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8화
“형님들은 정말 자존심도 없으십니까?”
차윤재가 방을 찾아온 류인과 최승하를 흘겨보며 조용히 외쳤다.
“그 사람이 이제 와서 리더 노릇을 하겠다는데, 다들 분하지도 않으시냐는 말입니다!”
라이트온 멤버 중에 성해온에게 호감을 가진 이가 있을 리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꾸준히 멤버들을 공기 취급해 왔기 때문이다.
“……음. 아무래도 놀라긴 했지.”
류인의 말에 최승하가 곧바로 말을 얹었다.
“……내성적, 으음. 형 말로는 내성적이었다는데?”
당장에라도 거품을 물 기세인 차윤재가 언성을 높였다.
“무, 무슨 얼어 죽을……! 세상에 그 어떤 내성적인 인간이 자그마치 일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말 한 마디를 안 합니까! 그 인간 저희 번호는 저장했답니까?”
류인과 최승하가 곧장 입을 다물었다.
“으음~ 그렇긴 한데 요즘 이상할 정도로 달라지긴 했지? 우리랑 밥도 같이 먹고, 말대꾸도 해주고!”
이 상황에서도 싱글벙글 웃는 최승하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든 차윤재가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저는 그 사람, 리더로 인정 못 합니다……!”
“윤재야. 좋든 실든 우리는 같이 활동해야 하는 그룹이야.”
류인의 말에 차윤재가 입술을 깨물었다.
“……무, 물론 같이 활동이야 하겠지만 그냥, 사적으로 말 섞는 게 싫다는 겁니다. 형님들이 걱정하실 만한 행동, 공식 석상에선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 * *
“그렇게 됐어요!”
나름의 배려인지 이 녀석은 차윤재의 방에서 있었던 대화 내용 중 대부분을 삭제하고 결론만 말해줬다.
대충 요약하자면 ‘차윤재는 화를 풀지 않았으며, 마음이 여린 친구니 시간을 두고 다가가면 언젠가는 풀릴 것이다!’였다.
나는 걱정 말라며 헤실 웃고 있는 최승하를 바라보며 침음했다.
“음.”
역시나 라이트온 멤버들은 성해온에 대한 적대감이 거세다.
왜 그런 것인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분명 성해온의 인성 문제일 것이다.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최대한 순한 얼굴로 최승하를 돌아봤다.
흠칫, 몸을 떤 최승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나는 싱긋 웃었다.
“도와주라.”
미안하지만, 나는 시간이 없거든.
* * *
나이론 내가 형이지만, 어제 이 녀석의 성질머리를 보아하니 정말 맞을 수도 있겠다 싶다.
“하아…….”
차윤재가 짜증을 가득 담은 한숨을 쉬어댔다.
‘음. 지금이라도 일단 사과할까.’
원래 성해온의 기억 따위 없어서, 사과하고 싶은 마음은 먼지만큼도 들지 않지만 말이다.
나는 얼굴에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걸친 후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지금 뭐 하자는 겁니까?”
다른 이었다면 눈을 쳐다보지도 못했을, 실로 만만치 않은 기세였다.
이십 년을 넘게 살아온 내 원래 성격도 한가락 했기에 그닥 타격은 없다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냐 묻는다면, 그래. 일종의 친해지기 프로젝트라고 해두겠다.
물론 동의 없이 끌고 나오긴 했다.
그도 그럴 게 나가자는 말에 순순히 따라 나올 녀석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최승하랑 짜고 사기 쳤다.
‘오늘 보니 그 녀석, 연기에 꽤 소질이 있더라고.’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 * *
때는 어젯밤, 최승하에게 차윤재가 화났다는 소식을 대충 전해 들었을 무렵이다.
“도와주라.”
이렇게 된 이상 뻔뻔하게 나가기로 한 내가 외치자, 최승하가 식은땀을 삐질 흘리며 되물었다.
“……뭘요?”
본인도 불길함을 느꼈는지 시선을 피하더라.
나는 눈을 내리깔며 안쓰러운 얼굴을 만들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경악합니다!]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
“누구랑요?”
