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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22화 (222/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22화

형들이 대기실에서 자는 동안 난 짐을 챙겨서 대기실을 나섰다.

승연 씨와 현아 씨가 어디 가냐고 질문을 해오긴 했다.

다만 당황할 것이 없는 것이 지금 내가 대기실을 떠나는 이유는 일종의 무적기이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점심 식사 좀 같이 하자던데요.”

“……네?”

“오…… 사장님이…… 하하…….”

사장과의 점심 식사.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자리이자, 절대 중간에 끼고 싶지 않은 자리다.

승연 씨와 현아 씨는 혹여나 내 입에서 같이 식사하실래요? 라는 말이 나올까 황급히 거리를 벌렸다.

“그러면 회사 앞까지만 태워다 드릴까요?”

승연 씨는 딱 회사까지만 데려다줄 수 있다는 듯 말해왔다.

“콜택시 타고 가면 됩니다.”

다만 괜히 피곤한 짓 시키는 것 같아 거절했다.

“에이. 아니에요. 이런 거 혼자 보냈다간 저희가 혼나요. 회사 앞까지는 데려다드릴게요. 현장은 저희 둘 중 아무나 지키면 되니까요.”

“맞아요. 타고 가요, 태윤 씨.”

“네 뭐. 태워주신다면 저야 감사하죠.”

생각해 보니 사장 만나러 가는 자리에 콜택시 타고 가면 승연 씨와 현아 씨 면이 안 살 거 같아 결국 타고 가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이후 주차장에 가서 승합차에 올라탔다.

원래 내 자리는 맨 뒤의 창가 자리였는데 오늘은 조수석에 탈 수 있었다.

승연 씨가 차량에 시동을 걸고 부드럽게 액셀을 밟았다.

차량은 방송국을 벗어나 강남에 있는 넥스트 웨이브 사옥으로 출발했다.

“근데 오늘 왜 사장님이랑 식사 자리가 잡힌 거예요, 태윤 씨?”

이동하는 동안 승연 씨가 내게 질문했다.

“그냥 밥 한 끼 먹자고 하시네요. 오늘 오후 스케줄이 없는 걸 아시나 봐요.”

“그쵸. 저희가 매주 스케줄 보고 드리니까 모를 리는 없으시겠죠.”

사실은 유원동이 보자 한 게 아니라 내가 보자고 한 건데 어쩔 수 없다.

내가 유원동에게 밥 먹자고 했다고 하면 다들 이상하게 볼 거 아닌가.

오해 안 사며 사는 게 회귀자로서 가장 어려운 삶인 거 같았다.

“가면 간단히 면담 같은 거 하는 거겠죠?”

“그렇겠죠. 아마도.”

“회사에 하나밖에 없는 그룹 직접 케어하고 싶은 욕심이 들었나.”

“그럴 수도 있죠. 딱히 저희를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으니까요.”

“아, 태윤 씨, 그거 혹시 아세요?”

“네? 뭐요?”

“요즘 사장님 세이렌 굿즈 모으세요.”

“……네?”

난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유원동이 우리 굿즈를 모은다고?

사업차 품질 검사를 하려고 잠깐 보는 게 아니라 모은다니.

근데 그 전에,

“저희 아직 MD 상품 제대로 나온 것도 없지 않아요?”

모을 만한 컨텐츠가 아직 없다.

우리 MD 사업팀이 제대로 상품을 공개 안 했으니까.

지금 MD 사업팀은 응원봉 디자인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플 테니까.

즉 그 말은,

“비공식 굿즈 나눔 받으신대요. 괜찮은 거 있으면 구매도 하시고요.”

“……그 사람이 파랑새를 한다고요?”

“……하하. ……네.”

소름이 쫙 돋았다.

이게 바로 성공하고자 하는 인간의 광기인가.

“암튼, 요즘 회사 내에서도 사장님 이미지가 점점 좋아지고 있어요. 예전엔 현장 모르는 답답한 대표님? 이런 이미지였다가 요즘은 뭐든 적극적으로 추진해 보려고 하는 귀여운 대표님 정도는 된 거 같아요.”

세상에.

실무자의 입에서 이런 칭찬이 나온다니.

이런 걸 보고 뼈를 깎는 노력이라고 해야 할 거다.

내가 보았던 전생의 유원동은 모두에게 욕먹는 포지션이었으니 말이다.

한데 지금은 비공식 굿즈까지 따로 모을 정도로 이 시장의 분위기를 파악하려 노력 중이란 뜻이었다.

적어도 예전의 왁킹 사건과 같은 일은 다신 일어나지 않을 거 같았다.

“암튼, 그만큼 대표님이 세이렌분들을 좋아하고 또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려고 하시는 거 같아요. 그러니 가서 괜히 긴장하지 마시고 편한 동네 아저씨랑 대화한다 생각하고 가셔도 될 거 같아요.”

