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0화
영상의 조회 수도 100,000뷰만 넘었으면 했던 게 우스워질 만큼, 현재 조회 수는 목표치의 배에 달하는 200,000뷰에 가까워졌다.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덕택이었다.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가는 것으로 유추해 봤을 때…….
‘300,000뷰 정도는 충분히 노려봐도 되겠는데.’
수치상으로도 엄청난 결과였다.
팬층이 얕은 것과, 첫 영상인 점을 감안했을 때 대단한 성과임은 확실했다.
소위 말하는 1군 아이돌의 자컨은 100만 단위로 움직이지만, 사실 망돌은 조회 수 10만 회 넘기는 것도 힘들다.
회사도 지금 아주 얼씨구나 분위기인지, 영상 공개 이튿날 문자가 도착했다.
류인이 퍽 곤란하다는 얼굴로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음. 혹시 너네한테도 왔어?”
[대표님 : 너희가 언젠가는 빛을 볼 줄 내가 알고 있었다. 매사에 더욱더 정진하는 아티스트가 되거라!]
……크흠! 하는 헛기침 소리까지 음성 지원되는 기분이다.
바로 스마트폰을 확인해 보니 단체 발송이었는지 우리에게도 똑같은 내용의 메시지가 와 있었고, 멤버들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형님, 답장을 뭐라 보내야 할지…….”
차윤재가 도움을 구한다는 어투로 중얼거리자 류인이 곧바로 대답했다.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보내면 되지 않을까?”
그 광경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들이 사회생활 할 줄 모르는군.
자고로 명훈이 같은 타입은 말이지…….
나는 곧바로 대표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대표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은데, 잠시 통화가 가능하신가요?]
문자를 보내기 무섭게 괜찮다는 답장이 도착했고 나는 망설임 없이 발신 버튼을 눌렀다.
“……? 형 지, 지금 영상통화 거셨는데요!!”
내 옆에 쪼르르 모여 앉아 있던 멤버들이 화들짝 놀라며 어서 끊으라고 말하는 순간이었다.
“크흐흠! 영…… 영상통화는 무슨 일이냐!”
“하하. 대표님한테 감사 인사를 전하는데 당연히 얼굴을 뵙고 해야죠.”
사회생활 실전편, 더러워도 일단 기어라.
인정하기 싫지만 실결정권자가 명훈이인 이상,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
“흐흠…….”
아주 좋아 죽겠다는 얼굴이었다.
“애들도 다 너무 감사하다고. 대표님한테 인사하고 싶다고 난리더라고요.”
‘우리가 언제……?’라는 표정의 멤버들을 가뿐히 무시하고 나는 스마트폰을 멤버들 쪽으로 들이밀었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류인의 인사를 시작으로, 멤버들이 앞다투어 입에 기름칠을 하기 시작했다.
“……대, 대표님 감사합니다! 더욱더 정진하는 모습 보여 드리겠습니다!”
“맞아요~ 하핫.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 감사, 합니다.”
눈물겨운 사회생활이었다.
자신들을 죽어라 수납시킨 김명훈을 좋아할 리 없지 않는가.
도통 통화를 끊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대표의 훈화 말씀을 귀가 아릴 때까지 듣고 나서야 통화가 종료되었다.
하도 웃는 척을 했더니 입꼬리가 저릴 정도였다.
‘지긋지긋한 놈…….’
며칠이나 지났을까, 유입도 많아졌는지 라이트온을 검색하자 우리를 언급하는 글들이 전보다 몇 배는 늘어나 나조차도 놀라울 정도였다.
- #라이트온_트친소
……ㅎ 오늘 입덕했습니다
최차애 도저히 못 고르겠고요ㅜ?
저랑 같이 라이트온 얘기하실 분 친구 해요!
“새로 입덕한 팬들도 꽤 많군.”
나는 스크롤을 내리며 중얼거렸다.
