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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17화 (217/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17화

“왜요? 무슨 문제 있어요?”

강현성이 왜 자신의 말을 끊었냐며 묻는다.

“하아…….”

난 한숨 한 번을 푹 내쉬며 책상 밑을 더듬었다.

녹음기가 있다니.

대체 이 카페는 뭐 하는 곳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왜 요즘은 쉽게 가는 일이 없는 거냐.’

요즘 부쩍 피로한 일이 자주 생기는 느낌이다.

시스템의 선택을 받은 회귀자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건가.

도무지 하루도 편히 쉬게 두지 않는 것 같아 조금 야박하기도 하다.

“무슨 짓 하는 겁니까. 왜 책상 밑을…….”

강현성은 내가 책상 밑을 더듬는 것을 보고 대충 눈치를 깐 건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입 모양으로만 묻는다.

-녹음기?

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러자 강현성 얼굴에 약간의 절망감이 스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왜 절망감이 스치나 싶었다가,

‘아. 여기 친구 카페랬지.’

짚이는 바가 있었다.

대략 어떤 상황인지 유추되는 바도 있었고.

그때,

탁.

테이블 중앙 쪽 뒤편에 플라스틱으로 이뤄진 무언가가 붙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뜯어서 가져와 보니,

‘여깄었네.’

녹음기가 맞다.

난 녹음기 모델을 자세히 살펴봤다.

일단 외관상으로 보자면,

‘동시송출 하는 그런 기능은 없는 거 같네.’

우리 대화 내용을 녹음과 동시에 외부로 송출시키는 기능은 없는 것 같다.

안테나 같은 것이 따로 보이진 않았으니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핸드폰으로 기계를 찍어 모델명을 검색해 봤다.

찾아보니 단순 녹음만 가능한 모델이 맞았다.

그렇다면,

“말해도 될 거 같아요. 우리 목소리 외부로 나가는 건 없는 거 같으니까요.”

“……그럽니까.”

이제부턴 말해도 된다.

난 녹음기의 저장장치를 꽂는 칸을 찾아봤다.

보아하니 그런 건 없고 일체형으로 나온 녹음기인가 보다.

기계째로 부수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난 녹음기를 바닥에 두고 있는 힘껏 발로 짓밟았다.

그러자 우직! 하는 소리와 함께 플라스틱 잔해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러고도 혹시 몰라 잔해들을 지근지근 밟은 후 주워서 냅킨에 싼 후 주머니에 넣었다.

이로써 녹음에 의한 위기에선 완전히 벗어났다.

[미션 성공]

[녹음기를 박살 냈습니다.]

시스템도 별문제 없이 내게 미션 성공 알림을 울려준다.

강현성은 녹음기가 있던 자리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곤 금세 표정을 정리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잔다.

“다른 곳으로 가죠.”

“갈 만한 곳 있습니까?”

“어디든 여기보단 낫겠죠.”

“마땅히 갈 곳도 안 정했는데 일어났다가 낭패 볼 수도 있어요.”

“근처에 렌트카 빌리면 됩니다. 블랙박스 메모리 빼면 문제 될 건 없죠.”

그런 방법이 있었네.

카페에서 대화하는 것보다 편안함은 떨어지겠지만 나쁘진 않은 방법 같았다.

“예약부터 할게요.”

강현성이 렌트카 어플로 차량을 예약하는 동안 난 주머니에 들어간 녹음기 잔해를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오늘 우리 대화 내용이 녹음돼서 어디 풀리기라도 했다면 어땠으려나.

우선 대외비가 풀리는 것이니 소속사가 한차례 난리가 날 거고, 대중들에게 풀린 정보대로 움직이지 않기 위해 전반적인 일정들이 대부분 변경될 것이며, 그에 따른 추가 지출이 발생했을 것이다.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억까지.

무엇보다 둘이 모여 이런 대화 나누고 있단 게 이미지적으로 도움이 될 리가 없다.

어딘가 비열해 보이지 않겠는가.

난 생각이 더 무거워지기 전에 털어놨다.

“가시죠.”

내 생각이 아무리 무겁다 한들 지금 강현성보다는 무겁지 않을 거 같았으니 말이다.

난 강현성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 * *

강현성이 렌트했다는 차량은 카페 근처에 있었다.

강현성이 모자를 쓰고 마스크까지 낀 후 자동차를 찾으러 가는 동안 난 주차장에서 기다릴 뿐이었다.

이내 강현성이 빌렸다는 차량이 주차장으로 들어오고.

난 그 차에 올라탔다.

“블랙박스 메모리 뽑았어요?”

“네. 뽑았어요.”

“이거 나중에 문제 생길 수 있다던데.”

“사고만 안 내면 안 열어보겠죠.”

차를 타고 주차장을 빠져나오려는데 카페 사장이 헐레벌떡 내려오는 게 보였다.

아까 강현성과 눈인사를 하던 그 사람이었다.

이내 차량 안의 우리를 보곤 다소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현성아. 잠깐만 내려서…….”

카페 사장은 뭐라 말을 하는가 싶었지만 강현성은 그런 거에 관계 없이 액셀을 밟았다.

