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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3화 (23/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3화

청량 컨셉의 양면성과 리스크에 대해 설명하자, 잠자코 듣고만 있던 대표가 입을 열었다.

“이거, 듣다 보니 일리 있는 말이로구나. 나 원 참 해온이가 이런 인재일 줄은 몰랐지. 크흠흠! 우리 회사에서 스카우트해야 하는 거 아닌가 몰라!”

스카우트 받아도 MH엔 안 간다.

돈다발을 흔들어도 안 간다.

절대로.

대표의 반응이 긍정적으로 나오자, 멤버들의 칙칙했던 얼굴이 삽시간에 밝아졌다.

나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던 명훈이가 정재진의 의견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 * *

정재진은 적잖게 놀란 상태였다.

‘……허어.’

엔터 업계에서 일한 경력이 짧지 않은 그인데도, 이렇게 소속 아티스트가 직접 발표 화면까지 만들어 와 컨셉을 제안하는 건 처음이었다.

심지어 더 어이없는 점은 이쪽 업계에서 몇 년을 구른 직원들보다도 더 노련하게 타깃층을 분석하며 컨셉을 제안한다는 점이었다.

직접 만들었다는 자료 화면조차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맞는지 궁금했기에, 모난 행동인 줄 알면서도 일부러 꼬투리를 잡아 질문을 던졌던 것이었다.

“……예. 대표님. 저도 해온 씨의 의견에 모두 동의합니다. 현재 라이트온에게 계절성이 짙은 노래는 시기상조니까요.”

* * *

나는 정재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학교’라는 컨셉은 자체로도 대중성이 있어 리스크가 적고, 청량함과도 잘 어우러질 거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무엇보다?”

“곡 전반에서 느껴지는 트렌디함, 그리고 예기치 못한 시점에서 불규칙적으로 등장하는 스타카토적인 느낌의 사운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학생들의 발랄한 느낌을 자아내기 충분합니다. 때문에-”

띠링!

[……그런가?(B)]가 발동됩니다!

타이밍 좋네.

나는 최종 결정권자인 대표와 정면으로 눈을 맞추며 마지막 말을 이었다.

“학교의 영한 분위기와 더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호오.”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대표가 턱을 느릿하게 쓰다듬으며 낮은 감탄사를 뱉어냈다.

계속 나사 빠진 얼굴이던 정재진이 갑작스레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저도 청량이라는 윤곽만 잡았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게 없었는데, ……해온 씨의 이야기를 듣자마자 전구에 불이 들어온 느낌입니다.”

나는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렸다.

‘됐다.’

실무진과 최종 결정권자.

둘 모두가 내 제안에 이토록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이상 이제 컨셉은 반쯤 정해진 거나 마찬가지겠지.

* * *

대표이사실을 나와 복도를 걷고 있는 멤버들과 정재진 대리 사이에는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그리고 나는 오늘 해야 할 말을 다 하지 못했다.

바로 가사.

의 작사가, 딱 봐도 이 회사 윗대가리의 지인 냄새를 폴폴 풍기는 그 무능력자에게 또다시 의뢰가 들어가는 건 막아야 한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선두로 걸어가던 정재진의 옆에 서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멋쩍은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음, 이번에 가사는.”

중년 작사가에게 맡길 바에야 차라리 자체 제작 참여로 멤버들과 써보겠다고 제안하려던 참이었다.

우리도 다 초보지만, 그 감 떨어진 작사가보다야 백배 나을 것이기에.

“걱정 마세요.”

걱정 마세요라니, 장난하는 건가.

“……예? 아니. 저희가,”

“이번엔 절대 저번처럼 되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그렇게 말하는 얼굴이 꽤 진지했다.

믿어도 되는 건가?

역시 이럴 땐 직접적으로 물어봐야겠지.

“……의 작사가님은-”

“절대!”

거의 고함과도 같이 튀어나온 대답에, 그걸 내뱉은 정재진의 얼굴에 머쓱함이 감돌았다.

“절대, ……절대로 아니니까 걱정 놓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내 말까지 끊어가며 부정할 줄은 몰랐는데.

사실 이런 건 실무진의 영역이기에, 무례인 질문이다.

