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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5화 (25/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5화

“죽겠군.”

바빠도 너무 바쁘다.

녹음한 곡의 후보정 작업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안무 초안이 나올 정도로 일정이 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면 말 다 했지.

매일같이 회사와 숙소만을 바삐 오가며 쳇바퀴 같은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불만은 없다.

되도록 여름 시즌에 맞춰 발매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정재진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일의 진행 속도는 정말이지 엄청났다.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이 인간은 꽤 믿을 만한 실무진인 것 같다.

이 사람 덕분에 내가 신경 쓸 일이 많이 준 건 사실이니 고마운 마음이다.

지금 우리는 연습실에 둥글게 모여 앉아 정재진이 내민 태블릿 화면 속 안무 초안을 몇 번이고 돌려보는 중이다.

화면 속의 6명의 댄서는 멤버들의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박혀 있는 이름표를 가슴팍에 매단 채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덕분에 각자의 안무와 동선 등을 한눈에 숙지할 수 있었다.

‘……괜찮은데?’

노래의 청량한 느낌에 걸맞은 밝은 분위기의 안무였다.

특히 통통 튀는 비트에는 그에 맞춰 동시에 점프한 채로 공중에서 하이파이브를 하는 시늉을 내는 등 청량한 컨셉에 알맞은 포인트가 될 만한 안무가 많았다.

그렇다고 유치한 느낌이 드는 안무도 아니고, 잦은 동선 이동도 작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럽다.

한마디로 퀄리티 있어 보인다는 뜻이다.

“어떠신가요? 시간이 촉박한 탓에 급하게 의뢰 드린 것치고…… 제가 보기엔 나쁘지 않은데 역시 멤버분들의 의견이 중요하니까요.”

정재진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사실 우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바꿀 수 있는 부분도 아닌데 말이다.

“저는 마음에 듭니다.”

내 말이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다른 멤버들도 줄줄이 고개를 끄덕였다.

헉 소리가 나올 정도는 아니지만, 노래와 잘 어우러지면서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는 안무였다.

“아시다시피 아직 회사에 안무 디렉터님이 안 계셔서…….”

망돌의 소속사에는 있을 수 없는 전속 디렉터인데도, 정재진은 미안하다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이번 활동을 도와주실 디렉터님이 오늘 오실 겁니다. 아, 지금 보고 계신 것도 디렉터님이 짜신 안무입니다.”

“……혹시 저번 활동의 안무가님이신지…….”

어쩐지 질문을 던진 차윤재보다 더 아득한 얼굴을 걸친 정재진이 고개를 느리게 도리질 치며 퍼석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아니십니다.”

화아앗-!

모든 이들의 안색이 전구라도 켠 듯 일순간에 환해졌다.

두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안쓰러운 광경이었다.

모두가 안무 영상에 시선을 빼앗겨 있을 무렵,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모두의 시선이 문으로 향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음.”

어떤 남자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저 사람 분명 어디서 봤는데.’

어디였더라.

아, 생각났다.

“구희승 디렉터님?”

“오. 저를 아세요? 얼굴 보고 통성명하고 싶어서 제 이름은 비밀로 해달라고 했는데.”

구희승이 정재진을 바라보며 웃었다.

아마 멤버들에게 본인이 올 거라고 알려줬다고 생각한 거겠지.

“……저는 멤버분들께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오! 그렇다면 영광이네요. 얼굴만 보고 저를 알아주는 친구가 있다니.”

알다마다, 구희승은 이 업계에서 이미 어느 정도 유명한 사람이다.

보자마자 이해성이 기억하고 있는 구희승의 정보가 떠올랐으니까.

밀리어스의 소속사이자, 3대 대형 소속사라고 불리는 VX의 전속 디렉터 중 한 명이었던 것 같다.

VX에서 나온 뒤로도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한 것 같고.

나조차도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노래들의 춤을 담당한 사람이 바로 저 사람, 구희승이다.

몸값이 꽤 비쌀 텐데, 명훈이가 이번엔 돈 좀 쓰는군.

“그럼 제대로 소개할게요. 저는 이번에 안무 디렉터로 참여하게 된 구희승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라이트온 여러분?”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인데 딱히 으스대거나 무시하는 기류도 없고.

“다들 아주 훤칠하고 잘생기셨네요. 이거 옆에 붙어 있기가 겁나네요. 하하.”

눈도 똑바로 달린 것 같고?

음, 괜찮은 사람이네.

나는 정확히 2시간 뒤에 이 생각을 바꿔먹게 된다.

‘……X발, X발!’

나는 속으로 욕을 한 바가지 쏟아냈다.

- 라이트온 여러분, 편하게 말 놔도 될까요?

