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19화 (219/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19화

난 멀어져가는 한도영을 바라봤다.

그러곤 귓가에 들려왔던 그 미션 내용을 떠올렸다.

‘데뷔 자체를 막으라고?’

아찔한 미션 내용이다.

지금 티저도 나오고 잡지사 인터뷰까지 따러 온 애들의 데뷔를 내가 어떻게 막는단 말인가.

그다음으로 걸리는 것은,

‘트리플 크라운 올킬에 왜 실패하는 건데?’

실패 시 확정적으로 트리플 크라운 올킬에 실패한다는 그 리스크였다.

확정적이라는 단어의 사용이 가장 걸린다.

대체 어째서 블레슈의 데뷔가 우리의 트리플 크라운 올킬을 확정적으로 막아서는가.

블레슈의 노래가 우리 노래보다 좋아서 방송에서 1위를 차지한다?

물론 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표절 이슈 있는 곡을 그렇게까지 소비해 줄 리가 없는 시장이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몇 가지 안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현실성 있는 것을 골라보자면

‘조작하나 보네.’

블레슈의 소속사인 G&B에서 음악방송 1위를 조작한다는 가능성이다.

조작하는 방법이야 다양하다.

수치 자체를 조작할 수 있도록 사재기를 할 수도 있고, 방송 PD에게 직접 접촉할 수도 있다.

물론 밝혀질 시의 리스크는 본인들이 지는 거겠지만,

‘뒤가 없겠지.’

G&B는 영세한 소속사다.

지금 이 데뷔 앨범에서 추가 투자를 끌어낼 수 있을 만큼의 성과를 기록하지 못한다?

담당자 몇이 시말서 쓰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회사 자체가 휘청이게 된다는 거다.

이리 가도 망하고 저리 가도 망한다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해보고 망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내가 G&B 실무자였어도 충분히 해봤을 법한 생각이다.

‘하아.’

난 멀어져가는 한도영의 손목을 잡았다.

“……네?”

대뜸 내게 손목이 잡힌 한도영은 멍한 얼굴로 날 바라봤다.

“혹시 번호 있으십니까?”

“……?”

뒤이어 터진 말에 한도영은 더 의문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괜찮으시면 저랑 번호 교환 안 하실래요?”

본 목적을 말하고 나니 형들이 어처구니없는 얼굴로 날 쳐다본다.

“봉태윤?”

“아니……. 이 자식 왜 이래, 갑자기.”

“하하하……. 하하.”

“많이 놀라셨죠?”

내 돌발행동이 다들 갑작스러운 모양이다.

다만 그런 것 따위 아랑곳 않고 난 한도영만 바라봤다.

지금 좀 눈치 좀 받는 게 낫지.

나중에 미션 실패하고 엉엉 우는 건 싫다.

“아…… 네……. 번호 드리겠습니다. 하하…….”

한도영은 조금 떨떠름하게 웃더니 번호를 준단다.

이렇게 대놓고 번호 달라 할 때 까는 게 더 웃긴 모양이긴 하니 어쩔 수 없었을 거다.

난 한도영의 번호를 받는 데에는 성공했다.

“근데 왜 제 번호를…….”

“아, 앞으로 같이 활동할 수도 있을 텐데, 알아두면 좋잖아요.”

한도영은 여전히 이해가 잘 안 가는 눈치이긴 하다만 그거까지 내가 신경 써줄 짬은 없다.

“나중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아…… 하하. 네.”

그렇게 블레슈가 떠나고.

다시 우리만 남게 되었을 때.

“태윤아, 진짜 왜 그런 거야?”

“번호 받고 싶어서 그랬어?”

“이런 거 원래 잘 안 하잖아.”

“봉태윤 수상해.”

형들은 내 돌발행동에 대한 소명을 요구했다.

다만 이런 건 그냥 뻔뻔하게 나가는 게 가장 깔끔하다는 다수의 성공 사례를 갖고 있다.

“그냥 받아두면 좋을 거 같아서요. 아무 생각 없었습니다.”

“진짜?”

“진짜예요.”

