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4화
오늘은 녹음을 진행하는 날.
회사에서 보낸 차가 일찍부터 숙소 앞으로 도착했다.
우선 회사로 간 다음 다 같이 녹음실로 이동하는 루트인 듯했다.
오늘도 처음 보는 얼굴의 매니저가 머쓱한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회사로 가겠습니다.”
이번에 온 매니저는 꽤 사교적인 성격인지,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아마 멤버분들은 연습실 공사하고 처음 가시는 거죠?”
……연습실 공사?
과거 기억이 없으니 입을 다물고 있는 나와 달리, 놀란 얼굴의 멤버들은 매니저에게 이것저것 질문 공세를 하기 시작했다.
“으음? 연습실? 무슨 연습실……. 헉, 설마 저희 연습실이요?”
“예? 저, 저희가 쓰는 연습실 말씀이십니까?!”
“아이쿠, 모르셨어요? 이거 괜히 먼저 떠든 거 아닌가 모르겠네. 저는 전달받았을 줄 알았죠. 듣기로는 어저께 공사가 끝난 것 같더라고요? 뭐, 간단한 공사여서 금방 끝났지만요. 곧 도착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허허.”
* * *
“……우와.”
연습실에 발을 들이자마자 나를 제외한 멤버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작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그런 멤버들 사이에서 나만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보고 감탄하는 거지? 아무리 봐도 그냥 평범한 안무 연습실인데.’
다들 왜 저러는지 하나도 이해가 안 가지만, 일단 혼자만 튀는 건 사절이니 나도 생기 있는 눈빛을 장착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거의 두 배는 넓어진 거 같은데.”
류인이 연습실을 둘러보며 중얼거리자, 최승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예 공간이 바뀌었어요. 음, 여기 원래 다른 연습실이었잖아요.”
“벽에 붙어 있던 거울도 연습을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 궁금할 정도로 작아서 회사의 의중이 심히 궁금했는데, 이제야 전체 거울 벽으로 새로 공사를 하셨네요.”
“수, 수현아! 연습실 문 열려 있어……!”
“그게 뭐요? 들으라 해요.”
심드렁한 얼굴의 한수현이 혀를 차는 동안 나는 공간을 둘러봤다.
지금도 그다지 넓은 편은 아닌데, 이게 2배나 커진 거라고?
‘대체 얼마나 열악했던 건지.’
사실 안 봐도 예상이 가긴 한다.
배우들이 쓰던 연기 연습실 하나 잡아서 대충 벽에 거울만 붙이고 끝이었겠지.
제대로 지원해 주겠다는 말에 연습실의 개선도 포함되어 있었던 모양.
나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눈을 반짝이며 연습실을 구경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와아아……. 이거 스피커도 좋은 걸로 바뀌었네……. 헉!”
최승하 역시 상기된 얼굴로 내부를 구경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숨 들이켜는 소리를 내며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무슨 일인데.’
최승하가 세상 감격한 얼굴로 천장을 가리켰다.
“시, 시스템 에어컨이…….”
“…….”
음, 이건 정말이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현장이다.
이걸 지금 팬들이 봤으면, 명훈이의 목숨은 아무래도 보장해 주기 힘들겠군.
드르륵-
멤버들이 눈을 반짝이며 둘러보고 있을 때, 연습실의 문이 열렸다.
“제가 나름 깔끔하게 꾸민다고 꾸며봤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네요…….”
오랜만에 보니 다크서클이 두 배는 늘어난 것만 같은 정재진이었다.
‘음, 연습실 공사를 진행한 장본인이 이 사람인가.’
옆에서는 아주 마음에 든다며 난리 법석이었다.
“여기서 대기해 주시면 함께 외부 녹음실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이 회사는 배우만 키우던 소속사.
당연하게 녹음실 따위는 있을 필요가 없다.
그래도 아이돌 키우기로 마음먹었으면 이 넓은 사옥에 그 정도는 작게라도 하나 만들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돈이 없으면 모른다. 돈도 있으면서.
“제가 꼭 회사 내에 녹음실이 생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전부터 느꼈는데, 이 사람 독심술 능력 있는 거 아니야?
