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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0화 (10/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0화

예상을 벗어난 나의 대답에 강찬혁은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 소개가 늦었습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라이트온이라는 그룹의 멤버, 성해온이라고 합니다.”

“라이트…… 으음, 라이트온…… 라이트온.”

그룹명 네 글자를 계속 중얼거리는 걸 보니 망돌 신세인 라이트온의 위치가 절실히 체감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든 기억해 내려 애쓰는 듯, 한참 중얼거리던 강찬혁은 나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아! 라이트온, 들어봤습니다! 그, 근데 가수분이 저는 어떻게…….”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저 인간이 모르면서 아는 척한다고 전해줍니다!]

제발 그 입 좀 다물어주길 바란다, 눈물겹게도 잘 알고 있으니까.

“어떻게 모르겠어요. 강찬혁 프로듀서님이시잖아요.”

그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중얼거렸다.

“아…… 으음, 곡 작업은 하고 있지만 프로듀서라는 이름은 거창하네요…….”

대충 표정과 상황을 종합해 보니 지금 그는 이름도 대표작도 알려지지 않은 무명 프로듀서인 듯했다.

그러니 지금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신기하기보다는 아주 수상할 거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내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 강찬혁이 나를 훑어보며 물어왔다.

“그나저나 저, 저를 어떻게……?”

“예. 프로듀서님의 팬입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의심이 거둬지지 않는지 강찬혁은 계속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예? 으음…… 그, 아니, 저를 어떻게 아ㅅ-”

“정말 예전부터 팬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정말 어떻게 이런 엄청난 우연이 있을 수가……!”

나는 다급하게 강찬혁의 말을 끊고 메소드 연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그냥 아는 체하면, 이 사람도 적당히 웃으며 인사를 나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판이었다.

더 대화를 이어나가 봤자 내가 자신을 모른다는 걸 증명하는 꼴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자리를 피하는 게 맞아.’

나는 강찬혁이 대답할 틈도 없이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번호를 여쭤보아도 괜찮을까요?”

“예? 예. 그나저나 도대체 저를 어떻게 아시는 거지……?”

그는 연신 중얼거리며 내 스마트폰을 받아 자신의 번호를 적어 내려갔다.

나는 스마트폰에 찍힌 그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이게 제 번호입니다. 그리고 지금 다른 일행과 함께 있는지라 가봐야 할 듯합니다.”

혹시라도 더 캐물음 당하진 않을까, 차윤재 핑계를 대며 내가 할 말만 속사포로 읊조렸다.

“정말 만나 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프로듀서님.”

넋이 나간 채 부재중이 찍힌 자신의 스마트폰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는 그에게 양심의 가책을 느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잔뜩 급한 척을 하며 차윤재에게 향했다.

저 멀리서 녀석이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게 시야에 담겼다.

이 녀석 얼굴이 반갑기는 처음이군.

“……괜찮으십니까? 정말 괜찮으신 게……!”

내가 싫긴 해도 걱정은 별개인지 정말 차윤재는 내 몸을 이리저리 살펴대며 연신 병원에 가자며 걱정을 해댔다.

멋진 사회인의 법칙 제1장.

할 말 없을 땐 일단 웃어 보여라.

“갑자기 잠깐 어지러웠어.”

원래 가끔 저혈압 때문에 핑 돌 때가 있다며 둘러대니 대충 믿는 눈치였다.

“저분은……?”

차윤재가 눈짓으로 강찬혁을 가리켰다.

“응. 아는 사람.”

띠링!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어쩜 가면 갈수록 누군가를 닮아간다며 혀를 찹니다.]

……누구를?

뭐, 보나 마나 헛소리겠지.

쯧쯧.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다 들린다고 말합니다!]

* * *

숙소로 돌아오는 택시 안의 분위기는 생각보다 그렇게 냉랭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뭐,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러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형, 형 어땠어요. 괜찮았어요?”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최승하는 괜찮았냐며 걱정이 그득 담긴 눈으로 물어왔다.

