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225화 (225/227)

막내는 아이돌이 되어야 한다 225화

세이렌 팬들은 응원봉이 나온 것을 가볍게 웃어넘기는 분위기였다.

뭐 활동 끝나고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니 별로 특이할 건 없다면서 말이다.

그저 이 응원봉이 과연 제값을 할지.

실제로 받아봤을 때의 마감은 어떨지.

이런 것에 더욱 관심이 있을 뿐이었다.

오픈과 동시에 응원봉을 주문했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응원봉 해프닝이 서서히 사그라들 무렵.

그날 오후.

홍대에 정체 모를 부스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성수에도 수상쩍은 부스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을지로에도. 강남에도. 종로에도. 신촌에도.

서울권 내에서 핫하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지역에는 하나같이 부스가 설치되는 거였다.

서울에만 이런 부스가 있느냐.

그것도 아니었다.

인천에도 하나가 들어섰으며 강원도 춘천에도 들어섰고, 전라도는 광주에, 경상도는 부산에, 충청도는 대전에 부스가 하나씩 설치되고 있었다.

흔한 부스 설치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 한 줄 주지 않았다.

이런 식의 팝업존이 설치되는 거야 이젠 일상처럼 받아들이는 대중들이니 말이다.

또 뭐 어떤 제품이나 영화가 새로 나오는구나.

그거 홍보하려고 만든 거겠네.

정도의 감상만 할 뿐이었다.

다만 저녁 시간이 되어 설치가 마무리되어 가는 시점.

가장 빨리 설치가 끝난 곳은 광주였는데 해당 지역에 사는 한 세이렌의 팬이 사진과 함께 글을 올렸다.

-???이게 뭐임???? 우리 애들 또 뭐 함? (부스 사진.jpg)

광주의 번화가라 할 수 있는 거리에 떡 하니 설치된 직사각형으로 기다란 부스.

그 부스의 외벽에는 파란색 바탕에 심플한 문구 하나가 적혀 있었다.

-Siren. 2022. 07. 25.

세이렌. 7월 25일.

세이렌의 그룹명과 특정 날짜만 적어둔 거였으나 이 정도면 아이돌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너무도 쉽게 유추가 가능한 정보였다.

-7월 25일???? 그날 설마 컴백하는 거임?

-????

-아니 활동 며칠 전에 끝났잖음

-이거 찐임?

-미친 이게 무슨 일이야

-좋긴 한데 와기들 너무 못 쉰 거 아닌가 ㅠㅠㅠㅠㅠㅠㅠㅠㅠ

7월 25일에 컴백을 하든 뭘 하든 암튼 세이렌의 무언가가 나온다는 거다.

이는 곧 활동기의 연장을 뜻했다.

사람들은 처음엔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새로운 활동 소식에 기뻐하기 시작했다.

이즈음에서 드는 의문 한 가지.

-이거 왜 광주에만 있는 거임? 아니 광주에서만 컴백할 거 아니잖아;;;

왜 서울이 아닌 광주에만 저 부스가 설치되었냐는 거다.

다만 이 의문은 금세 풀렸는데,

-잠만 이거 우리 지역에도 있음;;; 점심부터 계속 공사하던 게 이거였네;;;;

-미친 이거 우리 집 앞에도 있었음;;

-우리 회사 앞에 있던 게 저거였음?

1시간도 안 되어 하나둘 세이렌 부스가 완성되어 갔기 때문이다.

서울권에 있는 세이렌 부스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고, 경기권도, 경상권도, 강원도와 충청도권도 본인들 지역에 있는 부스를 찍어 올렸다.

-아니 대체 뭘 할라고 이렇게 전국에 부스를 설치한 거임?

-뭐 저 중 한 곳에서 랜덤으로 게릴라 하는 거 아님? 팬들보고 야바위하듯 하나 골라보란 거 아님?

└야바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몇 살이세요 대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심 이게 뭐임? 아니 스케일 개커서 좋긴 한데 내용물이 뭘지 모르겠음. 뭐 기업이랑 콜라보해서 제품 출시라도 하나?

└그러기엔 너무 세이렌 로고만 있고 다른 기업 로고가 없지 않음? 기사도 안 났잖

└ㅇㅇ글킨함

이제 사람들의 관심사는 저 부스 안에 뭐가 있을지였다.

다만 내용물이 뭔지 확인할 길은 없었는데 부스가 아직 오픈을 안 했기 때문이다.

-내일부터 입장 가능이라 함

-내일 웨이팅 줄 개오질 거 같은데…….

-오전 11시부터 줄 서라고 써 있음. 부스 앞 안내문 올림. (안내문.jpg)

안내문에는 11시 이전에 줄을 서거나 자리를 맡아두는 행위를 할 시엔 입장에 제한이 생길 수 있다는 글도 있었다.

