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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20화 (220/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20화

시스템의 오류?

난 도승이 형을 바라봤다.

도승이 형은 과거 자신이 했던 한 가지 실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을 해줬다.

“그때가 아마 첫 번째 정규 앨범 냈을 때였던 거 같은데. 미션 내용이 유원동에게서 앨범 제작 지원을 받아내라, 이런 거였을 거야. 실패 시 리스크는 앨범 제작 실패였고.”

“네.”

“사망 미션도 아니고, 만일 실패한다 해도 다음 앨범으로 다시 준비해서 나가면 되니까 별생각 않고 들어갔다가 진짜로 제작 지원을 못 받아냈어. 유원동한테서.”

“……그래서요?”

“당연히 미션은 실패했고, 정규앨범도 불발됐지. 근데 갑자기 유원동 사장이 무슨 변덕을 부린 건지, 그다음 날 제작 지원 해주겠다고 맘을 바꿔 버리더라고.”

“……네?”

“직후 시스템에 오류가 발생했다고 뜨더니, 유원동한테 온갖 악재가 다 꼈어. 그때 느꼈지. 이 시스템도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는 거구나.”

난 도승이 형의 사례를 들으며 어처구니없단 표정을 지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운이 형도 마찬가지였다.

동준이 형은 심지어 그 시스템이란 거 왜 이렇게 허술하냐는 말까지 했을 정도다.

실제로는 그렇게까지 허술하진 않은데.

아마 도승이 형의 말이 맞을 거다.

그저 인간의 광기를 계산해 내지 못 하는 걸 거다.

애초에 완전무결하고 빈틈없는 시스템이라면 이런 식으로 우리들을 불러다가 회귀를 반복시킬 이유도 없는 걸 테고.

분명 시스템이 하지 못하는 무언가를 우리가 대신해 내라고 우리를 회귀시키는 걸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실패 리스크 자체가 사라져 버리면 시스템도 어쩌지 못하는 거네요?”

“맞아. 미션 클리어할 방법이 애매하다면, 그냥 실패 리스크 자체를 공략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물론 그 후의 부작용이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곰곰이 생각을 이어가 봤다.

일단 블레슈의 데뷔를 막기보단 실패 리스크 쪽을 직접 공략하는 게 가능성은 더욱 높아 보인다.

조작 업체 자체를 직접 공격하는 거다.

블레슈가 1등을 못 하게.

그편이 양심적으로도 덜 찔리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걱정되는 것은 부작용이다.

“그때 유원동 사장이 제작 지원 해주기로 한 후에 악재가 꼈다고 했죠?”

“어. 나한테 출근하자마자 제작 지원 승인 내줄 테니 기다리라고 문자 했는데, 그날 회사 오는 길에 교통사고도 나고, 계단도 헛디디고, 머리 위로 화분도 떨어지고 그랬을걸.”

“……누가 봐도 시스템이 한 짓이네요.”

“그치. 제작 지원 못 하게 하려고 출근길을 막으려고 한 거지.”

“근데도 유원동 사장이 출근해서 제작 지원 승인해 줬어요?”

“아니? 교통사고랑 화분까지는 잘 피했다가 계단에서는 미끄러져서 병원 실려 갔는데?”

“근데 제작지원을 어떻게 해줬어요?”

“응급실에서 전화 걸어서 업무 지시하더라고.”

“……광기네요, 진짜.”

시스템이 예측 못 할 광기를 보여주는 게 실패 리스크 공략의 핵심이라 볼 수도 있겠다.

“근데 유원동 사장이 그 정도까지 일에 진심이었다고요?”

“이게 유원동 사장 캐릭터가 특이해. 매 회귀 때마다 달라져 있어. 어떤 회귀에선 바지사장이고, 어떤 회귀에선 열정맨이고, 암튼 뭐 이상해.”

대충 뭔지 알겠다.

내 우주에서도 유원동의 캐릭터는 자주 바뀌는 중이니까.

어쩌면 수십 년의 사회생활 탓에 얼굴에 가면이 여러 개 생겨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시뮬레이션 게임 마냥 선택지 하나에 결말이 확확 달라지는 캐릭터일지도 모르겠고,

도승이 형의 이야기에 운이 형도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에 조금의 허점이 있다는 건 나도 회귀하며 종종 느꼈어. 대체로 정확하기는 한데 늘 완전한 건 아닌 거 같아. 실패 리스크 쪽을 직접 공략하는 건 난 해본 적은 없긴 한데 좋은 방법일 거 같아.”

