 대박인데.”
한참 이야기가 무르익으며 지루한 시간들을 견디는 와중.
저 멀리서 세이렌의 팬매니저가 손수레에 커다란 박스를 올린 채 끌고 오는 것이 보였다.
출석체크도 다 한 마당에 팬매니저가 다시 온다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명확했다.
특히 저기 뒤에 있는 저 박스를 보면 더더욱 그 목적이 명확했고 말이다.
“여러분! 멤버분들이 준비한 역조공 선물 나눠드리겠습니다! 질서 지켜주세요!”
“와.”
“허억!”
“대박!”
세이렌의 역조공이었다.
어제 하루 스케줄 안 하고 쉬는 동안 준비한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역조공 타이밍이었다.
아니, 고작 하루 쉬는 건데 그 하루 동안 팬들을 위해 이런 걸 준비해 주다니.
받기 전부터 이미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동시에 어떤 품목일지 상상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나눠준 적 있던 그 고급 샌드위치?
아니면 도시락?
뭐가 됐든 좋았다.
‘무언가’를 받는다는 게 좋은 게 아니라 그냥 ‘받는다’는 그 자체가 좋은 거니 말이다.
한데,
“에?”
“어?”
“응?”
“하하하하!”
팬들 손 위에 하나씩 올라가게 된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품목이었다.
-세이렌의 시그니처 된장-찌개-!
-강도승의 비법이 담긴 어디서도 맛보지 못할 프리미엄 된장찌개 밀-킷!
꼼꼼하게 실링기로 포장한 된장찌개 밀키트였다.
내용물은 육수와 차돌박이, 야채 세트, 된장으로 보이는 소스 정도였다.
양은 2-3인분 정도 될 것으로 보였고 말이다.
한데 밀키트 위에 올라가 있는 사진이 압권이었다.
“이거 된장찌개 밀키트 홍보대사 아니에요?”
“그러니까요. 하하하하!”
세이렌 멤버들이 다 같이 하얀색 셔츠로 갈아입은 후 된장찌개 밀키트를 들고 화보샷 같은 것을 찍은 거였다.
누가 한 건진 모르겠지만 깔끔하게 누끼까지 따서 밀키트 위에 붙여둔 상태였다.
“옷은 무슨 화장품 광고 할 것처럼 입어놓고 된장찌개를 손에 들고 있는 거야.”
“와, 근데 도승이 왜 이렇게 이 사진에서 잘생긴 거죠?”
“도승이 퍼스널 컬러가 된장찌개 밀키튼가.”
“아니……. 그게 무슨…….”
사람들은 아무도 예상 못 했던 색다른 역조공에 좋은 반응을 쏟아내고 있었다.
심지어 흔한 양산품을 준 게 아니었다.
진짜로 멤버들이 하나하나 만들었을 게 눈에 보이는 내용물들이었다.
설명문에도 강도승의 비법이 담긴 된장찌개라지 않는가.
안 그래도 세이렌 팬들 사이에서 강도승의 된장찌개 레시피에 대해 소문이 돌았던 적도 있었다.
방송에서 세이렌 멤버들이 된장찌개 먹는 모습이 나왔는데, 그 입 짧은 봉태윤조차 순식간에 밥을 해치우는 것을 보고 다들 저 된장찌개는 일반적인 된장찌개가 아닐 거라며 레시피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었던 적이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레시피를 만들려고 혈안만 되었다 뿐이지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방송상으로 본 이미지만으론 레시피를 유추해 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 말이다.
한데 이 밀키트를 받음으로써 멤버들이 먹어온 강도승표 된장찌개를 팬들도 직접 먹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다들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바빴다.
“대박이다, 진짜.”
“와, 나 밥 생각 없었는데 갑자기 배고파짐.”
“끝나고 맥날 갈라 했는데 집 가서 이거 끓여봐야겠다.”
“아 나 이거 끓이면 엄빠가 다 뺏어 먹을 거 같은데.”
“부르스타 사서 방 가서 끓이셈.”
“님 천재?”
사람들은 밀키트에 관해 대화를 하며 손으론 바삐 SNS에 해당 품목을 올리기 시작했다.
이건 필히 사람들에게 널리 널리 알려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이었다.
대체 어떤 그룹이 자기들 쉬는 날을 불태워서 홈메이드 된찌 밀키트를 만들어서 역조공 할 생각을 한단 말인가.
이런 걸 만들어준 애들이 기특하고 고마워서라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었다.
* * *
사전녹화를 기다리는 동안, 형들과 나는 대기실에 앉아 SNS에 올라온 반응들을 보고 있었다.
의상과 메이크업, 헤어 세팅 등은 이미 끝난 상태였다.
이제 약 10분쯤 후면 무대에 올라가야 할 상황.
하지만 올라가기 바로 직전까지 팬들 반응을 보고 싶은 생각인지 어느 누구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팬분들이 진짜 좋아하신다.”
“너무 다행이다.”
“이 팬분은 집에 부르스타 들고 가신다는데?”
“하하하!”
사실 별로 대단한 걸 해준 건 아니다.
뭐 판매가로 따지자면 한 15,000원 정도밖에 안 될 테니까.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에게 15,000원짜리 식사 대접 한 번을 못 할 사람은 거의 없지 않겠는가.
한데 이 자그마한 선물 하나에도 이렇게 좋아하는 모습들을 보면 가슴 한편이 뿌듯해지곤 했다.
“가서 오늘은 더 빡세게 하자!”
“오늘 진짜 무대 부수고 오자.”
“오오오오오!”
“할 수 있다, 세이렌!”
