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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19화 (19/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19화

“맞아요. 캠코더 훔쳤어요! 그래서 해온 형 오기 전에 얼른 찍어야 합니다~ 하하핫.”

캠코더를 든 최승하는 주방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와아~ 여기 너무 귀여운 거 아닌가요? 귀여운 사람 옆에 더 귀여운 사람 있네~”

무려 ‘그’ 앞치마를 입은 채로 요리하고 있는 류인과 한수현이었다.

“저기 조수분? 자기소개 좀 해주세요.”

“저는 재료 씻고 자르기 담당입니다!”

카메라를 다분히 의식하고 있는 듯한 한수현이 상냥한 목소리로 고무장갑을 낀 채 멘트를 날리자 최승하가 곧바로 말을 이었다.

“오오~ 멋있으시네요? 허어, 그러고 보니까 쉐프님 양파가 특이하네요. 보통은 음, 약간 크고 네모낳게 썰어서 끓이지 않나요?”

큰 팬에 얇게 채 썬 양파들이 갈색빛을 내며 윤기 있게 볶아지고 있었다.

“……아 지금 버터에 캐러멜라이징하고 있어.”

“우와~~ 프로의 향기가 물씬 나는데요. 그럼 기대하겠습니다! 자아아 이번엔 어~ 디로 가볼까요오오.”

휘익-!

“어어?”

“이걸 그새 가져갔더라고요.”

“치사하다~”

옆에서 최승하가 너무하다며 우는 소리를 냈다. 미안하지만, 내가 찍어야 할 포인트가 있다고.

“이렇게 누가 요리할 땐 뭘 해야 할까요.”

“음…… 세팅?”

“그것도 맞지만, 역시 맛을 봐야죠.”

“핫, 기미 상궁! 제가 해볼까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거실 구석탱이에 찌그러져 있던 녀석을 바라봤다.

‘이봐, 네 녀석이 오늘의 기미 상궁이다.’

“……오늘의 기미 상궁 윤재입니다.”

“기미 상궁님~ 얼른 맛 설명하러 갑시다!”

차윤재를 끌고 주방으로 향하자, 생소한 비주얼의 음식이 냄비에서 끓고 있었다.

‘……크림 카레?’

아까 믹서기 소리가 나더니, 야채를 모두 갈아버린 것 같다. 일반적인 카레가 아니고 곱게 간 재료들에 부드러운 생크림까지 넣은 듯한 비주얼이었다.

나는 퍽 기특하다는 얼굴로 류인의 등짝을 흘겨보았다.

‘실망시키지 않는군.’

얼른 먹어보라는 최승하의 재촉에 차윤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숟가락을 뽑아 팔팔 끓고 있던 카레를 떠 입으로 넣었다.

“……괴, 굉장히 맛있습니다.”

최승하가 성에 안 찬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에잉…… 더 섬세한 맛 표현을 해주셔야죠.”

사실 라이트온 멤버 중에 기가 제일 센 건 이 녀석일지도 모른다.

순하디순하게 생긴 사람들일수록 기가 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지금 차윤재 눈빛 좀 보라고.

그래 저 작작 좀 하라는 눈빛.

큰 눈을 날카롭게 뜨고 우릴 쳐다보던 차윤재의 입술이 무언가 말하려는 듯 떼어졌다.

백 퍼센트 화낸다.

쯧, 아무래도 이 부분은 편집으로 잘라내야겠군.

“……그리고 독은 없습니다.”

뭔데.

나는 벙벙한 얼굴로 차윤재를 힐끗 바라봤다.

화내는 게 아니고 은은한 유머까지 곁들인다고? 심지어 나름 적절하기까지 한?

……의외로 고분고분한 타입?

“해온 형님! 지금 절 비웃으신 겁니까……!”

“아니, 조금 놀라서.”

우리끼리 떠드는 사이 음식이 완성된 듯 류인은 밥 위에 카레를 정갈하게 붓기 시작했다.

“이제 가져다 놓을게.”

테이블에 가져다 놓으려 접시를 드는 순간 녀석이 날 제지했다.

“해온아, 잠시만.”

“……?”

그 순간이었다.

치이이익-!

달궈진 팬에 계란물을 쏟더니 현란한 젓가락 스킬로 모양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녹화, 녹화!’

주위를 둘러보니 멤버들은 크게 놀랍지 않아 보였고, 나는 황급히 캠코더를 챙겨 왔다.

순식간에 회오리 모양이 잡힌 계란은 카레 위에 살포시 얹어졌고, 화룡점정으로 파슬리까지 뿌려졌다.

도대체 뭐 하는 놈일까?

정말 컨텐츠를 위해 태어난 기특한 놈이 아닐까?

나는 테이블에 세팅된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촬영했다.

여기서 놀란 티를 내는 건 금물이다.

그럼 마치 이 촬영을 위해 요리를 맹연습한 것 같다는 느낌이 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기에 이런 모멘트에도 익숙하다는 듯 자연스레 반응해야 한다.

나는 음식들을 다양한 각도로 녹화한 뒤, 멤버들에게 포커스를 맞췄다.

