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1화
강찬혁은 머쓱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 작업해 둔 게 몇 개 있긴 한데, 으음…… 하하.”
자존감이 땅에 떨어져서 본인의 재능을 모르고 움츠려 있을 뿐, 이미 지금도 재능이 넘치는 프로듀서다.
동시에 정확히 언제인진 모르지만, 미래에 성공이 보장된 프로듀서기도 하지.
‘우리랑 작업해서 그 성공이라는 게 더 빨라지지 말라는 법 있나?’
“근데 들려 드릴 정도는 아닌…….”
나는 아련한 낯짝을 걸쳤다.
“들어보고 싶은데…… 안 될까요? 저 정말, 프로듀서님의 다음 곡을 기다렸습니다……”
한사코 거절하던 강찬혁은 내가 정말 간절하다는 눈빛을 보내자, 어쩔 수 없다는 듯 컴퓨터 앞에 앉아 파일을 열기 시작했다.
“……실망하실까 봐 걱정되네요.”
그럴 리가.
당신은 미래에 돈이 있어도 곡을 살 수 없을 만큼, 성공을 거머쥘 사람입니다.
강찬혁이 재생 버튼을 누르자,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당장에라도 이 노래를 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떼쓰고 싶은 충동을 고이 접어 마음속에 누른 채-
주체할 수 없이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숨기기 위해 진지하게 집중한 척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 곡이 끝나자 바로 다음 곡이 흘러나왔고 순식간에 그가 작업한 곡들의 재생이 마무리되었다.
여러 노래를 들었음에도 자가 복제 느낌이 아닌, 하나같이 유니크하고 색다른, 하지만 중독성 있는 멜로디였다.
‘이 사람 진짜 천재잖아.’
나는 긴장한 듯 몸을 꼿꼿이 세우고 내 눈치를 살피고 있는 강찬혁을 바라봤다.
“…….”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어깨가 잔뜩 움츠러든 강찬혁이 잔뜩 바람 빠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역시, 음…… 들려 드릴 정돈 아니었는데요.”
이 노래 홍보만 제대로 된다면 TOP100은 무리가 아닐지도 모른다.
물론 발로 적어도 이것보단 나을 것 같은 망할 가사와, 망할 컨셉만 없다면 말이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이 사람이 확실하게 넘어올까.’
나는 고개를 푹 숙인 뒤, 마치 눈물을 닦는 듯 옷자락으로 눈가를 훑었다.
“아니, 아니, 저…… 저기 여기 휴지…… 해온 씨 왜 갑자기……”
작전은 노래에 감명받고 우는 사람인 척하기.
나는 고개를 숙이고 건네받은 휴지로 눈을 콕콕, 닦았다.
쿡! 쿡! 쿡!
닦기보단 거의 눈을 찌르고 있었지만.
‘젠장, 더럽게 안 나오는군.’
온갖 슬픈 생각을 쥐어짜 내고, 눈알이 빠질 듯 압력을 주자 눈가가 서서히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눈물이 고인 걸 느낀 나는 보란 듯이 고개를 들었다.
스으윽-
“너무……, 너무나도 감동적인 노래입니다…….”
띠링!
‘뭔데 또…….’
익숙한 띠링 소리에 슬쩍 고개를 치켜들자, 메시지가 아른거렸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명연기에 감탄하며 200골드를 후원합니다!]
……하마터면 눈물이 메말라 버릴 뻔했다.
나는 물기 어린 눈으로 강찬혁을 바라봤다.
“저 곡들은, 주인이 있나요?”
그는 쓰라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애초에 취미 삼아 만든 거라서요. 제가 뭐라고 이런 곡으로 돈 벌 생각을 하겠습니까.”
……자존감이 이렇게 심각하다고?
노래에 크게 전문적인 일가견이 없는 내가 들어도, 이 곡은 대형 소속사에서도 탐낼 만한 노래였다.
여기저기 돌리기만 했어도 이 곡들은 이미 다 주인 찾았을걸.
[K-pop 망령의 눈]이 보여준 미래에서 분명 자기 입으로 자신감이 없었던 나날들을 보냈다고 했었지.
그게 이런 거였군.
이 사람은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가 제로에 수렴한다.
“프로듀서님. 저희한테 기회를 주세요.”
“……예? 아니, 제, 제 곡을요? 도대체 왜…… 아, 아니, 됐습니다. 너무 부끄러운 곡들인데…… 제가 이걸 어떻게 팔 생각을 하겠습니까.”
