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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16화 (216/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16화

가뜩이나 피곤한데 열까지 받으니 더 피곤해진다.

난 미간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며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역시 좀 긁어야 답을 해준다니.

‘……짜증 나네.’

지금 나한테 답장 하나 받겠다고 우리 팀 대외비가 유출되고 있단 걸 알려준 거다.

강현성의 수에 놀아난 거 같아서 기분이 별로다.

‘정보 유출하는 건 대체 누구야…….’

일단 이건 언제 한번 날 잡아서 회사에 직접 찌르기로 하고.

이왕 문자가 시작된 거 왜 연락했나 들어라도 봐야겠다.

-왜 연락하신 겁니까.

-연락도 하면 안 될까요?

-네.

-오늘 시간 되면 커피라도 같이 할까 싶어서요.

커피?

지금 이 시간에?

저녁은 한참 지났고 이제 밤이라고 해야 어울릴 법한 시간이다.

무엇보다 며칠째 잠도 제대로 못 잔 상태기에 집 가서 빨리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다음에 보자고 말이라도 하려 했는데

-우리 후속 활동 계획은 안 궁금해요?

‘……망할.’

이 자식은 진짜로 독심술을 하나 보다.

내가 다음에 보자는 말을 하려고 하니 피할 수 없는 카드를 꺼내는 걸 보면 말이다.

-이번 활동은 전략적으로 같이 나왔지만 다음 활동은 피해 봐야죠.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맞는 말이다.

이번 활동까지라야 라이벌 구도가 효과적이었던 거지.

장기화 되면 팬덤끼리 피로도만 쌓일 뿐이다.

결국.

‘나갈 수밖에 없네.’

쉰다는 선택지 따위 존재할 수 없었다.

-네. 봅시다. 장소랑 시간 정해서 알려줘요.

난 건조하게 답한 후 차량 안에서라도 잠깐 눈을 붙일까 했다.

한데 뒤이어 온 답장에 바로 잠이 들 수도 없었다.

-장소는 그쪽 숙소 주차장으로. 시간은 될 때 말해요. 데리러 갈 테니까.

손수 데리러까지 오신단다.

-그래요.

난 진짜 마지막으로 답장한 뒤 눈을 감았다.

* * *

강현성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방송국에서 그들의 숙소까지는 꽤 가까운 거리였다.

방금 막 차를 탔건만 벌써 숙소 입구를 지나고 있었다.

“일요일 방송은 집까지 일찍 갈 수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빨리 가서 씻고 자요.”

“진짜 피곤하다아…….”

온리원 멤버들 모두 피곤에 절어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그중 유일하게 정신이 멀쩡한 사람은 강현성 한 사람뿐이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그는 뒤를 돌아 멤버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들 뻗기 10초 전이네.’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데뷔 전부터 체력을 기르라는 말을 수백 번도 넘게 했다.

오전 공복 유산소나 주말 등산, 인터벌 런닝을 하며 적절한 영양을 섭취하면 느릴지라도 체력이 충분히 오를 수 있건만 멤버들 중 누구도 강현성을 따라 한 사람은 없었다.

하다못해 피로와 간에 좋은 영양제를 구비도 해두었건만 그조차도 제대로 먹는 이가 없었다.

“다음 활동 전까지는 다들 영양제라도 챙겨 먹자.”

영양제 위치가 식탁 위라 문제일 수도 있다.

차라리 현관 앞에 물통과 함께 비치해 둔다면 나가기 전에 생각나서라도 한 알씩 먹을지도 모른다.

“……우리 아빠도 이렇게까지 영양제를 챙겨 먹진 않던데…….”

“……뭐라고 영호야?”

“……아니에요.”

강현성은 고개를 돌려 다시 정면을 바라봤다.

멤버들 체력 문제야 시간을 들여 차차 해결하면 되는 거고.

남은 문제는 봉태윤과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였다.

사실 나눌 이야기의 큰 틀 자체는 정해져 있다.

다음 활동 계획이 대한 개괄적인 정보 공유를 하자는 거다.

현재 4세대의 남자 아이돌들 중에 본인들만큼의 임팩트를 갖춘 아이돌은 없다.

해서 아이돌판 내에서는 온리원과 세이렌을 따로 묶어서 4.5세대로 아예 분류를 새로 내기도 하고 있었다.

즉 같은 세대 안에 다른 라이벌이 없으니 세이렌과 온리원이 활동 시기를 잘만 조율하면 양쪽 다 큰 슬럼프 없이 전성기를 오래 유지할 수도 있단 뜻이기도 했다.

물론 그 전제 조건으로는 각자 그룹의 폼이 일정히 유지되고 사건 사고 없이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느냐가 달려 있긴 하다만,

‘그건 해내겠지.’

