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24화 (224/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24화

오늘 하루 스케줄을 모두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는 차량 안.

난 형들의 일상적 수다를 들으며 힐링을 하다가 대뜸 시스템의 알림을 들었다.

[미션 성공]

[블레슈의 데뷔를 막았습니다.]

블레슈 데뷔를 막는 데 성공했다는 거였다.

난 작게 미소 지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곤 유원동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 감사했습니다, 사장님. 또 연락드리겠습니다.

이렇게 빨리 해결될 줄 몰랐는데.

확실히 유원동이 빠르게 움직여 준 것 같았다.

유원동에게서 곧장 답장이 날아왔다.

-^^굿밤

유원동의 문자를 볼 때마다 어쩜 이리 아저씨스러운 어휘만 골라 쓰는지 놀라울 정도였다.

그래도 오늘은 도움받은 게 많으므로 흐린눈 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하아. 한고비 넘겨서 다행이네.’

오늘 유원동과의 점심 식사가 꽤 중요한 기점이 됐다.

처음에 난 G&B엔터를 압박할 수단이 투자자들을 설득해 투자 철회 으름장 놓는 것밖에 없을 줄 알았다.

한데 유원동의 말을 듣다 보니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유원동이…… 어지간한 투자자들이나 기관보다 업계 파워는 세지 않나?’

내가 멋모르고 꺼낸 투자 철회라는 헛소리를 꽤 공들여서 설명해 주는 것을 듣다 보니 이 사람이 생각보다 능력 있는 사람이란 게 문득 떠올랐던 거다.

내가 늘 속으로 유원동- 유원동- 하며 리스펙 없이 불러서 깜빡하고 있지만, 어쨌든 이 업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들어가는 입김을 가진 사람이니 말이다.

꼭 투자자들을 통해 압박하지 않더라도 그냥 유원동이라는 사람이 가진 수많은 인프라만으로도 G&B엔터를 압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서 내가 식사 자리에서 제안한 건 ‘거래’를 하자는 거였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제일그룹 자회사들 중에 방송 외주 제작 맡는 스튜디오 있지 않나요?

-스튜디오 와이번이요?

-그쪽에서 드라마 말고 예능이나 그 밖의 프로그램들도 많이 만들지 않나요?

-처음엔 드라마만 하다가 다른 하청들 합병시켜서 예능 쪽으로도 사업 확장했죠.

-거기에서 만든 타이틀들 몇 개에 블레슈가 데뷔할 시 고정적으로 꽂아주겠다고 딜을 거는 건 어떨까요? 어차피 블레슈가 표절까지 할 정도로 다급했던 건 그룹이 뜨지 못하면 회사가 망하니까잖아요.

-그렇죠.

-그러니 회사가 안 망할 수 있도록 동아줄을 내려주겠다는 거죠. 데뷔 시 제일그룹 차원에서 밀어줄 테니 지금은 살짝 물러서란 느낌으로요.

-호오.

-제일그룹에서 푸시해 주는 대신 블레슈의 데뷔 일정을 겨울로 미루는 걸로 거래를 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가능하면 내년까지 미루면 더 좋고요.

-하하, 이건…… 괜찮네요.

유원동도 이 아이디어는 실현 가능성이 있다 생각한 건지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블레슈가 데뷔하지 않는 게 화제성 빼앗길 일도 없이 가장 안전하게 트리플 크라운 올킬을 달성하는 방법이 될 테니까요.

심지어는 내가 말해주지 않은 이유도 스스로 붙여가며 이 아이디어의 필연성을 강조했다.

다만 그 순간 문득 떠올랐단 맹점이 있었는데,

-근데 이거 G&B 엔터에서 순순히 받아들일까요? 데뷔 시 지원해 준다는 거 겉은 번지르르해 보여도 사실상 우리 애들이 더 중요하니까 너네 잠깐 들어가 있어, 라는 거랑 같은 말이잖아요. 자존심 상할 거 같은데요?

G&B가 과연 이 거래에 응할지였다.

우리가 아무리 거래안을 만들어도 그쪽에서 응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한데 유원동은 이 문제에 있어선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응할 겁니다.

-이유가 있나요?

-원래 안 될 거래도 되게 만드는 게 우리들 일이에요. 그런데 이건 업계 파워도, 가진 인프라도, 심지어 조건조차도 우리가 유리한 거래입니다. 자존심 같은 건 뭉개고도 남으니까 걱정 마요.

