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14화
유원동이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아……하하하.”
“이 시간까지…… 회사에 남아계셨군요.”
“……하하하하…….”
그러자 형들이 엉거주춤하게 일어나서 유원동 대표와 인사를 나눴다.
이거 지금 무슨 상황인지 정확하게 알겠다.
‘애들끼리 노는 데 눈치 없이 어른 낀 거네.’
그 누구에게도 도움 되지 않는 상황이 펼쳐진 거다.
유원동은 뭔가 뿌듯한 얼굴로 우릴 주욱 훑어봤다.
“이렇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 보기 좋네요.”
혼자 뭔가 감명받은 얼굴이다.
이 사람이 원래 이런 캐릭터였나?
굉장히 무미건조한 비즈니스맨인 거 같았는데, 갑자기 감성이 넘치는 소녀가 된 거 같았다.
“어떤 회의 하려던 건가요. 제가 오늘 회의 아젠다를 들어봐도 될까요?”
“아…… 아젠다랄 것까지는 아니고…… 저희 후속 활동 컨셉이나 킥 같은 걸 브레인스토밍하려고 모인 자리였습니다.”
“후속 활동?”
“네네.”
“제가 아직 예산 승인을 안 해줬을 텐데요?”
“아 근데 기획안은 올라갔다고 들어서 승인 날 걸 염두에 두고 좀 더 디테일한 컨셉도 잡아볼 생각이었습니다.”
연훈이 형이 팀 리더로서 유원동의 물음에 하나씩 답을 했다.
유원동은 자신이 아직 승인 내지 않은 예산인데 우리가 회의를 한다는 것에 대해 조금 고민이 있는 얼굴이었다.
연훈이 형의 말을 듣자 다소 표정이 어두워졌으니 말이다.
‘설마 후속 활동 승인 안 내주겠어.’
예산이 많이 들긴 하지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다.
트리플 크라운 올킬이라는 성과를 만들어내면 되는 거니까.
지금 이 회사는, 더 나아가 유원동이라는 사람은 매출에 급하지 않다.
매출이야 뭐 돈 더 잘 벌어오는 제일그룹 계열사들 많은데 넥스트 웨이브까지 분발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사업 초기로서 매출보다는 가시적 성과를 보이는 게 더 중요한 때.
그러니 우리의 트리플 크라운 올킬에 힘을 보태주는 것이 결코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다.
이전에 유원동과 개인 면담을 했을 때에도 이런 점을 어필했었다.
유원동도 나름 내 의견에 동의하는 분위기였고.
그러니 안 된다는 말이 저 사람 입에서 튀어나오진 않을 거라 나름 확신은 하고 있었지만,
‘아직 모르니까.’
100%란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확률이다.
그때,
“합시다. 그까짓 7억 태워보죠.”
유원동이 사람 좋은 미소 지으며 7억을 쓰자고 말한다.
“오!”
“진짜요?”
“와!”
“근데 우리 예산이 7억이나 되는구나…….”
결국 이 자리에서 7억 예산을 승인 내줬다.
이렇게 시원시원하게 해줄 거면서 왜 그간 안 내주고 있던 건지.
“그러면 후속 활동에 쓸 뮤직비디오나 마케팅 같은 걸 준비하는 데 이제 시간이 얼마나 남은 거죠?”
“한 3주쯤 남은 거 같습니다.”
“흐음. 빠듯하긴 하군요.”
“하지만 무리하면 안 될 것도 없는 날이긴 합니다.”
“일단 자세한 타임라인은 실무진들이랑 짜보기로 하고……. 어떤 컨셉으로 하고 싶은지 잠깐 들어도 될까요?”
“……에?”
“아 저한테 발표를 하란 건 아니고, 세이렌분들이 브레인스토밍하는 걸 옆에서 들어보겠다고요. 편하게 하세요, 편하게.”
편하게 하라고 하는 순간 불편해지는 걸 이 사람이 모를 리가 없는데.
유원동이 의자에 엉덩이를 뭉개고 앉자 형들과 나 사이엔 숨 막히는 공기가 형성됐다.
누가 나서서 이 상황을 타개해 달라는 서로 간의 구조 요청이다.
아마 연훈이 형이 먼저 나서려나 보다.
눈을 질끈 감더니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는데…….
“일단 저희 후속 활동 곡은 입니다. 이번 앨범 수록곡 중 차트에도 가장 오래 살아 있는 곡이기도 하고요.”
내가 인터셉트했다.
형들이 조금 놀란 눈으로 날 쳐다봤다.
사장 앞에서 대본 같은 것도 짜지 않은 주제로 회의를 이어가려고 한단 것에 다들 놀란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을 회피할 수도 없다.
내가 유원동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만, 이 사람이 늙은 여우 같은 인간임을 모르지도 않다.
지금은 다소 기가 죽은 느낌이지만 본성은 쉽게 변하지 않으니까.
