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29화 (29/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29화

내가 봐도 구성과 흐름이 괜찮았던 뮤직비디오였다.

색감까지 선명하고 청량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필터를 씌워놔서, 꽤 마음에 든다.

“미, 믿기지가 않습니다! 진짜로 저희 뮤직비디오가…….”

눈을 크게 뜬 채 중얼거리는 차윤재에, 류인이 작게 웃었다.

“그러게. 이렇게 나온 거 보니까 실감 난다.”

“……맞아요.”

“시, 시, 심장이 너무 빠르게 뜁니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안 죽어요. 그리고 그럴 땐 연습을 하셔야죠.”

논리가 반쯤 사라진 한수현의 말에, 차윤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럴까! 연습이라도 해야할 것 같습니다!”

저 바보들…….

고개를 절레 저은 나는 슬쩍 옆으로 빠져 벽에 등을 기댔다.

차트 성적은 어차피 1시간 후에야 확인이 가능하니 당장 살필 수 있는 건 팬들의 반응이다.

티저가 나온 시점부터 너무나도 소중한 한줌단, 즉 고인물들은 이미 열렬한 홍보 중이었다.

- LIGHT ON 스밍 이벤트 (하트 이모티콘)

6/12 오후 6시에 음원이 공개됩니다!

이 트윗을 알티해 주시는 2분 추첨해 아래 기프티콘을 드려요!

(당첨자분께 스밍 인증받습니다!)

티저만 봐도 벌써 명곡인 많관부…

(치킨 기프티콘) (치킨 기프티콘)

이런 식으로 말이다.

뮤비와 음원이 공개된 후 반응은 호평의 연속이었다.

- 뭐냐?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더니 명훈이가 드디어 정신을 차린 거냐?

- 성해온 보컬 돌았다 진짜 너무 좋음 목소리 진짜로 독보적이다

└ 22 진짜 메보인데 목소리까지 유니크함

- 와 미친 노래 ㅈㄴ 좋은디?

- 아니 진짜 명곡인데? 빠깍지 빼고 들어도 좋음 ㄹㅇ

- 진짜 청량 청량이다 너무 좋아 ㅅㅂ

- 컨셉 너무 찰떡인데? 뮤비 보면서 계속 개저웃음 지음…… 뮤비 끝나고 검은 화면에 내 표정 비치는데 개놀래서 폰 던질 뻔함

└ 야 너도?

└ 혹시 너두? ㅅㅂㅋㅋㅋㅋ

- 와 진짜 얼굴은 탑티어다

- 얘네가 그 앞치마남 있는 그룹? 와 존잘에 노래도 좋은데 한번 발 담가볼까

팬이 아닌 이들까지 반응을 보내고 있었다.

‘역시 관리시키길 잘했군.’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혼자 뭐 먹지 않았냐며 낄낄댑니다!]

“…….”

맹세코 그때 컵라면 말고 먹은 적 없다.

진짜다.

쓸데없는 소리는 넘어가고, 그 와중에도 가장 난리인 반응은 단연코 ‘그것’이었다.

- 내가 탈빠하려고 하면, 라이트온이 특기 [반바지]를 보여주며 내 발목을 잡는다

- 미친 거 아냐? ㅅㅂ 티저엔 조신하게 긴바지 입고 나오더니 뮤비에서 뒤통수 맞고 지금 피 철철 흘리는 중

- 라이트온 : 반바지 입어줄게 ㅇㅇ

└ 뮤비 본 팬 : 죽어줄게 ㅇㅇ

- 얘들아… 아무래도 이거 명훈이가 칼 갈은 거 아니냐? 어떻게 이런 컨셉에 반바지를 미친 새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단체 반바지? 단체 반바지? 단체 반바지? 단체 반바지?

- 으하하ㅋㅋㅋㅋ 우리 애들은 단체로 반바지 입어준다

└ (개부러워하는표정짓기)

└ 부럽다… 우리 애들은 맨날 거적때기만 입는데…

반바지에 담긴 파괴력은 생각보다 엄청났다.

이 소식은 라이트온 팬덤을 넘어 다른 덕후들의 타임라인에까지 순식간에 퍼지게 된다.

