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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3화 (13/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3화

“대표님, 멤버분들이 도착하셨습니다.”

비서가 문을 노크하며 말했다.

“크흠. 들어와라!”

명훈이의 허락과 동시에 문이 열렸고, 우리는 대표에게 정중히 인사한 후 자리에 착석했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싱글벙글한 얼굴의 대표가 입꼬리를 씰룩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흐흠. 내가 너희를 부른 이유는~! 크흐흠! 흠!”

괜한 긴장감 조성하지 말아주시길 바란다.

……내가 다 불었으니까.

명훈이가 긴장감을 조성할수록 내 안의 작은 양심이 아프게 찔려왔다.

“크흠, 내가 들려줄 게 있어서 불렀다.”

그리고 명훈이는 기대감을 품은 눈빛으로 우리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반응해 달라는 건가.’

내가 흐린 눈을 하고 뭐라 말을 하려던 순간, 의외로 신유하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우. 우↗와 뭔가↘요?”

겨우 5글자 말하는 데 삑사리가 두 번이나 나다니.

갑작스레 터진 대참사에 멤버들이 맞추기라도 한 듯 고개를 푹 숙였다.

“큽…….”

신유하의 발 연기를 견디지 못한 최승하가 웃음 참기에 실패하며 작게 웃음소리를 냈다.

‘저 자식이…….’

“……큽, 흠, 흠. 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재채기가 나올 뻔해서.”

우려와 달리 최승하는 곧바로 찰나의 웃음기를 거두고 순발력 있게 상황을 무마했다.

눈치를 보아하니 명훈이는 별다른 기색을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크흠. 들려줄 건…… 너희의 다음 앨범에 들어갈 곡이란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비서에게 턱짓했다.

비서는 곧바로 곡을 재생했고, 대표이사실의 구석에 위치한 언뜻 봐도 몇백만 원은 호령할 것 같은 고급 브랜드의 스피커에서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분명 오늘 새벽까지 멤버들과 질리도록 들었던 것과 같은 노래인데도 불구하고, 하이엔드 스피커로 들으니 넓은 공간 속에 음악이 웅장하게 느껴질 정도로 가득 참과 동시에 사운드가 선명하고 기분 좋게 들려왔다.

곁눈질로 둘러보니 다른 멤버들 역시 진지하게 몰입한 듯 보였다.

“크흠.”

노래는 순식간에 끝이 났고, 대표는 어서 반응을 해보라는 듯 뿌듯한 얼굴로 헛기침을 했다.

“크흠! 크흐흠!”

정말 짜증 나는 인간이다.

“와…… 대표님 정말 너무 좋은 것 같습니다.”

나는 속마음과 다르게 세상 감동스러운 표정을 얼굴에 걸친 뒤, 연신 영혼 없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다른 멤버들도 눈을 반짝이며 대표에게 긍정의 의사 표현을 했다.

신유하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삑사리가 심히 부끄러운지 귀가 벌게진 채로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지만 말이다.

명훈이의 광대와 어깨는 이미 날아갈 듯 올라가 있었다.

“크흠흠…… 다들 좋아하니 내가 아주 기분이 좋구나!”

그렇게 말하며 명훈이는 오른손을 들어 비서에게 무언가를 가져오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비서는 명훈이가 보낸 사인을 캐치하자마자 종이봉투 뭉치를 꺼내 와 대표에게 깍듯하게 전달했다.

……설마, 이렇게 바로?

“크흐흠…….”

명훈이는 종이봉투 뭉치를 손에 든 채, 잔뜩 분위기를 잡으며 헛기침을 했다.

나를 제외한 멤버들은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래도 양심은 있었구나.’

나는 꽤 감격한 얼굴로 대표를 바라봤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보자면, 내가 제안했던 딜을 명훈이가 무려 하루 만에 수락했다는 거다.

강찬혁 프로듀서가 나와의 친분을 이유로 주겠다고 약속한 공짜 곡을 빌미로 꺼냈던 작은 부탁 말이다.

* * *

“그러니까, 제 부탁은요…….”

“크흠……. 어서 말해보거라.”

티는 안 내려고 하는 것 같다만, 내가 무리한 부탁을 할까 봐 긴장한 눈치였다.

“대표님이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덤덤하게 꺼낸 말에 명훈이는 고개를 까딱이며 대답했다.

“……내가 무얼?”

아이돌의 정산은 ‘손익분기점’을 넘는 순간 이루어진다.

