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15화
블레슈의 데뷔 티저를 다 봤다.
사실 15초밖에 안 되는 짧은 티저라 보는 건 순식간이었다.
보고 난 후의 감상을 말하자면…….
‘……뭐야 이게?’
당황스러웠다.
곡 제목이 일 때부터 조금 불안함이 느껴지긴 했다.
우리의 수록곡 과 너무 겹치니까 말이다.
하지만 흔한 단어의 조합이니 그럴 수 있다 치고 넘어가려 했다.
한데 티저에서 들리는 메인 멜로디의 진행마저 과 너무도 유사했다.
물론 사용하는 악기의 종류나 템포 등에선 차이가 조금 있긴 했지만…….
‘멜로디가 똑같은데 뭔 상관이야…….’
그것마저 똑같으면 그건 표절이 아니라 그냥 무단 도용일 테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두 곡의 멜로디의 기본적인 골조가 유사하단 거다.
더 나아가 티저의 영상은.
‘랑 비슷하잖아?’
단체로 교복을 입고 학교 동아리실로 뛰어가는 영상이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의 한 장면이다.
물론 교복의 종류나 학교 같은 건 달라져 있다.
하지만 핸드 헬드로 찍었다는 영상 기법의 유사성과, 한 프레임에 다섯 명의 인물을 허리까지만 잘라서 담는다는 사이즈의 유사성까지.
다테일이 다르더라도 전반적인 큰 틀은 무슨 거푸집으로 찍어낸 것마냥 동일했다.
물론 이러한 촬영 기법 또한 우리가 낸 특허가 아닌 모두가 쓰는 기법이니 문제 될 것은 없다.
한데,
‘싸한데?’
이 싸함은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나만 이런 싸함을 느끼는 건지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우리 팬덤과 블레슈 팬덤의 피드를 한번 확인해 봤다.
아니나 다를까.
-이거 너무 어디서 보던 구도 아님?
-멜로디가 어디서 듣던 멜로디 같은데…….
-?? 블레슈가 커버함?
-이게 뭔 일임…….
우리 팬덤은 말 그대로 뒤집어져 있었다.
누가 봐도 블레슈가 우리를 따라 한 것이니 말이다.
적어도 나만 그런 느낌을 받은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블레슈 팬덤은 어떠할까.
사실 여기서는 무작정 블레슈를 쉴드 치는 글들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한데,
-이게 뭐임 대체?
-아닠ㅋㅋㅋㅋ이건 뭐 눈 가리고 아웅도 못 하게 만들어놨네ㅋㅋㅋ
-G&B엔터 제정신인 거임?
-ㅋㅋㅋㅋㅅㅂ 회사가 미친 거 아님? ㅈㄴ 놓고 따라 하네
-아니 우리가 언제 미친듯한 고퀄리티로 뽑아달라고 했음? ㅅㅂ그냥 우리 애들 데뷔만 시켜달라고. 데뷔만 시키면 우리끼리 알아서 돈 내고 덕질하고 할 텐데 왜 ㅅㅂ덕질도 못하게 이따위로 찜찜하게 만드는 거임?
-애들 인생에 한 번뿐인 데뷔에 표절시비가 말이 되는 거임?
-아ㅅㅂ진짜 기분 개ㅈ같게 하네;;;
블레슈 팬덤이 오히려 우리 팬덤보다 더 화가 난 상태였다.
하긴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하다.
이들이 바라는 건 블레슈의 안전한 데뷔였을 것이다.
회사 자체가 크지 않으니 그저 데뷔만 해줘도 다행이라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데뷔만 한다면 더쇼케를 하며 커진 팬덤으로 어떻게든 그룹을 이끌어 나갈 수도 있었을 거고.
한데 회사는 팬들의 니즈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있는 돈에서 퀄리티를 높이고자 남이 만든 퀄리티 높은 결과물을 베껴오는 방법을 택했다.
이렇게 되면 퀄리티고 자시고 의미가 없어진다.
남의 것을 훔쳤다는 낙인이 찍힌 순간부터 퀄리티가 아무리 좋아도 그 창작물의 가치는 가장 밑바닥에 놓이게 되니 말이다.
도덕적 이슈에 민감한 아이돌 팬들은 이런 이슈가 있는 창작물에 지갑을 열 리 없다.
즉 블레슈의 소속사 G&B엔터는 본인들의 든든한 자금줄이 되어줄 수 있었을 블레슈라는 캐시카우를 내다 버린 거나 다름없단 거다.
