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4화
‘뭐야, 이 검은 아기 고양이는?’
약국에서 나오자마자 향한 숙소에서 이 녀석을 마주친 순간, 빌어먹게도 내 머릿속을 스친 생각이다.
하마터면 입 밖으로 꺼내 버릴 뻔했다는 사실은 관짝까지 끌고 갈 거다.
사아아-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이해성한테 받아 온 게 이런 거였나!
65%에서 중단해 버려서 망정이지, 100% 전부 받아버렸으면 아마 지금쯤 저 끔찍한 말을 녀석의 면전에 대고 뱉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이해성의 평소 주접을 생각해 보자면 분명 내뱉었을 거다.’
모골이 절로 송연해졌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카피된 건 그저 사고회로일 뿐이라는 거다.
자아를 포함한 감정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이해성의 영향으로 이 녀석을 마주친 순간, ‘잘생겼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두근거리거나 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심장까지 뛰었으면 그냥 죽어버리는 게 나았겠지.’
내가 심각한 얼굴로 고뇌하는 사이 녀석의 말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왜 연락을 받지 않으십니까?”
내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녀석이 한숨을 내쉬며 내 스마트폰을 흘겼다.
“그건 폼으로 들고 다니시는 겁니까. 연락을 무시하실 거면 어디에 있으신지 알려주는 성의라도 보이셔야…… 아니, 됐습니다.”
이 녀석의 이름은 차윤재.
숙소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멤버들의 얼굴과 이름 정도는 외웠다.
계속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 전화가 오기에 받지 않았는데, 아마 이 녀석이었던 모양.
‘서로 사이가 안 좋은 건가.’
차윤재의 말투, 눈빛, 분위기 등 모든 것이 절대 친밀한 사이는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도착했을 겁니다.”
냉랭한 얼굴로 말을 마친 차윤재가 휙, 등을 돌렸다.
아니, 정정한다. 친하지 않다기보다는 이 몸을 싫어하는 것 같다.
“으음.”
녀석을 따라 밖으로 나서니 척 봐도 연예인들이 타고 다닐 것만 같은 밴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색한 정적이 감도는 차 안에서 몇 분이나 있었을까, 점차 속도가 느려지더니 어떤 건물 앞에서 멈춰 섰다.
깔끔한 외관의 건물 앞에는 커다란 장식물이 있었고, 거기엔 휘날리는 필기체로 사명이 조각되어 있었다.
[MH Entertainment]
사명을 눈에 담자 이해성이 기억하고 있는 정보가 마치 내가 알고 있었던 정보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아, 설마 이해성이 가진 기억이나 정보들까지 카피된 건가.’
떠오르는 정보들로 유추해 볼 때, ‘곽덕배’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해성의 인터넷 친구가 라이트온의 팬인 것 같다.
덕질에 특화된 SNS, 그곳에서 이해성이 스쳐 지나가듯 봤던 걸로 추정되는 트윗들의 단편적인 이미지가 머릿속에 하나둘 떠오르기 시작했다.
- 아 ㅅㅂ 김명훈만 없었어도 얘네가 이렇게 망하지는 않았어
- 명훈아 제발 정신 좀 차려다오
- 얘들아 내가 보기엔 아무리 봐도 명훈이는 다른 소속사에서 랕온을 망하게 하기 위해 보낸 간첩인 것 같다…
“음.”
어떻게 생겨먹은 소속사기에 떠오르는 정보 중에 회사를 향한 비난과 욕설이 이렇게 많은 거지.
‘……아무리 그래도 대표이사면 중년일 텐데, 이렇게 ‘명훈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나는 의문을 띄운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망돌의 소속사라면 돈도 없을 것 같지만 여기는 의외로 돈이 있는 소속사인 걸로 추정된다.
건물의 외관도 그럴싸했지만, 내부 또한 볼만했기 때문이다.
스윽-
나는 티가 나지 않을 만큼의 곁눈질로 사옥 내부를 둘러봤다.