덕후들 말고는 그룹명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였다면, 생각 이상으로 화제가 된 자체 컨텐츠 덕분에 라이트온이 대중들의 머릿속에 아주 천천히 각인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타이밍이 좋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오매불망 기다리던 누군가에게 연락이 왔다.
강찬혁 프로듀서, 그에게서 온 연락이었다.
* * *
“지금부터 올해 상반기 LIGHT ON의 두 번째 앨범에 대한 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
마이크를 든 정재진이 PPT 화면을 켬과 동시에 입을 열었다.
“……우선 연내 예정에 없었던 일이니만큼 원활한 준비를 위해 편성될 예산의 규모를 미리 정해야 할 듯싶습니다.”
정재진은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순간에도 별다른 기대를 품지 않았다.
아이돌이 주력인 중소형 기획사에서 일하던 그는 더 높은 연봉을 제안받고 2년 전쯤 이곳으로 이직했다.
아마도 배우 소속사인지라 회사에 아이돌 산업에 대해 아는 이가 전무하여 본인을 스카웃해 온 듯했다.
이곳에 와서 데뷔할 멤버들의 자료를 처음 보았을 때 정재진은 속으로 쾌재를 외쳤다.
‘세상에!’
단언컨대 아이돌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얼굴.
잘생겼다면 벌써 반은 먹고 들어가는 업계다.
실력도 받쳐주면 금상첨화지만 모자란 실력은 연습이나 곡 파트 분배로 무마하면 되는 법이니까.
‘성공시킬 자신이 있어.’
이직을 택했던 본인의 선택이 백번 옳았노라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입사 초반만 해도 말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매일같이 급변하는 K-pop 트렌드를 분석하며, 데뷔조 멤버들에게 잘 어울릴 거 같은 컨셉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을 정도로 그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부장님. 여기 말씀하신 기획안 작성해 왔습니다.”
한 그룹의 첫 번째 앨범을 내가 기획하게 되다니, 정말이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닌가.
사실 그는 며칠간 설레는 마음에 제대로 잠도 청하지 못했다.
“정 대리,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야?”
“……예?”
“이거 원 경력자라고 연봉도 높게 쳐서 데려왔더니만, 지금까지 뭘 배운 거야? 대학은 제대로 나온 거 맞아? 쯧.”
자신을 모욕하는 말들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그는 멘탈이 붕괴된 상태였다.
정말 자신 있는 기획이었는데.
그렇게 별로였나?
“부장님. 무엇을 고쳐야 할지 말씀해 주시면 더 제대로 수정…….”
“몰라서 물어? 예산이 이게 뭐야. 잘 안 되면 정 대리 네가 책임질 거야? 어? 책임질 거냐고. 하여간 요즘 어린 것들은 정도를 몰라. 쯔쯔”
‘……뭐지?’
내가 써놓은 예산은 업계 평균 정도로 그다지 비싼 것도 아닐 텐데.
하기야, 아이돌을 키워본 적이 없는 소속사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제대로 설명해 드리면 될 일이다.
“부장님, 원래 앨범 하나를 제대로 만들려면 예산이 최소 이 정도는…….”
“지금 나를 가르치려고 들어? 됐고, 다시 가져와!”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었다.
“어후……. 정 대리 또 야근해요? 정말 독하다 독해. 황 부장 고집 절대 못 꺾어요.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황소고집이라고 부르는 게 괜히 그러는 거겠어요? 그냥 적당히 맞춰요.”
“하하…….”
어떻게든 저렴한 가격으로 최대한의 퀄리티를 뽑아낼 기획안을 만들려고 계속 야근을 자처하고 있는 그에게 동료가 안타까운 눈빛을 보냈다.
어느새 벽에 걸린 시곗바늘은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재진은 퍼석한 얼굴을 손으로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여기서 더 이상은 못 줄여.”
지금이 정말 마지노선이다.
여기서 예산을 더 줄인다면 최소한의 퀄리티도 보장하지 못한다.
한숨을 내쉬는 그의 눈 밑엔 줄넘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다.
내일모레, 라이트온의 데뷔 앨범에 대한 안건으로 진행되는 회의가 열린다.