난 이 영상을 보며 두 가지 감정을 느꼈다.
하나는 블레슈에 대한 안타까움.
다른 하나는,
‘트리플 크라운 올킬엔 문제가 없겠네.’
아주 조금의 안도감이었다.
안도감을 느꼈다는 데에서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올라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야 형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니까.
당연히 절박해지지 않겠는가.
하지만 안도감은 일단 뒤로 미뤄두고, 당장 이 사안을 형들과 공유하긴 해야 했다.
“형들.”
“응?”
“왜?”
“지금 블레슈 티저 뜬 거 보셨어요?”
“아 블레슈분들 티저 떴어?”
“대박!”
“궁금하다!”
“드디어 그분들도 데뷔하시네.”
형들은 일제히 핸드폰을 꺼내 블레슈의 티저를 봤다.
운전 중인 연훈이 형만 제외하고 말이다.
“아아아! 나도 보고 싶은데!”
형은 운전대를 잡은 자신이 원망스럽단 듯 표정을 구겼다.
다만 티저가 진행될수록 분위기가 점점 더 험악해지는 것을 느끼더니 멤버들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얘들아? 왜 표정들이 다 그래? 무슨 보면 안 될 거 본 사람들마냥……”
연훈이 형이 이리 말할 정도로 차내 분위기는 심각해졌다.
특히 가장 심각한 건 도승이 형.
형은 영상을 한 번 보는 걸 넘어 몇 번이나 반복해서 봤다.
그러곤 신경질적으로 귀에 꽂은 이어폰을 빼내며 말했다.
“이거 설마 표절은 아니겠지?”
도승이 형은 의 작곡가다.
당연히 표절 이슈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창작물을 누군가가 무단으로 훔쳐 간 것이니 말이다.
도승이 형 외에 다른 형들도 반응이 안 좋긴 매한가지였다.
“음…….”
“이거 의상이나 구도나 배경이나 다……. 흠.”
다들 이 영상에서 말로 다 설명 못 할 쎄함을 느낀 것이다.
“……그렇게 심각해? 표절? 대체 누구를 표절한 건데?”
영상을 못 본 연훈이 형만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
결국 갓길에 잠깐 차를 댄 후 연훈이 형도 티저 영상을 확인했다.
이내 돌아온 반응은,
“……블레슈분들 어떡해? 이거 이분들 데뷔 티저잖아…….”
우리를 표절한 것에 대한 괘씸함이 아닌, 블레슈의 데뷔가 망가졌다는 안타까움이었다.
하긴 이 표절에 블레슈의 잘못이 어딨겠는가.
회사가 시킨 것일 텐데.
차내 분위기가 어두워진다.
“일단 기다려 보죠. 아직 티저잖아요.”
“그치.”
“그래요. 기다려봐요.”
“아직 모르는 거니까.”
형들은 우선은 확정적으로 표절이라 생각하진 않기로 합의했다.
본 결과물이 나올 땐 전혀 다른 것이 나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원래 부분 부분은 비슷할 수도 있는 거니까.
실제 데뷔 시 곡과 뮤비가 다르기만 하다면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아니, 완전 다를 필요도 없다.
딱 그냥 쉴드가 가능할 정도의 오리지널리티만 있어줘도 문제없다.
우선은 그렇게 행복 회로를 돌리기로 했다.
* * *
이후로의 나날은 다시 또 바쁘게 진행됐다.
3주차 음악방송 활동과 방송 활동.
거기에 더해 후속 활동을 위한 뮤직비디오 촬영까지도 겹쳐 있었으니 말이다.
원래 활동기에 수면 시간이 5시간 안쪽인 것은 맞다.
하지만 지금은 5시간은커녕 2시간도 제대로 못 자고 나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3주차 활동 또한 온리원과 우리가 1등을 나눠 갖는 방향이었다.
웃긴 게 늘 3개씩 트로피를 양분해서 가져간다는 거다.
어느 한쪽이 우세할 수 없게끔 말이다.
이게 방송사의 장난질인 건지, 아니면 진짜 온리원과 우리가 그만큼의 접전을 펼치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누구 하나 지는 모양은 아닌지라 온리원과 만날 때마다 덜 불편한 마음가짐으로 만날 수 있었다.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파이팅이에요!”
“무대 잘하고 오세요!”
온리원은 우리에게 이런 식으로 인사했고,
“온리원분들도 무대 파이팅하세요!”
“오늘도 선의의 경쟁을 해봅시다!”
“잘하고 오세요.”
“파이팅.”
우리도 이런 방식으로 인사했다.
