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6화
“어, 형 어디 가시게요?”
“어.”
“어디 가시는데요?”
“……잠깐 볼일이 있어서.”
“저도 같이 갈까요?”
나는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약간 시무룩한 표정이 스쳤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애초에 나가는 이유가 최승하 때문인데.
자기 딴엔 친해졌다고 생각했는지 끊임없이 말을 걸어와서 혼자만의 시간이 절실했다.
나는 성해온의 옷장에서 옷을 대충 골라 입고 검은 모자를 눌러쓴 뒤 숙소에서 나와 무작정 길을 걷다가 한적해 보이는 개인 카페에 들어갔다.
짤랑!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나는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모퉁이 자리에 가방을 놓고 매대로 향했다.
“아메리카노 1잔 주세요.”
“결제 완료되셨습니다. 금방 드릴게요.”
금세 나온 커피를 손에 들고 자리에 앉은 나는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펼쳤다.
‘잠금이 걸려 있지 않아 다행이지.’
포털 사이트 검색 엔진에 라이트온을 검색하자마자 그룹에 관련된 정보가 줄지어 나오기 시작했다.
“……흠.”
역시나 라이트온은 첫 앨범을 장렬하게 말아먹고 활동을 이어가지 않은 상태였다.
라이트온의 첫 타이틀 곡, .
“……한번 들어볼까.”
나는 이어폰을 낀 채 재생 바를 눌렀다.
들어보니 노래 자체는 꽤 잘 뽑았다.
나름 트렌디하고 리드미컬한 사운드에 익숙한 레트로한 분위기가 은은하게 더해져 나쁘지 않은 조화를 이룬다.
익숙하다는 건 대중들로 하여금 이미 검증이 되었다는 뜻, 그렇기에 빠른 비트임에도 귀에 착 감기는 느낌마저 드는 노래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양산형의 느낌이 강하다.
그렇기에 감탄이 터져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괜찮네?’라는 반응은 충분히 끌어낼 수 있을 정도란 말이다.
물론 ‘멜로디’만 봤을 때.
문제는 바로 ‘가사’다.
일반적으로 가사가 픽스되는 경로를 설명하자면, 여러 작사가에게 원하는 분위기를 담은 레퍼런스를 넘긴다.
그중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내어 최종적으로 가사를 완성하는 게 보통이다.
안무도 마찬가지, 여러 안무가에게 외주를 넣어 맘에 드는 부분만 골라 완성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물론, 유명한 작사가나 안무가는 홀로 작품을 완성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 타이틀곡의 작사가는 단 한 명.
나는 이 미치도록 구린 가사를 도대체 누가 뽑았나 궁금할 지경이라서 작사가의 이름을 검색해 봤다.
순식간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흠.”
이쯤 되니 정말 소속사가 이 그룹을 성공시킬 의향이 있었던 건지 궁금해질 지경이다.
……중년의 작사가였다.
아이돌 노래엔 참여해 본 적도 없는.
척 봐도 회사 윗분들 지인일 것이라 확신한다.
가사가 구려봤자 얼마나 구리겠냐는 사람에게 이 가사를 보고도 여전히 그런 말이 나오냐고 되묻고 싶다.
- 나와 함께 으라차차!
- 불안! 걱정! 근심! 저 멀리로 Cha! Cha!
- 힘을 내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해.
- 다시 한번 으라차차!
- 힘을 내 너와 함께라면 전부 할 수 있는 나야.
- 내 손을 잡고 함께 발을 맞춰 걷자.
- 슬픈 생각은 저 멀리 Um~ La Cha Cha!
나는 말라비틀어진 동태와 다를 바 없는 눈빛을 장착한 채 노래를 듣다가 조용히 귀에서 이어폰을 빼고 중얼거렸다.
“소속 가수가 탈퇴하겠다고 난리 안 부린 게 용할 정도로군.”
불현듯 이해성의 비밀 계정, 즉 비계 트친으로 추정되는 곽덕배 씨의 트윗 내용이 떠올랐다.
- 얘들아 내가 총대 메고 명훈이 머리 프라이팬으로 치고 올게!
- 진짜 김명훈 사주 ㅈㄴ궁금해서 미칠 지경임 얼마나 개쩌는 사주길래 진짜 명훈이 주제에 이런 애들을 여섯이나 모았지?
- 아니아니 tlqkf 으라차차? 아니, 으라차차? 으. 라. 차. 차?
- 가사 누가 썼어? 우리 집 강아지가 써도 저렇겐 안 써
- 어떡해 춤도 너무너무 구려 #김명훈_정신_차려_위원회
- 진지하게 출장 암살 서비스 그런 거 어디 없을까? 내공 100 겁니다
이해성이 기억하는 것들이 마치 내 기억인 것처럼 떠오르는 경험은 아직도 생소하기 그지없지만, 곽덕배 씨의 화려한 욕설에 공감하는 바다.