무려 대표이사가 참석하는 회의 말이다.
대표님의 마음에 들면, 황 부장도 뭐라고 반대할 명분이 없겠지.
그게 정재진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라이트온의 데뷔 앨범에 관한 회의 날이 밝아왔다.
“-이상, 기획안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이크를 쥔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며칠째 잠도 제대로 청하지 못한 탓에 눈앞이 팽글 돌았다.
‘괜찮을까?’
계속 예산을 삭감하고, 또 삭감한 탓에 스스로조차도 자신하지 못하는 기획이었다.
하지만 이게 최선이었다.
정재진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그 순간, 대표가 말문을 뗐다.
“크흠, 내가 보기엔 괜찮은데? 정재진 대리가 아주 노력했군그래.”
기대한 것보다도 김명훈 대표이사의 반응이 호의적이었다!
그는 자꾸만 위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정돈했다.
‘됐다. 이 상황에서 부장이 뭐라고 할 수나 있겠어?’
고생한 게 헛된 일이 아니었다.
입가에서 미소가 번졌다.
“크흠! 그래, 황 부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사아아-
한순간에 얼굴에서 핏기가 가신 정재진이 고개를 잘게 도리질치며 속으로 되뇌였다. ……안 돼.
자신과 대표가 대화를 주고받는 내내 잔뜩 표정을 굳히고 있던 황 부장은 갑작스러운 호명에 급속도로 얼굴이 밝아지더니 재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예, 대표님. 제가 보기에도 아주 괜찮은데, 몇몇 부분에선 예산이 과다하게 책정된 느낌이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정 대리 데리고 조금 더 다듬어서 대표님께 올려보겠습니다.”
그래. 이 미친 간신배 같은 인간 때문에 이번에도 자신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생각해 보면 황 부장은 그저 아이돌 산업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대체 왜? 회삿돈을 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황태욱 부장은 마치 자신의 돈을 가로채 가는 악인을 대하듯 자신을 대했다.
소속사의 수장이 아이돌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무지하다면, 주변에서 잡아주면 될 일인데 황 부장은 정말이지 입안의 혀처럼 굴었다.
간신배 때문에 망한 나라들의 이야기가 절로 공감이 갈 지경이었다.
데뷔 앨범 타이틀곡의 데모가 나왔을 땐 그나마 안심했었다.
‘노래는 그래도 생각보다 최악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그 생각은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가사가 어떻게.’
의 가사를 보는 2~30대 직원들의 표정은 실시간으로 썩어들어 갔지만 그 누구도 소신껏 발언하지 못했다.
말해봤자 황 부장의 심기만 건드릴 뿐,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픽스된다면 이건 무조건 망한다.’
자신도 황 부장의 폭언이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었겠지만, 그래도 나설 건 본인뿐이라는 생각에 용기를 내 그를 찾아갔다.
첫인상부터 자신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건 알았지만, 이젠 미운털이 제대로 박혔는지 분위기가 무서울 정도로 험악했다.
“하아. 참나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원 어이가 없어서…… 뭐? 이제 와서 가사를 바꿔? 그럼 또 누가 작사하려고. 정 대리가 가사 쓸 거야? 그래서 망하면, 책임은 누가 져? 일개 사원인 네가 질 거야? 어? 책임질 거냐고 묻잖아.”
“그래도 부장님, 이건 다시 한번 재고를……!”
무어라 대꾸하려고 입을 연 정재진에게 서류 뭉치가 날라왔다.
날카로운 종이 끝에 베인 볼이 홧홧하게 아려왔다.
“어디 말대꾸야! 그렇게 네 뜻대로 하고 싶으면 네가 이 자리 앉으면 되겠다! 상사를 우습게 보는 것도 정도껏이지. 정 대리, 아니, 정재진. 내가 그렇게 만만하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한 거 알면 나가봐! 쯧.”
그렇게 이 회사의 첫 아이돌은 보란 듯이 망했다.
아주 처참하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