“아닌 거 같은데?”

“아니에요.”

“흐음…….”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준비해 주세요!”

형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쉽게 거두진 않았으나 우릴 찾는 스태프들의 외침에 금세 고개를 돌렸다.

* * *

화보 촬영은 별다를 것 없이 종료되었다.

한 가지 특이사항이 있다면 사진작가가 지독한 얼빠였다는 점 정도.

연훈이 형이 카메라 앞에 서자마자 탄성을 지르더니 촬영 내내 티가 날 정도로 연훈이 형을 편애했다.

뭐 사진 하는 사람이니 미에 예민한 거야 당연한 거라 생각한다.

아니지.

오히려 직업적 소양이 넘친다고 할 수 있겠다.

난 연훈이 형의 비주얼을 대놓고 칭찬하는 사진작가를 보며 묘한 쾌감을 느끼기까지 했다.

미처 내가 할 수 없는 주접을 대신 떨어주는 사람을 보는 쾌감이랄까.

“연훈 씨 무슨 일이야! 이게 진짜 무슨 일이야아아! 너무 잘생겼잖아!”

“사아알짝 웃어봐요, 살짝! 옳지! 어머 이거 뭐야. 누가 조명 하나 더 켰어?”

“연훈 씨 군복 입은 김에 경례 한번 할까? 세상에. 그걸로 군 생활 다 했다 연훈 씨는. 어우 진짜 내가 한 번 더 가주고 싶네, 진짜로.”

난 마지막 멘트를 들었을 땐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남자가 군대를 대신 가주고 싶다는 말을 한단 건 가장 높은 격의 칭찬이니까.

그만큼이나 연훈이 형 얼굴에 진심인 사람이었다.

그 진심만큼 A컷이든 B컷이든 다 말도 안 되는 퀄리티로 나오기도 했고 말이다.

연훈이 형을 제외한 사람들에게는 저 정도의 주접까진 아니지만 꽤 만족스러운 탄성쯤은 질러줬다.

“꺄아아아! 도승 씨! 너무 잘생겼어! 아주 남자야 남자! 어흥!”

가오고양이를 호랑이로 격상시켜 주는 리액션은 물론.

“운이 씨! 세상에. 막 살에 빛이 난다, 빛이 나! 왤케 하얀 거야 진짜루!”

운이 형의 뽀얀 살결에 주접을 늘어놓았으며.

“아유 귀여워. 오구오구! 동준 씨 누가 그렇게 귀여우래? 강아지가 따로 없어 아주 그냥.”

강아지라면 필시 지X견이었을 동준이 형에게도 귀엽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문제는 나에게도 형들에게 하는 주접을 똑같이 해줬다는 건데.

“막내야? 어머 막내가 이렇게 성숙해? 세상에 이 갭 어쩔 거야, 진짜.”

난 내게 하는 주접에 있어서는 내성이 없단 걸 이날 알았다.

사진작가님이 멘트를 칠 때마다 몸이 굳어서 사진이 엉망으로 나왔으니 말이다.

한데 이 사람이 진짜 프로구나 싶었던 것이 내가 못 견뎌 한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바로 건조한 사람으로 바뀌었다.

“팔 한쪽만 올려보세요.”

“살짝 당당한 포즈로.”

“형들처럼 경례 한번 할까요?”

오히려 이런 건조한 멘트가 되니 좀 더 편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이후 미리 준비된 질문지에 맞춰 인터뷰도 진행하고.

스태프분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잡지 스케줄은 끝이 났다.

오늘 입은 세일러복이 마음에 든 걸까.

이후 스케줄인 팬싸에서도 스타일링팀에서 준비해 온 건 세일러복이었다.

물론 화보 찍을 때 입었던 건 반납했고 무대 의상에 가까운 새로운 세일러복이었지만 말이다.

팬싸도 언제나와 같이 특이사항 없이 잘 마무리 되었다.

모든 스케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니 밤 11시가 되어 있었다.

“으아아. 하루가 또 이렇게 훌쩍 갔네.”

