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23화
난 내가 이 자리에 온 목적을 유원동에게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블레슈 데뷔를 막기 위해 투자 철회를 유도하란 거죠? 하하…….”
유원동이 내 계획을 한 줄로 요약하여 잘 말해준다.
지금 유원동이 정리한 저 문장이 한도영과 통화하며 내가 생각해 낸 블레슈 데뷔 무산 계획이다.
투자 철회를 통해 데뷔 무산을 유도하는 것.
투자 철회를 바로 이끌어 내지 못하더라도 투자 철회 으름장이라도 놓아 데뷔를 무산시키기만 하면 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한도영의 말에 따르면 회사 전체가 문제인 것이 아닌 대표 한 사람이 문제인 것이니 대표를 컨트롤할 강력한 수단을 찾아내면 될 것 같았으니 말이다.
G&B 같은 자그마한 엔터에 투자를 할 만한 사람이라면 분명 오랜 기간 이 업계에 발을 걸치고 있던 사람일 테고, 그렇다면 유원동이 그 투자자를 알 가능성은 꽤 높을 터였다.
유원동이 매니지먼트 사업을 안 했다 뿐이지 JI ENM이라는 국내 최고 엔터테인먼트사에 오랜 기간 재직했던 사람이니 말이다.
그러니 유원동이 가진 인프라를 사용해 G&B 엔터의 투자자를 찾고, 그 투자자를 사용해 G&B의 대표를 압박하고, 최종적으로 블레슈의 데뷔를 미루거나 무산시킬 생각이었다.
이것이 꽤 말도 안 되는 생각인 것은 안다.
유원동이 무슨 도깨비 방망이도 아니고 투자자 찾아라 뚝딱! 하면 투자자 여깄습니다~ 하고 가져다줄 수 있는 게 아니니 말이다.
하지만 가능성이 0%냐 묻는다면, 그건 아닐 거다.
‘찾아보면 나올 거야.’
당장 유원동의 인맥 중엔 없을지라도 세 다리만 건너면 분명 나올 거다.
이 업계가 그렇게 넓은 업계도 아니고, 유원동 인맥이 그렇게 좁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
유원동이 G&B 투자자와 만나지 못할 리는 없을 터다.
유원동은 메뉴판을 구석에다 치워놓곤 날 가만히 바라봤다.
나도 내가 어처구니없는 제안을 한 것은 안다.
그냥 냅다 찾아와서 투자자 찾아서 블레슈 데뷔 막아줘요, 라고 하는 거니까.
다른 대표들이라면 아마 헛소리하지 말고 꺼지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어린놈의 자식이 못 하는 말이 없다고, 어디서 헛소리 주워듣고 이상한 짓거리나 하고 다닌다며 말이다.
하지만 난 조금은 믿는 중이다.
유원동을 말이다.
사실 첫인상은 아주 별로였고 이후 행보도 좋다고 말할 순 없지만 최근 몇 번의 일들로 내 안의 유원동의 인식이 상향조정된 상태다.
지금의 유원동이라면 내가 하는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어주진 않을 것 같다.
거절해도 좋다.
내가 납득할 이유와 다른 방안을 제시해 준다면 얼마든지 거절해도 좋다.
난 어떤 말이 나올지를 기대하며 유원동을 쳐다봤다.
내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려는 걸까.
“우선,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겠습니다. 트리플 크라운 올킬이 저희 3분기 주요 실적이 되어야 할 텐데 당연히 블레슈 데뷔가 신경 쓰일 만한 상황이긴 하네요.”
유원동은 어린놈이 헛소리하네, 라는 식으로 접근하진 않았다.
다만 동시에 내 요구에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투자자든, 투자기관이든, 투자법인이든 간에, 제 인맥으로 어떻게 만난다고 해도 사실 투자 철회를 이끌어 내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유원동은 ‘불가능’이라는 꽤 단호한 워딩을 써가며 내 주장에 반박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진행한 투자를 철회라는 건 그에 상응할 아주 강하고 분명한 근거가 뒷받침이 되어야 하는데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너무 빈약하지 않습니까.”
근거가 빈약하다고?
표절이면 충분히 큰 사안이 아니냐고 말하려 했는데 유원동이 먼저 입을 뗐다.
“물론 표절이 분명 큰 사안임은 맞으나 그걸 수치화해서 이러한 매출적인 손실이 발생할 테니 투자를 철회하라고 말하기엔 시간도, 데이터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입니다. 제가 말한 근거란 그런 근거입니다. 숫자로 적어서 낼 수 있는 객관적 지표요.”
너무 깔끔한 설명과 문장이라 할 말이 없었다.
이게 나름 관리자급 직장인의 관록인 건가.