- 당연하죠. 편하게 가르쳐 주세요.

그렇게 말하지 말걸.

불편하게 대하라고 할걸!

2시간 전 웃으며 나불대던 내 입을 꿰매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 번 더.”

“거기, 해온이라고 했지? 박자 똑바로 안 맞춰?”

“혼자 다시.”

“흐음. 왜 이 간단한 걸 못 하지? 이해가 안 가네.”

“…….”

멤버들이 집중적으로 갈궈지는 나를 안쓰럽다는 듯이 바라봤다.

오히려 더 비참했다. 심지어 이제 구희승은 내 앞에 쭈그려 앉아서 내 발목을 툭툭 치고 있었다.

정말 빌어먹을 상황이라고밖엔 설명이 되지 않는군.

“발이 무겁다, 무거워~ 철근이라도 달았나~ 해온아! 다시!”

안 그래도 성해온의 춤 능력치는 높지 않은 편이다.

한마디로, 성해온 자체가 몸 쓰는 데엔 별 재능이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뚝딱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인 내가 안무를 따라가려니 죽을 맛이다.

“하아~ 진짜 해온이 가르치다가 시간 다~ 가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예 속을 긁으려고 작정한듯한 구희승이 투덜대며 귀를 후벼팠다. 딱 한 대만 때리고 싶었다.

“이 간단한 걸 왜 못할까? 몇 번을 보여주는 건지 모르겠네. 이렇게 하면 되잖아.”

더 열받는 건, 본인은 세상 쉽게 춘다는 것이다.

확실히 춤선이나 뭐나 유명한 이유가 있다, 라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구희승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어어? 해온이 표정 봐, 나 한 대 치겠다? 으하하하!”

진짜 치고 싶어졌다면 어쩔 거지?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흥미진진하게 바라봅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진짜 때리면 500골드를 후원하겠다고 약속합니다.]

미쳤군.

말만 그렇다는 거지, 진짜 치는 순간 나는 미친놈 타이틀과 동시에 이 바닥에서 매장당한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아쉬운 표정을 짓습니다.]

아쉽긴 뭐가 아쉬워.

……그래, 이 정신 나간 성좌들에 비하면 저 사람은 정상인인 것 같기도 하다.

한 동작만 혼자 몇 번을 했을까, 구희승이 손뼉을 치며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그래! 하면 되잖아? 나이스. 다음 파트로 넘어가자.”

이제 조금 마음을 놓아도 되나? 싶었던 순간 구희승 이 미친놈이 또 방긋 웃으며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어? 동선 꼬인다. 제대로 생각 안 하고 할래? 정신 차려 얘들아~”

“진짜 왜 이러지? 너무 못하는데?”

“추면서도 다음 안무를, 다음 동선 위치를 생각하라고. 생각을…… 좀, 하자?”

그 순간이었다.

이해성의 기억 속, 어느 아이돌의 자체 컨텐츠에 깜짝 등장했던 구희승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 희승 쌤은 정말…… 호랑이야. 호랑이…….

- 하하하! 호랑이 기운이라는 거지? 에너자이저.

- 끄으윽…… 항복, 항복이요. 당연하죠. 완전 에너자이저! 사랑합니다!

내가 겪어보니 폭격처럼 쏟아지는 인격 모독에 정신이 아찔해질 지경이었다.

“너네한테 실망할 것 같아. 얘 빼고 지금 마음에 드는 놈이 없어.”

구희승이 류인을 삿대질하며 말을 이었다.

“아. 윤재, 얘도 괜찮다.”

기가 막히게 상태창상으로 춤 능력치가 높은 류인과 차윤재만 골라내서 호명하는군.

멍하니 상태창 속 수치가 정말 정확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구희승이 또 망할 입을 놀리기 시작했다.

“아, 너희 둘도 봐줄 만은 하고.”

신유하와 최승하를 콕 집은 구희승이 몸을 빙글 돌리며 웃었다.

“흐음~”

시선은 나와 한수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너넨, 음. 할 말 없지?”

진짜 한 대 치고 500골드 받아볼까?

혹시 모르는 일이다. 500골드로 가챠 돌리면 5분 정도 기억 상실되는 아이템이 나올 수도 있고.

내가 이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 물을 벌컥 삼킨 구희승이 나와 한수현을 번갈아 바라봤다.

“내가 원래 선배 그룹한테는 일레기, 이레기, 이렇게 이름을 붙여주거든? 그러면 애들 실력이 확 늘어. 자존심 상해서라도 열심히 하는 거지. 근데…….”

구희승이 방긋 웃었다.

“너희는 아직 신인이기도 하고, 어리니까 봐줄게. 근데 다음 주까지도 이 지경이면, 너희도 얄짤 없어.”