손익분기점이란, 이 그룹이 벌어들인 수익이 이 그룹을 만드는 데에 투자한 비용을 넘어선 순간을 말한다.

그 지점을 ‘손익분기점’이라고 한다.

망돌이라 해도 그룹을 하나 데뷔시키는 데엔 엄청난 비용이 따른다.

그래서 보통 그걸 다 갚지 못할 때까진 정산을 받지 못하는 게 이 바닥의 순리인 걸 나도 안다.

아티스트 입장에선 답답할 일이지만, 회사 입장으로 보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라이트온 같은 경우엔, 명훈이를 몇 대 때려도 무죄다.

앞날 창창한 애들을 계약에 묶어놓고는 저지르는 행태를 보라.

홍보는 무슨? 앨범 하나만 띡 내놓고, 주야장천 방치만 하고 있다.

예능 출연? 라디오 출연? 자체 컨텐츠? 팬들과의 소통 어플 개설?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해주지 않고 있다.

돈을 벌고 싶어도 회사에서 사지를 꽁꽁 묶어놓고 있는데, 무슨 수로 벌겠는가.

이 녀석들 입장에선 정말이지 분하고 답답했을 일이다.

나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대표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희가 나중에 정산받을 돈을 조금만 미리 나눠주실 수는 없으실까요?”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래, 내가 돈이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있을 수는 있어도, 얼마 있는지를 모른다.

성해온의 카드를 쓰고 있긴 하다만, 비밀번호를 모르니 잔액 조회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사용할 때마다 괜히 불안한 마음이다.

그래서 돈이 필요한 김에 당장 멤버들까지 챙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낸 게 바로 이거다.

나한테도 마음 편하게 쓸 수 있는 돈이 생김과 동시에 어쩌면 멤버들이 가진 망돌의 그림자도 조금 옅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지.

“……정산을 미리 해달라는 뜻이냐?”

“저도 아직 저희가 정산받으려면 한참 남았다는 걸 압니다. 다만, 대표님의 재량으로 나중에 받을 정산금을 조금이라도 주실 수 있나 여쭤보고 싶습니다.”

어차피 내 덕에 무료로 받은 곡, 그 값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미래에 줘야 할 돈을 조금 미리 달라는 거니 명훈이 입장에선 딱히 손해 볼 게 없는 일이다.

게다가 큰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당장 생활비를 달라는 건데.

기껏해야 멤버당 직장인의 한 달 월급 정도를 생각하고 말했다. 이 회사 정도면 그 정도 돈은 아무것도 아닐 테니까.

그도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냈는지 크흠, 헛기침 소리를 내며 축객령을 내렸다.

“크흠…… 생각해 볼 테니, 이만 들어가 보도록 해라.”

* * *

이렇게 된 일이었고, 솔직히 대표 성격에 그냥 내 부탁을 못 들은 척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제안을 긍정적으로 봐서 준다고 해도, 한참 걸릴 줄 알았는데.

뭐가 됐든 의외의 결과였다.

대표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멤버들에게 봉투를 하나씩 나눠줬다.

편리하게 계좌에 송금해 줄 수도 있는 걸, 굳이 현찰로 주며 있는 대로 생색을 내는 게 참 그다웠다.

멤버들은 아직까지 봉투를 손에 들고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거나 안이 보이지도 않는 봉투를 열심히 째려보고 있었다.

“크흠, 흠!”

정적을 깨는 헛기침 소리에 모든 시선이 명훈이에게 모여들었다.

“아직 정산받을 정도가 아닌 건 너희도 알고 있겠지.”

대표의 갑작스러운 팩트 폭력에 다들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따지고 보면 이 녀석들을 망하게 한 책임의 9할, 아니, 10할은 회사에 있다고 보는데,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는 수준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뭣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크흠, 이번 앨범을 기쁘고 즐겁게 준비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작게 준비했다.”

대표는 열어봐도 괜찮다는 제스처를 보냈고, 멤버들은 머뭇거리며 봉투를 열었다.

“……!!”

봉투 속 내용물을 본 멤버들의 동공이 순간적으로 확장되었다.

빳빳한 황색의 지폐가 꽤나 두툼하게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중에 가장 놀란 건 나였다.

당초의 생각보다 안에 담긴 금액이 꽤 많아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했던 금액의 배는 넘을 것 같았다.

타앗-!