두 회귀자의 의견이 이러하니 실패 리스크 쪽을 공략하는 게 맞을 거 같다.

시스템의 허점을 노리는 것.

생각해 보니,

‘점점 더 시스템과 정면으로 붙기보다는 샛길을 사용하는 거 같네.’

이전과는 시스템을 대하는 내 태도가 달라진 거 같다.

압도적 권능 같은 것에서, 그저 이 우주의 사건을 배열하는 컴퓨터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으니 말이다.

‘슬슬…… 시스템이랑도 담판을 지을 수 있어야 할 텐데.’

언젠가는 시스템을 벗어나는 것이 내 목표다.

그러려면 열심히 시스템과 딜을 하고, 하나하나 그 비밀을 알아나가야 할 것 같다.

암튼 그건 그거고.

“그럼 블레슈네 회사가 음악방송 수치 조작을 못 하게 막는 편이 낫겠네요? 데뷔를 막기보다는 실패 리스크 자체를 없애는 식으로요.”

“그치.”

“그게 더 나을 거야.”

“알겠습니다. 다들 의견 보태줘서 고마워요.”

이렇게 이야기를 마치려 했다.

나머지는 내가 더 하면 되는 거니까.

그때 동준이 형이 입을 뗐다.

“수치 조작하는 회사를 근데 어떻게 찾게?”

아주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건 차차 생각해 봐야죠.”

그거까지 이 자리에서 찾는 건 무리다.

뭐 차차 찾아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러프하게만 생각 중이었지.

한데 동준이 형이 추가 질문을 던진다.

“그래도 찾을 방법 정도는 얼추 알아야지 각이 나오는 거 아니야?”

“…….”

동준이 형의 말에 잠깐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아예 나랑은 거리가 먼 세계라서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모르긴 한다.

이전처럼 온몸 비틀기를 하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싶었는데, 사실 온몸 비틀기를 해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는 거니 말이다.

실패 리스크를 공략하자는 것으로 조금 탈출구를 찾은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다시 또 원점이다.

사실상 해결 방안이 뚜렷하게 없는 것은 마찬가지인 셈이니 말이다.

방의 분위기가 다시 무거워지려는 찰나,

“그래서 하는 말인데 차라리 이번 미션 자체를 유원동 사장님 힘을 빌려보는 거 어때?”

동준이 형은 나름의 해결 방안을 내놓았다.

“……네?”

“미션이니 회귀자니 그런 거 다 빼고, G&B라는 회사가 우리를 표절했고 심지어 수치 조작까지 할 회사라고.”

“……그걸 어떻게 설명해요?”

“그건 차차 고민을 해봐야지, 근데 수치 조작하는 업체를 직접 찾는 것보단 유원동한테 말해서 그쪽 인프라를 쓰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 현실적으로?”

“오.”

“맞네.”

“그러네요.”

이게 집단지성의 힘인가.

점점 더 구체적인 해결방안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어떻게 유원동에게 설명하면 좋을지도 함께 논의해 볼까 싶었는데.

끼익.

“뭐야! 왜 다들 여깄어! 나 빼고 뭐 먹는 거야?”

“오.”

“아.”

“하하.”

샤워를 마친 연훈이 형이 등장했다.

우린 하던 말을 일제히 멈추고 연훈이 형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하하…… 아니에요……. 뭐 안 먹었어요.”

“수상한데.”

“그냥 우리끼리 대화 좀 나누고 있던 거예요.”

“……흐음.”

“신경 안 써도 돼요. 진짜로.”

“……나 혹시…… 왕따 당하는 거야?”

“에?”

“아니에요, 형.”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연훈이 형의 밑도 끝도 없는 왕따 주장에 방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아니지?”

“아니에요!”

“아니 고작 다섯 명이서 누굴 왕따시키는 것도 이상하잖아요.”

“걱정 마요, 형.”

그렇게 연훈이 형을 달래느라 이전 대화 주제는 다들 새까맣게 잊기 시작했다.

* * *

블레슈의 숙소 안.

멤버들은 각자 자기의 방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고 있었다.

방이 총 2개밖에 없는지라 3인이서 한방, 2인이서 한방을 쓰는 구조였다.

좁은 투룸을 다 큰 성인남자 5명이서 사용하는 것이라 불편할 법도 한데 그들은 군말 없이 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들 지금 이 회사에서 이 그룹이 아니면 다시 데뷔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데뷔를 앞둔 지금.