- 독기에 박수

- 못생긴 남돌이 반바지 입으면 그것보다 열받는 게 없는데 얘넨 반바지 입을 자격 충분하다

- 진짜 뜨고 싶은가 보다… 칼 갈았나 봐 얘네…

- 반바지에 다리털 박박 민 남돌 아주 호감

물론 조롱하는 사람들이 없던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들보다는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시간은 7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후 6시 57분.

음원 차트는 1시간마다 변동이 일어나는데, 그래서 6시에 공개된 음원은 7시 차트에서 성적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전 앨범 같은 경우엔 모두가 예상했듯 차트인은 구경도 못 했다.

사실 ‘진짜 망돌’이란…….

팬들은 멤버들 모두와 다 얼굴을 알고 있으며, 1~2장만 사도 충분히 붙는 팬싸를 의리로 5장 사서 가주는 그런 그룹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엔 성공하지 못하면 무조건 ‘망돌’이라고 조롱해 대는 분위기지만 말이다.

그래서 라이트온도 얼굴만 반반한 망돌 혹은 듣보라는 소리를 질리도록 듣고 있다.

라이트온은 데뷔 앨범에서도 얼굴로 알음알음 퍼져서 나름 고인물들이 있는 상태라 ‘진짜 망돌’ 정도는 아니다.

‘찾아보니 팬싸 컷도 인지도에 비해 높은 편이었고.’

이번엔 노래도 좋으니 사실 기대를 품고 있긴 하다.

차트가 ‘24Hits’에서 ‘TOP100’으로 개편되며 전보다 팬덤의 영향력이 좀 더 강해졌기 때문에 걱정은 되지만.

……7시!

나는 시간을 확인하자마자 차트를 새로고침하고 스크롤을 1위에서부터 내렸다.

60위까지는 기대도 안 했기 때문에 제대로 보지도 않고 빠르게 스크롤을 내렸다.

슥, 스스슥!

60위? 팬덤 파워가 중요한 초기 차트에서, 라이트온은 절대 기록할 수 없는 수치이기 때문이다.

슥, 슥.

음. 70위까지도 아무래도 무리지.

슥, 스윽-

80위대에도…… 없어?

“음.”

침착하자.

스으으윽-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스크롤 내리는 속도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속닥댑니다!]

……90위까지도 없다.

나는 심호흡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 심호흡 한 번 하고.’

후읍!

나는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91위 없고, 96위 없고, 99위…….

100위까지.

‘……없다.’

차트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면서도 기대했던 탓일까, 솔직히 아쉬운 것을 넘어 탈력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새로 도입된 이 ‘TOP100’ 차트는 1시간 동안의 데이터와 24시간의 데이터를 5:5 비율로 합산하여 순위를 정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으니, 아직 희망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렇게라도 긍정회로를 돌려야 했다.

다른 녀석들도 순위를 확인했는지 안색이 씹다 뱉은 껌처럼 칙칙했다.

나는 차트의 집계 방법을 적당히 설명하며 녀석들의 멘탈을 다잡았다.

“하하, 형은 모르는 게 없네요…….”

“내일 첫 방이니까 연습이나 하자.”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여기서 가장 막막한 건 나였다.

빌어먹을.

* * *

“……!!”

끔뻑, 끔뻑.

나는 도무지 믿기 힘든 광경에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현재 가장 큰 팬덤을 보유한 밀리어스의 멤버 중 한 명이 우리 타이틀을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담아 개인 SNS를 업로드한 것이다.

‘……대체?’

현실적으로 밀리어스 정도의 체급이라면, 라이트온은 지나가는 개미 정도로 보일 텐데.

경로가 어찌 되었든 정말 어마어마한 행운이 아닐 리 없었다.

추천 한마디가 얼마나 큰 위력이 있겠냐, 하겠지만 저 정도 인지도를 보유한 사람이 행사하는 영향력은 차원이 다르다.

밀리어스의 팬덤은 규모도 파워도 상상 그 이상이기 때문에, SNS를 본 팬들 중 일부가 호기심에 한 번만 듣는다고 가정해도 차트에 드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다.

