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13화
세이렌이 1등 공약을 지키기 위해 올린 영상들은 업로드와 동시에 SNS에서 수많은 공유를 타며 번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대중들에게 넓게 번진 것은 우연훈이 부른 의 커버 영상이었다.
커버 영상이 대중들에게 번질 수밖에 없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유이기도 했다.
커버 영상 자체가 대중들을 타겟팅해서 만들어낸 영상이었으니 말이다.
세이렌은 잘 몰라도 우연훈의 커버 영상은 본 적 있던 대중들은 완성본 영상이 올라왔단 소식을 듣고 일제히 영상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왘ㅋㅋㅋㅋ이거 2절까지 뜸?
-이거제ㅋㅋㅋㅋ
-사이렌 1등 한 거임 그래서?
└세이렌 이라고요;;
-진심 노래 뒤집어지게 잘하네;;
-아니 근데 노래가 중요한 게 아님 얼굴이 개미친놈인데;;
-노래가 너무 좋아서 안경을 쓰고 다시 들었습니다
-이런 애들이 왜 아직까지 못 뜬 거임?
└? 초동 50만 넘은 대형 신인인디유?
1절만 공개했을 때에도 파급력이 꽤 거셌건만 풀버전은 훨씬 더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올라가는 듯했다.
대중들의 인식 속에 세이렌 이란 ‘그 노래 잘하고 잘생긴 애 있는 곳’이란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 잡을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원래라면 대중 인지도는 온리원이 한발 앞서 있었지만 이번 영상을 계기로 세이렌이 온리원을 살짝 추월한 정도가 되었다.
사실상 온리원의 대중 인지도라 해봐야 실제로는 강현성의 대중 인지도에 더 가까운 것이었으니 말이다.
즉 사람들이 강현성보다 우연훈을 더 많이, 익숙하게 기억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특히나 고무적인 것은 너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 댓글란에 방송 프로그램 채널들이 와서 섭외 요청을 남기고 갔다는 거다.
밤 시간에 가수들을 불러놓고 라이브를 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심야의 라이브 홀>이란 프로그램에서도, 노래방에서 노는 것을 모티브로 잡고 만든 음악 퀴즈 예능인 <2차는 노래방!>이란 프로그램에서도 댓글을 남기고 사라졌다.
-바다의 왕자 연훈 님의 출연을 간절히 기다리겠습니다
-회사로 문의하였으니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왕자님^^
우연훈이라는 캐릭터가 고일 대로 고여버린 예능판에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올 수 있단 걸 작가들이 먼저 알아차린 거다.
그 밑으론 세이렌 팬들과 프로그램 팬들이 뒤엉켜 우연훈의 출연을 고대한다는 대댓글들을 마구잡이로 써 올리기 시작했다.
우연훈의 영상이 이러한 돌풍을 불러일으키는 동안 <세이렌 유-우머 영상>의 완성본은 어땠느냐.
해당 영상은 대중들에게 뻗어나가지 못하도록 세이렌 팬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막는 중이었다.
-이 영상 절대 지켜! 아무도 못 보게 해달란 말이에요!
-비계로만 공유하라고요;;
-연훈이로 입덕몰이 하는 중에 이거 터지면 다 죽는 거임;;
-어떻게 커버 영상이랑 유머 영상을 동시에 풀 수 있는 거임?????ㅋ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봉태윤이 세이렌에 독을 풀었다!!
우연훈 영상이 터지며 유입에 긍정적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지금 이 영상이 대중들에게 풀려서는 안 된다는 게 팬들의 중론이었으니 말이다.
실제로 팬들은 해당 영상을 비공개 계정으로만 공유할 뿐 공개 계정으로는 공유하지 않아 공유 수에 비해 피드에 떠오르는 양이 적었다.
다만 비공개 계정으로 퍼가는 횟수 자체는 상당히 많았는데 파랑새 한정으로만큼은 우연훈 커버 영상보다 더 많은 공유 수를 자랑할 정도였다.
유머 영상을 공유해 간 비공개 계정에선 대체로 이런 반응들이 나왔는데,
-봉떤남자 이런 캐릭터였냐고;;;
-아닠ㅋㅋㅋㅋ진짜 얘 이걸 이렇게 자기는 하나도 안 웃고 태연하게 하는 거임?
-봉떤 한마디 할 때마다 애들 터져나가는 게 개웃김ㅋㅋㅋㅋㅋㅋ
-아니 이게 진짜 웃기려는 의도 하나도 없이 그냥 줘패버리는 거 같아서 더 웃김ㅋㅋㅋㅋ
-저게 무슨 개그냐곸ㅋㅋㅋㅋ봉태윤 개그의 의미를 모르는 거 아님?
