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9화
역시나 차윤재는 내가 계산할 동안 기다려 주는 호의 따위 베풀지 않았다.
나는 서둘러 문을 열고 나가 주위를 살폈다. 설마 먼저 택시를 잡아 가버린 걸까.
음, 차윤재라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저 멀리 차윤재로 추정되는 인영이 보였다.
빠른 걸음으로 녀석의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돌연 차윤재의 발걸음이 멈췄다.
“……?”
갑자기 왜 멈추는 거지.
그때 제대로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만큼, 아주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느리십니까?”
자기가 먼저 갔으면서, 내 탓을 하는 게 무척 어이가 없다.
그나저나 저 녀석이 웬일로 나한테 먼저 말을 걸지?
먼저 말을 건 걸 보면, 많이 화난 건 아닌가.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간격을 좁혔다.
그때, 차윤재가 택시 호출 어플을 켜며 말했다.
“제가 부르겠습니다.”
“아니, 잠깐만.”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차윤재의 옷자락을 잡고 어디론가 이끌었다.
당장 질색하며 혼자라도 택시를 잡고 집에 돌아가 버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순히 따라와 준다.
‘먼저 말 걸어주길래 혹시나 했는데 잘됐군.’
나는 곧바로 어딘가의 문을 열었다.
짤랑!
문이 열림과 동시에 가게 출입문에 달린 벨이 부딪히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아니, 하아.”
그리고 상황 파악을 할 새도 없이 이끌려 온 차윤재는 지금 이 상황이 어지간히 어이없다는 얼굴이었다.
“자, 잠깐 급하게 들를 데가 있다더니 그게 여기입니까?”
녀석은 영혼 없는 눈빛으로 내부를 둘러보며 말했다.
나라도 어이없을 상황인 걸 알기에 나는 그냥 뻔뻔하게 대응했다.
“이제 후식 먹어야지.”
아, 참고로 여긴 카페다.
그냥 눈에 보이는 곳 아무 데나 들어왔다.
“잠깐이라도 그렇게 생각한 내가 머저리지……!”
방금 차윤재가 뭐라 중얼거렸는데.
“못 들었어. 뭐라고?”
“저 먼저 갈 테니까. 알아서 오든지 말든지 하세요.”
나와 노닥거릴 마음 없다며 쌩 나가 버리려는 녀석에게 긴히 전할 말이 있어서 온 거니 듣고 가라고 설득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정말로 긴히 할 말이 있는 거냐 묻습니다.]
당연히 없다.
그저 이 녀석과 이야기를 틀 기회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뿐이다.
다행히 내 말을 들어줄 생각은 있는지 차윤재는 한껏 불퉁한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는 곧바로 계산대로 향해 매대 앞에 붙은 홍보 문구를 유심히 살폈다.
【사장의 강력 추천! 생딸기 과육이 듬뿍 들어간 새콤달콤한 딸기 라떼!】
“흠.”
나도 대학 들어가기 전엔 무조건 달달한 것만 시켜 먹었으니 저 녀석도 비슷하겠지.
아직 미성년자니까 달콤한 걸 좋아할 거다.
처음 아메리카노를 마셨을 땐 무슨 담뱃재 턴 맛이 나서, 그대로 뱉어버렸던 기억이 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생명수였더라고.’
주문을 마치고 나는 자리로 돌아갔다.
“무슨 할 말이십니까?”
참고로 나는 아직 자리에 앉지도 못했다.
차윤재의 눈빛이 꽤 살벌했다.
이번에도 허튼소리로 끌고 온 거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한 강력한 의지가 느껴졌다.
역시 이런 상황이라면 그냥 꾸밈없이 말하는 게 좋겠지.
괜히 가타부타 꾸며 말하면 반감만 살 거다.
“너랑 친해지고 싶어.”
내 말을 들은 차윤재의 얼굴이 순식간에 우그러졌다.
“고…….”
나는 곧바로 입을 꽉 다물었다. 이런 정신 나간……!
지금 하마터면 또, 이해성의 오타쿠적 자아가 나올 뻔했기 때문이다.
‘고운 얼굴에 주름지니까 인상 펴’라는 소리를 내뱉는 참사가 일어날 뻔했다는 뜻이다.
