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1화 (21/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1화

이번에 강찬혁 프로듀서가 작업한 곡은 정재진, 자신이 듣기에도 명곡이었다.

‘하지만 곡만 좋아서 성공하는 경우는 드물지.’

노래, 컨셉, 가사, 안무, 무대 퀄리티 등등 모든 게 좋은 방향으로 맞물려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운이 따라주면 오직 노래만으로도 차트를 역주행하는 사례들도 종종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특이 케이스.

‘곡 준 강찬혁 프로듀서만 불쌍하게 됐군. 보나 마나 또 턱도 없는 예산을 들이밀 게 뻔하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긴 테이블의 상석에 앉은 김명훈 대표이사가 입을 열었다.

“크흠. 이번에는 제대로 푸쉬를 해보자고.”

……푸쉬? 방금…… 푸쉬라 했나?

‘아니다. 그냥 기대하지 말자. 이 회사에 뭘 바란다고.’

정재진이 안광을 잃은 눈으로 김명훈 대표를 바라봤다.

“이번에 내가 깨달은 게 있어. 우리가 못하는 건 말이야. 깔끔하게 인정을 해야 한다고. 물론 우리 회사가 배우로는 국내 탑! 정상이지만 말이야…….”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정 대리가 전에 있던 회사에서 아이돌 기획 좀 해봤다고 했나?”

“예? 예.”

“솔직히 여태껏 배우만 키워봤지, 가수는 영 모르겠다니까? 크흠…….”

“그래서 이번엔 되도록 전문가들한테 맡길 생각이야. 정 대리가 리스트 뽑아서 나한테 올려.”

“예……? 예. 알겠습니다.”

외주를 맡기겠다는 건가?

이상한 일은 아니다.

컨셉 디렉터, 보컬팀, 안무팀, 의상팀 등을 다 가지고 있는 굴지의 대형 기획사들 같은 경우에도 외주를 많이 이용한다.

그만큼 돈이 들어가지만,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댈수록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게 나오는 법이니까.

당장의 손해보단 미래의 이익을 보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것을 듣지 못했다.

바로 예산!

예산이 적으면 외주 퀄리티도 그만큼 땅에 처박히는 법.

놀랍게도 라이트온의 데뷔 앨범은 거의 외주였다. 그 망할 가사도 외주였단 말이다.

과거를 회상하니 잠시 들떴던 마음에 얼음물이라도 끼얹어진 듯 차분해졌다.

‘그래, 또 기대하면 그게 모자란 놈이지.’

하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대표의 발언에, 정재진의 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커졌다.

“크흠, 이번엔 예산에 딱히 한도를 두지 않을 생각이야. 부담 갖지 말고 정 대리가 알아봐서 나한테 바로 기획안 올리도록 해. 이번엔 다들 진지하게 한번 해보자고.”

연신 표정을 우그러뜨리고 있던 황 부장이 곧바로 무어라 입을 열었으나, 대표가 단호하게 일갈했다.

“이번 일은 전문가에게 맡길 생각이네! 황 부장, 자네도 아이돌에는 일가견이 없지 않은가.”

‘……잘못 들었나.’

주위를 둘러보니 본인을 제외하고도 회의실 내 모든 직원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져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이미 MH의 직원들은 알음알음 대표가 라이트온을 버렸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 부장조차 대표의 단호한 말에 무어라 대꾸하지 못하고 멍청한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다.

한편, 폭탄 발언의 주인공 김명훈 대표이사는 요즘따라 생각이 많았다.

솔직히 본인은 꽤나 운이 좋은 인생을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그런 그의 인생에 오점이 있다면, 라이트온이라는 그룹을 만든 것이었다.

틈만 나면 살살 속을 긁는 친구 녀석이 자신이 만든 그룹이 얼마나 대박 터졌는지 자랑하는 걸 듣다가 나도 못 할 거 없다는 생각에 만든 아이돌 그룹.

자신이 보기엔 다른 아이돌과 비교에도 절대 꿀리지 않는 놈들인데도 불구하고…….

돈을 벌어다 주기는커녕 온통 마이너스, 또 마이너스.

올라오는 보고서를 볼 때마다 한숨만 나왔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아마 아이돌 산업일 테다.

이놈의 아이돌은 제작부터 런칭까지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다 돈, 돈, 돈!