* * *
당연하게도 도착한 녹음실엔 곡을 만든 프로듀서가 있었다.
“……어?”
멤버들은 강찬혁 프로듀서의 이름만 들어봤지 얼굴을 보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차윤재가 강찬혁을 보자마자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아, 그때 카페에 이 녀석도 있었는데 미리 말한다는 걸 잊고 있었다.’
나는 차윤재에게만 들릴 정도로 조용히 귓속말을 전했다.
“원래 나랑 아는 분인데 비밀로 해줘.”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방금 굉장히 자연스러웠다고 감탄합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날이 가면 갈수록 뻔뻔해진다고 혀를 찹니다.]
“녹음을 시작하기 전에 인사 먼저 드리겠습니다. 반갑습니다. 강찬혁입니다.”
“저희도 뵙고 싶었습니다! 프로듀서님, 곡이 정말! 너무! 좋아요!”
처음 만난 건데도 절친한 사이인 것처럼, 최승하가 강찬혁이 내민 손을 붙잡고 붕방붕방 흔들어댔다.
강찬혁 프로듀서는 아직도 칭찬에 면역이 되지 않았는지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가사와 파트는 숙지하셨나요? 그럼 수현 씨부터 녹음 들어갈게요.”
녹음이 시작되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곧바로 진지해졌다.
평소에 유하다 못해 만만한 분위기의 인간인지라 솔직히 싫은 말 같은 건 못 할 줄 알았는데, 세세한 것까지 다 잡아내고 있었다.
“거기서는 좀 더 소리를 시원하게 내뱉어주세요.”
“전보다 나아지긴 했는데 한 번 더 갈게요.”
“지금 수현 씨는 ~거야↗ 이렇게 내뱉으시는데 ~거↗야↗ 이렇게 좀 더 내질러 주세요. 지금 조금 답답한 느낌입니다.”
“네. 좋습니다. 다음 파트 갈게요.”
파트 하나로 몇 번의 녹음이나 했는지, 드디어 프로듀서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그때 한수현이 입을 열었다. 녹음 부스와 연결된 스피커로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 한 번만 더 할 수 있을까요?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정재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음, 지칠 법도 한데, 완벽주의적인 성향? 아니면, 노력파?
실제로 한수현의 상태창 속 능력은 다른 멤버들에 비해서 조금 뒤처지는 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유달리 내세울 만한 능력치가 없달까.
‘상태창.’
대상자를 응시하며 읊조리자 곧바로 떠올랐다.
[한수현]
체력 B-
정신력 A+
비주얼 B+
노래 B+
춤 B
※ 망돌의 그림자 수치 : 42%(*위험 2단계)
그렇다고 능력치가 낮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단지 보컬 멤버, 혹은 댄스 멤버로 칭할 만큼 독보적인 능력치를 갖지 못했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강찬혁이 입을 열었다.
“수현 씨, 더 이상하면 목에 무리가 갑니다. 저는 지금까지 한 걸로도 괜찮은데, 다시 하고 싶으시면 조금 쉬고 이따가 다시 들어갈게요.”
- ……네, 알겠습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목 컨디션이 나빠지긴 했는지, 녀석은 생각보다 빠르게 수긍했다.
“프로듀서님 생각보다 까다로우시네요. 저 지금 좀 많이 떨려요.”
다음 타자인 최승하가 내 옆에서 속닥거렸다.
“승하 씨 들어갈게요.”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녀석이 우는 얼굴로 녹음실로 향했다.
나는 대충 주먹을 치켜들고 입 모양으로 영혼 없는 파이팅을 외쳤다.
‘심각하게 불편하군.’
그도 그럴 게, 녹음실에서 나온 한수현의 안색이 계속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거기에 얼마나 칙칙한 분위기를 뿜어내는지, 나를 제외하고도 주변에 있는 놈들까지 다 한수현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못했으면 이해라도 하지, 그것도 아니었다.
내가 보기엔 잘했다. 능력치도 각 파트에서 에이스로 꼽히는 멤버들보다 상대적으로 낮다는 거지, 절대 평균 이하라는 소리가 아니니까.
