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4화
“우↗와 뭔가↘요?”
차 안에서 최승하가 옆에 앉은 신유하의 팔뚝을 쿡쿡 찔렀다.
“…….”
신유하는 귀 끝까지 새빨개진 채로 파들파들 몸을 떨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진짜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다…….”
아무리 놀려도 반응이 없으니 헛헛하다며 최승하가 툴툴거렸다.
‘아. 둘이 동갑이었던가.’
최승하와 신유하는 20살로 동갑내기다.
다음 활동 소식과 뜻밖의 선물까지 받았기 때문에 무척이나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딱 한 명 빼고.
스윽-
조수석에 앉은 나는 백미러로 차윤재를 응시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나름 기분 좋아 보였는데?
음울한 얼굴로 머리 위에 먹구름까지 둥둥 띄우고 있어서 유독 눈에 띄었다.
그렇다고 주위 사람들까지 눈치를 볼 정도로 냉기를 폴폴 날리는 수준은 아니고 그냥 유심히 바라보면 알 수 있는 정도였기에 알아차린 건 나 혼자인 듯하다.
한수현조차 얼굴색이 미세하게 환해져 있었다.
물론 제 입으로 좋다거나, 하는 말은 절대 꺼내지 않고 있지만 말이다.
17살에 데뷔해 아직 18살밖에 안 되었으니 간단한 아르바이트를 해봤을 리도 만무했고, 용돈 같은 걸 제외하고는 처음 받아보는 돈일 테니 기분 좋겠지.
매일같이 우중충하던 놈들이 좋아하니 나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며칠간 혼자 고생한 보람이 있달까, 그리고 뭣보다 잘생긴 놈들이 웃으니 더 보기가 좋-
아, 빌어먹을.
내 의식의 흐름과 오타쿠 자아가 자연스럽게 연결될 때마다 치가 떨린다.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한껏 썩어 있었다.
분명 이런 얼굴을 지칭하는 말이 있었는데.
그 순간, 언젠가 들었던 이해성의 한 섞인 중얼거림이 떠올랐다.
- 연차가 쌓일수록 똘망하던 눈에 초점이 사라지고, 정산을 받을수록 안광이 사라져 가며 자연스레 동태눈깔이 되는 건 이 세상의 이치인 걸까…….
……아, 그래. 동태눈깔.
동태눈깔이 따로 없었다.
차가 숙소 앞에 멈춰 서자마자 나는 입을 열었다.
“나는 잠깐 근처에 볼일이 있으니까, 너희 먼저 들어가라.”
금방 돌아가겠다는 말을 덧붙이며 곧장 등을 돌렸다.
“으음? 형. 어디 가는데요? 같이 갈까요?”
최승하의 말에 대충 고개를 젓고는 등을 돌렸다.
그리고 숙소가 아닌, 횡단보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호를 기다렸다가, 초록 불이 되어 길을 건너고, 왼쪽으로 꺾어 쭈욱 직진으로 걷다가, 또 골목으로 들어가고…….
‘흠…….’
우뚝!
“…….”
나는 골목에서 발걸음을 멈춰 섰다.
뒤이어 따라오던 발걸음 소리도 우뚝, 멈춰 섰다.
……10분이 넘게 걷는 동안, 누군가가 나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도로반사경으로 단번에 알아차린 지는 이미 오래였다.
만에 하나라도 나와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건가 싶어서 일부러 모른 척 계속 걷기만 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삭막한 골목을 눈에 담았다.
‘이런 곳에 볼일이 있을 리가 없지.’
나는 한숨을 삼킨 뒤 입을 열었다.
“혹시 지금 나 따라오는 거냐.”
“……예.”
그 누군가는 한참을 뜸 들이다가 스토킹을 순순히 인정했다.
이 사람이 누구냐고?
팬? 그럴 리가…….
마스크를 벗고 다녀도 몰라보는데, 마스크 낀 상태의 망돌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보고 따라오는 팬이 있을 리 없다.
몰래 따라온 최승하? 그것도 아니다.
나는 최대한으로 친절한 얼굴을 장착한 채 몸을 빙글 돌려 녀석을 마주했다.
“무슨 할 말 있어?”
내 뒤를 따라온 사람이 누구냐면, 음. 차윤재다.
대충 안색을 보아하니 아까 차 안에서보다도 우중충했다.
무슨 말이라도 할 것이지, 입을 꾹 다문 채 아스팔트 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게 답답했다.