높아서 탁 트인 느낌마저 드는 층고와 대리석 바닥, 세련된 화이트 톤이 주를 이루는 데다가 벽에는 소속 아티스트들의 사진이 줄지어 걸려 있다.
MH, 척 봐도 수장의 이름 이니셜 같지 않은가.
이 회사의 대표이사의 이름이다, 김명훈.
그가 갑자기 벼락이라도 맞은 듯 아이돌 육성에 대한 꿈이 생겨 만들었다는 게 바로 성해온이 속해 있는 라이트온(Light on).
소속사 이름값도 어느 정도 있으니 이걸로 괜찮은 연습생들 낚아채 계약서 찍게 했을 테다.
다만, 문제는 그 ‘네임 밸류’라는 게 배우 전문 소속사라는 거다.
하얗고 사치스러운 대리석 벽에 걸려 있는 유명 아티스트들의 프로필, 전부 다 배우들이다.
배우 소속사에서 겁도 없이 만든 아이돌, 라이트온.
이 그룹에게 빌런은 소속사 그 자체였다.
노래는 나름 괜찮게 뽑았지만, 그뿐이었다.
컨셉도 구려, 가사도 구려, 안무도 구려, 기획도 구려, 마케팅도 구려…….
그러니까 무려 ‘5구려 콤보’로.
라이트온은 데뷔 앨범부터 그 어느 곳에서도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한 채 처참하게 망해 버렸다.
그리고 지금은 휴식기를 가장한 수납을 당하고 있는 중이고.
“…….”
회사가 감각은 없지만, 돈이라도 있다는 게 다행이군.
회사에 돈까지 없다면?
음, 그건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다.
생각을 정리하며 차윤재의 뒤를 따르다 보니, 대표이사실로 추정되는, 커다란 문 앞에 당도했다.
“기다리고 계시니,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대표이사의 비서로 추정되는 남자가 옅게 웃으며 문고리를 잡았다.
두꺼운 문짝이 느릿하게 열리더니 내부가 언뜻 보이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그?
“크흠!”
상석을 차지한 4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 언뜻 거만해 보일 정도로 팔을 꼰 채 어서 자리에 앉으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양옆의 소파에는 멤버들이 사뭇 긴장한 듯, 정자세로 꼿꼿이 앉아 있었다.
나는 눈치껏 빈자리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노골적으로 멤버들을 훑은 김명훈이 연신 헛기침을 해대더니 입을 열었다.
“크흠! 그래. 내가 너희를 부른 이유는.”
대표는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잔뜩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다음 앨범은 아무래도 조금 미뤄질 것 같구나.”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차윤재가 자리에서 몸을 흠칫 떨더니, 혼란스러운 얼굴로 대표이사를 바라봤다.
“……대표님. 말이, 말이 다르십니다. 저번엔 분명-!”
딴에 용기를 낸 것인지 차윤재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는데, 대표이사는 듣기 싫다는 듯 녀석의 말을 잘랐다.
“크흐흠! 말할 수 없는 여러 사정이 있는 거지. 앨범이란 게 말이야! 원한다고 뚝딱하고 나오는 게 아니잖니. 너희는 그저 연습이나 열심히 하고, 어? 실력을 더 쌓으면 되는 거야!”
딱 봐도 그냥 성공하지도 못할 애들한테 돈 쓰기 싫다는 거 같은데, 혀가 쓸데없이 길다.
찔리는 게 있는지 억지스러운 논리로 변명을 해대는 꼴이 영 같잖았다.
동시에 나도 초면인 대표이사에 대한 등급을 조정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이 주름진 중년에게 성을 떼고 부르는 팬들이 너무한 게 아닌가……’ 싶었지만, 지금 그 생각을 정정하겠다.
이 인간은 그렇게 불릴 만하다.
명훈이.
나야 이런 말을 들어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지만, 멤버들의 얼굴은 참담한 수준이다.