……긴장을 놓을 수가 없군.
머쓱함에 목을 가다듬은 뒤, 나는 차윤재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한 후 입을 열었다.
“못 믿겠지만, 진짜야.”
나는 진심을 가득 담은 신뢰의 눈빛을 장착한 채 녀석을 바라보았다.
따지고 보면 진심이다.
멤버들과는 계속 활동하면서 부딪힐 텐데, 이렇게 엮이는 놈들이랑은 웬만하면 트러블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자는 게 내 가치관인지라.
그때 진동벨이 부르르 울렸고 나는 초콜릿 케이크와 커피, 그리고 딸기 라떼가 담긴 쟁반을 들고 왔다.
“먹어.”
나는 녀석의 앞에 딸기 라떼와 포크를 놓아주며 말을 이었다.
“내가 전에 무신경했고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는 건 알아.”
난 이 몸의 과거를 모르기 때문에 솔직히 제대로는 알 수는 없지만, 여태껏 상황을 둘러본 결과…….
성해온의 인성이 똑바로 생겨먹지 않았다는 결론을 어렵지 않게 도출해 낼 수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뭉뚱그려서라도 반성을 하고 신뢰를 얻어야 한다.
“…….”
차윤재는 무언가 생각하는 얼굴로 입을 꾸욱 다물고 있었다.
“앞으로라도 잘하고 싶어. 리더잖아.”
“……리더, 리더요?”
드디어 입을 연 차윤재가 말을 이었다.
“저는 갑자기 왜 이러시는지 이해가 안 갑니다……! 저희가 뭘 하든 관심도 없지 않으셨습니까! 어, 없는 사람처럼…….”
음,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미션 실패에 걸려 있던 조건, 환생 랜덤.
솔직히 환생을 안 할 수만 있다면, 미션이고 뭐고 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억지로 새 인생이 주어진다면, 이왕이면 무난하고 평범한 인생을 살고 싶은 건 어떤 사람이든 똑같지 않을까.
그래서 미션을 받아들였다. 뭐, 받아들인 것도 강제적이었고 내 의지가 아니었다만.
이렇게 질색하는데, 뭐 나를 당장 좋아해 달라고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나는 모르는 일이지만 분명 성해온 인성으로 벌어진 관계일 테니, 변명하는 것도 조금 웃긴 일이고.
하지만 나에겐 목숨이 걸린 일인지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바뀌겠다고 하신 거, 솔직히 믿기기는커녕 기분만 나쁩니다!”
이 자식, 은근히 막말을 잘하는군…….
“……근데, 막 엄청나게 나쁘지는.”
그렇게 말하는 차윤재는 처음으로 내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예전엔 그런 말을 듣고 싶기도 했던 것도 같고.”
음, 역시 이제부터라도 잘하면-
내가 마음을 놓기 무섭게 차윤재가 날 선 눈빛으로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저, 이런 단 음료 질색입니다……!”
휙!
차윤재는 쟁반 위에 올려져 있는, 입도 대지 않은 내 커피를 가져갔다.
“여태껏 저희랑 동고동락하셨는데도 이런 거 하나를 모르시지 않습니까. 아, 이건 당연하긴 합니다. 저희한테 관심 없으셨으니. ……저희 번호는 저장하셨습니까?”
나는 눈을 흐릿하게 뜨고 차윤재의 시선을 피했다.
‘진짜 없으니까.’
성해온 이 새끼는 뭐 하는 놈이기에 주소록에 멤버들의 번호도 없는지 나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활동을 1년 넘게 했는데 번호가 없을 수가 있나.
내가 답이 없자, 눈을 크게 뜬 차윤재가 혼잣말하듯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 저, 저장도 안 하셨습니까?”
사아아-
차윤재와 나 사이에 어색한 정적이 감돌았다.
녀석은 피식 웃더니 자조적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역시 재수 없고 짜증 납니다……!”
“…….”
예고도 없이 던져진 직구에 속으로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지금 노닥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며 친절하게 경고해 줍니다.]