연훈이 형은 숙소 거실로 들어가며 이리 말했다.

요즘 어째 집에만 들어오면 늘 밤 11시거나 12시는 되는 것 같다.

그만큼 활동기가 빡세다는 뜻이리라.

“나 먼저 씻어도 괜찮아, 얘들아?”

“네. 씻어요.”

“얼른 씻고 자요, 형. 오늘 너무 피곤해 보여요.”

“고마워. 그럼 나 먼저 좀 씻을게.”

연훈이 형이 먼저 씻으러 들어가고.

난 차례로 도승이 형과 운이 형, 그리고 동준이 형도 씻으러 갈 줄 알았다.

우리 숙소에 화장실은 총 3개나 되니 말이다.

연훈이 형이 하나를 차지했으니 못해도 두 사람은 더 동시에 씻을 수 있다.

한데 연훈이 형이 들어간 욕실에서 물 트는 소리가 들려올 때까지도 아무도 거실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씻으러는 안 가도 거실 정도는 떠나도 되는 거 아닌가?

자기 방에 가서 논다든가.

아니면 주방 가서 냉장고라도 괜히 한번 열어본다든가.

숙소에서 할 만한 컨텐츠가 얼마나 많은데 마치 짠 것처럼 거실에만 앉아 있느냔 말이다.

특히 운이 형, 도승이 형, 동준이 형은 내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오기까지 했다.

이쯤 되니 대충 눈치를 챘다.

‘이 형들 내가 블레슈 미션 받은 거 눈치챈 모양이네.’

아마 한도영 번호 받은 거 보고 눈치를 챈 거 같다.

지금 다들 나랑 미션 이야기 하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상태 같았다.

다만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옆에 동준이 형이 있으니 쉽사리 말을 못 꺼내는 거 같았고, 동준이 형은 운이 형과 도승이 형 때문에 눈치를 보는 거 같았다.

‘교통정리를 또 해야겠네…….’

전에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이 만났을 때 해줬던 것처럼, 지금도 교통정리를 한 번 싹 해줘야겠다.

“다들 잠깐 방으로 갈까요?”

난 형들을 방으로 불렀다.

* * *

어디서부터 말을 해야 할까 언어를 고르고 골라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복잡하게 갈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연훈이 형이 씻는 시간은 한정적이니 복잡하게 이것저것 설명할 시간이 안 됐다.

그래서 그냥 직구로 던졌다.

“이쪽은, 각각 다른 우주에서 십수 번씩 회귀를 경험한 강도승, 이운이고, 이쪽은 최근에 내가 회귀자임을 알게 된 노말 박동준입니다.”

형들 셋을 모아놓고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 이거였으니 적막이 내려앉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우선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이 처음 뱉은 말은 이거였다.

“말했어? 동준이한테? 진짜로?”

“와……. 와, 봉태윤……. 와…….”

두 사람 다 십수 번이 넘는 회귀 동안 한 번도 멤버들에게 말해본 적이 없단다.

둘은 자기가 가본 적 없는 길을 가는 내가 놀라운 모양이었다.

동준이 형은 별로 놀라는 반응은 아니었다.

“뭐, 난 원래 알고 있었어서 별로 안 놀랐어요. 물론 십수 번씩이나 회귀한 건 몰랐고요.”

전에 동준이 형에게 이 두 사람이 다른 우주에서 회귀한 사람들임을 말해뒀으니 말이다.

늘 회귀한 상태로 있는 것은 아니고 간헐적으로만 회귀자의 기억이 돌아온다는 것도 말해줬고.

“넌 이걸 진짜로 믿었냐? 아니, 사람의 이해심이라는 것도 한계가 있을 텐데.”

도승이 형은 동준이 형이 회귀자라는 것과 시스템에 대한 것을 어떻게 믿었는지가 의아한 모양이다.

이것도 가능한 물음이긴 하다.

만일 나였어도 직접 경험하기 전까진 못 믿었을 테니 말이다.

“안 믿을 이유도 없잖아요. 또 내심 이것저것 걸리는 것도 꽤 있었는데 오히려 모든 게 더 명확해지는 느낌이던데요?”