절대 우습게 볼 산업이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아버렸다.

한평생 배우만 키워본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사실은 애석하게도 뒤늦게 깨달았다.

성공할 시에는 막대한 돈을 가져다주는 반면, 실패한다면?

웬만해선 투자금 대비 괜찮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배우들과는 영 딴판이었다.

솔직히 회사에 돈이 없는 것도 아니고, 성공할 때까지 활동을 시킨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하지만 내키지 않았다.

자존심이 강한 그의 인생에서 이런 완벽한 실패는 처음이었기에, 다시 도전하기보다는 외면하고 싶었던 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얼굴 하나는 잘생겼으니, 계약 기간 내에 영화나 드라마 단역부터 넣어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라고 생각했다.

……그 녀석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었지만, 어쩌겠는가?

자존심이 누구보다 중요한 그에게 더 이상의 실패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의 실패는 금방 잊히겠지만, 그 실패가 반복된다면 웃음거리가 될 테니까.

그러던 와중에 평소에 도통 속을 알 수 없었던 녀석, 성해온이 갑작스레 자신을 찾아왔다.

- 당황스러우시겠지만, 대표님께 꼭 제안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찾아왔습니다.

처음엔 이놈이 뭘 잘못 처먹었나…… 싶었지만, 듣다 보니 이상하게 이번엔 뭔가 다를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평소에 감 하나는 좋은 그였기에, 고민이 결심으로 변하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내가 갑자기 스마트폰을 보며 미소 짓자, 주위 멤버들이 잔뜩 기겁했다.

안 봐도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

‘……저 새끼가 갑자기 웃어?’

뭐 이런 생각 중이지 않을까.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장 돗자리를 깔라며 호탕하게 웃습니다!]

아무래도 정답이었던 모양.

원래 성해온의 성격이 어땠는지, 이럴 때마다 심히 궁금해진다.

“강찬혁 프로듀서님이, 데모를 보내주신 것 같은데?”

나는 태연자약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타이틀감으로 만들어주신다던?”

한수현의 물음에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찬혁 프로듀서가 보내온 메시지를 열어보자, 그가 오직 이 팀을 위해 제작했다는 노래의 데모 파일이 들어 있었다.

“저희 얼른! 형. 빨리 들어봐요!”

최승하가 내 어깨를 쥐고 미친 듯이 흔들기 시작했다.

“알겠으니까, ……놔라.”

얼마나 거세게 흔드는지 눈앞이 빙글 돌았다.

다른 놈들도 티는 안 내려고 노력하지만, 긴장되는 건 숨길 수 없는지 얼굴과 몸이 모두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떨리는 건 아마 나일 거다.

……나는 이 앨범의 성공이 목숨으로 귀결되거든.

숨을 들이켠 뒤, 곧바로 재생 버튼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

버튼을 누르자마자 듣기 좋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바다나 초원 따위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한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청량함이 가득 담긴 노래.

전체적으로 경쾌한 분위기에, 대중적인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다.

분명 대중적이지만 무난한 느낌은 절대 아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 곡은 다른 곡들과 차별점을 주는 트렌디하고 리드미컬한 비트가 특히 인상적이다.

그러면서도 중간중간에 스타카토적인 느낌의 사운드가 불규칙적으로 등장하며 포인트를 줌과 동시에 박자감과 리듬감이 업그레이드되고 있었다.

솔직히 지금 이 데모만 들어도 감탄사를 불러일으킬 만한데 여기에 퀄리티를 높이는 후보정 작업까지 제대로 진행한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기대될 정도였다.

객관적으로 현재 이 그룹, 라이트온은 기반이랄 게 전혀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베스트는 단연코 청량이다.

‘호불호가 적고 대중적이지.’

운 좋게 차트 끄트머리에 걸치기만 해도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해 낼 확률이 커진다.

게다가 현 시기상 컴백 준비를 서두른다면 아슬아슬하게 여름에 맞춰서 발매할 수 있다.

이런 청량 곡이 여름에 발매된다면 시너지 효과를 자아낼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솔직히 여름에 맞추기는 조금 많이 촉박하지만.’

이런 노래를 받은 이상, 대표를 쥐어짜 내서라도 서둘러야 한다.