나도 눈치껏 바닥을 내려보고 있던, 그 순간이었다.
띠링!
귓가에 들려오는 익숙하고도 X같은 소리에 속으로 욕을 짓씹으며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
손에 쥐고 있던 현미 녹차를 떨어뜨릴 뻔했다.
[망돌의 그림자를 없애라!]
아이고 세상에! 다들 얼굴에 그림자가 가득합니다.
제한 기간 내에 타깃의 얼굴에 드리워진 망돌의 그림자를 없애주세요!
그림자가 제거될 때마다, 특별한 선물은 덤!
타깃 - Light on (2/5)
제한 기간 - ???
성공 시 ▶ 10,000골드 지급
실패 시 ▶ 팀 와해
‘……팀 와해?’
와해면 TOP100은 무슨, 차트인도 당연히 실패겠고.
죽이겠다는 소리를 길게도 적어놨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쟤는 은근히 눈치가 빠르다며 감탄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이것까지 중계하면 어쩌냐고 화를 냅니다!]
제한 기간은 대체 왜 알려주지 않는 건지, 지랄 맞은 심보를 당최 이해할 수 없었다.
시한폭탄도 아니고.
“…….”
“크흠, 어디 몸이 안 좋기라도 한 게냐.”
내 안색이 어지간히 썩어들어 갔는지, 대표가 나를 슬쩍 흘기더니 머그잔을 내려놓으며 괜히 언성을 높였다.
“내가 괜히 너네 컴백 안 시켜주는 게 아니야!”
아무래도 민망한 모양이지.
“크흠, 흠! 그러니까 너희는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 말아라. 누구보다 너희 성공을 바라는 건 바로 나! 김명훈이다. 알고 있지?”
영혼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더니, 명훈이는 머쓱한 듯 말을 이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이제는 명훈이라 부르기로 작정한 거냐 묻습니다!]
“크흠. 너네는 뭣보다 나를 믿어야 해. 그래야 나도 너희를 밀어줄 수 있는 거지!”
김명훈의 설교를 몇십 분이나 들었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귓등으로도 안 들렸지만 말이다.
어느샌가 들어온 비서가 곧 미팅을 가야 한다고 전하자, 그는 드디어 우리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 * *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무거운 정적만이 흘렀다. 누구 하나 입을 여는 놈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굉장히 혼란스럽다.
아이돌 활동에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치는 동기화로 얻어냈다.
하지만 원래 성해온의 기억이나, 자아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자아는 온전히 내 것이라는 거겠지.’
분명히 성해온의 자아는 없다.
이 몸을 지배하고 움직이는 건 오로지 나의 뜻, 나의 자아다.
하지만 성해온의 것으로 추정되는 감정의 잔재가 아주 미약하게 느껴진다.
……이를테면 적대감.
아니, 이걸 고작 ‘적대’라는 표현으로 넘어가도 될지 의문일 정도로 멤버들에게 혐오감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원래 나도 사람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놈이었으니 이건 뭐, 괜찮다.
딱히 이질감이 들거나 혼란스럽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환장하겠는 건 이렇게 불쾌감을 느끼는 동시에!
……이해성의 오타쿠적 사고 회로까지 불쑥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X발.’
조수석에 앉은 나는 깊은 한숨을 속으로 삼켜내며 곁눈질로 백미러를 살폈다.
‘그러니까, 이놈들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건데.’
우선 저기 안절부절못하며, 참담한 분위기의 멤버들을 살피고 있는 녀석은 최승하.
내 안의 오타쿠 자아의 주장을 따르자면, 딱 대형견 상이라고 한다.
생각이 이 정도에서 끝나면 나도 큰 불만을 갖지 않을 거다.
현재 내 안의 오타쿠 자아는 정도를 모르는지 주접을 늘어놓고 있었다.
