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21화 (221/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21화

한도영에게서 전화가 왔다.

난 핸드폰 화면에 떠오른 그 이름을 멍하니 바라봤다.

왜 굳이 전화를 건 거지?

설마 나랑 진짜 친목이라도 하려 그러나?

아니면 뭐 자기네들 앨범 나올 때 챌린지라도 같이 해달라고 철면피를 깔려는 건가?

온갖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일단 그 생각들은 뒤로 미뤄둔 채 전화를 귀에 가져다 댔다.

통화버튼을 누르니 이내 한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받으셨네요?

짧은 한마디다.

하지만 이 짧은 한마디 속, 목소리만으로 느껴지는 것들이 꽤 있었다.

‘……뭐야? 울었어?’

목소리에 수분기가 가득하고 불안하다는 거였다.

퍽이나 당황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다지 친하지 않은 사람의 전화를 받았는데 운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니 말이다.

하지만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혹시…… 잠깐 통화 괜찮으실까요?

“네. 괜찮습니다.”

-아…… 네. 잠시만요…….

한도영은 수화기를 잠깐 귀에서 멀리 떼는 것 같더니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다시 귀에 가져다 대는 것 같았다.

다시 돌아왔을 땐 이전보다 목소리가 한결 정리된 상태였다.

-다름 아니라 저희 데뷔 앨범 건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아.”

난 최대한 놀란 티는 내지 않으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아- 라는 말이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걸 본인이 직접 꺼낸다고?’

지금 우리 사이에 앨범 이야기는 최대한 빙 둘러갈 수밖에 없는 민감한 이슈다.

한데 이걸 이렇게 직접적으로 꺼낼 줄은 몰랐다.

심지어 내가 아니라 한도영이 말이다.

차라리 꺼낸다 하더라도 내가 꺼내는 게 순서상 맞을 텐데 말이다.

‘뭔 얘기를 하려는 거지?’

설마 표절 이슈가 있으니 자기들과 친목하는 영상이나 사진이라도 올려달라고 부탁하려는 거면 진짜 최악일 거 같았다.

표절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끝까지 시치미를 떼려는 걸 테니까.

아직은 한도영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고 있으나 만일 위와 같은 부탁이 들어온다면 이미지가 확 달라질 거 같았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한 나 스스로를 다소 책망하게 되는 말이 이어졌는데…….

-너무…… 너무 미안합니다, 태윤 씨……. 태윤 씨뿐만이 아니라 세이렌분들 모두한테요…….

진심으로 사과를 건네는 거였다.

-세이렌분들 모두에게 일일이 전화드리며 사과하고 싶지만 제가 가진 번호가 태윤 씨 번호뿐이라 이렇게 불쑥 연락 드렸습니다……. 멤버분들 번호 물어보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으니 꼭 좀 전달 부탁드리겠습니다……. 가능하면 이 통화에 부르셔도 괜찮고요.

미안해하는 게 수화기상으로도 느껴지니 나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하게 됐다.

일단 사람을 보게 되면 가장 안 좋은 쪽으로만 가정을 하게 되는 습관을 고치든가 해야지.

한도영에게 괜히 더 미안해진다.

-저희도 표절곡으로 데뷔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 근데 하나둘 묵인하고 넘어가다 보니 어느새부턴가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네요…….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저희 사정은 저희 사정이라 쳐도 일단 사과는 반드시 해야 할 거 같아서요.

난 한도영이 하는 사과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사실 사과를 받는다고 해서 무언가 상황이 달라지진 않는다.

블레슈가 데뷔를 하기만 한다면 동준이 형이 사망하게 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사과를 들었다는 데에서 오는 안도감은 있었다.

적어도 내가 내 욕심만으로 블레슈의 데뷔를 망치는 짓은 아닐 거란 안도감이 말이다.

난 점점 복잡해지는 마음을 잠시 갈무리했다.

한도영과 나 사이엔 한참 적막이 맴돌았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나였다.

“사과 잘 들었습니다. 우선 먼저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지금 다 같이 통화하기엔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사과했단 사실은 형들한테도 꼭 전달해 두겠습니다.”

한도영이 용기 내서 사과해 줬으니 그에 대한 감사는 표하는 게 맞다.

다만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근데 이게 단순히 사과만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혹시 지금 표절에 관해서 그룹 차원에서나 회사 차원에서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지 이야기 나온 게 있나요?”