“차윤재.”
최승하에게 떠보아도 딱히 차윤재의 상황이나, 놈에 대해 깊이 아는 녀석이 없는 듯했다.
안 그래도 망돌의 그림자가 가장 심각한 녀석인데, 혹시 탈퇴라도 해버리면 내 상황이 난감해진다고.
그러니까, 나는 그 녀석과 대화를 해야 한다.
“……허업.”
침대에 기대 감자칩을 먹던 최승하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세상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이제는 손가락을 펴 나와 문밖을 번갈아 가르키고 있는 최승하가 재차 물었다.
“형…… 형이요? 윤재랑?”
나는 눈을 최대한 착하게 뜬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좀 도와줄래?”
끄덕……!
최승하가 마치 전쟁터에 출전하는 장수의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그리고 다음 날, 나와 최승하는 작전 수행을 위해 방을 나섰다.
“와. 잠시만요 형, 저 너무 떨리는데요.”
나는 녀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 마. 연습한 대로만 하면 되니까, 얼른 문 열자.”
샤샤샥!
그렇게 말하고 정작 나는 야비하게 문 옆의 사각지대에 빠르게 몸을 숨겼다.
사실대로 불자면, 내가 말 걸면 반감만 더 커질 것 같아서 죄 없는 최승하를 끌어들인 거다.
이윽고 똑똑, 소리가 작게 울려 퍼졌다.
최승하는 노크 후 차윤재가 있는 방문을 느릿하게 열었다.
“……윤재야.”
“……아, 승하 형님. 무슨 일이십니까?”
퀭한 얼굴로 책상에 앉아 있던 차윤재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밤새운 건가.
다크서클이 놀라울 정도로 많이 내려온 상태였다.
목을 가다듬은 최승하가 미리 짠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음. 오늘 대표님이 너랑 해온 형 부른 것 같던데?”
“예? 저희 둘을……?”
“아무 얘기 못 들었어? 해온 형은 벌써 준비하고 있더라고.”
“…….”
“너가 준비 안 하고 있는 것 같길래 혹시 모르나 해서…… 하핫~!”
최승하. 저 녀석, 연기를 시켜도 괜찮겠어.
“그러니…… 까, 너도 얼른 준비, 해?”
그렇게 말하며 최승하는 문을 닫고 참았던 숨을 내쉬며 너른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조용히 녀석에게 엄지를 치켜올려 보였다.
서둘러 나갈 채비를 마친 나는, 거실 소파에 앉았다.
몇 분이나 지났는지, 나갈 준비를 마친 차윤재가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거실에 날 발견하자마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나를 본체만체하고 현관 밖으로 나간 녀석을 허겁지겁 뒤쫓았다. ……내 팔자야.
걸음은 얼마나 빠른지, 벌써 아파트 앞에 서 있는 차윤재의 옆으로 다가갔다.
참고로 이 녀석, 엘리베이터도 안 기다려 줬다.
“내가 택시 불렀어.”
“……회사에서 부른 일인데, 차가 오지 않았단 말씀이십니까?”
회사에 볼일이 있을 땐 사 측에서 매니저를 보내주는지, 녀석이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성해온의 얼굴을 쳐다보기도 싫은지 금방 고개를 돌렸지만.
“바쁘신가 본데.”
천연덕스럽게 말을 돌린 나는, 도착한 택시 문을 열고 차윤재를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
“기사님. 출발해 주세요.”
목적지는 당연하게도 회사가 아니다.
“이 길이 아닌 것 같은데…….”
뒷좌석에서 이런 중얼거림이 들려왔으나, 나는 눈을 감고 모른 척했다.
“목적지 다 왔습니다.”
택시의 속도가 서서히 줄어들더니 이내 완전히 멈춰 섰다.
계속 창밖을 살피던 차윤재가 다급하게 목소리를 키웠다.
“예? 여, 여기가 아닌-”
“감사합니다. 기사님.”
나는 녀석의 말을 가뿐히 끊은 뒤, 빠르게 밖으로 나와 뒷좌석의 문을 열고 차윤재를 끌어냈다.