이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왜 그러냐는 의문을 표했으나 몇 직장인 팬들의 발언으로 인해 잠잠해질 수 있었다.

-우리 회사 성순데 아침에 웨이팅 줄 서고 있으면 출근하기 개빡셈

-질서 유지 땜에 그런 거 같음ㅇㅇ

-홍대생입니다. 아침에 행사 때문에 길 막혀서 강의 늦으면 진짜 행사장 다 찢어버리고 싶습니다.

-우리 회사 종론데 저 좁은 곳에 사람들이 꽉꽉 들어차 있다? 난 그냥 지각을 택하겠음……

즉 오전 11시부터 줄을 서라는 말은 출근 피크 시간대를 피해서 오란 소리였다.

그렇게 세이렌 팬들 중 많은 이들이 내일 오전 11시만을 기다리며 잠이 들기 시작했다.

* * *

세이렌의 직장인 팬은 오전 반차를 써두고 종로로 나온 상태였다.

원래는 9시에 출근한 후 11시부터 1시까지만 시차를 쓸까 싶었으나 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기에 아예 반차를 사용했다.

그러곤 10시부터 근처를 배회하며 사람들을 스캔했다.

세이렌 팬덤에 있다 보면 같은 팬덤의 사람들을 직감적으로 눈치챌 수 있다.

옷 입는 스타일이라 해야 하나.

아니면 특유의 분위기라 해야 하나.

암튼 티가 조금씩은 나게 마련이다.

특히나 종로의 오피스 단지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꽤 많이들 오신 거 같네.”

줄 서지 말라니까 줄은 안 선 대신 카페나 근처 식당에 모여 삼삼오오 떠드는 것이 보였다.

그녀도 부스 근처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시키며 창 너머로 부스를 바라봤다.

‘날도 더운데 제발 웨이팅 안 길었으면 좋겠다.’

오늘 날씨가 37도까지 오른다고 하던데 웨이팅이 길어지면 땀에 전 채로 사무실로 복귀할 수밖에 없다.

물론 지금 입고 있는 것은 사복이고 회사에 입고 갈 블라우스 등은 따로 챙겨두긴 했으나 그래도 찜찜한 건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카페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만끽하여 부스를 가만히 노려봤다.

시간은 성실히 흘러 이제 곧 오픈 시간이었다.

10시 58분.

10시 59분.

이후, 11시.

그녀는 짐을 챙겨 카페 밖을 나섰다.

한데 부스를 기다리던 다른 팬들도 그녀와 똑같은 시간에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줄을 못 서게 하니까 진짜 오픈‘런’이 생겨버린 거다.

그녀는 뛸 생각까진 없었으나 지금 안 뛰면 땡볕 아래 한참을 서 있어야 한단 것에 결국 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간절한 마음이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고

“허억! 허억! 와아…….”

이 수많은 사람 중에 3번째 순서로 부스 앞에 도착했다.

그녀 스스로도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정신없이 뛰다 보니 맨 앞이었을 뿐이다.

그녀는 세이렌 부스를 가까운 곳에 서서 바라봤다.

‘되게 길고 크다.’

직사각형의 기다란 부스였는데 길이가 길어서 상대적으로 길어 보인다는 것이지 넓이도 꽤 넓었다.

아예 메인 블록을 거의 다 차지하는 수준이었으니 말이다.

‘돈 진짜 많이 들었겠는데?’

이 부스 설치에만 예산이 수천만 원 단위로 깨졌을 것 같았다.

“지금부터 한 분씩 입장하겠습니다. 들어가신 후엔 신발을 벗고 한 손에 본인 신발을 든 채로 관람해 주시길 바랍니다.”

“에?”

“맨발?”

“와…….”

“뭐야 대체……?”

맨발 관람이란 소리에 사람들이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와 나 발 냄새 나면 어쩌지?’

여름이다 보니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이거였다.

그렇게 어딘가 찜찜한 고민을 안은 채 입장이 시작되었다.

“한 번에 다섯 분씩 끊어서 들어가겠습니다.”

다행히 그녀까지는 무난하게 입장 가능한 순번이었다.

세이렌의 정체 모를 부스를 처음 본다는 기대감과 대체 뭘 준비할 걸까란 설렘이 공존하고 있었다.

발 냄새 나면 어쩌지? 와 같은 고민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부스에 입장한 후 말한 대로 신발을 벗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처음엔 앞이 잘 안 보이는 어둠뿐이었다.

완벽한 암실을 만든 거였다.

그녀뿐만 아니라 함께 입장한 다른 네 명의 사람들도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

그 순간,

“어?”

팟.

허공에 초록색의 형광 불빛이 하나둘 피워 올랐다.

마치 여름밤 반딧불이를 표현한 것 같았다.