아마 7억 승인 내줄게요- 라는 말을 해놓고도 우리가 하는 브레인스토밍과 회의가 탐탁지 않다면 예산을 안 내줄 사람이 분명하다.
내준다고 한 예산을 안 내주는 방법이야 조금만 머리를 굴려봐도 바로바로 나올 수 있다.
제일그룹 본사에서 이해 가지 못하는 지출이라며 의견이 들어왔다고 해버리면 끝나는 문제니 말이다.
그러니 난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이 회의에 임해야 한다.
동준이 형 목숨이 달린 문제고, 더 나아가 팀의 명운이 걸린 문제니 말이다.
“왜 그 곡으로 후속 활동을 하려는 거죠?”
“아무런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 차트 50위에 오랜 기간 올라가 있는 곡입니다. 팬들 내부적으로는 이 타이틀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고요. 이미 곡 완성도나 대중성은 증명받은 곡이라 생각합니다.”
“흐음. 그래요. 그래서 그 곡으로 지금 노리는 목표가 트리플 크라운 올킬인 거고요?”
“네. 맞습니다. 적절한 예산이 받쳐준다면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생각하고 있는 마케팅과 무대 컨셉 등등 아무거나 좀 말해줄 수 있어요?”
“일단 10대, 20대 그리고 30대까지 포괄적으로 타겟팅 할 수 있는 마케팅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내부적으로 이야기가 나온 건 챌린지를 만들어서 하나의 트렌드로 만드는 방안이 나왔습니다.”
“흐음. 요새 많이들 하죠. 저도 동의하는 마케팅입니다, 대신 좀 더 색다른 마케팅 방법은 없을까요? 목표가 트리플 크라운 올킬이면 그에 어울리는 나름의 파격은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색다른 마케팅은 지금 여기서 어떻게 만들란 말인가.
잠깐 머뭇대는 사이,
“해변들 순회 공연이라도 돌아보는 거 어떨까요?”
운이 형이 들어오며 아이디어를 냈다.
“해변 순회 공연?”
“곡 자체도 이니까 바다에서 불렀을 때 더 어울리는 곡 같아서요. 아마 활동 시기 자체도 여름 휴가철과 겹칠 거 같고요.”
“흐음.”
유원동이 나쁘지 않단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곧장 반박할 거리가 생각났단 듯 바로 입을 뗀다.
“그 스케줄 소화할 수 있겠어요? 사전녹화 뛰고 바로 전국 지방 다 돌아다니는 건데?”
“……아!”
이 말도 일리가 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게 있으니 말이다.
다만 운이 형의 아이디어가 마중물이 되어 내 쪽에서 다른 아이디어가 나왔다.
“그러면 해변을 가지 않고…… 해변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해변을 만들어요?”
“강남, 잠실, 여의도, 홍대, 이태원 등등 서울에 있는 주요 장소에 팝업존을 여는 거죠. 해변을 모티브로 한 공간이요.”
“……오.”
“도심에서 해변에 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게 공간을 최대한 꾸미는 게 중요할 거 같습니다. 가능하면 미디어 아트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게 좋을 거 같고요.”
말을 하면서 계속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기 시작했다.
“바닥에 모래를 풀어도 좋을 거 같고, 벽에는 빔을 쏴서 파도가 치는 듯한 영상을 틀어두면 될 거 같고, 실제 해변에서 들리는 사운드들 녹음해서 써도 좋을 거 같습니다.”
테마가 잡히니 이제 형들도 이 브레인스토밍에 적극 참여해서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냄새! 바다 냄새가 나야 할 거 같아요! 물론 진짜 물비린내가 나면 안 되겠지만, 바다 냄새의 좋은 점만 모은 디퓨저를 깔아두면 좋을 거 같아요.”
연훈이 형이 냄새에 대한 아이디어를 던져넣으며,
“도심에 구현하는 팝업존이니까 메인 스테이지까지 가는 길을 구불구불하게 만들어서 미로처럼 표현하는 건 어떨까요? 원래 힐링 스팟은 바로 발견하는 것보다 발견하는 과정이 있어야 더 값지잖아요.”
동준이 형도 아이디어를 냈고,
“기왕 바닥에 모래를 깔 거라면 맨발로 입장하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촉감까지 느껴져야 진짜 바다에 온 듯한 감상을 받을 수 있을 거 같아서요.”
도승이 형도 아이디어를 냈다.
팝업존.
내가 말하긴 했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유원동 취향 저격 느낌이다.
이 사람은 가시적인 거 좋아하고, 눈에 띄는 거 좋아한다.
성과를 내야 하는 경영자의 입장이니 이는 당연한 거다.
그런 의미에서 팝업존은 가시성으로 치자면 마케팅 중 1등이다.
“해변을 가져오는 발상……. 이거 좋네요. 그러면 그 팝업존 끝에서, 여러분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건가요?”