갑작스레 눈빛이 바뀐 구희승이 냉랭한 목소리를 냈다.

“그럼 다시 해보자? 브릿지 기본 스텝부터 다시.”

“승하야 너 혼자 계속 빠르다?”

“다시!”

“다시~”

우드득!

정신이 나갈 정도의 트레이닝 강도에 이가 절로 갈렸다.

“에휴! 갈 길이 멀다. 멀어. 음~ 그래도 이제 대충 봐줄 만하네.”

계속되는 연습에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쉴 틈도 주지 않는 바람에 숨소리는 거칠어진 지 오래였고.

사방에서 헉헉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딱 30분만 휴식 시간 줘볼까? 하하.”

끄덕! 끄덕! 끄덕!

나는 격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오늘은 더운 날도 아니고 에어컨도 돌아가고 있는데 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으니까.

누구 하나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근데, 그냥 쉬면 재미없지. 한 번도 안 틀리고 동선 찾으면 쉬는 시간 줄게.”

“……예?”

“당연히 동작까진 안 바라. 동선, 동선만 제대로 찾으면 된다니까? 쉬고 싶으면 잘하자~ 노래 틀게?”

정신 나간 놈…….

내가 보기엔 사탄도 구희승에겐 형님 하며 한 수 접어줄 거다.

결국 30분이나 더 연습하고 난 후에야 쉬는 시간을 하사해 줬다.

정말 죽기 직전이었지만, 한계까지 몰아붙이니 뭔가…….

몸이 머리를 따라가는 느낌이었다.

사실 어떻게 춰야 할지 감이 안 왔는데, 혹독하게 굴려지다 보니 몸이 뇌의 명령을 받기도 전에 저절로 움직이는 경지에 이르렀달까.

“오우~ 우리 해온이.”

“…….”

등 뒤에서 울리는 구희승의 목소리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편안해? 이상하다? 편안하면 안 될 텐데? 나였으면 다른 놈 쉴 때 연습할 텐데? 저기 저 친구, 수현이는 연습하는데?”

돌아보니 한수현이 구석탱이에서 열심히 안무를 소화하고 있었다.

“보고 느껴지는 건?”

“열심히 해야겠다……?”

“정답~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이! 이! 궁뎅이를 바닥에서 떼야 하지 않을까?”

나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도 욕과 조롱을 많이 처먹었더니, 이제 그냥 달달했다.

아무래도 나까지 정신이 나간 게 틀림없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내가 보기에 여기서 이 부분에선 이대로 가는 것보다 류인이가 이렇게 턴해서 여기까지 이렇게 나가는 게 더 멋질 것 같은데?”

명성이 헛된 건 아닌지, 구희승은 내가 보기에도 더 멋진 동작들을 즉석에서 추가해 버리는 기염을 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 싸비에서는 조금 더 리듬을 쪼개는 건 어떨까? 이렇게.”

“오. 좋은 것 같아요.”

춤을 잘 추는 사람들끼리 뭔가 통하는 게 있는지 류인과 차윤재가 고개를 끄덕이며 안무를 즉석에서 수정했다.

“오~ 좋아, 좋아. 너네가 책임지고 저 친구들 하나씩 맡아서 집중 코칭해. 알겠지?”

참고로 ‘저 친구들’이란 나와 한수현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본인은 이제 퇴근 시간이라며 가방 챙겨 나갔다.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지……?’

이제 화낼 기력도 없었다. 다리에 감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드르륵, 쾅-!

문이 닫히기 무섭게 최승하가 연습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다리를 주물렀다.

“……내일 못 걸을 것 같아요.”

상태창상으로 체력이 상위권에 속하는 최승하가 저런 말 할 정도면 과연, 다른 녀석들은 어떨까?

정답은 연습실 바닥에 방금 빤 걸레처럼 축축 늘어져 있었다.

“어으…….”

“……하아아.”

“죽겠다…….”

이런 앓는 소리를 내며 말이다.

무슨 연습 첫날부터 이렇게 강행군을 시키는지.

그래도 다들 춤에 기본기가 있는 상태라 그런지, 고작 몇 시간 만에 동선과 전체적인 안무를 대강 딴 상태였다.

“우리도 이만 숙소 가서 쉴까요? 내일 아침에 다시 나와요. 첫날부터 무리하면 근육통 때문에 다음 날이 통으로 날아가니까요. 그리고 벌써 저녁 시간 훨씬 지났어요!”

일리 있는 말이었다.

지금도 갑작스레 혹사당한 근육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었으니까.

“먼저 가세요.”

우리가 바닥에 흐물흐물 늘어져 있을 때도 안무가 재생되는 태블릿 화면만 쳐다보던 한수현이 입을 연 건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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