그러고는 손짓으로 어서 맛을 보라는 지령을 내렸다.

반응은 당연히 호평 일색이었다.

찍을 만큼 찍었으니 나도 먹어볼까.

“……?”

집에서 이런 맛을 낼 수 있는 건가? 그냥 진짜 어디서 파는 맛인데.

포근한 계란이 약간 매콤한 크림카레를 감쌌다.

맛 평가에는 재능이 없는 편이라 뭐라 설명은 못하겠지만, 여튼 맛이 대단했다.

마트에서 생소한 고체 카레를 고를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조용히 음식을 먹고 있는 류인을 바라봤다.

‘이런 기특한 놈…….’

나는 캠코더에 녹음될 만큼의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진짜 맛있어요. 팬분들과 같이 못 먹는 게 아쉬울 정도로.”

이런 멘트는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아이돌이라면 자고로 항상 팬들을 우선순위로 생각해야 하는 법.

어디 시상식 같은 곳에서 수상 소감을 말할 때도 소속사 사장님, 실장님, 기타 등등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팬덤 언급을 아예 까먹거나 뒤늦게.

- 아아! 팬 여러분들도 감사합니다……!

이러는 게 정말 팬 입장에선 얼마나 서운한 일인지, 덕질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누군가는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중요한 일이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설거지 내기 게임을 하고, 잡담을 나누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 촬영은 끝이 났다.

* * *

“……덕배야 너 지금 한가롭게 마라탕이나 먹고 있을 때가 아닌데?”

“왜.”

“지금 라이트온 자컨 올라옴.”

“……어?”

“악! 더럽게, 입 다물라고!”

* * *

어느 날 링크가 담긴 트윗 하나가 올라왔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말이다.

LIGHT ON ⓥ

[LIGHT OFF]

Ep 1. Our house (집 이모티콘) (요리사 이모티콘) (하트 이모티콘)

(캠코더 이모티콘) youtobe/DKJDCXSnSD……

[LIGHT OFF]

‘LIGHT ON’의 일상 모습을 담는 컨텐츠니 제목은 ‘LIGHT OFF’가 어떻겠냐 제안했고, 모두의 찬성으로 결정되었다.

영상 썸네일은 여섯 명의 남자가 화사하게 웃으며 셀프캠에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모습.

누누이 말했지만, 라이트온은 정말 얼굴만 봤을 땐 기가 막히게 잘생겼다.

그 모든 걸 넘어설 정도로 구린 컨셉과 장기간 이어지는 수납으로 빛을 보지 못한 망돌이다.

일단 내세울 건 잘난 얼굴이기에 썸네일에서부터 저런 사진을 선택했다.

갑작스럽게 영상이 올라오자마자, 한 줌이라 불리는 라이트온 팬덤은 뒤집어졌다.

- 뭐라고? 명훈이가 드디어 일을 한다고?

└ 와 ㅈㄴ 재밌음 명훈이 드디어 정신 차렸나 봐;;

└ 어떡해 눈물 남 ㄹㅇ

- 성해온 진짜 미친 거 아니냐 팬 사랑 넘치는 거 진짜 미칠 것 같음

└ 계속 자컨에서 팬들이 궁금해할 것들 먼저 말해주는 것도 그렇고 X발 진짜 천재 블루베리가 실존하는 거임

└ 진행 승하가 끼는 거 아니면 대부분 혼자 다 하는데 하나도 안 지루함ㅇㅇ 해온이는 예능 나가도 될 것 같음 말 너무 잘해

- 가장 발리는 건 성리더의 리더미다… 캠코더 드는 게 자기니까 분량 젤 많은데, 계속 멤버들 살피면서 멘트할 상황 유도해주고 그러는 게 보임

└ ㅇㄱㄹㅇ임

- 라이트온 : ㅇㅇ 너네 심장 조져줄게

팬들 심장 : ㅇㅇ 조져질게

- 덕질 시작하고 처음으로 뜬 컨텐츠 달다… 달아…!

- 라이트온 덕질하기 잘했다 실제로도 착하고 친한 게 영상에서 티가 남 미친 갓기천사들아~!

- ㅁㅊ거 아냐? 계란물로 회오리 이거 집에서도 가능한 거였어?

└ 류인 그는 도대체?

- 야!!!!! 최승하 미쳤나 봐! 백허그로 깨우는 것 봐 하 tlqkfㅋㅋ 아 ㅋㅋ!!!!!!

└ 죽은 자의 트윗입니다

└ 저기요 진정하세요

- 이 fox 누구신데? 왜 선량한 오타쿠를 쥐고 흔드시는데?

└ 초멘 죄송합니다. 최승하라는 멤버입니다!

└ 앗 감사합니당ㅎㅎ

얼마 지나지 않아 고인물들의 열정적인 홍보가 이어졌다.

- 라이트온 첫 자체 컨텐츠 나온 기념 알티 이벤트 엽니다.

이 글 알티해 주시면, 두 분께 기프티콘 드릴게요!