밤 12시가 훌쩍 넘은 시각에 추천글이 올라왔고, 정확히 새벽 2시 차트부터 가 순위권에 들게 된 걸 보면 알 수 있다.

참고로 지금은 새벽 2시 02분, 현재 우리는 첫 사녹을 위해 이동하고 있었다.

“……차트 들었다.”

내 중얼거림에 말라비틀어진 시래기처럼 시트에 널브러져 있던 멤버들이 몸을 바로 했다.

“……예?”

“어떻게?”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의 멤버들에게 차트 화면을 내밀었다.

94위, 무려 94위에 타이틀곡 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언감생심 수록곡 차트인까지는 꿈도 안 꾼다.

타이틀 차트인만 해도 현재 라이트온에겐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TOP100 차트의 끄트머리에 걸친 이상 곧바로 튕겨 나갈 확률도 크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는 묘한 확신이 있다.

어쩌다 곡을 듣게 된다면, 바로 제목을 확인하고 싶어질 만큼 명곡이니까.

나는 백미러로 차트를 몇 번이고 새로고침하며 눈을 비비는 멤버들을 바라봤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날 줄이야.

안 그래도 우중충한 놈들이 사녹 때도 표정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할까 걱정이었는데.

사녹, 즉 사전녹화에 대해서 잠깐 설명해 보자면 방송국마다 다르지만 보통 새벽에 많이 이루어진다.

가수와 팬 양측이 다 고생하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팬들은 새벽 사녹일 경우에 밤샘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겨우 10분 정도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웬만한 애정 가지고는 힘든 일이지.’

물론 우리도 제대로 잠을 청한 지 오래에,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고난의 연속이지만 팬들에게는 항상 고마워해야 한다.

-라는 주제로 멤버들에게 깨달음을 주고 있었다.

“세상에! 그럼 겨울같이 혹독한 날씨에도 밤을 새우신단 말입니까? 밖에서요? 방송국 측에선 대기할 만한 장소도 주지 않는 겁니까?”

물음표 살인마처럼 질문을 던져대는 차윤재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넓은 방송국 로비를 두고 길바닥에서 대기를 시킨다는 점이 도무지 납득되지 않는지 차윤재가 극분했다.

“……그것까진 몰랐어요.”

한수현의 중얼거림에 이어서 최승하가 볼을 긁적였다.

“와아, 오늘. 뭔가…… 엄청 잘해내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러게. 기다리신 만큼 좋은 무대 보여 드려야겠다.”

류인의 말에 신유하마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 * *

“안녕하세요! 라이트온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방송국에 입장한 뒤로 우린 3보 1꾸벅을 하고 있었다.

모든 방송국이 그렇겠지만 음악 방송은 정말 방송국이 갑 중의 갑이기에 그냥 마주치는 사람마다 허리를 숙여댔다.

흔히 말하는 1~2군 아이돌에게도 마음에 안 들면 사녹에 불이익을 마음대로 줄 수 있는 게 음악 방송 PD다.

예전에 어느 홈마가 사녹에 금지된 대포 카메라를 가져왔다가 걸린 적이 있었는데, 그 추위에 몇 시간을 기다린 죄 없는 팬들까지 입장 금지당했다고 이해성이 분노한 적도 있다.

참고로 그때 이해성이 덕질하던 아이돌도 대형 소속사에 1.5군은 되던 애들이었다.

그런 수준인데 우리 같은 듣보 취급은 어떻겠는가?

그냥 사람 취급 제대로 못 받는다고 보면 된다.

예상은 했지만 어느 정도 위치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은 우리를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빛은 기본, 인사를 받아준다는 건 바라지도 말아야 했다.

‘제대로 찍기나 해줬으면 좋겠군.’

이윽고 드라이 리허설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가슴팍에 이름표를 크게 매달고 춤을 2번 췄다.

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도 동선이 어떻다든가, 너무 앞으로 나왔다든가 하는 피드백은 없었다.

한마디로 스태프 쪽들은 열정 따위 없어 보인다는 소리다.