“……세요?”
“뭐라고? 못 들었어.”
너무 작은 목소리라서 하나도 안 들렸다.
나는 미간을 설핏 찌푸리며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제, 제가 불쌍해 보이셨냐 물었습니다!”
이게 뭔 헛소리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내가 멀뚱히 서 있자 차윤재가 말을 이었다.
“다 들었습니다! 대표님한테 가서 저희한테 정산금 미리 달라고 부탁…… 했다고.”
혹시라도 이런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까 꼭 비밀에 부쳐달라고 부탁했는데, 일이 꼬였다.
대체 누가 말을 흘린 거지.
“……왜 그러셨습니까? 제 사정을 들으니 측은지심이라도 느끼셨나요.”
“…….”
곤란하게 됐다. 이걸 뭐라 설명해야 하지.
“……솔직히 말씀 해보세요. 안타까워서 못 봐주겠다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이런 말을 내뱉는 차윤재의 얼굴은 상상 그 이상으로 안 좋았다.
툭 건드리면 눈물이 나올 거 같은 얼굴로 나랑 눈도 못 마주치고 있었으니까.
‘……난감하군.’
솔직하게 말하자면 정말 내가 돈이 필요해서 한 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대표한테 ‘그 곡 값만큼 저한테 현금으로 주세요’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래서 가장 빠르고 합리적으로 마음 편히 사용 가능한 급전을 만들어낼 방법을 고안해 낸 건데.
내가 이 녀석의 가정사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런 식으로 내용을 들었다면 충분히 오해할 만하다.
게다가 자존심이 강해 보이는 놈이니 더 기분 나쁠 테지.
어쩌면 내가 편히 쓸 돈이 생김과 동시에 의기소침해져 있는 멤버들의 사기를 올리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 그뿐이다.
그러니까 절대 저 녀석의 말처럼, 불쌍하거나 동정하고 싶어서 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고 무엇보다…… 나도 고아인데, 누가 누굴 불쌍해해?
그럴 리가 없지.
“……내가, 너를?”
나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와 차윤재를 번갈아가며 삿대질했다.
이 몸에서 깨어나 가장 먼저 한 게 나의 죽음에 대한 확인과 성해온의 호적 조사였다.
- 얘는 뭐…… 이렇게 연락처가 텅 비었어?
멤버들의 번호는 당연히 없었고, 가족이나 친척들의 번호조차도 보이지 않길래 곧바로 주민 센터에 방문했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성해온은 천애 고아였다는 사실.
주민등록등본에 아예 부와 모가 등록되어 있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대로 입을 닫고 있으면 차윤재와 감정의 골만 깊어지겠지.
그렇다고 그저 멤버들을 위해 그랬다고 얼버무리면, 동정해서 그랬다는 걸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게다가 다른 변명을 한 대도 이 녀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테지.
‘그냥 말하자.’
별 난리를 쳐서 이 녀석과 조금이나마 가까워졌는데, 또다시 심각하게 멀어지는 건 내 쪽에서 사절이다.
나는 속으로 계산을 마친 뒤 운을 뗐다.
“음…….”
“저기, 나도 부모님 안 계셔.”
“……?”
아스팔트 바닥의 무늬를 외울 기세로 바닥만 바라보고 있던 녀석이 내 말을 듣고 서서히 고개를 올렸다.
“……!!”
귀신이라도 본 얼굴이군.
“너 내가 불쌍해?”
나의 말에 녀석이 넋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도리질 쳤다.
“그래. 내가 대표님한테 부탁드린 거 맞아.”
“…….”
“근데 너 때문은 아냐. 그냥 애들이 좋아했으면 좋겠어서 그랬어.”
화아악!
내 말을 듣는 차윤재의 얼굴이 삽시간에 토마토소스처럼 붉어지기 시작했다.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달싹거리던 녀석이 작게 말했다.
“머, 멋대로 오해해서, 죄송…….”
“뭐라고? 안 들리는데.”
당연히 들렸지만.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죄송합니다.”
근데 누구였어도 자신의 사정을 말하자마자 이런 일이 벌어졌으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야 뭐, 당연한 일이다.
“나도 너처럼 내 상황 하나도 안 부끄러우니까, 사과하지 마.”
“…….”
“그리고 오해할 만하기도 했고? 타이밍상.”
나는 볼을 긁적거리며 분위기를 풀기 위해 노력했다.