형들은 사기가 100% 올라간 모습들을 보이며 사녹에 대한 각오를 다졌다.
사실 이렇게까지 의지를 끌어올릴 필요는 없는 일이긴 한데.
그렇다고 대충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게 분명했다.
“세이렌 스탠바이 하겠습니다!”
“네에~”
우린 제작진의 안내에 따라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무대에 올라가고 난 후에 우린 팬들과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인이어를 낀 탓에 대화 내용들이 정확히 들리진 않았지만 간단한 의사소통을 나누는 건 가능했다.
“된장찌개! 맛있게 먹어요!”
“그거! 내가! 실링기! 꾹! 눌렀어요!”
“내가 포장했어요!”
“레시피! 내 거!”
우린 각각 그 된장찌개 밀키트를 만드는 데에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에 대해 팬들에게 자랑했다.
팬들은 그럴 때마다 이런저런 반응들을 쏟아냈는데 사실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는 잘 들리진 않았다.
대충 입 모양과 뿌옇게 들리는 소리들을 통해 유추만 할 뿐이었다.
이후 멘트가 끝나고.
본격적인 무대가 시작되었다.
이젠 나름 익숙해진 의 전주가 이어지고.
우린 몇 번이나 연습했고, 몇 번이나 무대에서 춰봤던 그 안무를 이어갔다.
팬들의 응원법이 인이어를 뚫고 들어오고, 그럴 때마다 난 웃음이 나려는 걸 억지로 참아야 했다.
다만 웃음을 참는 나와 달리 연훈이 형은 활짝 웃으며 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나도 연훈이 형을 따라 웃음 참기를 그만두곤 팬들을 바라봤다.
이런 날만 이어지기를 속으로 열심히 기도하며 말이다.
* * *
사녹이 끝난 후부터는 다시 바쁘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어제 미뤄둔 촬영들을 오늘 다시 해야 했으며, 오늘 몫으로 남겨진 스케줄은 당연히 그대로 소화해 내야 했기 때문이다.
사녹 이후 아침밥 먹을 시간도 없이 오전 라디오 스케줄을 끝낸 후 다시 다음 예능 스케줄로 이동했다.
어쩌다 보니 점심 먹을 시간도 애매해서 차에서 김밥으로 때우게 됐다.
이후 다시 음악방송 참석.
생방송에서 한 번 더 무대를 이어갔다.
오늘 방송에서도 온리원을 만나긴 했다.
우리 두 팀 모두 1등 후보인지라 이런저런 이벤트에 불려 나갔으니 말이다.
온리원 멤버들은 나와 동준이 형에게 몰려와 괴한한테 어디 맞진 않았냐며 걱정해 줬다.
그럴 때마다 우린 다친 곳 없으니 괜찮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해야 했다.
특히나 강현성은 내게 슬쩍 오더니 진짜 괜찮냐는 것을 은밀하게 묻고 지나가기도 했다.
난 이 자식이 왜 이러나 싶었으나 진짜 괜찮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했다.
이후 온리원과 해당 방송의 1등 자리를 놓고 마지막까지 경쟁했으며, 그날의 1등은 우리가 아닌 온리원에게 돌아갔다.
-이번 주 1등은 온리원의 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온리원은 본인들의 1등을 예상하지 못했던 건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했다.
심지어는 그 무뚝뚝해 보이던 강현성조차 조금은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고 말이다.
문제는 그 순간에 왜 날 쳐다봤냐는 건데……. 뭐 놀라면 아무나 막 쳐다보게 되는 거니 별생각은 안 했다.
우린 온리원이 이 기쁨을 만끽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줬다.
그날 1등을 못 한 게 아쉽긴 했지만 그렇다고 아쉬워할 틈이 길게 있던 건 아니었다.
“태윤아! 여기 봐줘!”
“동준아아아!”
“연-! 훈-! 아-!”
“운아아아!”
“도승아아!”
그날도 우린 팬싸에 가서 팬분들과 소통해야 했으니 말이다.
1등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팬분들과 소통하는 게 좀 더 좋았다.
“된장찌개 오늘 먹고 왔어요!”
“진짜요? 오늘 사녹에도 왔어요?”
“그럼요! 근데 그 된장찌개 진짜 맛있던데요?”
“맞아요. 도승이 형이 요리 잘해요.”
“태윤이는 된장찌개 말고 좋아하는 다른 음식 있어요?”
“음……. 저는 연훈이 형 어머니가 해준 갈비찜이요.”
“……굉장히 디테일하네요.”
“누나는요?”
“음……. 나는…….”
팬싸도 몇 번 하고 보니 점점 더 능숙해지는 것 같았다.
설렘이나 두근거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불필요한 긴장만 사라지는 느낌이랄까.
이후 마지막에 팬분들 앞에서 수록곡 무대를 한 번 하고.
다 같이 사진 찍는 것으로 팬사인회도 마무리됐다.
“끄아아아!”
“오늘 아주 빡세게 잘 살았다고 할 수 있겠도다-”
“박동준 또 어디서 이상한 말투 배워온 거야.”
“내 맘이라고 할 수 있겠도다-”
“……킹받네.”
우린 숙소로 돌아와 각자 바닥 혹은 소파에 엎어지며 하루가 끝난 노곤함을 풀어냈다.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아주 평범한 활동기의 하루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 * *
그다음 날이 되었을 때.
우리는 사녹에 가기 전에 다 같이 모여 팬들과 한 약속을 지켰다.
<세이렌 유-우머 영상>의 삭제된 부분과 연훈이 형 커버의 2절을 업로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