ㅠㅠㅠ ㅠㅠㅠ ㅠㅠ

(치킨 기프티콘) (피자 기프티콘)

- 제발 한 번만 나 믿고 봐봐… 나 경력직 오타쿠야 얘들아 실망시키지 않을게

물론 성해온의 비겁하게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이 담긴, 앞치마의 반응도 제대로 터졌다.

- 비겁하게 성공하고 싶으신가 본데 환영입니다 감사합니다 더 비겁하셔도 괜찮습니다

- 이 남자 누군데 자꾸 내 맘을 설레게 해 (사진)(사진)

└ 아니, 앞치마ㅅㅂ 미친 거 아냐?

- 앞치마 ㅁ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나 아무 생각 없이 영상 보다가 핑크 에이프런 입은 사람 보고 눈 벅벅 비빔

└ 야 너도?

특히 어느 팔로워 많은 덕후가 영상 속 류인을 캡처해 올린 트윗이 무려 6,000회 이상 알티될 만큼 화제가 되며 반응은 기름을 부은 듯이 더욱더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충격 속보……

레이스 달린 핑크 앞치마 입은 남돌

만화책이 아닌 현실 세계에 실존

(사진)(사진)

(사진)(사진)

타임라인을 타고 이런 트윗이 넘어오기 시작하자, 라이트온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영상의 링크를 눌러보기 시작했다.

심심한데 한번 봐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누른 사람들이 대부분일 거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영상을 시청하는 여성들의 수가 갑작스레 증가하자-

알고리즘이 그 나이대 여성들에게 라이트온의  자체 컨텐츠를 추천해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소위 ‘머글’이라고 불리는 대중들의 피드에도 하나둘씩 영상이 뜨기 시작했고, 그들은 솔직히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아이돌의 컨텐츠치고 굉장히 재밌었으며 센스 있는 편집, 그리고 헉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의 요리 실력까지 갖춘 사람이 있었으니까.

- 라이트온 자컨 왜 이렇게 재밌음? 남돌 자컨 섭렵했지만 진짜 재밌게 잘 만든 듯 ㅇㅇ 얼굴이 재밌어서 재밌는 것도 있는데 그냥 자컨만으로도 재밌음

……사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경력직 오타쿠가, 아니 경력직 오타쿠의 자아를 가진 이가 편집을 도맡았기 때문에.

* * *

“그렇게 밤을 새웠는데 재미가 없으면 안 되는 거지…….”

내 눈가엔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와있었다.

안색이 시체와 다를 바 없었다.

“후우.”

……하다 보니 편집에 욕심이 나서, 수정에 수정에 수정을 거치다 보니 몇 날 밤을 꼴딱 새웠다.

나는 마른 얼굴을 쓸어내렸다.

덕질해 본 사람이면 알겠지만, 아무리 대단한 놈들 데리고 영상 찍어놔도 편집과 자막이 정말 루즈하고 감 없는 게 느껴지면 그렇게 지루할 수가 없다.

심지어 대형 소속사에서 만든 컨텐츠임에도 재미없는 경우도 허다하니 말 다 했다.

‘잘’ 만들 수는 있어도 ‘재밌게’ 만드는 법을 모르니까.

자기 딴엔 재밌어도 팬들 눈에 재미없으면 실패한 거다.

마침 시간도 여유 있었고, 이런 건 자막과 편집의 센스가 중요한 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은 길지 않았다.

원래 나도 영상 편집 정도는 할 줄 알았고, 누나의 영향으로 좋든 싫든 꽤 많은 아이돌의 영상을 봐왔기에 감 자체는 대강 갖고 있었다.

뭣보다 수많은 아카이빙 계정을 운영하고 직캠 편집을 포함한 각종 영상 편집에 도가 튼 이해성의 기억까지 내 머릿속에 있으니, 도무지 신뢰가 안 가는 MH에 맡기는 것보단 내가 하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똑, 똑.

그 순간, 작게 문이 두드려지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멤버들이 얼굴을 드러냈다.

“……형, 감사, 해요.”

의외로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신유하였고, 차윤재가 모가지를 떨어뜨릴 기세로 주억거리기 시작했다.

“마, 맞습니다! 이,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직 날 무서워하고, 어색해하면서 감사 인사는 전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편집에 일가견이 있으실 줄은 몰랐어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한수현의 말에, 류인이 귀엽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하, 맞아. 수현이 하루 종일 영상에 달린 댓글 보던데?”

“그건……!”

“흐하핫! 우리 귀여운 막내~ 움쪽~!”

질색하는 한수현을 붙잡고 애정 공세를 퍼부은 최승하가 나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형, 진짜 최고예요. 너무 고마워요.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아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흘러넘치는 동료애에 전율합니다!]

하지만 이 훈훈한 분위기 속에 놓인 당사자가 이런 상황을 심각하게 못 견뎌 한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 알겠으니까, 다들 쉬어.”

이렇게 탄생한 라이트온의 첫 자체 컨텐츠는 알고리즘에게 선택받은 덕을 제대로 보게 된다.

그야말로 가파른 조회 수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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