그런데도 기분 나쁘다는 기색 없이, 정말 질색하는 얼굴로 손을 펄럭거리고 있었다.

“진심으로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제 목에 칼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아연실색한 얼굴의 정재진이 한숨을 몰아쉬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또 처음 보는 얼굴의 매니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컴백도 잡혔는데, 대체 매니저는 언제 붙여주는 거지.’

내가 하는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정재진이 입을 열었다.

“조만간 라이트온 담당 스태프들을 정식으로 배정해 드릴 예정입니다. 많이 불편하실 텐데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내 생각보다 제대로 정신이 박혀 있는 인간인 건가?

정신 나간 데뷔 앨범과는 관련 없는 사람일지도.

이내 나는 고개를 털었다.

‘MH에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의심의 눈초리를 아직 거두지 않은 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밴에 올라탔다.

* * *

“크흠, 그래서 자네가 보기엔 어땠어?”

앞뒤 다 잘라먹은 물음이었지만, 충분히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

“……솔직히 정말 놀랐습니다.”

정재진은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몸담고 있었던 엔터에서도 저렇게 업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동시에 수준 높은 전략을 펼칠 수 있는 직원은 몇 되지 않았습니다.”

정재진은 대화 내내 연신 놀라움을 토해냈다.

“크흠, 내가 사람 보는 눈! 그거 하나는 아주 좋단 말이지.”

자신을 칭찬한 것도 아닌데, 결론은 본인의 공으로 돌아가는 게 참 김명훈 대표이사다운 흐름이었다.

“예. 사실 준비했던 기획안이 있었는데, 성해온 씨가 준비해 온 기획안에는 못 미치더군요. 그렇다면 그 컨셉에 조금 살을 붙여서 어서 진행을…….”

* * *

[MH 정재진 대리님 : 안녕하세요. 저번에 번호 교환한 정재진입니다. 다름이 아니고, 가사 초안이 나왔습니다. 마침 제가 근처에 갈 일이 있어서-]

일전에 내가 대표로 번호를 교환했는데, 이른 아침부터 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MH 정재진 대리님 : 프린팅본을 전해 드리려 하는데 30분 정도 후에 아파트 앞으로 잠깐 나와주시겠어요?]

“……뭐가 이렇게 빨라?”

컨셉을 제안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가사 초안이 나왔다는 연락이 왔다.

생각보다 회사 쪽도 급하게 굴러가고 있는 건가.

자켓만 걸친 채 밖으로 나갔더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 해온 씨! 빨리 나오셨네요.”

정재진이 활짝 웃으며 다가오더니 내게 종이를 넘겨줬다.

“가사 초안입니다. 여기 대략적으로 파트도 나뉘어져 있고, 방금 가이드 녹음이 담긴 파일도 전송했으니 확인해 주세요.”

할 일이 많아 보였던 정재진은 곧장 떠났고, 나는 아파트 앞에 우두커니 선 채로 종이를 넘겨 가사를 확인했다.

음, 생각보다…….

더 괜찮은데?

이상하면 어떻게든 고칠 생각이었는데 나름 정상적인 가사다.

가이드 녹음을 들어봐야 더 확신이 설 것 같지만.

나는 숙소로 돌아가 멤버들에게 가사 초안을 나눠줬다.

다른 녀석들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 프린팅되어 온 종이에 시선을 빼앗긴 채 한참 말이 없었다.

“가이드 녹음 파일도 들어볼까.”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윤재가 되물었다.

“……가이드? 벌써 가이드가 나왔습니까?”

“나도 아직 안 들어봤는데, 여기 보내주셨어.”

파일을 열어 재생하자, 작사가가 대충 느낌만 보여주려 녹음한 느낌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전문적인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하지만 확실히 음이 덧붙여지니 어떻게 불러야 할 노래인지, 어떻게 불러야 더 매력적인 노래가 될지 느낌이 온다.

컨셉과도 잘 어울리는 데다가, 파트 분배도 나쁘지 않다.

이렇게 가사까지 받아보니 컴백이 성큼 다가왔다는 게 실감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제 할 게 있다.”

“뭔데요?”

“관리.”

“……!!”