그가 본 세이렌과 봉태윤은 적어도 멍청한 짓으로 자멸할 그룹은 아니었다.

오랜 기간 같이 달릴 파트너이자 페이스 메이커로서 적당한 팀이란 말이었다.

해서 봉태윤과 계속 접점을 만들고 연락을 주고받는 거였다.

아무튼 현재 아이돌판의 구도 자체가 세이렌과 온리원 중심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만큼 서로 간의 동향 보고를 하는 것이 오늘 만남의 목적이다.

다만,

‘흐음.’

사실 그것만이 오늘 만남의 목적은 아니긴 했다.

강현성이 봉태윤의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긴 하다만 그래도 알 만큼은 안다 판단했다.

봉태윤은 냉정한 편이고, 계산적이기도 하지만, 본인의 팀에 한해서만큼은 누구보다 이타적인 사람이다.

딱히 아이돌 활동에 큰 미련이 있어 보이지는 않지만 이 활동에 대한 애착은 분명 있어 보인다.

누구에게 싫은 소리, 앓는 소리 하기도 싫어해서 부탁도 안 하는 타입이기도 하다.

다만,

‘뭘까.’

그가 파악하고 있는 위의 특성들이 빗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 활동 중에 개그 영상을 갑자기 올린다거나, 커버 영상을 기획해서 올린다거나 하는 부분들도 그러했고.

이전에 갑자기 속초 쪽 고속도로에 있으니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하는 모습도 그러했다.

모든 인물들이 자신의 예상 범위 안에서만 움직일 리는 없다만, 봉태윤의 행보는 그 범위를 너무 벗어나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뭐에 쫓기기라도 하나.’

이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지금 이런 활동을 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이라도 하나 싶었다.

좀 더 그럴듯한 현실성을 반영해 보자면 당장 이 정도의 성과를 내서 이 정도의 정산금을 받지 않으면 어딘가 큰일이 날 수도 있는 금전적 문제에 허덕이고 있을지도 몰랐다.

해서 이런 부분들도 물어볼 수 있다면 물어볼 생각이었다.

본인이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들어는 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복잡하네. 뭔가.’

사실 이런 걸 궁금해할 필요는 없긴 했다.

봉태윤은 어차피 남이고, 남의 일에 깊이 관여하는 것만큼 머리 아픈 일도 없으니 말이다.

다만 신경이 쓰이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신경이 쓰일 바에야 물어보는 게 나았다.

“도착했습니다~”

때마침 온리원의 매니저가 숙소에 차를 주차시키며 말했다.

“끄으으으~”

“도착이다~”

“나 샤워실 먼저 쓸게요. 진짜 오늘은 양보 못 함.”

“같이 씻을까?”

“……차라리 먼저 씻으세요.”

“나이스.”

온리원 멤버들이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숙소로 올라가는 동안, 강현성은 핸드폰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래요.

봉태윤에게서 온 문자가 떠 있었다.

그는 읽음 처리를 한 뒤 다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 * *

형들과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샤워부터 했다.

숙소에 욕실이 많으니 샤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단 건 참 좋다.

씻고 누우니 벌써 밤 10시였다.

형들은 오늘만큼은 수다조차 떨지 않고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

“나 잘게, 얘들아.”

“나 자요.”

“자러 가볼게요.”

“잡니다~”

연훈이 형, 도승이 형, 운이 형, 동준이 형까지 모두 짜기라도 한 것마냥 샤워 후 바로 잠들러 갔다.

운이 형과 같은 방을 쓰는 나는 조심스레 형이 진짜 잠들었는지 확인했다.

다만 오래 볼 것도 없이 수면 여부를 파악할 수 있었는데,

“으으음……. 거기서는…… 팔을 그렇게…….”

잠꼬대를 하는 중이었다.

한데,

‘자면서도 설마 우리 춤 가르치는 거야?’

이 잠꼬대 내용이 아무리 생각해도 춤 가르쳐 줄 때 쓰던 말들이다.

꿈에서마저 이러면 이 형은 대체 언제 쉬는 건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난 조심스레 이부자리에서 일어난 뒤 옷을 갈아입었다.

그러곤 강현성에게 문자를 보냈다.

-시간 됩니다.

답장은 10초 만에 돌아왔다.

-제가 문자 하면 내려오세요.

이후 약 20분쯤 지났을까,

-5분 뒤 도착합니다.

무슨 배달기사님 같은 문자가 와 있었다.

데리러 온다 했을 때 아마 차를 타고 오지 않을까 싶긴 했는데,

‘설마 차 샀나?’