처음으로 이 사람이 진짜 대표처럼 느껴진 순간이었다.

그렇게 호언장담한 걸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저녁이 되자마자 블레슈의 데뷔 지연을 성공시켰다.

시스템이 알림이 울린 걸 보니 가서 진짜 확실히 데뷔 지연 의사를 받아낸 것 같다.

‘내 우주에서의 유원동은 제대로 작동하는 거 같네.’

형들 말 들어보니 매 우주마다 유원동 캐릭터가 바뀐다던데, 내 우주에선 꽤 괜찮은 캐릭터로 자리를 잡은 거 같다.

“후우우.”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다 보니 숨 쉬는 것이 한결 편안해진다.

“뭐야? 한숨 쉬는 거야?”

“무슨 일 있어?”

내가 숨을 내쉰 건 한숨이라 오해했나 보다.

“아니에요. 한숨 같은 거. 그냥 숨 쉰 거예요.”

“숨을 되게 요란하게 쉬시네요, 봉태윤쿤~”

“……그건 또 무슨 말투예요, 동준이 형.”

“무슨 말투라뇨~ 섭섭합니다, 태윤쿠운~”

“…….”

동준이 형의 헛소리까지 들으니 이제야 진짜 일상으로 돌아온 느낌이 난다.

다만 이 평안함에 너무 빠지진 않기로 했다.

‘아직 미션이 두 개나 더 남았어.’

트리플 크라운 올킬 미션과 빌보드 핫 100 진입 미션.

이것도 클리어를 해야 한다.

난 다시 긴장 상태에 진입했다.

이 시스템과의 게임이 끝나기 전까지는 긴장을 풀 수 없다.

* * *

이후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의 활동도 종료가 되었다.

4주 동안의 음악방송과 각종 예능 스케줄, 라디오 스케줄을 모두 마무리 지었다.

마지막 주차까지도 온리원과 우리는 1등 트로피를 나눠 가질 수밖에 없었다.

역시나 짠 것처럼 3개, 3개씩 말이다.

뭐 예상했던 일이니 괜찮다.

무엇보다 올해 말이 되면 이 라이벌 구도도 끝날 테다.

우리가 온리원을 완전히 넘어설 테니 말이다.

우린 연말까지 쉬지 않고 달릴 테니 당연한 결과다.

다만 올 연말에 이긴다고 해서 우리가 영원히 온리원보다 성적이 좋은 그룹이 되는 거냐?

그건 분명 아닐 거다.

온리원은 천천히 왕도를 밟듯 1군 아이돌 코스를 밟는 중이니 아마 3년 차 혹은 4년 차 즈음에 커리어 하이가 올 거고 아주 오랫동안 그 폼을 유지할 거다.

반면 우리는 다소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가는 것이니 2년 차 즈음이나 올 연말에 커리어 하이가 올 게 뻔했다.

그러면 그 커리어 하이가 얼마나 유지될지는 사실 아무도 예상 못 하는 미지의 영역이고 말이다.

물론 도승이 형이 안 그래도 대단한 작곡 능력을 더욱 각성해서 듣자마자 귀에 꽂혀 버리는 띵곡들을 주에 한 번씩 뽑아내면 아마 10년은 1군 폼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

지금도 도승이 형을 작곡 기계처럼 쓰는 와중인데 이보다 더한 것을 요구하면 인권 유린이다.

해서 큰 욕심은 안 부릴 생각이다.

내가 이 미션들을 전부 끝장내기 전까지만 1군 폼을 유지해 주길 바랄 뿐이다.

아마 한 1년?

아니, 가급적이면 올해 말까지.

그때까지만 풀악셀로 밟을 생각이다.

그 이후의 일은 그 이후에 생각할 예정이다.

어쨌든 내 목표는 아이돌로서의 성공보다는 형들의 안전과 시스템의 파괴다.

물론 아이돌로 성공하는 것도 좋다.

하지만 아이돌로서의 삶과 성공도 일단 이 우주가 존재하고 형들이 존재해야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해서 그룹 수명을 끌어다 쓰는 짓이 될지라도 올해 말까지는 최대한의 화력으로 밀고 나갈 거다.

‘시스템이 끝나면, 그때 진짜 아이돌처럼 살아도 되는 거야.’

난 조금은 이기적인, 아니, 어쩌면 이타적일지도 모를 생각을 하며 형들을 바라봤다.

형들은 지금 거실에 가지각색의 포즈로 누워서 각자 할 일을 하는 중이었다.