유심히 볼 생각도 없는지, 피곤한 낯으로 모니터를 살피던 스태프가 이제 팬들을 입장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백스테이지에 내려가 이름표를 벗고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마이크를 점검하는 와중에 팬들이 하나둘 입장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스탠바이해 주세요.”

영혼 없는 조연출의 지시와 함께 우리는 무대에 올랐다.

나는 무대 아래에 있는 인영들을 바라봤다.

‘라이트온을 좋아하는 사람들.’

……막상 팬들 앞에 선 것은 처음이라,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다.

“하나, 둘, 셋! 안녕하세요, 라이트온입니다!”

“와아아아-!”

아이돌판 잘 모르는 회사가 만든 아이돌답게 고유의 인사법 같은 건 아직 없었다.

“많이 기다리셨나요? ……저희 보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한수현이 입을 열었다.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무척이나 상냥한 말투였다.

끄덕! 끄덕!

팬들의 고개가 위아래로 거세게 흔들렸다.

사녹에서 개인 멘트를 외치는 순간 쫓겨날 가능성이 있다는 걸 아는 고인물들은 감동받은 얼굴로 하고픈 말을 삼킬 뿐이었다.

그 와중에 내 시선이 무대 아래에 닿았다.

팬석 앞에 선 스태프 한 명이 짜증스러운 얼굴로 손날을 세워 본인의 목 앞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멘트를 끊으라는 제스처였고, 그걸 본 멤버들이 멈칫하며 입을 다물었다.

아, 원래 사전녹화 이전에 팬들과 인사하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도 스태프가 저러는 이유를 꼽으라면, 아주 단순하다.

망돌이라고 무시하는 거지.

* * *

한편, 라이트온의 첫 사녹 현장에 빠질 리 없는 곽덕배는 지친 몸을 이끌고 사녹 현장으로 입장해 주위를 둘러봤다.

팬들에게 하나씩 들려 있는 스틱을 보며 곽덕배는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입장 전에 [LIGHT ON]이라는 각인이 새겨진 야광 스틱을 받은 것이다.

……그 명훈이가?

드디어 정신을 차린 걸까.

하지만 곽덕배는 그 인간을 믿을 수 없었다.

‘그나저나 애들은 언제 나오는 거지.’

피곤함이 몰려와 기절 직전이었다.

역시 새벽 사녹은 죽음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무대의 주인공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분명 피곤함에 찌들어 있었는데, 멤버들이 나오는 순간 피로가 싸악 가시는 기분이었다.

‘미친 거 아니야?’

뮤비 속 제일 예뻤던 의상을 그대로 입고 나왔기 때문이다.

첫 사녹이라 그런지 무대 세트도 나름 고퀄이었다.

‘정신 나간 놈들이 웬일로 돈을 쓰지?’

의문이었지만, 명훈이 따위는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오늘도 끝내주는 얼굴들이었다.

곽덕배의 시력이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라식을 왜 하지? 라이트온 보면 되는데.’

진지한 주접을 이어가던 곽덕배의 시선이 성해온에게 닿았다.

원래도 잘생기긴 했다만, 실물은 특유의 분위기까지 더해져 어마어마하다.

올팬 자아를 가지고 있는 곽덕배지만, 성해온을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거하게 뛸 정도니 말 다 했다.

“많이 기다리셨나요? ……저희 보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막내가 언제 다 커서 팬 걱정까지……!

심지어 그 옆에 선 성해온은 귀여워 죽겠다는 얼굴로 한수현을 바라보며, 그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사녹 온 팬들을 신경 써주거나 걱정해 주는 아이돌들은 별로 없기에 감동이 더 컸다.

역시 얼굴과 인성은 정비례하는 게 틀림없었다.

다른 멤버들도 짧은 멘트 시간 동안 연신 손을 흔들고 팬들과 눈을 마주치려 노력하는 게 보였다.

‘제발 사녹 3번 하게 해주세요!’

보통 사녹에선 무대 2번 하는 경우가 가장 많고, 운 더럽게 없으면 딱 무대 1번으로 마무리하고 끝나는 경우도 있다.

‘제발 3번! 제발!’

이윽고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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