갑작스레 떠오른 메시지 속 알 수 없는 내용에 물음표를 띄운 순간,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그 사람을 마주하기 무섭게 듣기 싫은 띠링, 소리가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띠링!
[K팝 망령의 눈이 떠집니다!]
[K팝 망령의 눈(A)]이 발동됩니다!
이게 갑자기? 저번에 숨겨진 히든 특성이라며 이해성 앞에서 [COPY] 능력이 발동된 이후에 이 특성 자체가 발동되는 건 처음이다.
그래, 이건 분명 K-pop 관련된 것에 대해 랜덤으로 미래를 보여주는 특성이었…….
“……윽!”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머릿속에 갑자기 알 수 없는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지금 얌전히 앉아 있어서 망정이지 일어나 있었다면 그대로 쓰러질 뻔했을 정도의 통증이었다.
쉴 새 없이 울리는 머리에 상체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테이블로 스르륵 무너진 지 오래였다.
곧이어 내 기억에 없는, 처음 보는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건…… 시상식?’
마치 연말 시상식 같은 분위기로 꾸며놓은 드넓은 홀이었다.
“큼큼. 올해의 프로듀서상을 수상하실 영광의 주인공은 바로…….”
수상을 하러 나온 50대 남성이 기대감과 긴장감을 증폭시키려는 듯 호명 직전에 말을 늘어뜨렸다.
“하하 발표하겠습니다. 영광의 수상자는 강! 찬! 혁! 프로듀서님 축하합니다!”
한 남자가 호명되자,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졌고 그는 주변의 축하를 받으며 단상에 올라갔다.
‘……이게 대체?’
파악이 끝나기도 전, 공간이 찢어지는 듯한 지지직 소리와 함께 시상식 현장이 어그러졌고 곧이어 다음 장면이 떠올랐다.
이번엔 토크쇼 현장이었다.
“강찬혁 프로듀서님! 내는 곡마다 히트를 치시는 히트메이커라고 소문이 자자하신데요. 왜 이렇게 데뷔를 늦게 하신 건가요?”
“하하…… 이거 굉장히 부끄럽지만 제 이야기가 도움 될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말해보겠습니다.”
“그럼요! 프로듀서님을 롤 모델로 삼는 친구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음. 사실 전 곡 작업을 시작한 지는 꽤 되었습니다만, 늦게 데뷔한 이유를 꼽자면 그저 일종의 자신감 부족이었죠. 그땐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했거든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고.’
떠오른 장면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 애쓰는 와중에,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장면들이 마치 환상이었다는 것처럼 일순간에 사라졌다.
탁!
순식간에 시야가 돌아왔다.
눈이 커질 대로 커진 차윤재가 축 늘어진 내 팔을 낑낑 끌며 소리쳤다.
“괘, 괜찮으십, 아니, 어, 얼른 병원을……!”
하지만 지금 고통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
“잠깐, 나 괜찮으니까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줘.”
누군가 둔기로 가격하는 듯, 통증이 밀려오는 이마를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래 예지에서 본 강찬혁 프로듀서, 그가 지금 여기에 있다.
‘분명 방금 들어온 그 사람이랑 똑같이 생겼어.’
예지 장면에서 봤던 분위기와는 굉장히 상반된 느낌이지만 동일 인물이 확실하다.
초라해 보이는 행색의 남자는 내가 다가오는지도 모른 채 음울한 표정으로 본인의 노트북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내가 바로 앞에까지 다가왔는데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남자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
그 남자는 매우 당황한 듯했고 지금 자기한테 말을 건 게 맞느냐는 의미를 담아 손가락으로 본인을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혹시 강찬혁 님……?”
“제 이름을 어, 어떻게……?”
역시!
나는 주먹을 세게 말아 쥐었다.
강찬혁은 곤란한 얼굴로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아이고, 이거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 얼굴을 잘 기억 못 하는 편이라서…… 저희가 어디서 만났던가요?”
아마 지금 이 남자는 나를 어디서 한 번쯤 마주쳐서 안면이 있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현재 무명일 그를 알아보는 아티스트가 있다는 게 말이 안 되니까.
나는 거울을 보며 연습한,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저흰 초면입니다.”
“예……?”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철면피에 찬사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