승연 씨가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를 알겠다.

혹여 내가 사장님과의 대화에 긴장했을까 봐 긴장을 풀어주려 그런 거였다.

하긴.

어쨌든 내 나이가 19살이 맞긴 맞으니까.

따뜻한 호의가 느껴져 절로 미소가 번졌다.

“다 도착했네요, 벌써.”

“그러니까요.”

“그럼 가서 좋은 시간 가지세요.”

차량은 넥스트 웨이브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갔고, 아티스트 전용 출입구 앞에 멈춰 섰다.

승연 씨는 입구 쪽에 차를 바짝 대며 빨리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했다.

요즘 회사 근처에 카메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내부적으로 아티스트 케어에 주의하라는 안내가 나왔단다.

난 건물 안으로 재빨리 들어갔다.

그러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숨에 유원동 사장이 있는 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말을 고르기 시작했다.

오늘 한도영과 통화하며 떠오른 아이디어는 사실 파격도 파격이거니와 과연 가능할지도 애매하다.

하지만 문의는 해볼 생각이다.

만일 안 된다고 하면 수치 조작 업체만 털어달라고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러니 마음은 가볍게 사장실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어떤 방향이 되든 동준이 형은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말이다.

이후 엘리베이터가 사장실이 있는 층에 도착했다.

난 엘리베이터 밖으로 나가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이내 문 너머에서 유원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살짝 기분 좋아 보이는 톤의 목소리다.

아까 문자로는 내가 혼자 간다 할 때 불안해하더니 막상 또 목소리만 보면 그다지 싫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이내 문이 열리며 유원동이 나왔는데

“아…… 정말 혼자 왔군요?”

살짝은 실망한 듯한 얼굴이었다.

“아, 네.”

“일단 안으로 들어와요. 잠깐 기다렸다가 식당으로 가죠.”

“네. 알겠습니다.”

난 이리 말하며 사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면서 유원동에게 식당은 룸으로 이뤄진 프라이빗한 공간이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식당은 룸으로 된 곳이 맞…….”

다만 말을 차마 더 잇지는 못했는데…….

‘……?’

사장실의 인테리어가 내가 전에 왔을 때와는 이것저것 많이 달라져 있었으니 말이다.

우선 자신의 책상 위에 나와 형들을 모티브로 만든 인형들이 일렬로 놓여 있었고.

누군가가 우리를 캐릭터화시켜서 만든 스티커가 유원동의 업무용 노트북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으며.

벽면에는 우리 앨범에서 찾아볼 수 있는 포스터, 그리고 팬들이 만든 비공식 포스터나 슬로건 등이 걸려 있었다.

이게 사장실이라는 것만 빼면 세이렌에 빠져 있는 여중생의 방이라 해도 믿을 정도였다.

“……사장님?”

한데 유원동은 내 이런 반응이 뿌듯한 걸까.

“저도 요즘은 시장 모니터링을 하고 있거든요. 이것저것 받을 수 있는 것들은 받다 보니 늘어나더라고요.”

마치 자랑하듯 이리 말한다.

“멘션 달 때 말투 등은 딸애가 봐주고 있어서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 부분도 차차 나아지는 중입니다.”

난 유원동과 굿즈 나눔을 했을 세이렌 팬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경악스러울지 상상해 봤다.

내가 좋은 마음으로 굿즈 나눔 해준 사람이 내 아이돌의 소속사 대표라고?

지나가던 개도 안 믿을 사실이다.

“암튼, 사설은 이쯤하고, 우선 식당으로 이동부터 할까요?”

“아…… 네.”

“아까 물어보려던 게 룸으로 된 곳이냐였죠? 룸으로 된 곳 맞으니까 걱정 말고 따라오세요.”

“네……. 하하…….”

난 충격을 잠깐 뒤로하고 좋게 생각하려 했다.

그래.

승연 씨의 말대로 유원동은 세이렌을 좋아하는 중이다.

그렇다면 좀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 * *

유원동은 자신의 옆자리에 앉은 열아홉 살짜리 남자를 쳐다봤다.

기사가 모는 차는 부드럽게 코너를 돌며 회사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옆에 열아홉 살을 태우고 있다는 사실만 뺀다면 성공한 기업가의 점심 미팅 자리라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지금 자신의 곁엔 열아홉 살의 남자 ‘아이’가 타고 있다.

물론,

‘그냥 아이가 아니지.’

사실 유원동은 봉태윤을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몇 번 대화를 나눠본바 열아홉 살이라고 하기엔 눈치도 빠르고 말하는 것도 남달랐다.

분명 일을 해본 티가 나지는 않는데 나이는 꽤 먹은 느낌이 든달까.

