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18화
“도움 필요 없습니까?”
강현성이 내게 묻는다.
도움 필요 없냐고.
다만 그 질문에 답을 하기에 내 머릿속이 엉망이다.
이 자식이 이런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굴 도와준다고?
아무런 대가도 없이?
굳이 왜?
내가 온리원이랑 아주 막역한 사이인 것도 아니고, 강현성에게 엄청난 도움을 준 적도 없다.
그냥 가끔 만나서 서로 동향 주고받는 비즈니스 파트너 정도가 서로에게 어울리는 선인 것 같은데.
지금 강현성은 자청해서 그 선을 넘으려고 하는 거다.
이 자식이 이런 캐릭터가 아니니 더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왜 도와줘요?”
해서 이런 말이 먼저 나갈 수밖에 없었다.
서운하게 느껴도 할 말은 없지만, 내 사정도 이해해줘야 한다.
당황하면 이럴 수도 있지 않겠는가.
왜, 라는 내 질문에 강현성도 잠깐 생각을 이어가는 눈치였다.
이 자식도 딱히 자신이 나를 도와줄 이유가 없단 걸 아는 눈치다.
지금 이리 시간 끄는 건 도와줄 이유를 억지로 찾으려고 그러는 걸 테고.
‘그걸…… 억지로 찾으면서까지 왜 도와주려는 건데.’
뇌정지가 온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피로감이 2배다.
오늘은 진짜 집 가서 바로 뻗어버릴 것 같다.
그때 강현성의 입이 다시 천천히 열렸다.
“사고 치지 말라고요.”
“……?”
녀석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의 말이었다.
강현성도 본인이 너무 여과 안 된 날것의 언어를 그대로 뱉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다시 말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본인도 사고 치지 말고, 멤버들 사고도 최대한 막아서, 그룹 수명 늘리라는 의미에서 도와주겠다는 겁니다.”
다만 말을 정비했다고는 해도 여전히 이해는 안 간다.
그걸 왜 네가 걱정하는데? 우리 그룹 문제를.
이런 내 의문이 얼굴에도 들어간 건가.
강현성이 변명 아닌 변명을 붙인다.
“……같이 오래 활동하는 게, 서로에게 좋은 활력도 주고 팬덤도 유지할 수 있는 방법 아닐까요. 온리원과 세이렌이 한 세트처럼 묶인 지 오래잖아요. 한쪽이 폼 죽으면 반대편까지 끌려와서 같이 퇴물 소리 듣겠죠.”
얼추 맞는 소리긴 하다.
다만 그걸 방지하겠다고 우리 그룹을 도와주겠다니.
평소의 강현성이었다면 그걸 방지하기 위해 슬슬 세이렌과 연결되는 현상을 끊어놓는 작업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어떤 이유를 붙여줘도 이 자식 도움을 받기는 애매하다.
시스템, 회귀, 사망 미션 등등.
남들이 이해하기에는 초현실적인 것들이 너무 많다.
“……괜찮습니다. 저희 그룹 문제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해서 가능한 정중하게 거절했다.
조금 미안하긴 한데 이게 더 깔끔할 거 같다.
강현성은 이제야 원래 텐션으로 돌아온 건지 다시 눈동자에 안광이 죽었다.
“그래요. 어쩔 수 없죠.”
“네.”
묘하게 서먹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숙소까지 데려다줄게요.”
“고마워요.”
이후 숙소까지 돌아가는 동안 우린 신변잡기식의 대화만 중구난방으로 나누다가 헤어졌다.
* * *
집에 가자마자 예상했던 대로 바로 뻗어버렸다.
옷을 갈아입고 눕자마자 바로 잠들어 버렸으니까.
어떻게 잠들어 버렸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일어나 보니 형들이 날 둘러싸고 동그랗게 모여앉아 있는 게 보였다.
처음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아직 꿈속인 건가 싶기도 했고.
한데 꿈이 아닌 현실이 맞았다.
“……뭐 하세요?”
“오! 일어났다.”
“봉막내 씨 기상하셨네.”
“태윤아. 괜찮아?”
“이거 사진으로 찍어둬야 했는데.”
형들이 날 둘러싸고 앉아서 한 마디씩을 던졌다.
왜 이러나 하고 봤더니
“……뭐야. 나 왜 여깄지.”
형들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젯밤에 분명 방에 들어가서 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거실 한가운데에 옷만 갈아입고 뻗어버린 거였다.
어쩐지 자는 내내 몸이 좀 으슬으슬하고 춥더라니.
이불도 없이 거실에서 잠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너도 몽유병 있냐, 봉태윤?”
“우리 팀 단체로 몽유병이라도 생긴 건가.”
“불규칙한 수면이 문제가 된다고 하긴 했던 거 같은데…….”