이 그룹원 중 그 누구도 그다지 기쁜 티를 내지는 않고 있었다.

표절 이슈.

그 이슈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게 그들이니 말이다.

“하아.”

블레슈의 리더 한도영은 잠이 오지 않는지 침대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왔다.

2층 침대에서 내려오는 중에 같은 방을 쓰는 멤버들이 깨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말이다.

거실로 들어와 앉은 그는 귀에 이어폰을 꽂고 본인들의 티저를 틀었다.

그러곤 세이렌의 뮤비도 함께 틀었고 말이다.

그도 알고 있다.

너무도 유사한 영상들이란 것을 말이다.

G&B 내에서도 이미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대놓고 세이렌을 표절한 걸 말이다.

유명 작곡가에게 곡 받아올 여력은 없고, 그렇다고 아쉬운 퀄리티로 내기엔 블레슈라는 브랜드가 생각보다 커진 상태라, 회사는 표절이라는 최악의 수를 선택해 버렸다.

한도영은 한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요 며칠 잠을 3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다.

밀려오는 양심의 가책과 그룹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 탓에 말이다.

처음에 컨셉과 곡을 들었을 때 그때라도 본인이 나서서 이건 아니라고 항의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진 않았으리라.

하지만 데뷔를 하고 싶다는 그 욕심에 묵인해 버렸고, 리더가 묵인하자 멤버들도 다 같이 입을 다물었다.

그 탓에 G&B라는 회사가 저지른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그 죄책감은 블레슈 멤버들이 지고 있었다.

물론 그들도 묵인하고 넘어갔다는 죄를 저지른 것은 맞다.

하지만 한 번뿐인 데뷔를 이렇게까지 망칠 정도의 죄는 아니었다.

한도영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오늘 세이렌 막내와 번호 교환을 한 것이 내심 걸린다.

어쩌면 그게 본인들의 양심을 지킬 마지막 선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고민만 깊어질 뿐, 행동으로 나서는 것은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한껏 마음만 무거워진 채로 다시 침대 위에 몸을 던질 뿐이었다.

* * *

어김없이 아침이 밝았고 형들과 나는 덜 풀린 몸을 주워 담아 사전녹화 스케줄을 하기 위해 떠났다.

이젠 새벽에 일어나 반쯤 잠든 상태로 차에 타는 게 익숙한 일이 되었다.

이후 헤어와 메이크업을 받고 사전녹화를 진행한 뒤 다시 대기실로 돌아와서 휴식 시간을 가졌다.

아침밥을 시켜서 먹기도 하고, 잠이 부족한 사람은 이 시간에 자기도 한다.

원래는 예능이나 라디오 같은 스케줄을 하러 가기도 하지만 오늘은 그런 스케줄이 없는 날이라 다들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연훈이 형이 먼저 소파에 몸을 눕힌 채 잠들었고, 동준이 형도 그 옆에서 같이 잠들었다.

운이 형과 도승이 형은 아예 바닥에 매트를 깔고 와서 잠들어 버렸다.

사전녹화 스케줄에 갈 때 바닥 매트를 챙기는 것은 이제 필수가 되어버린 상태였다.

“태윤 씨도 잠깐 눈 좀 붙일래요?”

승연 씨가 내 몫의 매트를 펼치며 물었다.

약간 낮잠 자는 유치원생이 된 느낌이긴 한데, 잠이 부족한 활동기에 이렇게라도 잠을 채우는 건 중요한 일이다.

다만 오늘은 낮잠을 잘 여유가 없었다.

“아뇨. 괜찮아요. 저 잠깐 통화만 좀 하고 올게요.”

블레슈의 데뷔까지 얼마 남지도 않았다.

가뜩이나 바쁜 지금, 최대한 빠르게 모든 일을 마쳐야 한다.

난 사람이 없을 만한 곳을 찾아 방송국 주변을 돌아다녔다.

결국 찾은 곳은 언제나 우리가 애용하는 비상계단이었다.

역시나 이쪽으로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난 핸드폰을 들어 유원동에게 전화를 할 생각이었다.

대충 어떻게 설명하면 될지 생각도 해두었으니 이젠 실전으로 써먹을 차례다.

제발 유원동의 인프라를 활용하여 수치 조작 업체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려는데,

지이이잉-

다른 쪽에서 먼저 전화가 왔다.

-블레슈 한도영

“……?”

표절 이슈의 당사자께서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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