도승이 형은 음악을 들으며 작곡 아이디어들을 스케치 중이었고.

운이 형도 그 옆에서 유명 댄서들 영상을 보며 안무들 시안을 짜는 것 같았고.

연훈이 형과 동준이 형은 같이 앉아서 다른 아이돌분들 무대를 보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일단 오늘은 좀 쉬자.’

난 몇 없는 이 평온한 날을 즐기기로 하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 * *

세이렌의 데뷔 활동이 모두 마무리된 7월 17일.

팬들은 성공적인 데뷔 활동에 자축을 하면서도 동시에 당분간 애들 얼굴을 못 보게 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해서 세이렌 팬덤들의 피드는 여러 가지 감정들이 난무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와기들 1등 무대 모음집 타래

-연훈이 첫 트로피 받고 뿌애앵 하는 거 너무 귀여웠음ㅋㅋ

-봉떤남자의 1위 앵콜 득음 영상 함만 츄라이 츄라이

└ㅋㅋㅋㅋㅋ이게 진짜 힘을 숨긴 찐따 아님?

└당신은 봉떤의 얼굴이 찐따로 보이십니까……?

└아 쏘리;; 학교에서 만나면 내 말 씹을 거 같이 생김;;

위와 같은 성공적인 데뷔 활동기를 축하하는 글들.

-이제부터 애들 못 본다 생각하니까 벌써 아쉬움ㅠㅠ

-진짜 엊그제 데뷔한 거 같은데 벌써 4주 다 지나갔네ㅠㅠ

-다음 활동 언제 하려나……

-응원봉은 그래서 언제 나오는 거임?

-ㅠㅠㅠ콘서트는 안 여나? 이제 막 데뷔했는데 콘서트는 살짝 오반가? 근데 진짜 열 만하지 않아 이 정도면?

아니면 활동이 끝났다는 것을 아쉬워하는 글들.

이런 상반되는 두 가지 감정들이 파랑새 피드엔 이리저리 뒤섞여 있었다.

혹자는 이를 보고 ‘기쁨 슬픔 기쁨 슬픔 기쁨 슬픔이 공존하는 멋진 파랑새 세상’이라고 글을 올리기도 할 정도였다.

어쨌든 이토록 다양한 글이 나온다는 것에서부터 세이렌의 첫 데뷔 활동은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한데 18일 오전.

넥스트 웨이브 회사의 홈페이지에 한 가지 공지가 올라왔는데,

-응원봉 떴음!

-???

-세이렌 응원봉이 지금 떴다고?

-아닠ㅋㅋㅋㅋㅋ얘네 활동 다 끝나고 응원봉 낸 거임 지금? 원동이 원동이 했네

바로 세이렌의 공식 응원봉이 출시 됐다는 거였다.

사람들은 응원봉의 판매처에 들어갔다.

디자인 자체는 예쁘게 잘 빠졌다.

이제 세이렌의 상징 색깔과도 같은 에메랄드 블루가 응원봉의 테마색이었다.

하얀색 바탕의 봉에 파도를 연상시키는 파란색 포인트가 들어가 있었으니 말이다.

응원봉 끝에는 세이렌의 S를 대문자로 박아두고 S 끄트머리에 자그마한 왕관도 씌어두었다.

클래식하다면 클래식한 응원봉이었지만 요소요소의 디테일들과 색감이 좋아 팬들 사이에서도 나쁘지 않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거 제품 실사 보니까 마감 개 좋은 거 같은데?

-제일그룹이 짜치게 쌈마이로 돌리진 않았을 거 같음ㅇㅇ

-아 근데 포인트 하나만 더 들어가면 좋았을 거 같은데 아쉽긴 함ㅠㅠ

-엥? 난 오리려 깔끔해서 좋은데

다만 디자인에 대한 반응은 둘째치고.

가장 주요한 반응은 하나였다.

-아니 활동 다 끝나자마자 내는 건 뭐임?ㅋㅋㅋㅋㅋ

-아닠ㅋㅋ차라리 다음 활동 시작할 때 내든가ㅋㅋㅋ타이밍이 왤케 애매함?

-뭐 내주니까 좋긴 한데 쓸 데가 없잖아요ㅋㅋㅋ

활동이 다 끝난 바로 그다음 날 이 응원봉을 출시하냐는 거다.

사람들 놀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다만 팬들은 이때까진 모르고 있었다.

이 응원봉 흔들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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