“수면 클리닉이라도 다녀볼까요?”
형들은 내가 거실에 뻗어 있는 것을 보고 한 마디씩을 거들었다.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어제 화장실 갔다가 거실이랑 방을 헷갈렸나 봐요.”
난 대충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지껄였다.
어젯밤에 강현성 만나서 대화 나눴다고는 말 못 할 테니 말이다.
우선 자리에서 일어나서 샤워부터 하러 갔다.
오늘은 월요일이라 별다른 스케줄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음악방송이 없어서 사녹하러 갈 일도 없었고 말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휴일은 아니었다.
오후에 잡지 인터뷰 스케줄이 하나 잡혀 있었고, 저녁에는 팬싸도 잡혀 있었으니 말이다.
“아침밥부터 먹자, 얘들아.”
샤워를 하고 나오니 연훈이 형이 식탁을 차려둔 상태였다.
아침밥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밥’은 없고 풀만 가득한 상차림이긴 하다.
“우우우……. 육식하고 싶다…….”
동준이 형이 힘없는 목소리로 식탁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내렸지만 놀라울 정도로 그 누구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나마 관심을 준 건 도승이 형이었는데 실제 관심이라기보다는 타박에 가까운 말이었다.
“닭가슴살 있잖아. 육식 아니냐?”
“……닭가슴살은 체감상 채식인 거 모르십니까?”
“뭔 헛소리야. 와서 먹어.”
그렇게 형들과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잠깐 휴식 시간을 가졌다가 스케줄을 가기 위해 이동했다.
“오늘 촬영이랑 인터뷰 같이한다고 했죠?”
촬영장으로 이동하는 동안 연훈이 형이 승연 씨에게 오늘 스케줄 내용에 대해 확인을 받았다.
“네. 맞아요. 가서 일단 가볍게 화보 촬영 먼저 하고, 그다음에 팀 단체로 인터뷰하는 거예요.”
오늘 우리가 촬영을 하는 곳은 종합 매거진을 발행하는 잡지사였는데, 그곳에서 아이돌들을 모아 특집호를 발간한다고 한다.
그 인터뷰 내용은 데뷔까지의 이야기들, 이라는 러프한 주제였는데 대략적인 질문들은 미리 받아본 상태였다.
별로 특별할 건 없는 질문들인지라 답안을 작성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화보 주제는 뭐예요?”
“그 듣기로는 팀별 컨셉에 맞춘 거라던데요?”
“진짜요?”
“아마 세이렌이니까 바다나 뭐 해군 컨셉으로 찍지 않을까요?”
이런저런 설명들을 들으며 화보 촬영 현장에 도착했다.
아이돌들 특집호라 그런가.
현장 주자창엔 이미 여러 대의 승합차가 주차되어 있었다.
이 중엔 온리원도 아마 어딘가에 있을 터였다.
어제 대화할 때 자기들도 이 인터뷰 나간다고 했었으니 말이다.
난 나도 모르게 온리원 차량을 찾다가 시선을 돌렸다.
‘뭐 하냐. 에휴.’
괜히 어제 일 이후로 강현성 보기가 조금 껄끄러워졌다.
이유는 없다.
그냥 누군가의 호의를 거절하고 난 후엔 그 사람과 마주치기 조금 어색해지는 경험 한 번씩은 있지 않은가.
그런 결의 껄끄러움이었다.
“와, 여기 아예 공장 같은 느낌이다.”
“저거 건물 하나하나가 다 스튜디오인 거죠?”
“네네. 맞아요. 지금 아마 한 4팀 정도 같이 촬영하고 있는 걸로 알아요.”
“진짜 공장 맞네, 화보 공장.”
형들과 나는 우리 쪽에 할당된 스튜디오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다만 스튜디오에 다가가니 입장을 제지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아, 지금 앞 팀 촬영이 마무리가 안 됐다고요?”
“네. 도착하시기 전까지 끝날 줄 알았는데 사진작가님이 딱 A컷 하나만 건지고 끝내고 싶다 하셔서요.”
“어쩔 수 없죠. 일단 기다려 보겠습니다.”
이런 걸로 컴플레인 걸기에도 애매하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기다리기만 하기에는 업체 측에서도 손해라고 여겼는지 이 시간에 헤어와 메이크업을 미리 받았다.
승연 씨의 말대로 오늘의 컨셉은 해군이 맞았다.
“세일러복이네요?”
“맞아요.”
“와, 이거 코스프레용이 아니라 진짜 군복이네요?”
“미군들이 입던 거 정품이에요. 살짝만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단한 거고요.”
이렇게 퀄리티 좋은 세일러복은 또 처음이다.
무대에 올라갈 때 입던 세일러복은 약간 가볍고 찰랑찰랑한 느낌이었는데, 이건 진짜 남자들의 옷 같다는 인상이 확 든다.