나는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고, 그제야 녀석은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난 피곤해서 조금만 잘게.”

불까지 꺼준다는 걸,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고 침대에 누워 서치를 시작했다.

강찬혁.

‘분명 이름이 강찬혁이었지.’

[K팝 망령의 눈]으로 보이는 건 예지 개념으로, 아직 일어나지 않은 미래의 어느 한 시점이다.

아직 현시점에선 분명히 그만큼은 유명하진 않은 사람일 거라 얼핏 예상은 했으나…….

“……아예 나오는 게 없는데?”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강찬혁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들의 정보만 우후죽순 나오지, 작곡가 겸 프로듀서인 강찬혁의 정보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서치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까 카페에서 내가 자신을 알아봤을 때, 별 미친놈 보듯 나를 봤던 게 이해된다.

‘이 정도로 무명일 줄은 몰랐지.’

무표정으로 스크롤을 내리고, 또 내리던 나는 다급히 상체를 일으켰다.

“……!!”

찾았다.

어떤 인디 밴드의 멤버가 3년 전에 본인의 SNS에 강찬혁과 찍은 사진과 함께 곡 작업에 대한 글을 올렸던 걸 발굴해 내는 데 성공했다.

찾아보니 이 인디 밴드도 유명세가 아예 없는, 무명이었다.

강찬혁은 아마 인지도 있는 아티스트와의 작업은 해본 적도 없으리라.

‘아까 자신이 무슨 프로듀서냐며, 기겁을 했던 게 이래서였어.’

음원 어플을 켜 제목을 검색하니, 강찬혁이 프로듀싱했다는 인디 밴드의 음원이 나왔다.

나는 망설임 없이 음원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 * *

어제 노래를 듣자마자 강찬혁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작업실이 있다면, 가봐도 괜찮겠냐고.

솔직히 얼굴 한 번 본 사람이 대뜸 자신의 개인적인 공간에 오고 싶다는 게 무례하게 느껴질 거란 걸 너무 잘 알지만.

‘여유 부릴 시간이 없다.’

다행히 그는 환영이라며 주소를 찍어 보내주었다.

“음, 여기가, 맞나.”

분명 주소는 여긴데.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족히 몇십 년은 되어 보이는 건물과 건물 틈 사이에 끼어 있는.

아주 작고 허름한…… 쓰러지기 직전의 건물이었다.

‘이 정도면 재건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외관조차 이미 세월에 낡고 부식되어 으스스했었는데 내부는 더했다.

귀신의 집 현실판 느낌.

“지하 1층이랬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시간임에도 어두컴컴하고 먼지 냄새가 나는 비좁은 계단을 조심스레 내려가니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저긴가 보다.’

나는 그의 작업실로 추정되는 문을 천천히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작업을 하고 있던 걸로 보이는 강찬혁이 일어나 나를 맞이했다.

“아. 안녕하세요.”

나는 곁눈질로 작업실을 빠르게 스캔했다.

다양한 악기로 가득 차 있어 굉장히 비좁은 공간인데도, 그의 열정이 엿보이는 공간이었다.

“어떻게 잘 찾아오셨네요. 여기가 좀 찾기 어려워서…….”

“제가 길 하나는 잘 찾아요. 쉽게 찾았으니 걱정 마세요.”

나는 하하, 웃으며 그가 안내해 주는 자리에 앉았다.

“그나저나…… 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되어서요.”

강찬혁이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런 질문 실례일 수도 있지만요.”

제가 더 실롄데 뭘요.

험악하게 생겨서는, 안 어울리게 사람이 참 착하다.

나는 강찬혁이 편하게 말할 수 있도록 성격 나빠 보이는 눈을 최대한 선하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솔직히 주제 파악을 잘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음…… 저를 어떻게 아셨나, 솔직한 마음으론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강찬혁은 처음엔 솔직히 나를 약간 의심까지 했다며 사과해 왔다.

