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30화 (30/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30화

무대는 일렬 대형으로 시작한다.

가장 앞에 서는 건 신유하.

참고로 신유하 비주얼은 무려 ‘S-급’이다.

무슨 뜻이냐면 전체적으로 잘생긴 이 그룹 안에서도 비주얼을 맡을 수 있는 인재라는 말이다.

- 휘이익!

도입부를 장식하는 경쾌한 휘슬 소리가 기폭점이라도 되는 듯 리드미컬한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신유하는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휘슬을 부는 듯, 오른손을 입가에 가져다 댄 채 고개를 까딱인다.

- 이미 시작된 휘슬 멈출 수 없어

무대의 시작을 신유하 얼굴 클로즈업으로 가자고 제안한 건 난데, 객관적으로 이 녀석 얼굴 정도면 채널 돌리다가 멈칫할 만도 하기 때문이다.

이 곡은 스타카토적인 사운드가 포인트인 노래다 보니 매력적인 엇박이 불규칙적으로 여러 번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마다 구희승이 자잘한 안무를 비트를 쪼개고 또 쪼개서 추가한 탓에 안무의 난이도는 사악하게 상승했다.

김밥 한 줄 먹고 리허설과 녹화를 연달아 하려니 정말 숨이 벅찬 기분이었지만 앞에 팬들을 보니 무언가 벅차오르는 느낌이 밀려들어 왔다.

- Oh 예감이 좋아

준비되었다면(Three, Two, One-)

달려가도 될까?

이 파트가 끝나자마자 공중에 점프한 상태로 상반신에 바운스를 크게 주면서 손을 번쩍 올려 하이파이브를 한다.

참고로 공중에서 하는 안무는 혼자 늦거나 빠르면 전체적인 그림이 심각하게 이상해지기 때문에 긴장해야 한다.

- 해온아~ 해온아! 으그그! 으그그! 혼자 눈에 띄고 싶어서 난리가 났구나! 착지가 혼자 빨라!

다른 애들은 잘 맞추는데 해온이는 왜…… 왜 그럴까? 애들 다 보내고 나랑 심도 있는 이야기 좀 나눠볼까?

질끈!

갑자기 떠오른 구희승에 나는 눈을 감았다.

거의 동시에 바닥에 착지하는 데에 성공하자 찰나의 순간에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게 느껴졌다.

……나름 기분이 괜찮았다.

그리고 청량한 멜로디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플래시가 터지며 찰칵, 하는 소리가 섞인다.

- Next Page를 넘겨

짜릿한 이 느낌 I know know know that feeling (ayy)

이건 최승하 파트인데, 한수현과 함께 카메라 원샷을 받으며 찰칵 소리에 맞춰 프리한 애드립 모션을 취한다.

매주 달라지는 모션으로 팬들에게 재미를 줄 예정이다.

참고로 망돌일수록 활동이 길기 때문에 팬들은 아주 다양한 모션을 볼 수 있을 거다.

- 앞만 보고 달리면 되는 거니까

Don't stop umm-

Don‘t look back-

걸었던 길은 돌아보지 말자고

팬석에서 처음 듣는 무언가가 들려왔다.

‘……!’

팬들이 박자에 맞춰 정확히 응원법을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사녹 대기할 때 팬 매니저가 알려줬겠지.

나도 모르는 사이 입매가 호선을 그리듯 올라갔다.

그리고 트렌디하고 리드미컬한 비트가 아주 조금씩 진중해진다.

엔딩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의미다.

- 언제든 달려갈 테니

Run, Run, Running mate!

모두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자연스럽고 즐겁게 웃는 게 엔딩포즈다.

몇 명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든다.

그리고 명훈이가 큰맘 먹고 결제해 줬다는 꽃가루 같은 색종이 조각이 하늘에서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탁!

나는 공중에서 떨어지는 조각을 잡아서 카메라와 눈을 마주쳤다.

“와아아아악-”

함성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 * *

“잠깐 피디님께 전달드릴 게 있어서 다녀올 테니까 다들 차 안에서 눈 좀 붙이고 있으세요.”

저 사람은 우리의 정식 매니저가 아닌데도 방송 관련해서 대신 처리해야 할 일이 있는지 급하게 자리를 떴다.

시선을 돌리니 바로 기절하듯 쓰러진 멤버들이 보였다.

이틀 동안 5시간도 못 잤으니 저럴 만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잠이나 잘 때가 아니었다.

드르르륵-

다급하게 밴의 문을 열고, 사람이 지나다니지 않는 구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왜냐면 아까 차트 끝자락에 들자마자 메시지가 떠올랐거든.

차트 TOP100 안에 랭크하라던 그 미션 말이다!

상태창을 불러내 간단하게 눈짓으로 조작하자, 메시지가 다시금 두둥실 눈앞에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미션 클리어!