초록색의 얕은 조명이 들어오니 조금 주변 파악이 가능했다.

그녀는 빛이 이끄는 대로 한 걸음씩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어둠을 더듬어 걷는 격이지만 그래도 앞사람 형체는 확인이 가능하기에 부딪히는 일은 없었다.

이내 몇 번 코너를 꺾고, 1분 정도를 걷다 보니,

푸욱.

“어?”

“와!”

“뭐야?”

발에 모래가 밟혔다.

그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왜 신발을 벗고 맨발로 입장하라고 했는지 말이다.

발가락에 닿는 것은 분명 백사장의 고운 모래였다.

문득 맨발로 모래를 밟는 것이 과연 몇 년 만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름 휴가를 언제 마지막으로 갔지……?’

신입으로 입사하여 입사 6년 차.

이제 막 대리를 단 상태다.

한데 워낙 회사가 정신없다 보니 여름에 연차를 붙여서 휴가를 가야겠다는 생각 한번을 하지 못했다.

어쩌다 하루씩 연차를 쓰는 날이 있어도 집에서 잠만 자거나 세이렌 영상 보거나 OTT 탐방 하기가 전부였고 말이다.

그런 와중에 발바닥에 모래가 닿으니 오만 감정이 다 들었다.

‘왜 이런 거에 주책이냐. 가자.’

여전히 사방은 어두운 채로, 그녀는 모래를 밟으며 앞을 향해 나아갔다.

이후 한 번의 코너를 더 돌자 귓가에 사아아악- 사아아악- 하는 파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또 한 번의 코너를 돌자 바다 향이 물씬 풍겨오기 시작했다.

마치 눈을 감고 백사장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자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 코너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말이다.

마지막 코너를 넘자,

화아아악-!

“와……”

지금까지의 암실이 모두 이 한 장면을 위한 빌드업이었다는 듯이, 푸른색 빛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암실 속에 있다 나와서 그런지 훨씬 극적인 효과였다.

마치 바닷속에 들어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파도치는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지고.

마음을 몽글하게 만드는 바다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 있으며.

빔프로젝터를 4면에 쏴서 만든 푸른색의 초현실적인 시각 이미지가 한데 어우러졌다.

발바닥에 닿는 모래의 감촉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뒤이어,

‘와, ……바람까지……?’

기분 좋을 정도의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고 있었다.

제한된 공간 안에서 바다에 가면 느낄 법한 모든 감각을 전부 끌어 올려주는 전시였다.

세이렌의 팝업존이 아닌, 그냥 도심 속 휴양이라는 테마로 나온 팝업존이라 해도 믿을 만한 퀄리티였다.

그녀뿐만 아니라 함께 입장한 다섯 명의 사람들 모두 넋을 놓고 이 공간에 서서 도심 속 바다를 만끽하고 있었다.

물만 없었다뿐이지 지금 그녀의 뇌는 이 공간과 실제 바다를 구분 짓지 못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 순간,

-왔어?

저 멀리서, 그녀들에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훈이?’

그녀는 우연훈의 목소리에 홀린 듯 다음 코너를 향해 걸어갔다.

다가갈수록 다른 멤버들이 목소리도 하나둘 들려왔다.

-보고 싶었어.

-좀만 더 가까이 와볼래?

마치 신화 속 ‘세이렌’을 현실에 구현해 둔 것 같았다.

리버브를 잔뜩 먹인 목소리는 정말 바다 깊은 곳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불러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녀를 비롯한 사람들은 뭐에 홀린 것처럼 다음 코너를 돌아 마지막 세션으로 나아갔다.

그곳엔 스크린X 기법을 활용한 공간이었다.

3면에 빔을 쏴서 몰입감을 극대화 시키는 기법 말이다.

마지막 세션으로 넘어간 후 그녀들이 본 것은 세이렌 멤버 다섯이 요트 위에 앉아 그녀들을 바라보고 있는 영상이었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품이 넓은 셔츠와 천으로 된 바지.

크게 세팅하지 않은 것 같은 헤어스타일.

세이렌의 청순미와 소년미에 약간의 환상성을 더한 오묘한 영상이었다.

“와…….”

누군가가 진심으로 감탄할 만큼의 프레임이었다.

마치 명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의 완성도 높은 영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때 영상 속 우연훈이 요트의 난간 부분으로 다가온다.

그러곤 손을 내밀며 말한다.

-올라올래?

맘 같아선 저 손 잡고 냉큼 요트에 올라타고 싶지만, 탈 수 있을 리가 없다.

아쉬운 마음에 그냥 손이라도 한번 내밀어보고 있었는데,

“안 올라갈 거예요?”

“……에?”

뒤쪽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미친 듯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손 잡아줄까요?”

영상 속 착장의 우연훈이…… 지금 그녀 뒤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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