“이야…….”

“대단하네, 동준이……”

도승이 형과 운이 형은 동준이 형의 이해심에 감탄했다.

다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받은 미션이 중요하다.

“다들 제가 한도영 씨 번호 받은 게 미션 때문인 거 눈치채셨죠?”

“아, 어.”

“눈치챘지.”

“블레슈 관련 미션 뜬 거지?”

“네. 맞아요.”

역시.

다들 이 사안 때문에 거실에서 안 움직이고 버텼던 게 맞았다.

“어떤 미션인 거야?”

동준이 형이 내게 물었다.

“블레슈가 데뷔 못 하게 막으래요.”

“데뷔를 막아?”

“왜?”

“블레슈가 데뷔하면 확정적으로 저희가 트리플 크라운 올킬을 못 한다고 하더라고요.”

“하아…….”

방 안엔 잠깐 침묵이 돌았다.

다들 이 미션의 어려움을 통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형들은 블레슈 미션 뜬 적 없어요?”

우선 선례에서 해답을 찾아볼까 했다.

“없지. 보통 미션은 그룹 내에서만 뜨는 게 대부분이니까.”

“맞아.”

“아…… 그래요?”

난 우리 그룹 말고 온리원이랑 관련된 미션도 꽤 떴었는데.

어쨌든 선례에서 해답을 찾는 건 실패다.

다만 영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는데,

“근데 확정적으로 트리플 크라운 올킬 실패하는 건 뭔지 알 거 같아.”

운이 형이 정보를 조금 아는 눈치였으니 말이다.

“블레슈 걔네 내가 있던 곳에서도 몇 번인가 업체 써서 수치 조작하다가 걸렸거든.”

“진짜요?”

“어. 그 회사 사장이 사재기랑 수치 조작하는 업체랑 아는 사이라 해줬다나 봐.”

쓸 만한 정보가 나오긴 했다.

예상했던 조작 정황이 팩트로 밝혀진 거니까.

가능성을 확신으로 바꾼 건 좋은 일이긴 하나 상황 자체는 좀 더 암담해졌다고 할 수 있다.

블레슈가 데뷔를 하는 순간 사실상 내 우주는 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그 트리플 크라운 올킬 못 하면…… 누군가가 죽는 거잖아? 맞지?”

동준이 형에 내게 미션 내용을 묻는다.

맞다.

정확히는,

‘동준이 형이 죽지.’

이 질문을 한 당사자가 죽는 거다.

하지만 이거까진 말하지 않았다.

말했다간 팀 내 불안감만 키우는 꼴이 될 거 같았으니 말이다.

동준이 형도 내가 말하기 싫어한단 걸 눈치챈 건지 더 무언가를 묻진 않았다.

“그럼 무조건 블레슈 데뷔를 막아야겠네.”

결국 결론은 이걸로 귀결된다.

다만 문제는 어떻게 막을 것이냐다.

우리가 다른 팀의 데뷔를 결정지을 힘 따위는 없다.

거기서 무턱대고 데뷔하겠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무엇보다 다른 팀의 데뷔를 막는 것이 과연 미션을 떠나 올바른 짓인가도 생각해 볼 문제다.

다만,

‘올바르고 안 올바르고가 뭐가 중요해. 당장은 형들 생각 먼저 해야지.’

블레슈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이게 내 진심이다.

“어떻게 해야 블레슈 데뷔를 막을 수 있을까요.”

난 형들에게 조언을 구해봤다.

“사실 우리가 그쪽 데뷔를 막을 힘은 없지.”

그러자 도승이 형에게서 이런 답이 나왔다.

아는 말이다.

그래서 조언을 구한 거긴 한데.

뭐……. 어쩔 수 없지.

다들 이 미션이 처음이라는데 어쩌겠는가.

“근데 내가 태윤이처럼 시스템이랑 싸워 본 적은 없지만, 의도치 않게 시스템에 오류를 일으켜 본 적은 있거든.”

한데 도승이 형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다른 방향의 선택지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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