그래. 이게 오늘 외출의 전말이다.
* * *
그리고 지금 차윤재의 얼굴은, 한마디로 음.
‘내가 연장자만 아니었어도 면전에 욕을 뱉었겠는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어떻게 알았냐며 놀라워합니다!]
차윤재는 한숨을 내뱉더니 말문을 열었다.
“회사에서 호출이 있다더니 갑자기 이상한 곳으로 향할 때부터…… 하. 아니, 됐습니다, 그냥 저 먼저 가겠습니다!”
그러고는 나와 상종도 하기 싫다는 듯 검은 머리칼을 거칠게 쓸어 넘기며 등을 돌렸다.
누군 너랑 친해지고 싶은 줄 알아?
하지만 마음과 다르게 나는 녀석의 팔을 간절하게 잡아챘다.
덥석!
“어제 미안하다며.”
방금 내가 봐도 좀 찌질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애잔한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나도 아니까 제발 조용히 좀 해줬으면 한다.
“예?”
차윤재가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어제 죄송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게 미안한 사람의 표정이냐?
‘하지만 까칠한 아기 고양이니까 봐주도록 할까.’
X발, 방금 또 내 안의 오타쿠 자아의 영향으로 소름 돋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해성!’
나는 아득해져 가는 멘탈을 다잡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면 밥 내가 살 테니까 같이 먹고 가.”
“하…… 밥은 무슨!”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내 팔을 쳐낸 차윤재가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그런 기세에 굴할 내가 아니었다.
“나온 김에 밥만 같이 먹어.”
“몇 번을 말합니까? 싫습니다!”
음, 이렇게 된 이상 지금은 원래 내 성격이고 뭐고 다 내려놔야 한다.
‘이대로 이놈 숙소에 보내면, 언제 둘만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 번이야 사기당해도 두 번은 안 당할 놈이니까.
나는 고개를 아스팔트 바닥으로 처박고 짐짓 안쓰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밖에서 혼자 먹어본 적은 없는데.”
[……그런가?(B)]가 발동됩니다!
진짜 이거 쓸 만하다니까.
* * *
“사장님. 저희 떡볶이 2인분이랑 모둠 튀김, 순대, 어묵이랑 김밥 한 줄 주세요.”
나는 혹시라도 녀석의 마음이 바뀌어 떠날세라 빠르게 음식을 주문했다.
‘어제 최승하와 전략을 짜다가 이 녀석이 떡볶이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아냈지.’
나름 근방에서 유명한 분식집을 찾아온 거다.
“맛있게 드세요~”
분식집답게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음식들이 빠르게 테이블에 세팅되기 시작했다.
맞은편에 앉은 녀석은 내 얼굴을 쳐다보기도 싫은지 고개를 숙인 채 나온 음식만 묵묵히 먹어댔다.
어지간히 빨리 일어나고 싶은 모양새였다.
어림도 없지.
“윤재야.”
나는 꽤나 친근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떡볶이를 씹던 녀석의 몸이 잠깐 소름 돋는다는 듯, 부르르 떨렸지만 알 바 아니었다.
“…….”
그리고 결과는 역시나 상쾌하게 씹혔다.
“너 춤 잘 추더라.”
무거운 분위기 푸는 데는 칭찬만 한 게 없거든.
게다가 노래나 춤에 대한 칭찬 싫어할 아이돌은 없을 테다.
대화거리를 찾으려 새벽 동안 차윤재의 얼마 없는 직캠을 봤는데, 이 녀석은 춤선이 괜찮았다.
원래 춤 실력도 좋은 듯싶지만, 팔다리가 곧고 길쭉해서 같은 안무를 춰도 선이 더 괜찮았다.
리듬감도 좋은 데다가, 강약 조절도 잘하는 것 같고.
라이트온의 데뷔곡 같은, 눈물겨운 안무를 춰도 나름 괜찮아 보일 정도니 말 다 했다.
차윤재는 내가 내뱉은 칭찬이 들리지 않는다는 듯 무시를 일관했다.