딱 서로에 대한 호감은 있으나 아주 가깝지만은 않은 비즈니스 파트너를 대하는 정도였다.
문제는,
‘강현성은 뭔데.’
저 자식은 늘 은은하게 웃으며 우리 인사를 받아준 후 유유히 사라졌다.
우리한테도 무대 잘하고 오세요, 라고 한마디라도 해줄 법도 한데 늘 받기만 하고 주질 않는다.
뭐 오늘도 마찬가지겠거니 싶었는데,
“무대 잘하고 와요.”
“……?”
“잘하고 오라고요.”
“……예.”
갑자기 내 옆에서 우뚝 멈춰 서더니 무대 잘하고 오라며 협박을 한다.
마치 무대 잘 못하면 한 대 칠 것 같은 기세로 말이다.
이내 온리원은 유유히 멀어져갔고, 우리 팀도 우리 팀대로 무대 쪽으로 올라갔다.
* * *
오늘 방송을 끝으로 3주차 음악방송 활동도 마무리가 되었다.
-이번 주 1위는 세이렌의 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오늘 1등의 주인공은 우리였다.
이젠 제법 능숙하게 1등 소감을 말하고 앵콜 무대도 이어갔다.
1등 무대를 끝낸 후엔 대기실로 돌아갔다.
옷만 사복으로 갈아입고 얼른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뮤직비디오 촬영이 어제 막 끝난 터라 그저 쉬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오늘도 고생 많았어요!”
“숙소로 갑시다~”
때마침 승연 씨와 현아 씨가 와서 우릴 픽업해 줬다.
차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
형들은 오늘 하루가 노곤했는지 벌써 곯아떨어진 상태였다.
지난 며칠 내내 하루에 2시간도 겨우 자는 삶을 살았으니 이젠 차에 타기만 하면 자는 게 습관이 된 상태였다.
나도 졸음이 밀려왔지만 자진 않았다.
속초에서 사고가 난 이후로 차에서 잠드는 게 쉽지는 않아졌다.
물론 나도 아주 피곤하면 자긴 하는데 아직은 그 정도로까지 피곤하진 않았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곤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블레슈 티저가 사실은 아직도 거슬리긴 한다.
블레슈가 스스로 데뷔 활동을 구렁텅이에 빠뜨렸으니 트리플 크라운 올킬이라는 내 목표에는 한 걸음 가까워지긴 했다.
하지만 찜찜한 건 찜찜한 거다.
더쇼케 활동 중 우리에게 유일하게 호의적이었던 그룹이었으니까.
내가 보기에도 블레슈는 성공할 만큼의 재능과 자질이 충분한 그룹이고.
그냥 개인적으로 좀 잘 됐으면 싶었으나.
‘회사 탓을 해야지 뭐. 어쩌겠냐.’
만일 우리도 넥스트 웨이브로 이적해 오지 않았다면 비슷한 꼴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대충 생각을 정리하고 나도 잠깐 눈이나 붙이려 했는데,
지잉-
핸드폰 화면을 끄자마자 바로 진동이 울렸다.
‘뭐야.’
주머니에 집어넣으려던 핸드폰을 다시 들어서 문자를 확인했다.
한데,
‘……음?’
-블레슈 티저 확인했어요?
발신인은 강현성.
굉장히 오랜만에 온 문자였다.
‘뭐야. 왜 또 문잔데.’
활동 내내 잠잠하다가 몇 주 만에 갑자기 또 연락하다니.
나랑 잡담이라도 하잔 건가.
딱히 할 말은 없어서 오늘은 진짜 무시하려 했다.
아니면 한 5시간쯤 지나서 네, 라고만 답할 생각이었다.
그러면 머쓱해서 자기도 더 문자 안 하겠거니 싶었는데,
-잠깐 대화 좀 할래요? 문자 끊을 생각부터 하지 말고요.
이 자식 무슨 독심술이라도 하나 보다.
소름이 조금 돋으려는 찰나,
-이번 활동 끝나고 바로 후속 활동 한다는 소식 들었어요. 무슨 생각인 겁니까?
“……이건 진짜 뭐야.”
이 자식이 우리가 후속 활동 바로 이어서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아직 우리끼리만 아는 대외빈데 말이다.
만일 날 대화의 장으로 끌어내려는 거라면 성공했다.
-그거 누구한테 들은 겁니까?
난 약간의 신경질을 담아서 답장을 전송했다.
-역시 좀 긁어야 답을 해주네요.
그러자 더 열 받는 답장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