내 인성이 무서운지 다들 눈치만 볼 뿐, 뭐라 말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승하가 중얼거리듯 작게 대꾸했다.

“……벌써요? 조금 더 있다가 해도 되지 않나……?”

“안 돼.”

아이돌에게 관리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멤버들은 객관적으로 말랐으면 말랐지 다이어트가 필요할 정도로 살이 오른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공백기가 길었던 만큼 어느 정도 적정선의 관리는 필요했다.

“굶자는 건 아니다. 일단 컴백 2주 전까지는 7시 이후 금식, 아침 점심은 평소같이 식사를 하되 저녁은 샐러드.”

극한의 체중 감량이 아닌, 적당한 관리.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부해 보이게 나오는 화면에 어떻게든 더 잘 나오기 위한 일이다.

잘생겼다는 이 얼굴들을 어떻게든 더 잘 써먹어야 한다.

“……컴백 2주 전에는요?”

최승하의 말에 나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돼……. 그럼 오늘까지만 먹어요. 저 어제 치킨 시켜 먹으려다가 오늘 먹으려고 참았단 말이에요.”

“밖에 내가 시킨 거 왔을걸. 그거 먹어.”

내 말이 끝나자마자 녀석은 빛의 속도로 도어락을 열더니 엄청난 사이즈의 아이스박스를 뜯기 시작했다.

치지직-!

박스 테이프가 뜯기는 소리와 함께 최승하의 얼굴이 절망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이건 설마.”

“닭가슴살이랑 샐러드다.”

내 피 같은 돈으로 주문한 거라고.

“닭가슴살을 치킨 대신 먹으라고 한 거예요? 형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잔인한 사람이네…….”

“안 먹을 거면 말아.”

“……닭가슴살 스테이크 먹어도 돼요?”

* * *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의 빛나는 양심에 감탄합니다!]

지금 시간은 새벽 2시 46분.

“결제되었습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버려주세요. 감사합니다.”

다이어트 이야기 꺼낸 장본인의 양심상, 분명 참아보려 했다.

하지만 녹음일은 어느새 내일로 다가왔고, 성해온은 보컬에서 꽤 중요한 포지션을 맡고 있는 듯하지.

충분한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왔거든.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인간들은 그런 걸 자기 합리화라 부른다고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고 전해줍니다!]

오늘따라 더 시끄럽군.

후룹-

편의점 내부를 둘러보다가, 다이어트 컵라면이라고 크게 쓰여 있길래 집어 들었는데 나쁘지 않다.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의 컵라면을 아쉬워하며 국물까지 들이켜는 순간이었다.

“……?”

어디에선가 시선이 느껴지는 묘한 기분에, 나는 앉아 있는 편의점 테이블의 정면에 위치한 투명한 유리 통창으로 시선을 올렸다.

“……컥, 크흡. 쿨럭!”

뭐야 X발.

이 시간에, 하필 지금 왜 여기에 저 녀석이 있는 거냐고.

나는 다급하게 먹은 걸 정리하고 밖으로 나섰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저 멀리 신유하로 추정되는 인영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기대도 안 했지만 역시, 기다려 주는 의리 따윈 없었다.

나는 빠른 걸음으로 거의 뛰다시피 녀석에게 다가갔다.

“같이 들어가자.”

“…….”

신유하는 아무런 대답 없이, 그저 입을 굳게 다물고 묵묵히 걸었다.

숨 막히는 어색함이 감돌았다.

힐끔.

내 시선이 닿자, 녀석이 허겁지겁 손에 들고 있던 에코백을 숨겼다.

‘그래봤자 다 봤지만.’

시리얼 크기의 세모나게 생긴 진갈색 알갱이들이 지퍼백에 한가득 담겨 있었다.

……사료?

시선을 내려 살피자 신유하가 입고 있는 검은색 트레이닝 바지에도 동물의 털이 사방팔방으로 묻어 있었다.

“…….”

“……산책 나왔어?”

“…….”

신유하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이 녀석이 소심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으나, 단둘이 남아보니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답답함이 치솟았다.

무슨 말이라도 걸어보려고 입을 연 순간, 정확히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의 작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 말할 생각…… 없어요.”

“…….”

음.

……그 말을 꺼내려던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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