멜로디가 재생되는 약 4분의 시간이 끝나고도, 거실엔 적막만 흘렀다.

“……좋은데요.”

한수현의 짤막한 감상평을 필두로 하나둘씩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

“……저만 좋은 거 아니죠? 와하하, 진짜 좋은데요?”

“나도 좋았어.”

“하, 한 번만 더 들어봅시다!”

“……찬성.”

하긴 이런 노래를 받으면 나라도 행복할 거다.

특히 기대했던 데뷔를, 그딴 줘도 안 가질 노래로 해버리고 폭삭 망한 뒤 수납까지 당했던 놈들인데 얼마나 좋겠는가.

난 피식 웃으며 데모 파일의 반복 재생을 설정했다.

과하다.

과해.

이미 내 낯짝에서 흐뭇함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지금 상황을 설명하자면, 4분도 안 되는 곡을 지금 무려 1시간이 넘게 듣고 앉아 있었다.

더 이상은 못 듣는다.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

계속해서 흘러나오던 멜로디가 뚝 끊기는 소리와 함께 일순간에 종료되니 시선들이 내게 모여들었다.

“쉬어야겠어.”

드디어 무한 재생의 굴레에서 빠져나왔다.

성해온의 인성은 이럴 때 요긴하다.

그냥 멋대로 굴어도 다들 그러려니 하는 걸 넘어서서…… 오히려 조금 편안해하는 것 같기도 하고.

“데모 파일 단톡에 보낼 테니까, 알아서 들어.”

내 말에 최승하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형 저희 단톡에 없-”

“초대해.”

아이돌 그룹이라면 당연히 있을 법한 단체 메시지방은 성해온의 스마트폰에 존재하지 않았다.

분명 그 인성에 자기가 나왔겠지.

이참에 단톡방 초대나 받아야겠다는 생각에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형이 그런 쓸모없는 거에 초대할 생각은 하지도 말라고…….”

“…….”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성해온의 과거 인성은 까도 까도 새롭고 언제나 기대 이상이로군.

“……괜찮으니까 초대해.”

“넵!”

[최승하 : 형~ (이모티콘)]

“초대했어요!”

고맙다는 의미로 손을 두어 번 흔든 후 곧바로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장 침대에 엎어져 참았던 한숨을 뱉어냈다.

“……하아.”

회사에 보내기 전에 내게 보낸다고 했으니, 지금쯤 회사에도 데모곡이 전달이 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데모곡이 나왔으니 다음으로는 컨셉을 정하겠지.

보통 앨범 제작 과정에서 먼저 노래가 나오면, 그에 어울리는 컨셉을 정하고 나서야 이제 가사와 안무 제작에 들어가게 된다.

노래는 정말 기대 이상으로 좋게 뽑혔으나, 마음껏 기뻐할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이유는 눈물겹게도 우리 소속사가 바로 MH이기 때문이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애잔한 눈빛으로 당신을 바라봅니다.]

불쌍해할 거면, 골드라도 던져주고 동정하라고.

‘상태창.’

속으로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상태창이 눈앞에 두둥실 떠올랐다.

이쯤 되니 이것도 슬슬 적응이 된다.

[성해온]

체력 B-

정신력 S+

비주얼 B+

노래 A

춤 B-

특성

▶[K팝 망령의 눈(A)]

▶[……그런가?(B)]

진행 중인 미션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망돌의 그림자를 없애라!

보유 골드 900G

‘……명훈이의 손에 맡길 바엔 차라리 내가?’

[……그런가?(B)] 스킬 덕에 설득은 조금 더 쉽겠지만, 그래도 컨셉이라는 중요한 관문을 내가 주장하는 대로 받아줄 확률은 높지 않다.

“…….”

그만큼 컨셉이란 건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만큼 매우 중요하다.

어차피 귀로 듣는 거 컨셉이 뭐가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오산이다.

같은 노래라도 컨셉에 따라 승패가 뒤바뀔 수 있을 정도니까.

사실 아까 노래를 듣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컨셉이 있었다.

우선 아이돌이라면 최소 한 번씩은 하게 된다는 유구한 전통의 바로 그 컨셉.

대형 기획사부터 소형 기획사까지, 너 나 할 것 없이 거쳐 간다는 컨셉.

바로 학교 컨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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