솔직히 팬들이 이런 과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간다.
아마 데뷔 컨셉만 잘 잡아줬어도, 아니, 첫 앨범이 망했다 해도 꾸준히 활동만 시켰다면 떴을지도 모른다.
라이트온은 객관적으로도 훌륭한 외관이니까.
SNS에 라이트온을 검색하면 얼굴만 끝내주는 망돌이라는 의견이 팽배하니, 회사가 안티라는 설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다.
보아하니 대부분 아이돌로서의 끼도 있고, 뚝딱이는 녀석도 없이 잘한다.
‘한번 봐볼까?’라는 마음으로 직캠을 누른 사람도 기겁하며 도망칠 정도의 무대라는 게 흠이지만 말이다.
-저 멀리 Cha! Cha!
이 부분에 정말 무슨 축구공이라도 차는 것처럼 발로 차는 안무가 있다면…… 믿어지겠는가.
우선 나는 믿기지 않는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안쓰러운 눈빛을 보냅니다!]
정말이지 소속사가 깜냥이 안 되면, 여러 안무가한테 외주라도 맡겨야 할 텐데.
이건 뭐…….
나는 잘 모르는 입장인데도 불구하고 의상까지 심히 구려 보인다.
솔직히, ‘멤버들만’ 보자면 신인치고 카메라도 잘 찾고, 표정도 좋다.
보통 아이돌들의 데뷔 무대를 보면 카메라도 잘 못 찾고 덜덜 떠는 게 눈에 보이는 경우가 있기 마련인데, 데뷔한 지 몇 년 된 것처럼 자연스럽다.
근데 정말이지 문제는…… 멤버들을 제외한 모든 것이로군.
‘회사가 감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다니.’
냉정하게 사업 접어야 할 수준이라고 본다.
그다음으로 나는 라이트온의 자체 컨텐츠와 그 외의 것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컨텐츠는 당연히 없고, 팬들과 소통도 거의 하지 않는 상태라…….”
나는 한숨 섞인 목소리로 작게 중얼거렸다.
“이러니 뜰 수가 있나.”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자고로 아이돌이 성공하려면?
일차적으로 중요한 건 단연코 얼굴, 라이트온은 이걸 과할 정도로 충족했지만 망했다.
그걸 뒷받쳐 줄 기획, 마케팅, 곡, 안무, 컨셉 모든 게 구렸으니까.
게다가 팬들과의 소통도 없었다.
이건 전적으로 소속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사측에서 컨텐츠도 만들고, 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앱이라든가 그런 걸 만들어줘야 가수가 그걸로 죽을 쑤든 밥을 만들든 하는 거지.
앨범을 구매해 주고, 노래를 스트리밍해 주고…… 그거 다 팬들이 해주는 거다.
그래야 음원 사이트에도 랭크인 할 수 있는 거고, 그러한 성적을 기반으로 음방에서 1위도 하는 거지.
더불어 팬덤의 화력으로 노래가 TOP100 안으로 들어가 줘야 해당 가수에 관심이 없는 대중들도 실시간 차트 재생으로 노래를 접하게 된다.
근데 팬들은 뭐 뚝딱 나오나?
‘절대로 아니다.’
나름 잘나간다는 아이돌들도 팬들 못 떠나게 막으려고 많이 노력한다.
활동하지 않는 공백기에도 컨텐츠를 만들어 덕질할 거리를 만들어주거나, 더 자주 소통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밀리어스 정도 되는 정상급 아이돌도 틈날 때마다 U라이브를 켜 팬들과 소통하는 것을 봐왔다.
근데 라이트온은 소속사의 방치로 그나마 있는 한 줌 팬덤까지 챙기지 못하는 총체적 난국.
“미쳤군.”
절로 목이 타서 앞에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이켰다.
하지만 나에겐 해결할 방법이 있다.
어젯밤에 누워서 상태창을 둘러보다가 본 게 있거든.
‘상태창.’
속으로 중얼거리자 곧바로 눈앞에 창이 떠올랐다.
[성해온]
체력 B-
정신력 S+
비주얼 B+
노래 A
춤 B-
특성
▶[K팝 망령의 눈(A)]
진행 중인 미션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망돌의 그림자를 없애라!
보유 골드 900G
이제 제법 사용법을 알 것 같다.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조작하듯, 눈짓만으로도 창을 올리고 내리고 할 수 있었다.
보유 골드를 누르자 [골드 상점]이라는 창이 떠올랐다.