믿기지 않는다는 듯 되묻는 그에게 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 주세요. 저희 대표님도 물론, 맘에 들어 하실 거예요. 장담합니다.”
나는 자신 있게 씨익 웃어 보였다.
저번에 보니까 대표도 아직 욕심이 있어 보였다.
욕심은 있지만 기회비용 투자하기는 아깝고, 무슨 그런 거지 같은 심보를 가졌는지는 모르겠다만.
내가 특성으로 미래를 봐서 그런 게 아니라, 강찬혁 프로듀서의 곡은 귀가 제대로 달려 있다면 누가 들어도 명곡이라며 감탄사를 내뱉을 것이다.
나는 연신 머뭇거리는 그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곡 파일을 건네받자마자 회사에 전달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아마 소속사 입장에서는 이게 웬 떡인가 싶었겠지.
누가 들어도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명곡인데, 심지어 무명의 작곡가? 좋아 죽을걸.
신인 작곡가라면 곡 단가도 훨씬 저렴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양심 없는 사람은 아니다.
이미 예상하고 미리 손을 써놨지.
* * *
“프로듀서님.”
“예……?”
나는 강찬혁의 손을 꼭 붙잡았다.
성해온의 미미한 영향으로 누군가와 접촉하는 게 여간 불쾌한 것이 아니었으나, 그런 감정을 애써 눌러놓고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이 사람은 라이트온의 은인이 될 사람이라고.
강찬혁은 아직도 내 제안이 믿기지 않는지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시는 금액의 2배, 아니다. 3배 부르세요.”
저기서 더 부르셔도 괜찮다며 강조하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이 사람, 모르긴 몰라도 분명 웃기지도 않은 단가를 내세울 게 뻔하다.
“예에…… 네?!”
멍한 표정으로 계속 ‘예’ 아니면 ‘네’만 반복하던 강찬혁이 뒤늦게 내 말을 이해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사래를 쳤다.
“아니, 제가 어떻게, 아닙니다! 정말 과분해요.”
자신을 한 번 깎아내리는 걸로는 부족했는지, 강찬혁은 잔뜩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가치를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제 곡이 무슨 그만한, 그리고 저는 이렇게 멋진 분이 써주신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 기쁜걸요.”
나는 새어 나오려는 한숨을 속으로 들이킨 후 차분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아니요. 정말 진지하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당신은 미래에 아주 유명해질 거라고.
“그렇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이 곡들은 솔직히 대형 소속사에 돌리기만 해도 다들 사고 싶어서 혈안이 될 만한 곡이었다.
‘아마 부르는 게 값이지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강찬혁의 자존감은 먼지만큼도 없는 상태.
분명 명훈이가 단가를 말도 안 되게 내려쳐서 제시한대도 그냥 ‘예에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계약서에 도장 찍을 사람이란 소리다.
솔직히 MH가 아닌 대형 기획사에다가 이 곡들을 팔면, 이 사람의 명성도 그만큼 올라갈 거다.
곡이 아무리 좋아도 아티스트의 화제성에 따라서 성공의 유무가 갈리는 바닥.
라이트온한테 이 곡을 준다는 것도 사실 강찬혁에겐 손해다.
프로듀서라는 직업 자체가 당장의 돈보다는, 곡의 흥행이 더해진 이름값이라는 게 장기적으로 볼 때 더 값질 수밖에 없으니까.
이러한 이유들로 이 사람은 꼭 제값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
“아셨죠? 3배 기억하세요. 더 부르셔도 되고요.”
이 회사가 안 그래 보여도 돈 하나는 많답니다.
“…….”
정신머리를 어디다가 뒀는지, 계속 멍청한 표정인 강찬혁이 영 신경 쓰여서 나는 말을 이었다.
무례일 수도 있지만, 계속 찝찝하게 걸린단 말이지.
“지금 솔직히 곡당 가격 얼마 생각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저한테만 알려주세요.”
강찬혁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쭈뼛쭈뼛 다가와 자신이 생각하는 곡의 단가를 외쳤다.
“저는…… 이 정도요.”
이 인간, 정말 정신이 제대로 나간 게 확실하군.
“잘 들으세요. 3배 취소입니다.”
“예에……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제가 욕심이 많았죠. 아무래도 그 정도는 아니니까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오히려 편안한 표정이었다.
“5배!”
“……?”
“5배 부르세요. 5배요.”
나는 오른쪽 손의 손가락 다섯 개를 펼치며 ‘5배’를 강조했다.