아니지.
어쩌면 이 정도면 평균적인 직장인의 시야일 수도 있다.
나야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없으니 알 수 없는 영역이니까.
암튼 내 생각이 얕았고, 유원동의 말이 여러모로 보나 정당한 것은 인지했다.
다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잖아.’
투자 철회가 어려울 거 같다 해서 그럼 안 되겠네요 하하 라고 생각할 순 없다.
내겐 형들 목숨이 달린 일이니 말이다.
당황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난 마음을 차분하게 하고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투자 철회를 유도하고자 했던 원래 목적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 봤다.
내가 원하는 것은 투자 철회 그 자체가 아니다.
블레슈 데뷔 무산에 진정 필요한 것은,
‘대표 압박 수단’
바로 이거다.
투자 철회는 여러 가능성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렇다면 좀 더 그럴듯한 대표 압박 수단이 뭐가 있을지를 떠올려봐야 한다.
현실적으로 즉시 사용 가능한 강력한 압박 수단을 말이다.
내 생각이 깊어지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원동은 본인의 의견을 마저 말하기 시작했다.
“블레슈 표절이 신경 쓰이는 것은 알겠지만, 일단 제 생각엔 기다려봐도 될 것 같습니다. 이 시장이 그런 앨범을 소비해 줄 만큼 도덕적으로 둔한 시장이 아니잖아요. 아마 트리플 크라운 올킬에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난 그런 유원동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그 순간,
‘잠시만.’
지금 내가 이렇게 밥을 같이 먹고 앉아 있는 사람이 과연 어떤 인간인지 갑자기 재인식하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이름 유원동.
나이 50대 중반.
명문대 법대 출신에, 대기업 임원.
원 소속은 연예계 한정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JI ENM.
원하는 게 있다면 중소기업쯤이야 인수합병 시켜 버리는 무시무시한 곳이 이 사람의 진짜 직장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아.’
훨씬 간단하면서도 현실적인 방안이 떠올랐다.
너무 간단해서 이걸 왜 먼저 떠올리지 못한 건지 스스로를 자책하게 될 정도의 방안이 말이다.
“사장님.”
난 유원동을 불렀다.
유원동은 왜 부르냔 듯 날 쳐다봤다.
난 방금 떠오른 아이디어를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 라는 느낌으로 생각해 본 아이디어인데요…….”
내 말에 아리송한 표정을 짓던 유원동은 점차 집중하기 시작했으며, 이내 마지막에 가선 이해했단 듯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깔끔하네요. 훨씬 더. 현실 가능성도 매우 높고요.”
마지막에 가선 이런 코멘트까지 남겨줬을 정도였다.
“즉석으로 생각해 낸 건데, 이번엔 현실성이 있어서 다행입니다.”
“알았어요. 그러면 그 방향으로 한번 추진해 볼게요.”
유원동의 입에서 ‘추진’이란 말이 나왔다.
유원동 성격상 저 말은 어지간하면 된단 말이다.
이제야 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내 얼굴에 생기가 돈 걸 본 걸까.
“이제 좀 얼굴이 괜찮아졌네요.”
유원동이 이리 말한다.
“아, 네. 며칠째 앓던 게 해결된 느낌이라서요.”
“도움 됐다니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식사합시다.”
유원동은 그리 말하며 가장 비싼 점심 특선 2인분을 시켰다.
이내 식탁에 올라온 것은 12첩 반상과 잘 구워진 양념 소갈비였다.
다만 그중 내 손가락이 간 것은 유자 드레싱을 얹어낸 반찬 샐러드 하나뿐이었다.
“고기를…… 안 먹습니까……?”
“……활동긴데요……?”
활동긴데 소갈비라니.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유원동은 무슨 이런 놈이 다 있어라는 듯한 시선으로 날 쳐다볼 뿐이었다.
* * *
블레슈의 리더 한도영은 숙소 거실에 앉아 벽걸이 달력을 멍하니 쳐다봤다.
데뷔일! 이라고 빨간색으로 크게 동그라미 쳐둔 날짜가 눈에 밟힌다.
처음 저 날짜에 동그라미를 쳤을 땐 어서 저 날이 오기를 바랐건만,
“하아.”
지금은 마치 저 날이 형 집행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블레슈 멤버들도 거실에 앉아 멍하니 본인이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일상적인 적막.
표절 이슈가 불거지며 팀 분위기는 하루가 다르게 처지고 있었다.
“슬슬 저녁 먹을 시간인데……. 뭐라도 먹을까, 애들아?”
한도영은 그래도 애들을 굶길 순 없단 생각에 뭐라도 먹을 생각이었다.
“전 괜찮아요.”
“……저도요.”
“딱히 입맛 없어요.”