그 순간 허공에서 나와 눈이 정통으로 마주친 대표는 입꼬리를 씰룩 씰룩 주체하지 못하며 헛기침을 해댔다.

“흐흠.”

정말 한결같은 인간이 아닐 수 없다.

“……크흐흠, 이건 어디서 제하고 그럴 게 아니니 마음 편하게 쓰도록 해.”

뭐라고?

나는 순간 두 귀를 의심했다.

당연하게도 나중에 나올 정산금에서 미리 가불해 주는 개념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주는 거라고?

호의로?

저 인간이?

나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사실에 느릿하게 눈을 껌뻑였다.

예상도 못 했던 상황에 대표이사실 안에 고요한 정적이 감돌았다.

“……감사합니다.”

류인의 대답을 시작으로 감사를 표하는 말이 하나둘씩 터져 나왔고, 명훈이는 인자한 얼굴로 고갤 끄덕이다가 입을 열었다.

“크흠흠! 너희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아주 흐뭇해.”

갑자기 명훈이가 한 5년은 젊어 보이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벌써부터 자본주의에 굴복하는 거냐며 혀를 찹니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 봉투를 손에 든 채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표이사실을 나왔다.

“아. 지금 매니저분들이 다 스케줄을 나가셔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아마 20분에서 30분 정도만 기다려 주시면 될듯합니다.”

우리를 따라 나온 비서가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예, 감사합니다.”

우리는 사옥 안에 있는 휴게 공간에서 기다리기로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저 손 좀 씻고 오겠습니다.”

차윤재의 말에 류인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래. 갔다가 우리 있는 곳으로 와.”

“예.”

* * *

차윤재는 화장실을 찾아 걸으며 자신의 손을 내려봤다.

대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커피를 손에 조금 쏟아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고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마침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어떻게 이런 행운이 찾아올 수 있단 말인가……!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스르륵 번져 나갔다.

‘할머니께 입금드리고 당장 병원부터 가보시라고 해야겠다.’

아니, 아니지. 그럼 또 갔다고 거짓말을 하시고 혼자 버티실 게 뻔했다.

“예약, 예약을 해야 되겠다……!”

조금 상기된 낯으로 복도를 걷는데, 직원들의 이야기 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라이트온?’

분명 자신들에 대해 말하는 것 같았다. 방금 라이트온이라는 단어를 들었으니까.

‘……갑자기 숨어버렸다.’

지금 화장실을 코앞에 두고 기둥 뒤에 숨은 꼴이 되어버렸다.

‘남의 대화나 몰래 엿듣는 비열한 짓을 하다니……!’

입술을 깨문 차윤재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라님 없는 곳에선 나라님 욕도 한다는데, 필시 저분들은 회사나 그룹 욕을 하시는 걸 테다.

이 상황에서 자신이 지나가면 얼마나 민망해하시겠는가!

차윤재는 두 사람이 자리를 떠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고 기둥에 등을 기댔다.

“음? 진짜? 아니, 그렇게 방치할 땐 언제고? 솔직히 알 사람은 다 알았잖아. 대표가 신경 안 쓰는 거.”

“말도 마…… 목소리가 어찌나 크신지 지나가는데 다 들리더라…….”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 걸까?’

엿듣는 건 안 될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자연스레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손에 커피를 든 직원이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다른 회사 대표한테 전화로 이번에 노래 뽑은 거 너어~ 무 좋다고 자랑을 해대시더라니까. 우리 대표님 목소리 크신 거 알지. 지나가는데 다 들리더라.”

차윤재는 홀로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리가 무척 크시긴 하지.’

“이번에 뽑은 노래가 그렇게 좋아?”

“몰라? 좋다던데……. 보안을 얼마나 하는지 나도 실장님한테 이번엔 느낌이 좋다는 소리만 들었어.”

차윤재는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대표님도 그렇고…… 다들 많이 기대해 주시는구나.’

자신이 듣기에도 이번 노래는 정말 좋아서 기대를 안 하려고 해도 솔직히 조금은 두근거렸다.

더 이상 헛된 기대 따위 하지 않기로 결심했는데, 이 알량한 마음이 자꾸만 기대를 품는다.

“근데 그거 들었어? 성해온이 와서 대표한테 얘기했다며.”

“응? 무슨 얘기?”

“나도 회계팀한테 살짝 들은 건데, 성해온이 와서 대표님한테 정산금 미리 달라고 부탁했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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