“네. 아마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티저 정도를 틀어줘도 괜찮을 거 같고요.”
“마케팅으로 딱인데요? 하하하.”
역시.
유원동 마음에 든 모양이다.
유원동이 함박 미소를 지으며 우릴 바라봤다.
“오늘 봐야 할 문서가 많아서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 있었는데, 잘한 일인 거 같네요. 이렇게 세이렌분들이랑 유의미한 시간도 가질 수 있고요.”
이 사람은 지금 우리랑 팝업존이라는 결과물을 낸 게 꽤나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컨셉 브레인스토밍도 듣고 싶지만…… 그거까지 들으면 내가 너무 눈치 없는 사람이 될 거 같네요. 그건 아티스트들의 의견에 적극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껏 꿈을 펼쳐 보세요.”
얼마나 만족스러운지 우리보고 꿈을 마음껏 펼치란다.
진짜 마음껏 펼치면 돈 없다고 안 해줄 거면서.
그래도 말이라도 저렇게 해주니 다행이다.
“전 가볼게요. 안 나와도 됩니다. 늦은 시간이니 몸 상하지 않게 적당히 하고 들어가요.”
배웅할 생각도 없었는데 안 나와도 된다니 다행이다.
그렇게 유원동이 만족하며 회의실을 떠나고.
“하아아…….”
“진짜 깜짝 놀랐네…….”
“후우우우.”
형들은 이제야 긴장이 풀린 건지 의자에 축 늘어졌다.
“일단…… 회의 마저 할까?”
“그래요.”
“힘냅시다!”
다만 여기서 끝낼 순 없으니 다시 기운을 올렸다.
오늘 회의의 메인이라 할 법한 컨셉 회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 * *
다음 날이 되었을 때 우린 어제 회의한 내용을 승연 씨와 현아 씨, 그리고 A&R팀에게 공유해 줬다.
유원동이 와서 7억 예산 승인 해줬다는 내용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에 와보니 예산이 승인되어 있어서 다들 놀랐다고 한다.
암튼 돈도 들어왔겠다, 대략적인 컨셉들도 나왔겠다, 이젠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곡도 다 나와 있는데.
어려운 산은 다 넘었으니 이젠 돈을 뿌릴 차례였다.
“이 팝업존은 일단 오늘부터 업체들 리스트 뽑아서 시안 몇 개 받아볼 거 같아요.”
우선 원동이가 사랑하는 팝업존부터 빠르게 픽스할 생각이었다.
“뮤직비디오 감독은 전 타이틀곡 작업해 준 감독님으로 할까요? 이분이 지금 스케줄 될 거거든요. 맨날 SNS에 놀러 다니는 거만 올리는 사람이라.”
“넵, 저흰 좋습니다!”
“그 감독님 디렉팅 너무 잘해주세요.”
“맞아.”
뮤직비디오 감독도 빠르게 픽스.
의상 협찬이나 메이크업 시안, 의상 시안 등등은 실무진들이 그간 쌓아 올려두었던 빅데이터들을 기반으로 하여 빠르게 픽스해 냈다.
전반적으로 업무에 대한 지식과 업계에 대한 인프라가 있는 사람들이 모이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돈이 충분하고 방향성이 분명하며 인력들마저 전문성이 있다면 일이 안 풀리려야 안 풀릴 수가 없었다.
문제는 워낙에 다들 열정이 있다 보니 오전 10시에 시작된 회의가 오후 10시까지 이어졌단 것뿐이지만 말이다.
회의 후 회사를 나올 때.
“……마법인가?”
“하루가…… 사라졌네?”
“타임스톤 누구야. 빨리 나와.”
형들은 완전히 어두컴컴해진 거리를 보며 이리 중얼거렸다.
그래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으니 난 그걸로 만족했다.
“일단 집부터 가자아~”
연훈이 형은 주차장으로 내려가며 그리 말했다.
이후 우리가 늘 타는 그 고물 승합차에 다 같이 올라탔다.
“집 가서 얼른 씻고 자자. 내일 스케줄도 해야 하잖아.”
“뭔가 휴일 하루를 강탈당한 느낌인데.”
“괜찮아. 쉬는 건 죽어서 해도 안 늦어!”
“……형?”
그렇게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난 습관적으로 파랑새에 들어가 모니터링을 하려 했다.
요새 어떤 연예계 이슈들이 있나 싶어서.
한데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블레슈 티저 떴음
우리의 후속 활동과 시기가 겹칠 블레슈의 활동 티저였다.
이때까진 난 별생각 없이 있었다.
블레슈와 활동이 겹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걸 알고도 트리플 크라운 올킬을 할 자신이 있었고.
한데 티저를 보자,
“……음?”
잠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티저가 너무 좋아서 그런 것이냐?
그건 아니다.
영상 자체는 예상 범위 안의 퀄리티였다.
한데 곡 제목이 심상치 않았다.
‘……?’
불길함이 엄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