“저도…….”
다들 밥 생각이 없는 눈치였다.
“그래도 뭐든 먹어야지. 다이어트 생각하지 말고 맛있는 거 먹자. 어때?”
한도영이 일부러 텐션을 올려봤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없었다.
그는 거실에 죽 둘러앉은 멤버들을 봤다.
어느새부턴가 주눅 들어 있고 위축되어 있는 상태였다.
사실 리더인 그도 지금 밖에 나가면 모두가 그를 손가락질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인데 팀 멤버들이라고 다를 리가 없었다.
표절돌.
데뷔부터 가수로서 가장 끔찍한 키워드 하나를 달고 나가는 셈이다.
앞으로 어떤 곡을 내고 어떤 상을 받아도 블레슈에게 영광은 없을 터였다.
표절이란 두 글자는 주홍글씨처럼 남아 사라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때 멤버 하나가 나지막이 입을 뗐다.
“형……. 우리 데뷔하는 게 맞을까요……?”
“…….”
그 말에 거실이 한층 더 적막해졌다.
이후 마치 둑이라도 터진 것처럼 멤버들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런 걸로 데뷔한다 해서…… 과연 우리한테 뭐가 좋은 걸까요……?”
“결국 얼굴 팔리는 건 우린데…….우리만 표절 가수로 낙인 찍힐 거 아니에요.”
“애매하게 얼굴 팔려서 나중에 일상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게 되면 어떻게 해요?”
“데뷔하기 너무 무서워요…….”
한도영은 주방 쪽 테이블에 서서 이를 악물었다.
본인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데뷔 안 하면…… 계약 위반이잖아…….”
회사와 소송해서 이길 자신도 없다.
계약 위반 시 막대한 금액의 손해 배상금을 내야 할 거다.
결국 그들은 아무런 영광도 명예도 없는 길을 억지로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면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다.
최근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걸까.
후웅-
한도영의 몸이 기우뚱 흔들렸다.
“형!”
그러자 멤버들이 달려와 한도영을 잡아준다.
한도영은 멤버들의 도움을 받아 의자에 몸을 앉혔다.
“내가…… 미안해 얘들아…….”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사죄뿐이었다.
처음 곡과 컨셉을 들었을 때부터 거절했어야 한다.
회사에서 아무리 강압적으로 나와도 초반부터 강하게 본인들의 의견을 말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런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자신이 말하지 않았으니 팀 또한 말하지 않은 거다.
그 책임감과 죄책감이 한도영의 목을 옥죄고 있었다.
“내가 처음에 거절만 잘했어도…….”
한도영이 자책을 하자 멤버 하나가 한도영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아니에요…….”
“우리 중 아무도 형 잘못이라고 생각 안 해요.”
“형……. 그런 말 하지 마요…….”
멤버들이 건네주는 따뜻한 한마디에 한도영은 급기야 눈물이 터져 나왔다.
멤버들 앞에서 울지 말자 다짐했는데.
그는 서둘러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냈다.
“고마워. 나도 앞으로 그런 생각 안 할게.”
그러곤 다시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그때,
지이잉-!
식탁에 올려두었던 한도영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화면 위에 떠오른 발신인의 이름은,
“대표님……?”
“어?”
“갑자기 이 시간에요?”
“헉……!”
G&B 엔터의 대표였다.
한도영은 재빨리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러곤 핸드폰을 들어 대표의 전화를 받았다.
“네. 대표님. 한도영입니다.”
대표와 전화를 할 때면 늘 속이 꼬이는 느낌이다.
명치부터 숨이 콱 하고 막히는 것 같달까.
어서 이 통화가 끝나길 바랐는데…….
-하아……. 진짜 제일그룹 이 새끼들…….
통화 시작과 동시에 대표가 욕을 한다.
숨이 턱 막히려는 순간,
-야, 너네 데뷔 올겨울로 미룬다. 그렇게 알고 있어. 호들갑 떨지 말고 기다려.
“……네?”
-데뷔 미룬다고! 한번 말하면 알아 처먹어라 좀! 기분도 뭣 같은데 너까지 빡치게 할래?
“아,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멤버들에게만 공유하고 대기하겠습니다.”
-그래. 이제 끊어.
“네. 들어가십쇼, 대표님.”
한도영은 통화를 끊었다.
분명 욕을 먹은 대화고, 굉장히 고압적인 대화였건만,
“형?”
“어?”
“형!”
한도영은 전화가 끝나자마자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
방금과는 다른 결의 울음이었다.
“우리 데뷔 안 한대……!”
“진짜요?”
“정말요?”
“대박!”
데뷔 안 한다는 소식을 들은 데뷔조건만, 블레슈 멤버들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