강찬혁은 정말 황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방금 강찬혁에게서 들은 단가에 5배를 곱한다 해도 우리 소속사로선 남는 장사다.
그 정도로 강찬혁은 본인의 단가를 낮게 불렀다.
프로듀싱을 배우는 아마추어 학생들도 저 정도론 부르지 않을 거다.
* * *
그리고 말했듯 회사 내부에서는 긍정적인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대표도 돈 냄새를 맡긴 했는지, 곡에 대한 계약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솔직히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조율하느라 시간이 꽤 들 줄 알았는데, 대표이사인 명훈이가 적극적으로 진행을 밀어붙였다고 한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몇 번은 맞는다더니, 드디어 정신을 좀 차린 듯하다.
물론 멤버들 중엔 오직 나만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계약서에 도장 찍을 때까지는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이니 멤버들에겐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희망을 줬다가 짓밟는 것만큼 잔인한 건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지금 나는 대표이사실의 문턱 앞이다. 아침부터 호출을 받았기 때문.
“대표님. 성해온 님 오셨습니다.”
“으하핫! 당장 들여보내!”
스륵-
비서의 손에 고급지고 무거운 문이 천천히 열렸고, 내 시야엔 뭐가 그리도 좋은지 싱글벙글 웃고 있는 명훈이가 보였다.
“……대표님, 안녕하세요.”
나는 상체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오냐. 하하하!”
눈을 최대한 착하게 뜬 나는 선함을 장착한 얼굴로 물었다.
“저는 무슨 일로…….”
왜 부른진 알지만, 양심상 먼저 물어봤다.
“듣자마자 이거다. 싶었지! 딱 내가 찾던 노래더라고?”
역시나 양심이 없군…….
돈 아낄 요량으로 컴백을 무기한 늦추겠다고 선언했던 과거는 기억에서 깔끔히 지워 버린 모양이다.
“크흠! 솔직히 말하자면 말이다.”
명훈이가 오른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어깨를 자랑스레 치켜올렸다.
“내가 이 곡을 기다리려고 지금까지 앨범 진행을 안 했다는 생각마저 들지 뭐냐!”
그렇게 말하며 명훈이는 마치 이게 본인의 업적이라는 양 자랑스레 떵떵거리기 시작했다.
‘아아, 본인의 업적으로 만들고 싶으시다?’
나는 눈을 더 동그랗게 떴다.
“그러게요. 노래가 정말 저희 그룹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우리 해온이가 그런 인맥이 있는 줄은, 내가 미처 몰랐지 뭐냐.”
명훈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솥뚜껑 같은 손으로 대견하다는 듯 내 등을 두어 번 세게 두드렸다.
퍽! 퍽!
“하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나도 대표에게 긴히 할 말이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호출이 있어 옳다구나, 하고 바로 길을 나선 거다.
‘……강찬혁 이 인간이 기어코!’
듣자 하니, 다행히 그는 계약할 때 나의 당부대로 값은 높여 불렀으나…….
- 제가 라이트온만을 위해 새로운 곡을 작업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 곡은, 제 마음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제 마음?
제 마으으으음?!
감사를 표현할 거면!
나한테 해야지!
나한테!
무려 곡 하나를 그냥 공짜로 주겠다는 선언을 했단다.
재주는 내가 부리고 떡은 명훈이가 처먹는 기가 막히는 상황에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심지어 심혈을 기울여 이 그룹의 색에 어울리는 곡을 만들어 오겠다는 그의 당찬 발언에 회사에선 거의 타이틀감으로 기대 중인 듯했다.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단정한 자세를 만든 뒤, 대표의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표님.”
“응?”
“프로듀서님이 저와의 친분으로 곡 하나를 그냥 주시기로 하셨다고 들었는데.”
“어…… 그, 그걸 어디서.”
이 야비한 놈, 역시 입 싹 닫으려고 했던 게 분명하다. 어쩌면 이렇게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지 신기할 따름이군.
눈에 띄게 당황한 그를 보며 나는 더욱더 말간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럼 혹시, ……대표님께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내 밥그릇은 내가 챙겨야지.
대표에게 양심이란 게 있다면 거절 못 할 거다.
“크흠……. 말해봐라. 그리고 그, 흠. 그건 내가 말하려고 했는데 정신이 없어서 까먹었지 뭐냐.”
순간 순도 100%의 경멸 어린 눈빛이 나올 뻔한 걸 빠르게 수습했다.
이 딜을 이렇게 빨리할 수 있을 줄이야.
아주 느낌이 좋다.
“그러니까, 제 부탁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