영상 자체는 꽤 웃기다는 반응들이었다.
세이렌이 올린 유머 영상 완전판은 이전 버전과 크게 다를 것 없이 시작한다.
아니, 아예 동일하게 시작한다.
이전에 올린 버전에 편집된 장면만 붙여서 올린 거니 말이다.
사람들은 명작을 다시 본다는 마음으로 해당 영상을 처음부터 다시 감상했다.
이내 이전 영상에서는 잘렸던 부분.
바로 봉태윤이 준비한 유머가 나오는 부분이 나왔는데.
이건 사실상 유머라고 할 수는 없는 종류였다.
자신들을 웃기면 이 멍청한 상황극을 끝낼 수 있다는 요구를 받은 봉태윤이 천천히 입을 떼기 시작했는데,
-그…….
아무도 예상 못 했던 말이 대뜸 튀어나왔다.
-동준이 형, 마라탕 이제 그만 좀 먹어요.
가만있던 박동준을 팩트로 후두려 까버린 거였다.
-어?
-어어?
-응?
-마라탕 그렇게 먹다가 위장에 구멍 나요. 진짜 위험할지도 모른다니까요.
-……어?
-하하하하하!
-아니…… 태윤아!
-이게 무슨 개그야!
카메라를 들고 있던 박동준은 벙쪄서 어……? 라는 소리만 내고 있었고, 다른 세이렌 멤버들은 예상 못 한 봉태윤의 공격에 어리둥절해하다가 뒤늦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봉태윤의 언어 폭행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도승이 형, 혼자 걸을 때 음악 느끼면서 걷지 마요.
-……뭐……뭐 임마?
-헤드폰 쓰고 그루브 그만 타요. 솔직히 조금 창피해요. 우리 컨셉 청량이란 말이에요.
-풉!
-푸하하하학!
-그루브 킹! 강도승!
-하지 마!
강도승이 남몰래 하던 본인만의 작은 습관을 가져와 팼으며,
-연훈이 형, 씻을 때 노래 그만 불러요. 욕실은 노래방이 아니에요. 오래 씻으면 피부에도 안 좋고요.
-아……?
-또 아침에 패션쇼 좀 그만 벌이고요. 그 얼굴에 꾸미는 건 기만이에요.
-와타시가……?
우연훈의 나쁜 버릇을 가져와 팼고,
-운이 형, 우리 없을 때 연습실 거울 보면서 본인한테 취하는 거 모를 줄 알았어요?
-헉……!
이운의 치부를 들춰내서 팼다.
-동준이 형, 그리고…….
-그…… 그만 태윤아…….
-도승이 형, 또…….
-이런 정신 나간…….
-운이 형…….
-태윤아…….
-연훈이 형은…….
-……미안해……. 내가…….
봉태윤의 언어 폭행은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처음 한마디 들을 땐 다들 웃으며 듣다가 마지막에 가선 정신적 타격을 받은 사람들마냥 퀭해져서 앉아 있는 게 포인트였다.
한데 그렇게 실컷 패놓고는,
-이상입니다. 즐거우셨나요?
뻔뻔하게 이 모든 것이 웃기기 위한 연극이었다는 듯 마무리 인사를 하는 봉태윤을 보고는 실소를 터뜨렸다.
실소는 이내 서로를 보며 터뜨리는 헛웃음으로 번지기 시작했고, 헛웃음은 곧이어 광소로, 급기야 박장대소로 번져버렸다.
웃기라고 했는데 자신들을 냅다 후두려패 버린 봉태윤이 어처구니가 없어 웃는 거였다.
다들 실성한 사람처럼 웃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이로써 봉태윤 유머의 미스테리가 풀렸다.
진짜 웃긴 말을 해서 형들을 쓰러뜨린 게 아니라, 뇌에 타격을 줘서 헛웃음이 나오게 만들어 버린 거였다.
뭐가 됐든 웃기는 데에는 성공했으니 미션 또한 성실히 지킨 거라 할 수 있었다.
-진짜 팀 분위기가 얼마나 좋으면 막내가 저런 말 해도 넘어가주냐
└포장하지 마세요. 이건 분위기가 좋은 게 아니라 막내의 일방적 폭행이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ㄹㅇ봉막내온탑이네
-유머 영상이 아니라 폭행 직촬 영상 아님?
-아닠ㅋㅋ근데 얘들 반응이 보면 태윤이 말 중에 틀린 말은 하나도 없는 거 같음ㅋㅋㅋ
-유머 영상을 올리랬더니 왜 내부폭로 영상을 올리는 거얔ㅋㅋㅋㅋ
-아니 근데 봉떤 저렇게 뒤 없이 전부 터뜨려도 되는 거야? 막낸데?