그룹 간에 생긴 감정적 문제는 사과를 받음으로써 넘어갔다 치더라도, 실제 법적인 문제나 사업적인 문제는 해결이 전혀 안 됐으니 말이다.

난 블레슈가 이 표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는지 먼저 들어볼 생각이었다.

그 대답 여하에 따라 내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달라질 거 같았으니 말이다.

한데 한도영의 입에서 나온 말은 꽤 파격적이었는데…….

-일단 저는 회사를 나갈 생각입니다.

“……네?”

탈퇴를 하겠단다.

아니, 리더가 탈퇴를 하면 어쩌자는 건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는데 한도영은 이런 내 의문을 눈치챈 건지 확인 사살까지 해준다.

-제가 팀을 탈퇴하겠다는 소리입니다. 표절곡으로 진짜 데뷔를 하게 된다면요.

“……오.”

한도영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나 스스로에 대한 성찰도 조금 이뤄진다.

강현성이 내가 전화할 때마다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싶어서 말이다.

일단 그건 뒤로 미뤄두고.

“왜죠? 도영 씨가 탈퇴한다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왜 이런 얼토당토않은 생각에 도달하게 된 것인지 이야기는 들어봐야 했다.

-……제가 탈퇴를 한다고 하면 회사에서 뒤늦게라도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데뷔곡을 다시 준비해 줄까 싶어서요.

“……흐음.”

-……이상한가요?

이상하냐는 물음에 그렇다고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결국 도영 씨는 진짜 팀을 탈퇴하고 싶으신 건 아닌 거네요?”

-……그렇죠.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서 강수를 두려는 거였습니다.

한도영의 비장함은 알겠다.

하지만 방식이 너무도 잘못되었다.

“만일 탈퇴하게 된다면 남은 멤버들은요? 그분들이 느낄 허망함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더군다나 데뷔도 전에 리더가 탈퇴한 그룹이 후에 제대로 자리 잡고 성장할 수 있으리라 보시나요? 결국 도영 씨의 탈퇴가 팀 멤버분들 커리어를 꼬이게 만드는 악수가 될지도 모른다고는 생각 안 하셨나요?”

-……

너무 직구로 말을 했나 보다.

한도영에게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내 찾아온 말은 짧은 한마디였다.

-……맞네요.

“……하아…….”

난 내 머릿속의 한도영 이미지를 세부적으로 재조정했다.

착하고 의리 있지만 조금은 멍청한 사람 정도로 말이다.

어쨌든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는 확인했다.

이젠 좀 더 디테일한 문답 시간이 필요하다.

“지금 블레슈 팀원분들 모두 저희 곡과 표절 논란이 있단 거 알고 계신 거죠?”

-모를 수가 없죠. 몇 번이나 이야기 나온 상태입니다. 이에 대해 저희 팀원 모두 굉장히 죄송해하고 있어요. 창피해하고 있기도 하고요.

“그러면 해당 곡으로 데뷔하는 걸 팀원분들 모두 껄끄러워하는 거네요?”

-그렇죠.

“그러면 단체로 보이콧 해도 되는 거 아니에요?”

-근데 이 회사에서 이 기회가 아니면 데뷔하지 못할 것 같단 두려움이 있나 봐요. 실제로 다들 계약으로 묶여 있으니 다른 곳에 갈 수도 없고요. 그래서 이런 곡으로나마 데뷔를 하려는 거 같아요.

“흐음…….”

난 생각을 해봤다.

내가 가진 패와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

그리고 블레슈가 처한 상황을 접목시켜 보았다.

어떤 방법이 블레슈에게도 좋고 내 미션에도 좋은 것인지를 찾아내려는 중이다.

일단 확인해 볼 것이 있다.

“만일 다른 회사에서 더 좋은 곡으로 데뷔할 수 있다면 하실 건가요?”

-……네?

“아, 제가 연결시켜 드린다는 건 아니고요. 그럴 인맥도 없습니다. 다만 확인만 하는 겁니다.”

-근데 계약이 묶인 한 어쩔 수 없이…….

“계약도 회사가 남아 있어야 유효한 거잖아요.”

-그렇긴 하죠.

“그런 의미에서, 계약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블레슈분들은 현재 그 표절곡으로 데뷔할 생각은 없는 거겠죠?”

-일단 저는 계약이 없어진다면 안 할 생각입니다. 다른 곳에서 데뷔할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죠. 다른 애들은 물어는 봐야겠지만 아마 비슷한 생각들일 거 같아요.