이내 차량이 출발하고 카페 사장은 뒤에 홀로 남겨졌다.

차는 도로 위에 올라타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강현성은 아무 말 없이 전방만 주시할 뿐이었다.

“괜찮습니까?”

난 도의상 강현성에게 괜찮냐고 물어봤다.

“……네, 뭐.”

강현성은 누가 봐도 좀 더 물어봐 줘, 와 같은 느낌으로 대답을 했다.

‘하아…….’

난 강현성을 잠시 돌아보며 생각했다.

회귀 전 기준으론 이 자식도 나보다 어리다.

그러니 동생 대한다 생각하고 말하려 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

“아까 그 사람이랑 친한 거 아니었어요?”

“……흐음. 그렇죠.”

“그럼 괜찮기 어려울 거 같은데, 아니에요?”

“…….”

아니, 이쯤 왔으면 그냥 인정할 것이지.

얼굴에 나 힘듦, 이라고 써 붙이고 있으면서 말로는 죽어도 인정을 안 하려는 건 대체 무슨 심보인 건가 싶었다.

강현성은 한참 고민하는가 싶더니 어렵사리 입을 뗐다.

“이런 일이 자주 있어서 괜찮아요. 어차피 오래갈 인연도 아니었겠죠. 미리 발견해서 다행인 거니 오히려 그쪽한테 고마워해야겠네요.”

난 말없이 강현성을 바라봤다.

이 이상 물어보는 건 이제 강현성한테도 실례일 거 같다.

한데 한번 말이 트이니까 물꼬라도 터진 걸까.

“원래 알던 사람은 아니고 유어스 활동할 때 알게 된 사람이에요. 자주 가던 카페 사장이었거든요. 유어스 강현성 아니냐면서 다가왔고, 대화 몇 마디 하다 보니 친해지게 된 거죠.”

강현성은 그 남자와 어떻게 친해지게 된 것인지를 하나씩 쏟아놓기 시작했다.

“그 뒤로부터 종종 연락 주고받고 지냈고, 간혹 중요한 이야기 할 일 있으면 2층에 공간 있으니 편하게 쓰라고도 말해줬죠. 그리고 오늘 처음으로 저 2층 써본 거였고요.”

대충 상황 파악이 된다.

“근데…… 녹음기를 달아뒀네요. 뭐 이런 거 신문사에 팔면 얼마나 받을 수 있다고……. 참나.”

연예인들이 인맥을 잃는 방식이 위와 유사하다고 전에 들어본 적 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에 대한 사적인 소스가 자꾸 언론에 풀려서 주변 인맥들 걸러보니 그중에 범인이 있었다는 것들 말이다.

“어째 데뷔하고 나서부터 만나는 사람들은 죄다 이 모양이네요.”

강현성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내가 강현성을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전 생에서 온리원을 아주 라이트하게 파기도 했었고, 현생에서는 나름 만나서 대화도 나누며 살고 있다.

즉 잘 알진 못하지만 어느 정도는 안다고도 할 수 있다.

내가 본 강현성은 냉하고 계산적이긴 하지만, 동시에 늘 사람이 그리운 사람 같았다.

자기가 먼저 거리를 벌리긴 하지만 그 거리가 본인이 원해서 벌리는 거리라기보다는 나름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낸 생존법 같달까.

물론 화면 너머로 봐왔던 것이고, 한발 떨어져서 봐왔던 것이니 이러한 생각이 곧 강현성 그 자체라고 확언하긴 어렵다.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난 강현성을 잠시 바라봤다.

내가 뭐 해줄 위로는 없고.

“그냥 친구 만들지 마요. 멤버들로도 충분할 텐데.”

실제로 내가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밖에 없다.

난 진짜로 형들 외에 딱히 친구들 없다.

분명 있긴 있었던 거 같은데 연락 안 하고 연락처 지우고 개인용 SNS도 안 하며 살다 보니 알아서 끊어져 나갔다.

강현성은 지금 그걸 위로라고 하냐? 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이게 내 진심인데 어쩌란 건가.

물론 너무 박한 말일 수도 있을 것 같아 말을 좀 덧붙여 봤다.

“평생 갈 사람들한테 좀 더 집중하고 투자해요. 그게 우량주지. 온리원 멤버들한테 잘해주는 건 그런 의미에서 평생 들고 갈 주식 같은 거예요. 잠깐 떨어져도 나중엔 어차피 오를 테니까. 배당금도 잘 나올 거고.”

강현성은 진심으로 이 새끼 뭐지? 라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가 피식 하고 웃었다.

내가 듣기에도 얼토당토 않던 말이라 비웃음이 나올 건 예상했다.

난 진짜로 누구를 위로하는 데에는 재능이 없나 보다.

인맥을 주식에 비유하는 인간이 어딨겠는가.

다만 그 순간에 떠오른 게 주식밖에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강현성이 탄 차는 도로를 목적 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저기 뒤에 태블릿 PC 있는데 열어봐요.”

강현성이 내게 말했다.

난 태블릿 PC를 가져와서 열었다.