“……저 그럼 숙소로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여기까지 온 김에 나랑 같이 들어가지?”
그렇게 차윤재를 이끌고 온 곳은 바로-
“으음. 뭘 사지.”
케이크 집이었다.
“갑자기 무슨 케이크입니까……?”
차윤재가 내 귀에만 들릴 정도로 속삭였다.
“좋은 소식 들은 날인데, 케이크에 초는 불어야지.”
쇼케이스 안에 여러 종류의 케이크들이 화려하게 줄지어 진열되어 있었다.
“그런 의미로, 너는 무슨 맛 좋아해?”
“…….”
이것까지 말하긴 부끄러운가 보군.
과연. 아기 고양이다운 행보, 제발 그만둬.
무의식을 침범하는 이해성의 잔재에 나는 케이크를 고르다 말고 깊은 한숨을 삼켰다.
“……혹시 또 머리가 아프십니까?”
이 녀석이 봐도 내 얼굴이 일순간에 썩어들어 갔는지, 눈에 띄게 당황한 듯한 차윤재가 작게 물었다.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오타쿠 자아 때문에 그렇다고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말할 수 없어서 나는 다급하게 화제를 돌렸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칼이 들어오면 말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
“저기 딸기 생크림으로 해야겠다. 사장님, 이거 3호 사이즈로 포장해 주세요.”
나는 먹음직스러운 딸기들이 가득 올려져 있는 케이크를 손으로 짚으며 말했다.
“넵! 결제 완료되셨습니다! 초는 몇 개 드릴까요?”
“6개 주세요.”
“여기 케이크 나왔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감사합니다. 차윤재, 가자.”
“……예.”
* * *
짤랑, 소리와 함께 케이크 집의 문이 닫히고 안에서 케이크 아이싱을 하던 사장이 나와 매대를 보고 있는 딸에게 말했다.
“오늘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생기가 넘치더라 너는? 목소리가 아주~”
“엄마도 봤어? 마스크를 써도 잘생긴 게 보이더라…… 이름까지 예쁘더라. 차윤재. 진짜 이번 주치 안구 정화 끝났다.”
“얘가 진짜 유난은……. 한번 검색해 봐라. 연예인일 수도 있지 호호호”
“……진짜네.”
“뭐가?”
“진짜 연예인이었어. 방금 그 둘.”
그렇게 말하며 여성은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어머…… 그러게? 맞는 것 같다. 아까 옆에 있던 청년도 연예인이려나?”
여성은 스마트폰 액정을 툭툭 두드리며 누군가를 짚었다.
“이 사람인 것 같아. 이름이 성해온……? 어쩐지 둘 다 잘생겼더라…….”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여성은 둘이 방금 사 간 것과 동일한 케이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다음에 또 오기만 해봐라. 모른 척 빵 서비스를 종이 가방이 터질 정도로 넣어주지.”
* * *
“……누가 내 얘기 하나?”
갑자기 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온몸에 한기가 스쳐 지나가는 그런 느낌.
“……무슨 소리입니까? 빨리 오기나 하세요.”
나는 차윤재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의 속도를 높였다.
하긴, 누가 내 이야기를 하겠어. 자의식 과잉이다.
차윤재의 옆에 선 나는 곁눈질로 녀석을 바라봤다.
‘어디 그림자가 얼마나 옅어졌는지 한번 볼까.’
좋은 곡과 더불어 컴백 확답도 받았고, 많이 좋아진 상태면 좋을 텐데.
속으로 차윤재의 상태창을 떠올렸더니 바로 눈앞에 둥실 떠올랐다.
[차윤재]
체력 B
정신력 B-
비주얼 A+
노래 B+
춤 A-
※ 망돌의 그림자 수치 : 68%(*위험 3단계)
“……!!”
비상사태였던 85%에서 68%까지 무려 17%나 내려가 있었다.
‘이렇게 대폭 내려가는 건 기대 안 했는데.’
아주 좋은 스타트였다.
녀석과 함께 숙소에 도착해 도어락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맛있는 음식 냄새가 코를 훅 찌르고 들어왔다.
‘배달이라도 시킨 건가.’
밥 먹고 케이크 초 불면 딱이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신발장에서 거실로 들어선 순간 보이는 충격적인 광경에 나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아니, 내 안의 오타쿠 자아가 할 말을 잃었다고 정정하겠다.
‘아, 케이크 떨어뜨릴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