└아무리 봐도 세이렌은 막내온탑인거 같은데ㅋㅋㅋ
-이거 진짜 외부에 퍼지지 않고 우리끼리 보고 즐깁시다
-아닠ㅋㅋㅋㅋ애들 사생활까지 공유 받아 버린 거 같네……ㅎㅎ
-너희를 자세히 알고 싶었지만 이렇게까지 자세히 알고 싶던 건 아니었어 태윤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준이랑 나랑 공통점은 하나 있었네;;
세이렌 팬들은 해당 영상을 누구보다 즐거워하며 시청했지만, 보고 난 후 본인들끼리만 보자는 암묵적 합의를 마쳐 버렸다.
이로써 해당 영상은 수많은 공유를 탔지만 그에 비해 인터넷으로 퍼지는 속도는 극히 느렸고, 퍼져 봤자 파랑새 내에서만 소소하게 굴러다니는 정도가 되었다.
영상 공개 후 흐름을 탄 세이렌은 그 주 나머지 음악방송에서 두 번의 1등 트로피를 더 들어 올렸다.
목요일 방송과 금요일 방송에서 연이어 1등을 하는 쾌거를 이루고는 첫 1등을 했던 때보다는 훨씬 차분해진 상태로 앵콜 무대를 이어가기도 했다.
어김없이 이어진 1등 축하 라이브 방송에서 그들은 다 같이 케이크 먹방을 하며 유머 영상에 대한 해명 시간을 가졌다.
-저……. 마라탕 그렇게 안 좋아합니다.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형 피 뽑으면 마라가 나올지도 몰라요.
-이……이익! 봉태윤!
-저도 딱히 그루브를 타지는 않습,
-증거 영상 제출할까요?
-하지 마!
-나. 나도 욕실에서 노래는…….
-아 형, 그건 진짜 아니에요.
-……미안해…….
-저도 거울을 그렇게 자주 보진 않…….
-삐빅. 거짓말입니다.
다만 해명을 하려 할수록 봉태윤이 기가 막히게 블로킹을 하는 바람에 정작 해명된 소스는 단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세이렌 멤버들은 그날 별명 하나씩을 더 만들어서 가게 되었다.
우연훈은 배스룸 송 마스터.
강도승은 아시안 그루브 킹.
이운은 트레이닝 룸 프린세스.
박동준은 강남구 마라왕.
봉태윤은 위킹 팩트 머신.
이라는 별명을 하나씩 갖게 된 날이었다.
이후 토요일, 일요일 음악방송은 온리원이 다시 1등을 가져가는 것으로 2주차 활동이 마무리되었다.
* * *
2주차 활동이 마무리된 일요일 밤.
우린 그 밤을 푹 쉬면서 보낼 수는 없었다.
지난 한 주간 팬싸도 많이 하고, 1등 트로피도 총 3번이나 드는 등 알찬 활동을 이어갔다고 할 수 있다.
한데 그 덕일까.
“하아아아.”
“이제 다시 일하자.”
“할 수 있다!”
푹 쉬어도 될 순간에 오히려 더 불타올라 버렸다.
더 높은 곳을 향한 형들의 향상심은 기존 대비 거의 2배 가까이 올라온 상태였다.
이러한 집단적 독기는 팀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고, 2주차 활동이 마무리된 일요일 밤 우린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회사로 들어왔다.
그러곤 회의실 하나를 잡은 후 노트북과 회의용 모니터를 연결했다.
오늘 회의의 주된 안건.
“자. 다음 후속 활동 컨셉이랑 편곡 방향, 하고 싶은 무대들 있으면 이야기해 보자!”
바로 이번 활동 후 곧바로 이어서 할 후속 활동에 대한 거였다.
형들도 이제는 내 의견에 완전히 감화된 상태였다.
이대로 간다면 올 말에 대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그 말.
형들은 이제 두 눈에 연말 대상이라는 네 글자만 아른거리는 상태가 된 것 같았다.
딱 내가 원하던 상태가 바로 이런 상태였다.
이런 상태를 유지해서 계속 활동 때마다 자체 기록을 경신할 수만 있다면,
‘트리플 크라운 올킬이랑 빌보드 핫100 진입도…… 가능할지 몰라.’
당면해 있는 사망 미션 두 개를 3개월 안에 클리어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한창 열의를 불태우며 회의에 임하려는데,
“응? 저거 누구야?”
통유리로 된 회의실 벽면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게 비췄다.
이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이 시간에 회의를 하는 건가요? 허허, 열정적이네요.”
유원동 대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