이 자식이 나를 부른 게 설마 자기 차 자랑하려고 부른 건 아닌가 하는 합리적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다만 이런 의심은 5분 뒤에 말끔히 사라졌는데,

“……택시네.”

“……문제 있습니까?”

강현성이 타고 온 건 택시였다.

그것도 전에 나에게 소개해 준 적 있던 그 콜택시.

입이 무거운 기사님이 계신 대신 가격이 비싼 그 차량이었다.

“타요.”

“이거 타고 어디 가는 건데요?”

“사람 없을 만한 곳이요.”

강현성은 그리 말하곤 날 차량에 태웠다.

이후 도착한 곳은 사람이 없을 만한 곳이라기엔 대놓고 강남인 곳이었다.

“사람 없는 곳 간다면서요.”

“우리가 있는 곳만 사람 없으면 되죠.”

택시 차량은 이내 한 건물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다.

“내려요.”

차에서 내린 후 나가보니 지하주차장과 바로 연결된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뭐 이상한 거 하러 가는 거 아니죠?”

이 콜택시부터 그렇고 지금 이 수상한 공간까지.

설마 뭐 어둠의 세계로 날 끌고 가려나 싶었다.

“……내 친구가 하는 카페입니다.”

“……아.”

“여긴 그냥 직원들 전용 뒷문 같은 거예요. 정문으로 가면 눈치 보이니까 이리로 온 겁니다.”

“…….”

“이상한 상상은 하지 마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진짜 카페가 맞았다.

또한 정말 강현성과 친구인 건지 사장과 강현성이 잠깐 눈으로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사실 이 자식한테 친구가 있다는 데에서도 살짝 놀랐다.

뭐 그건 그거고.

“여기 2층은 룸카페에요. 방음이 잘 되는 곳이라 대화 나누기에 괜찮습니다.”

강현성이 나를 안내한 곳은 룸카페였다.

여타 룸카페들과는 달리 위부터 아래까지 싹 다 벽으로 막힌 구조고, 벽 자체의 두께도 상당해서 확실히 방음이 괜찮았다.

음료는 따로 강현성이 시켜둔 상태였나 보다.

아메리카노가 두 잔 놓여 있었으니 말이다.

“내 의사는 안 듣고 시킨 겁니까?”

“가장 칼로리가 낮잖아요. 뭘 먹을 생각이었던 겁니까.”

“…….”

“디카페인 원하면 이거 마셔요. 둘 중 한 잔은 디카페인으로 시켜뒀습니다.”

“……됐어요.”

사실 디카페인을 마시든 안 마시든 집에만 가면 곯아떨어질 상황인지라 그냥 아메리카노로 마셨다.

“그래서, 온리원 활동 계획이 뭡니까. 시간도 늦었는데 빨리 할 말 나누고 돌아가죠.”

난 아메리카노를 한입 마시며 물었다.

“그 전에 먼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요.”

한데 강현성이 다른 쪽으로 이야기를 튼다.

“뭐……. 혹시 돈이 급하다거나 그런 일 있습니까?”

“……뭐요?”

아예 예상조차 못 했던 주제인지라 나도 모르게 날것의 반응이 나가 버렸다.

강현성은 본인이 묻고도 어처구니없던 것인지 헛웃음을 짓다가 다시 입을 뗐다.

“아닙니다. 그냥 활동을 너무 열심히 하길래 뭐에 쫓기기라도 하나 싶어서 물어봤어요. 급한 일 없으면 신경 쓰지 마세요.”

“……아. ……네.”

한데 이번엔 내 쪽에서 놀랐다.

‘강현성 눈치 왜 이렇게 좋아.’

시스템에 쫓기고 있기는 하니 강현성이 받은 저 느낌이 영 헛소리는 아니니 말이다.

“일단 그것부터 확실히 하고 가죠. 세이렌은 올해 목표가 뭡니까. 또 전반적인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고요.”

“우리 쪽부터 풀라고요?”

“뭐 순서 상관은 없지 않아요?”

“그쪽이 불렀는데 온리원부터 해야죠.”

“흐음. 그 말도 일리는 있네요. 그럼 일단 저희 쪽 활동 계획 먼저 말씀드리자면…….”

강현성은 그리 말하며 가지고 온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냈다.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준비한 거 같아서 다소 놀랐다.

일단 뭐 자세히 알려준다니까 들어서 손해 볼 건 없다 생각했는데,

[돌발 미션 발발]

[책상 아래의 녹음기를 박살 내시오.]

[성공 시, 보상 없음]

[실패 시, 대화 내용 유출]

“잠깐만요.”

“네?”

“말하지 말아봐요.”

시스템이 간만에 내게 도움을 준다.

여기에 녹음기가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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