노래에 맞는 음색을 갖고 있어서, 이 녀석은 파트도 꽤 많았다.
덕질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노래 못하는 놈한텐 파트 얼마 안 돌아간다. 이 정도 파트 돌아갈 실력이면 어느 정도 실력은 있다는 거지.
“잘하던데.”
나는 옆에 앉은 녀석의 팔뚝을 툭 치며 말을 건넸다.
“…….”
칭찬은 역효과였는지 안색만 더 안 좋아질 뿐이었다.
내가 보기엔 이 녀석의 인성도 만만치 않다.
한 0.7 성해온 정도?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정색합니다!]
……0.5?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더 강력하게 정색합니다!]
……0.3?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눈을 부릅뜹니다!]
그래, 성해온의 인성에 갖다 댈 수는 없는 걸로 하자.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온화한 미소를 짓습니다.]
“…….”
쓸데없는 잡생각만 하다 보니 어느새 나의 녹음 차례가 다가왔다.
이게 프로듀서와 소통할 수 있는 마이크인가.
신기하긴 하다.
밖에서 프로듀서가 버튼을 누르자 내가 있는 녹음실로 그의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 해온 씨, 싸비부터 녹음 가겠습니다.
“예.”
나는 곧바로 옆에 놓인 헤드셋을 착용했다.
성해온의 보컬 능력치는 그룹에서 가장 높다.
옆에 구비된 물을 들이켜고 목을 가다듬은 후 고개를 끄덕이자, 곧바로 지금 녹음해야 할 싸비 부분의 직전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싸비(sabi), 후크(hook), 하이라이트(highlight) 등등 부르는 명칭도 다양한 이것은 ‘후렴구’라는 의미로 노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부분의 매력과 중독성만으로도 노래의 희비가 엇갈릴 정도로.
특히 아이돌 노래는 ‘후크(hook)송’이라고도 불리는 만큼, 이 파트의 중요성은 별 다섯 개를 쳐도 모자라다.
S+급 정신력으로 심장은 평온하기만 했지만, 이 파트의 중요성을 아주 잘 아는 나로서는 긴장되지 않을 수 없었다.
후렴구, 즉 싸비 부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면 듣는 사람은 김빠진 콜라 먹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잘해야 할 텐데.’
다가오는 긴장감에 그냥 눈을 감고 몇 번이나 연습한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끊기자, 정재진의 목소리가 부스 내에 있는 스피커로 들려왔다.
- 좋았는데 다음 가사로 넘어가는 부분을 좀 더 살려서 다시 가볼게요. 으음, 지금은 조금 밋밋한데 약간 희망을 주는 소년 같은 목소리로요.
저게 무슨 어이없는 오더냐, 싶겠지만 신기하게도 바로 이해가 된다.
아마도 성해온, 이 녀석이 보컬적으로 재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겠지.
박자에 맞춰 입을 열자 내가 듣기에도 썩 괜찮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투명 부스 바깥쪽을 살피니 강찬혁 프로듀서의 눈에 이채가 돌고 있었다.
- 딱 제가 원하던 느낌입니다! 다음 파트 바로 이어 갈게요.
- 오케이, 좋았어요! 이제 휴식 시간 좀 가졌다가 류인 씨 녹음 갈게요.
음, 무슨 정신으로 부른 건지도 모르겠다.
나는 영혼이 탈탈 털린 기분을 느끼며 녹음 부스의 문을 열고 나왔다.
“형. 너무 잘 부르던데요? 어떻게 한 번을 안 절어요? 떨리지도 않나?”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했지만, 그럴 리 없었다.
물론 정신력이 지배한 몸은 긴장이라는 감정을 모르는 것같이 굴었지만…… 분명 떨렸다.
긴장감에 가사가 나온 시점부터 매일같이 연습했기도 하고.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또 산에 가서 연습했냐고 묻습니다!]
다 알면서 이렇게 물어보는 건, 놀리는 거겠지.
하여간 좋게 보기 힘든 놈들이다.
……그리고 보컬은 산으로 안 갔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낄낄댑니다!]
열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