“아니요. 오히려 제가 더 무례했죠.”

나는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내가 이럴 줄 알고 어제 사전 조사를 한 거였지.’

“저 사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의 팬이에요.”

어제 서치 돌리다가 찾아낸 인디 밴드의 노래 제목이다.

그러니까, 강찬혁이 직접 프로듀싱한 노래.

자신의 곡을 알고 있다는 대답에 적잖이 놀랐는지 그의 눈에 이채가 돌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 해온 씨가 그 노래를 어떻게?”

“명곡이잖아요. 처음 들었을 때부터 반했습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연기에 감탄합니다!]

……가만 보면 내가 사기 칠 때마다 좋아하는 거 같단 말이지.

묘하게 재수 없다.

“제가 고등학생일 때, 우연히 공연 중인 인디 밴드를 봤거든요.”

3년 전이면 성해온이 고등학생일 때고, 인디 밴드가 길거리 공연을 안 할 리가 없으니 이 정도면 신기하더라도 납득은 될 테다.

“그때 들은 곡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였어요. 노래 제목을 알고 싶어서 끝까지 기다렸다가 밴드 분께 물어봤었죠.”

그리고 따지자면, 곡에 반했다는 말은 진짜 진심이다.

어제 그 노래를 듣자마자 온몸에 전율이 흘렀으니까.

아무리 무명 밴드여도 퀄리티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겠다고 생각될 만큼 좋은 곡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인디 밴드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발매 후 얼마 안 된 시점에 뿔뿔이 흩어진 것 같았다.

아마 그 사건도 이 사람의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했겠지.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불운하게도 성공을 거머쥐지는 못했지만 미래에 강찬혁이라는 프로듀서가 유명해진다면, 분명 역주행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 만큼 명곡이었다.

“그때 그 노래에 반해 버려서 검색을 해봤는데, 밴드 멤버분이 SNS에 프로듀서님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셨더라고요. 제가 사람 얼굴 기억을 잘하는 편이라 카페에서 마주쳤을 때 혹시나? 했는데 정말 프로듀서님이셨던 거죠.”

거짓말이 청산유수로 술술 나오는 걸 보고, 나조차도 당황 중이었다.

‘내가 이렇게 거짓말을 잘했던가.’

“와. 그랬군요! 정말 신기하네요. 그 곡은 저도 열심히 준비했던 건데…….”

감동받은 듯 말꼬리를 늘어뜨린 강찬혁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나온 지도 오래되었는데 그걸 들어보셨다니 ……영광입니다.”

드디어 내가 자신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게 완전히 납득이 가는지 경계를 푼 느낌이었다.

나는 더욱더 가식적인 낯짝을 걸치고 눈을 반짝였다.

“아니요. 제가 더 영광입니다. 우연히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를 만드신 프로듀서님을 만나다니…….”

“하하…… 이거, 참 부끄럽네요.”

아무래도 강찬혁은 칭찬에 면역이 없는지, 민망하다는 듯이 본인의 뒤통수를 긁적였다.

“사실 저도 어제 라이트온의 노래를 들어봤습니다.”

빌어먹을.

그 망할 노래를 기어코 찾아 듣다니.

나는 영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텅 빈 눈동자로 손뼉을 치며 대답했다.

“……와아. 정말요. 영광입니다.”

“멜로디도 좋고, 뭣보다 멤버분들의 목소리도 듣기 좋던데요.”

절대 가사 칭찬은 안 하는 솔직한 모습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하긴 그 끔찍한 가사를 좋다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없을 거다.

그 곡을 좋다고 컨펌까지 한 김명훈 대표이사는 사람으로 취급도 안 한다는 뜻이다.

칭찬이 오가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 나는 입을 열었다.

“혹시 요즘 작업하고 계시는 곡이 있으신가요?”

드디어 본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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