‘강아지 상에도 종류가 있으며 말티즈나 치와와, 포메라니안같이 소형견을 닮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골든레트리버나 사모예드, 도베르만과 같이 대형견을 닮은 사람이 있고 저 녀석은 햇살 느낌이 나니 골든레트리버에 가까운 것 같다는 정보 따위 알고 싶지 않다고.’
어느새 내 눈동자는 공허하게 텅 비어 있었다.
당장 혀라도 깨물고 싶은 마음이었다.
빌어먹을,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건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
같은 거 달린 놈 상판을 보면서 이딴 생각 하고 싶지 않단 말이다.
하지만 나의 간절한 마음은 닿지도 않는지, 오타쿠 자아는 감탄을 이어갔다.
……정말 기절이나 하고 싶었다.
최승하의 옆에 앉아 있는 녀석은 류인.
‘각 잡힌 이목구비와 무척 긴 팔다리, 너른 어깨에 대비되는 슬렌더한 체형이 자아내는 비율이 훌륭하며, 흑요석같이 새까만 눈동자와 나른한 얼굴이 기가 막히게 잘 어울림과 동시에 대형 고양잇과, 혹은 늑대나 표범, 도베르만 등으로 모에화될 가능성이 다분한 놈이라는 것도 전혀 궁금하지 않다. ……이해성, 진정해라.’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딴 생각을 계속할 바엔 진심으로 한강에 뛰어들고 싶었다.
이해성이 이런 주접을 떨 땐 옆에서 적당히 고개나 끄덕이면서 한 귀로 흘리면 그만이었는데.
……이건 고문이다.
오소소!
이미 온몸엔 소름이 돋은 지 오래였다.
‘생각’만 들어서 다행이지.
이게 ‘감정’으로 이어졌다면 상상하기도 싫다.
이해성의 자아가 불쑥 튀어나오는 느낌은, 쉽게 설명하자면…….
그래, 마치 누군가가 내 귓가에 대고 속삭이는 것처럼 생각이 스쳤다가 금세 사라진다.
내 생각이라는 느낌보단, ‘타인’의 생각이란 느낌에 더 가깝다.
그렇기에 자괴감은 조금 덜하지만, 불쾌한 건 불쾌한 것이다.
저 녀석의 이름은 신유하.
택시에서 찾아본 정보로 미루어볼 때, 대형 소속사에서 데뷔를 하지 못한 채 이곳으로 온 녀석인 듯하다.
눈가를 가릴 정도로 머리칼을 덥수룩하게 기른지라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아예 보지 못했으면 좋았을 텐데.’
차에 올라타는 순간, 신유하의 앞머리가 바람에 휘날렸다.
그때 순간적으로 ‘청순가련 미남?’이라는 6글자를 입 밖으로 내뱉을 뻔한 걸 정신력으로 간신히 참아냈다.
‘내뱉었으면 당장 도로에 달려들었을지도.’
그 옆에 앉아 있는 녀석은 한수현.
포털 사이트상으로 봤을 때 18살로, 이 그룹의 막내인 듯하다.
밝은 갈색의 결 좋은 반곱슬머리가 눈에 띄었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오타쿠 자아가 귀엽다고 난리 치는 것을 보니 귀여운 상인 듯하다.
이해성의 견해를 빌리자면, 음.
‘……햄스터, 병아리, 토끼, 사슴, 소형견 등등 귀여운 소동물은 다 갖다 대고 있군.’
내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그만 생각하도록 하겠다.
마지막으로 맨 뒤에 앉아 어마어마한 기세를 내뿜으며 창밖만 바라보고 있는 저 녀석, 차윤재.
이미 숙소에서 아기 고양이인지 나발인지 한 차례 주접을 떨어젖혀서 그런지 오타쿠 자아가 잠잠했다.
툭-
나는 모든 걸 해탈한 얼굴로 조수석 창가에 머리를 기댄 채 눈을 질끈 감았다.
“…….”
이해성의 사고 회로를 100% 복사해 왔다면 얼마나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