그렇다면 두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

하나는 블레슈의 회사를 무너뜨릴 방법.

또 다른 하나는 블레슈가 몸담을 새 회사.

한데,

‘……더 어렵네.’

이게 더 어렵다.

그냥 조작 업체 찾아서 그쪽을 없애는 게 품이 덜 들 것 같다.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과연 이 미션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싶어서 말이다.

내가 어쩌다가 남의 팀 일에 또 이렇게 깊이 관여하게 된 건가 싶다.

일단 지금 미션을 해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유원동에게 전화해서 G&B와 우리 사이에 표절 이슈가 있는데 얘네 업체 써서 1등 가져갈 거 같다. 그러면 트리플 크라운 어려울 거 같으니 그 업체 찾아서 먼저 밟아버리자.

라는 방법이 하나.

또 다른 하나는 G&B 엔터를 무너뜨려서 회사 자체를 없앤 후 블레슈의 데뷔를 막고, 블레슈가 들어갈 새 회사도 찾아주는 방법이다.

간편한 걸로 치자면 전자가 가장 간편하다.

하지만 도의적인 책임감도 덜고 미션도 더 깔끔하게 끝낼 수 있는 건 후자다.

머리가 복잡해지려는데,

-근데 너무 애써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제가 최대한 표절곡으로 데뷔 안 할 수 있도록 움직여 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도영이 먼저 이리 말했다.

내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나 보다.

다만 나도 당신만큼이나 이 사안이 급하다는 걸 한도영은 모를 거다.

그렇다고 마냥 붙잡고 있을 수도 없으니 일단은 통화를 끊으려 했다.

한데 통화를 끊기 전 한도영이 마지막으로 한 말이 있었는데,

-저희 회사가 사실 좋은 회사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도 대표만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런 막 나가는 짓이 벌어지진 않았을 거예요. 약간 변명 같긴 한데 그래도 저희를 너무 미워하지만은 않으셨으면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사실은 다들 좋은 분들이거든요.

대표가 문제라는 말이었다.

그 말에서 잠깐 떠오른 아이디어가 있었다.

‘대표가 문제면 대표만 흔들면 되는 거 아닌가?’

회사를 바꾸지 않고 좀 더 쉽게 갈 수 있는 방법이 말이다.

“그, 도영 씨.”

난 전화가 끊어지기 전 한도영을 급히 붙잡았다.

-네?

한도영이 수화기에서 멀어지다 말고 다시 다가온다.

“그러면 대표 외에는 회사 전체가 지금 이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거죠?”

-……그렇죠? 저희 팀 매니저부터 팀장님까지 다 같은 의견입니다. 이런 걸로 데뷔하는 건 진짜 좀 아닌 거 같다고요. 다만 너무 크게 티는 못 내는 상태죠.

“오…… 그렇군요.”

-……왜죠?

“아, 아닙니다. 그냥 문득 궁금해져서요. 무능한 대표 밑에서 일하는 거…… 저희도 그랬던 일이 있어서 남 일 같진 않네요. 힘내시길 바라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럼,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네. 감사해요.

한도영과의 전화가 종료됐다.

난 수화기를 내린 후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러곤 아까 한도영의 마지막 말에서 떠오른 또 다른 가능성을 점쳐봤다.

이게 가능할지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물어보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않겠는가?

난 핸드폰 주소록을 뒤져 유원동의 번호를 찾았다.

예의상 문자 먼저 하는 게 맞다.

-사장님. 혹시 오늘 점심 식사 같이하면서 대화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얼마 전 회의에 불쑥 난입하여 우리 팀에 대한 좋은 감정을 가져간 유원동이다.

또 나랑은 따로 만나서 회의도 한 적 있고.

나름 자기가 주도적으로 일하는 사장이 된 것 같아서 요즘 기분이 좀 좋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물론이죠^^

밥 먹자는 약속에 단번에 오케이 한다.

한데 나한테 뭐 데이기라도 한 걸까.

자꾸 형들을 데려오라고 한다.

-세이렌분들 다 같이 오시면 한 끼 사드리죠^^

-혼자 갈 생각입니다

-다 같이 오시면 사드리죠^^ 근처에 한식 잘하는 집이 있습니다.

-혼자 갑니다.

-다 같이 오시죠ㅎ

-출발하겠습니다.

난 유원동의 희망사항은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 형들 자는 중인데 함부로 깨울 수야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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