안에 있는 파일은 아까 카페에서 보여주려고 했던 강현성의 활동 계획이었다.

난 파일을 찬찬히 읽어나갔다.

“……꽤 구체적이네요?”

“네.”

“이거 이렇게 보여줘도 괜찮아요?”

“어차피 혼자 생각한 거고 회사에 컨펌도 안 받았으니까 언제든 변동될 수 있어요.”

“……흐음.”

“그래도 뭐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을 거 같아요.”

난 활동을 쭉 훑어봤다.

몇몇 활동은 우리랑 겹칠 수도 있겠고, 어떤 활동은 안 겹칠 수도 있다.

사실 우리의 경우,

‘안 쉬고 계속할 거 같긴 한데.’

올 한 해는 연말이 오기까지 중간에 쉬는 텀 없이 계속 나올 거 같긴 하다.

다만 그걸 말해줄 필요는 없으니 일단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난 파일 가장 마지막 페이지로 이동해서 올해의 목표를 적어둔 것도 확인했다.

“신인상이 목표예요?”

“네.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그쵸.”

“그쪽은요?”

난 뭐라 말을 할지 잠깐 말을 골랐다가,

“대상이요.”

“……?”

그냥 직구를 던졌다.

이렇게까지 다 까고 이야기해 주는데 내가 숨기는 것도 도리에 안 맞는 거 같고.

굳이 이 자식한테 숨겨봐야 뭐 어떻게든 찾아내려고 귀찮게 굴 거 같아서 그냥 이 자리에서 말해버렸다.

강현성은 대상, 이라는 말에 다소 놀란 건지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진심입니까?”

“네.”

“이미 대상 노리고 연초부터 활동한 그룹들도 있을 텐데요.”

“그래서 저희는 지금부터 안 쉬고 계속 활동할 생각입니다.”

“이미지 소비는 걱정 안 해요?”

“소비되는 것보다 빠르게 이미지를 쌓을 생각입니다.”

“……하, 참나.”

강현성은 뭐 이런 놈이 다 있나 싶은 얼굴이었다.

그러곤 잠깐 차를 갓길에 세웠다.

“뭐야. 왜 세워요.”

설마 니깟 게 대상을? 하면서 욕이라도 하려고 세웠나 싶었다.

강현성이 그럴 리 없단 걸 알면서도 상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뭔 말을 하려고 이러나 싶은데,

“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그러는 겁니까?”

“……네?”

“열심히 활동하는 거야 이해할 수 있는데, 점점 정도가 심하다라는 생각도 들어서요.”

“……음?”

난 강현성을 잠시 바라봤다.

이 자식 표정이 장난 아니고 진심이다.

“돈에 쫓기는 건 아니라고 했죠?”

“네.”

“그러면 진짜로 누가 뒤에서 칼 들고 쫓아오기라도 합니까?”

“…….”

“회사에서 시키는 거예요?”

“……아뇨.”

“본인 계획인 거잖아요.”

“네.”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캐릭터도 아닌 거 같은데, 어떤 이유가 있는 거 아닙니까?”

내가 그렇게까지 열심히 할 캐릭터가 아닌 거 같다니.

기분은 나쁜데 맞는 말이라 입을 닫았다.

동시에,

‘소름 돋네.’

나라는 인간에 대한 해석과 몇 가지 상황만으로 내가 어떤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는 강현성도 놀랍긴 했다.

시스템이 우리 팀 죽이려고 합니다- 라는 말은 죽어도 할 수 없다.

아니, 아예 이런 쪽 이야기는 입도 벙긋할 생각도 없었다.

한데 며칠째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내가 그동안 강현성이 조금 편해진 건지.

그냥 얼추 얼버무려서 말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단 생각이 들기도 했다.

본능과 이성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다,

“……사정이 있긴 있습니다.”

여기까지 뱉어버렸다.

강현성이 좀 더 말해보란 듯 날 바라봤다.

그 눈빛을 보니,

‘아.’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근데 말하긴 좀 그렇네요.”

강현성은 잠깐 뇌정지가 온 것 같은 얼굴로 날 바라봤다.

다만 내가 여기서 뭘 더 말하겠는가.

사실 이 정도만 해도 많이 말 한 거다.

사정의 유무에 대해 답을 해준 거니까.

강현성은 날 빤히 바라보다 헛웃음을 짓더니,

“그래요.”

이리 말하곤 다시 고개를 돌렸다.

잠깐 침묵이 이어지나 싶었는데…….

“그 사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도와줄까요?”

“……네?”

“도와준다고요. 내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그런다고 어떤 사정인지 말은 못 해줘요.”

“들을 생각 없어요. 대신 도움 필요하면 말해요. 도와줄게요.”

강현성은 그리 말하곤 날 돌아봤다.

그때 내 표정이 어땠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 새끼 뭐야?’

그 순간의 나는 뇌정지가 왔단 거다.

내 머릿속의 강현성에게 캐붕이 일어난 거 같았으니 말이다.

“내 도움 진짜 필요 없어요?”

……이건 확실한 캐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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