‘내가 어떻게든 저 녀석이랑 대화하고야 만다.’
나는 포크를 내려두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뭐든 잘하는 데다가 얼굴도 잘생겼으니 부모님도 진짜 자랑스러워하시겠다.”
입이 더럽게 안 떼어졌다.
물론 성해온의 전적으로 벌어진 사이겠지만, 나로서는 이런 상황이 유쾌할 리 없었다.
“…….”
정적이 몇 분이나 흘렀을까, 차윤재가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부모님 없습니다.”
* * *
차윤재는 할머니와 사는 게, 그리고 부모의 부재가 전혀 부끄럽지 않다.
그에게 부모란, 그저 생물학적 부모일 뿐.
자신을 낳아준 사람,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에게 굳이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보내는 값싼 동정이 싫어서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무척이나 역겹게도 제 불행을 가지고 본인의 인생과 비교하며 위안 삼기도 했다.
- 지금까지 바르게 산 네가 대단하다. 정말 대단해.
- 난 너처럼 이겨내지 못했을 거야. 내가 보기에 너는 자부심을 가져도 돼!
- 너 정말 힘들었겠구나. 잘 컸어…….
지금까지 본인의 사정을 안 사람들은 하나같이 저를 안쓰럽다는 듯 쳐다보며 제 딴엔 위로라고 저런 언행을 일삼았다.
위로를 해달라고 한 적도 없거니와, 오히려 그런 소리를 잠자코 듣고 있자면 자신이 초라하고 비참하게 느껴지곤 했다.
단편적인 사실만 아는 주제에 남의 행복과 불행을 멋대로 재단하는 족속들에는 신물이 난 지 오래다.
분명 제 앞에 앉아 있는 이 인간도 그들과 엇비슷한 반응일 거다.
갑자기 친한 척 굴지 말고, 차라리 값싼 동정이나 내뱉으며 본인을 귀찮게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솔직하게 상대방이 당황스러워할 걸 안다. 그럼에도 일부러 말했다.
부모님 관련된 질문은 그냥 무시하거나 적당히 둘러대는 것이 가장 낫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그러냐?”
곧이어 들려오는 성해온의 대답에 차윤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반응은 꿈에서도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하기야 저 인간은 원체 남한테 관심이 없었으니, 말뿐일 게 분명했다.
그래, 분명 말은 저렇게 해도 날 불쌍하다는 듯 하찮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게 뻔했다!
……아니면 평소와 같이 멸시의 눈빛을 보내고 있거나!
차윤재는 테이블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느릿하게 끌어 올렸다.
“……?”
차윤재의 동공이 천천히 확장됐다.
그러니까 성해온은 동정의 눈빛은커녕…… 자신의 이야기를 못 들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떡볶이를 숨도 안 쉬고 게걸스레 먹고 있었다.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이 말이다.
“…….”
‘이런 반응은 처음인데.’
순간, 차윤재는 깨달았다.
“……아.”
자신이 여태껏 주위 사람들에게 원했던 반응은 이런 거였음을 말이다.
위로도 동정도 동경도 아닌, 이런 반응 말이다.
* * *
‘X됐군.’
한편, 성해온은 맛도 느껴지지 않는 음식물을 씹으며 속으로는 몇 분 전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질겅 질겅
이제 떡이 아니라 고무라도 씹는 것 같았다.
‘정신 나간 놈아. 생각 좀 하고 말했어야지.’
자신도 역시 부모를 잃은 처지이기에, 이런 주제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면 안 될지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그러냐?’라는 말만 내뱉고 지금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욱여넣고 있었다.
‘표정에서 당황스러움을 들키면 안 된다. 그것만큼 기분 더러운 게 없어.’
성해온의 S+ 정신력 때문인지, 마음은 평온하기 그지없었지만 등에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흐르는 기분이었다.
지금 차윤재는 아마도 내 눈치라곤 개나 줘버린 질문을 듣고 날 경멸하고 있을 테다.
쌓인 악감정을 조금이라도 풀어보고자 나온 건데 멍청한 말실수나 하다니.
자신이 이렇게 한심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