“으음…….”
사실 가진 게 900G밖에 없어서 볼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내가 가진 금액보다 큰 금액의 상품은 모조리 [??????] 이런 식으로 비공개 처리돼 있으니까.
‘내가 이걸 살 만한 돈이 있어야 보여주는 건가 보지?’
나는 혀를 짧게 찼다. 더럽고 치사한 놈들.
하지만 곧 현실에 순응한 나는 보이는 것들을 유심히 둘러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살 만한 게 없는데.”
내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있는 건 끽해봐야, 정말 쓸모없어 보이는 D급 이하 특성과 아이템이었다.
“……이거나 사볼까.”
무려 800G, 하지만 이 중엔 이게 제일 나아 보였다.
[해당 상품을 구매하시겠습니까?]
[YES] ◀
[NO]
나는 망설임 없이 [YES]를 선택했다.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내가 산 건 바로 이거다.
[~800G의 행운~]
빙글빙글 돌려보세요!
엄청난 게 나올지도 모릅니다?
▲ F급 ~ A급 특성/아이템이 랜덤으로 등장!
……그래, 돈이 없으면 운에라도 맡겨야지.
사실 확신이 서지 않는 것에 거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지만, 지금 이 답도 없는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 만한 게 나오길 기도했다.
‘내가 또 이런 운이 좋기도 하고.’
이해성 대신 내가 앨범을 사면 최애 포토카드가 나온다든가, 이해성의 부탁으로 사연을 냈다 하면 이상할 정도로 당첨이 잘되어 사인 폴라로이드와 같은 경품을 받은 적도 여러 번이다.
부디 쓸 만한 게 나와주길 빌며 나는 두 손을 곱게 마주 잡았다.
[‘~800G의 행운~’을 열어보시겠습니까?]
[YES]◀
[NO]
느낌이 왔다. 지금이다.
딸깍!
“……!!”
[YES]를 누르자마자 내 눈앞에 거대한 뽑기 기계가 등장했다.
휙! 휘익!
놀람도 잠시, 나는 다급하게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평화로운 거로 봐서 나에게만 보이는 건가.
[띠리링! 띠링! 버튼을 눌러주세요! 띠링! 띠링!]
‘뭐야. ……이 새끼 뭔데 말도 해.’
다른 사람 눈에 안 보이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만일 보였다면 미친놈 취급받으며 경찰서에 질질 끌려갔을 거다.
나는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켜 정신 나간 기계에 붙어 있는 버튼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내가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기계는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미친 듯이 덜그덕! 덜그덕! 소리를 내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파아아앗-!
이내 기계에선 눈이 부실 정도로 찬란한 노란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흠.”
나는 주체할 수 없는 입꼬리를 손으로 가리고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수년간 이해성이 하는 가챠게임을 지켜본 결과, 이건 무조건이다.
자고로 높은 등급의 무언가가 등장할수록 이펙트가 화려한 법.
‘이건…… 안 봐도 A급이겠는데.’
나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기계를 바라봤다.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내놔라.’
[축하합니다!]
[……그런가?(B)] 획득!
툭…….
어이가 없는 나머지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버렸다.
아무래도 한 대 치면 기계가 제정신을 차리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순간이었다.
기계는 할 일이 끝났다는 듯 홀연히 사라졌다. 아무래도 맞기 싫어서 도망간 게 틀림없었다.
차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놓고, 특성을 살폈다.
[……그런가?(B)]
: 특성이 발동될 때 반경 5m 안에 있는 상대방은 이상하게 설득되는 기분을 느낍니다!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허탈한 표정으로 특성을 살폈다.
“…….”
“……괜찮나.”
그래. 골드 상점에 있던 다른 것들보단 쓸 만한 거 같다.
‘첫 뽑기에 이 정도면 아주 훌륭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긍정 회로를 돌려댔다.
뭣보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당장, 사용해 보러 가야지.
누구한테?
당연히 이 모든 참사의 원흉인 김명훈한테.
* * *
나는 곧장 사옥으로 향했다.
사원증을 찍고 자연스럽게 출입하는 데 성공한 나는 대표이사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갑자기 불쑥 찾아온 내가 곤란한지 비서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대표님을 뵙고 싶은데요.”
비서는 대표실을 작게 노크했다.
“대표님. 소속 아티스트분이 오셨습니다.”
“뭐? 누구.”
“성해온 군이 찾아오셨습니다.”
“음? 그 애가 왜. 크흠…… 들어오라고 해.”
대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렸다.
넓고 사치스러운 실내에 금색 명패가 유난히도 반짝거렸다.
[대표이사 김명훈]
결전의 시간이다.
명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