무대가 아닌 화보니까 이 정도의 무게감이 있는 게 어쩌면 더 사진은 잘 나올지도 모르겠다.
“저쪽에 탈의실 있으니까 옷만 갈아입고 오셔도 됩니다.”
“넵!”
“가자~”
“옷을 갈아입으러 갑시다~”
형들과 탈의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갈아입고 나온 후 다 같이 셀카도 한 장 찍었고 말이다.
나중에 잡지가 팔리기 시작할 때 팬들에게 보여줄 서비스용으로 말이다.
“이건 진짜 군복 같다.”
“이렇게 모자까지 쓰니까 더 군복 같아요.”
“우리 다 같이 해군으로 자원입대 할까요?”
“……뭐라고, 태윤아?”
아무 생각 없이 군대 얘기 꺼냈다고 연훈이 형 표정이 싸해지는 걸 확인했다.
“……입조심할게요.”
그렇게 잡담을 나누며 스튜디오 앞으로 돌아왔다.
와보니 안쪽 촬영이 이제 끝나서 슬슬 정리하는 분위기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진 않아서 다행이네요.”
“그러니까요.”
“5분 안에 정리 끝내고 들어오게 해주겠대요.”
“다행이다.”
이후 약속했던 5분이 지나고 스튜디오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시간이 지체된 만큼 얼른 가서 빠르게 촬영을 마치고 팬싸 현장으로 갈 생각밖에 없었는데.
“……아?”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자 예상 못 했던 한 팀이 짐을 정리하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팀과 시선이 맞자 형들과 나는 자리에 멈춰 서서 굳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안에서 촬영 중인 팀이 있다 했으니 우리랑 비슷한 연차의 다른 아이돌이 있을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까지 당황할 일은 아니다.
한데 그 팀이 이 팀일 줄은 전혀 예상을 못 했을 뿐이다.
“아……하하. 오랜만에 뵙네요”
“하……하하하……. 안녕하세요.”
우리 팀 리더와 저쪽 팀 리더가 조금은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는다.
난 저쪽 팀을 똑바로 바라봤다.
데뷔까지의 이야기들이라는 주제라기에 데뷔한 팀만 모아놓은 줄 알았는데, 데뷔 ‘예정’인 팀까지 주제에 포함된 것 같았다.
저쪽 팀의 리더가 우리 쪽을 향해 걸어왔다.
“그간 잘 지내셨죠?”
난 그쪽 팀의 리더를 말없이 바라봤다.
한도영.
우리와 더쇼케2를 함께했던 팀 ‘블레슈’의 리더였다.
동시에 우리랑 표절 이슈가 있는 그룹이기도 했고 말이다.
“아, 네. 하하. 잘 지냈죠. 도영 씨는 잘 지내셨나요?”
“네…… 뭐. 저희도 잘은 지냈죠. 하하.”
굉장히 어색하고 삐걱대는 인사가 오고 간다.
원래 블레슈와 우리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블레슈와 와아아- 하고 인사하면 우리도 와와아- 라고 받아주는 분위기였는데.
이런 반응을 보니 더욱 확실해진다.
‘얘네도 우리 노래를 자기들이 표절했다고 생각하고 있구나.’
지금 블레슈 팬덤 내에 퍼져 있는 표절 이슈를 충분히 모니터링 하고 있단 걸 말이다.
뭐 그게 블레슈 잘못은 아니니 일단은 넘어가려 했다.
또 아직 확정적으로 표절이라고 하기엔 결과물이 안 나오기도 했고 말이다.
일단 지금 이 어색한 분위기만 잘 넘어가면 될 것 같았는데,
“그…… 아…… 음…….”
한도영이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문다.
그러곤,
“아닙니다. 하하. 촬영 잘하고 가세요.”
이리 말하곤 본인 팀 팀원들을 이끌고 스튜디오를 빠져나가려 했다.
사람 미치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인데, 지금 같은 경우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예상이 갔으므로 왜 말을 멈춘 건지 이해가 가기도 했다.
대충 넘기고 어서 우리 촬영이나 시작했으면 싶었는데…….
[돌발 미션 발발]
‘뭐?’
한도영과 블레슈를 눈앞에 둔 지금, 돌발 미션이 발발했다.
그렇다면 뭐가 미션으로 나올지, 너무 뻔하지 않는가.
분명 표절 관련한 미션이 나올 줄 알았는데…….
[블레슈의 데뷔를 막으시오.]
[성공 시, 보상 없음]
[실패 시, 확정적 트리플 크라운 올킬 실패]
‘이런 미친.’
표절이 아니라 데뷔 자체를 막으란다.
말도 안 되는 밸런스가 하나 더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