가끔은 핵심을 파고드는 말들에 본인도 놀라곤 한다.

해서 애 같은 느낌이 들지 않고 본인 회사의 젊은 팀장쯤으로 여기는 중이었다.

열아홉 살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지는 않단 걸 본인도 알고 있다.

하지만 같이 일하는 입장으로서 상대가 너무 애 같은 것보다는 이런 쪽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그래도 가능하다면 세이렌 멤버들 모두와 다 같이 오기를 바랐는데…….

‘안 좋네…….’

봉태윤이 홀로 찾아왔다.

몇 번의 사례를 통해 느낀바, 봉태윤은 형들과 있을 때는 조금 얌전해지는데 혼자 있을 때는 미친놈처럼 파격적인 딜을 하는 경향이 있다.

해서 형들과 함께 오길 바랐다.

옆에 형들이 있으면 스스로 말을 조금 고르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한데 이미 홀로 찾아온 거, 내보낼 수도 없었기에 그냥 맞이해야 했다.

살짝 떨리긴 하지만 괜찮다.

그간 본인도 아이돌 시장에 대해 공부를 많이 했고, 어떤 질문이 들어와도 여유롭게 답할 관록은 있다고 믿었다.

동시에,

‘내가 열아홉 살을 앞에 두고 긴장하는 게 맞나…….’

본인 딸뻘의 아이에게 이러는 게 과연 맞나 싶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차량은 식당 앞에 멈춰 섰다.

기사가 나와서 문을 열었고 유원동과 봉태윤은 차량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내 식당에 들어가니 본인 이름으로 예약된 룸으로 안내를 해줬다.

방음도 좋고 각 방별로 거리도 꽤 있는 공간이다.

식탁 앞에 앉은 후 유원동은 우선 메뉴부터 고르게 할 참이었다.

“요즘 활동기라 잘 못 먹죠? 오늘은 그래도 맛있는 거 먹고 들어가요. 이 집이 갈비 정식이 맛있어요.”

뭐든 밥이 들어가고 나면 사람이 유순해지는 경향이 있다.

같은 말도 부드럽게 나가는 거다.

그래서 미팅을 식사하며 하는 것이기도 하고.

한데 봉태윤은 메뉴판을 슬쩍 보는 척하더니 탁, 하고 소리 나게 내려놨다.

“제가 식사 같이하자고 말씀드리긴 했지만 사실 진짜 식사를 하러 올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

유원동은 메뉴판에서 눈은 떼지 않았다.

지금 메뉴판을 내려놓고 눈을 맞추는 순간 밥도 못 먹고 일 이야기가 시작될 거란 것을 직감적으로 눈치챘기 때문이다.

다만 봉태윤이 끈질기게 자신을 쳐다보는 바람에 결국 메뉴판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

이 친구가 이러는 걸 볼 때마다 숨이 가빠온다.

이 느낌이 무슨 느낌인지, 유원동은 알고 있다.

제일 그룹에 처음 입사했을 때.

본인이 준비한 사업 기획안을 사수에게 피드백 받기 위해 옆에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의 바로 그 느낌이다.

그때 처음 들고 간 기획서가 대차게 까이며 화장실에 가서 남몰래 눈물을 훔쳤단 사실은 유원동 본인만 아는 사실이다.

오늘만큼은 다른 결말로 이어지길 내심 바라고 있었는데,

“G&B 엔터에서 지금 저희 표절해서 앨범 준비 중인 거 알고 계신가요?”

……느낌이 온다.

아주 쎄한 느낌이.

유원동은 봉태윤의 질문에 답을 시작했다.

“……일단 동향 파악은 해두고 있었습니다.”

“근데 저희가 지금 후속 활동으로 트리플 크라운 올킬을 해야 하잖아요.”

“……그렇죠.”

“그 트리플 크라운 올킬이란 성적에 블레슈의 데뷔가 방해가 될 거 같아서 그러는데, 혹시 G&B 엔터에 인맥이 있으실까 싶어서요.”

“…….”

유원동은 입을 다물었다.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이내 그 불안함이 실체가 되어 그를 덮쳤는데,

“G&B 엔터에 투자한 투자자에 연줄 있으시면 그 투자자들 압박해서 투자 철회시키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최소한 대표 압박이라도 넣거나요. 블레슈 데뷔 자체를 무산시킬 수 있도록요.”

봉태윤이 또 본인한테 말도 안 되는 걸 시키려 한다.

다른 회사 투자자들 찾아서 블레슈의 데뷔를 막으라니.

‘미쳐 버리겠네.’

열아홉 살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거라 누가 예상하겠는가.

수능 공부하며 입시요강이나 외울 나이에 말이다.

유원동은 심장 근처를 탁탁 두드리기 시작했다.

먹은 것도 없건만 체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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