성공 보상으로 5,000골드가 지급됩니다.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YES]◀

[NO]

사람 많은 곳에서 열어볼 수야 없으니…… 지금까지 참느라 고역이었다.

“이 당연한 걸 왜 선택하라고 하는 거지?”

나는 고민도 없이 [YES]를 선택했다.

[5,000골드 지급이 완료되었습니다!]

‘이걸로 뭘 사지.’

아 골드 상점부터 둘러볼까.

매번 백 단위의 작고 소중한 골드만 마주하다가 천 단위를 보니 눈이 돌아가기 직전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불안하고도 무척이나 X같은 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진 것은.

띠링!

나는 불길한 생각을 애써 떨쳐내며 느릿하게 고개를 들었다.

새로운 미션이 도착했습니다!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제한 기간 내에 타깃의 노래를 음원사이트 TOP50 이내에 랭크하세요!

타깃 - Light on

제한 기간 - 365일

성공 시 ▶ 10,000골드 지급

실패 시 ▶ 사망 (환생 랜덤)

나는 그 자리에 발이라도 붙은 듯, 멍하니 서서 떠오른 메시지창을 몇 번이고 읽었다.

실시간으로 내 눈에 안광이 사라지는 게 느껴졌다.

“음.”

상황을 파악해 보자면, 그저 내용만 바뀌어서 동일한 미션이 튀어나온 거다.

사실 미션 이름부터 ‘망돌 1군 만들기’였기에 이걸로 끝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클리어하자마자 같은 제목으로…… 내용만 바꿔서 미션을 내리는 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차트 100위권 안에 드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50위라…….”

50위는 어느 정도 두터운 팬덤이 있어야 터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얄팍한 라이트온 팬덤으로는 어림도 없는 영역이란 말이다.

“……X발.”

이건 뭐, 욕밖에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미션 하나 성공했다고 들뜨자마자 이딴 엿을 주다니.

위장이 뒤틀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머리를 식혀낸 나는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못 할 것도 아니야.’

무르지도 못할 거, 절망해 봤자 해결되는 건 없다.

바깥 공기를 조금 쐬다가 밴으로 들어온 나는 시트에 등을 기댔다.

“반응이나 확인해 볼까.”

뮤직비디오에서는 안무가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으니, 풀버전의 안무를 본 팬들은 더 새로웠겠지.

서치를 시작하자 사녹에 다녀간 팬들의 후기가 쏟아져나왔다.

- 찢었다… 진짜 찢었다… 무대도 찢고… 나도 찢김당했다…

- 안무 진짜 잘 짬! 댄스 디렉터 구희승이던데 그 덕 확실히 본 듯 ㄹㅇ 이대로만 해라

- 음원에 찰칵 소리 있는 부분 거기가 오늘부로 내 최애파트임 진짜 귀여움ㅅㅂ 승하랑 수현이가요 아ㅠ 진짜 귀엽다는 말 밖엔… 둘이 첫 녹화엔 어깨동무하면서 브이 했고, 두 번째 녹화엔 볼콕 함

이 파트는 사실 마지막까지도 고민했던 부분이었는데 반응이 생각보다 좋았다.

팬들에 의해 #랕온네컷 이라는 해시태그까지 생겨난 걸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아직 방송도 안 탔는데, 굉장히 빠르시군.

……게다가, 공방에 참여한 한 팬이 올린 트윗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 오늘 사녹 성해온 개발림 tlqkf 사녹 전에 애들 멘트 치는데 구석탱이에 팔짱 낀 스탭이 ㅈㄴ 꼽줬단 말임? 멘트 하다가 애들 멈칫하고 그랬는데 해온이가 그 스탭 쪽으로 목 까딱이면서 양해 구하더니 멘트 끝까지 침… 성떤남자 리더미 미쳤고 스탭은 레고에 발가락 찌여라

딱히 의도하고 한 건 아니었는데.

척 봐도 높아 보이지 않는 스태프였고, 아직 무대가 시작되기엔 여유 시간이 있었다.

눈칫밥 좀 먹더라도, 이 새벽 사녹에 참여해준 팬들과 조금이라도 대화를 나누는 편이 이롭다는 판단하에 한 행동이었다.

- 성해온 이 남자 진짜 오타쿠 무서운 줄 모르고 어? 어? 어? (오열하고 있습니다)

- 미쳤다 텍스트로만 봐도 발림 네네 저 그이에게 감길 것 같아요

- 맞아요 오늘 사녹에서 스탭이 눈치 줬는데 해온이가 눈으로 양해 구하더니 애들한테 멘트 마저 치라고 ㅠㅠㅠ

└ 진짜 천상 리더 아니냐고

……이렇게까지 칭찬받을 일은 아닌데, 조금 민망한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서치를 이어갔다.

- 라이트온이 선량한 오타쿠 죽인다… 경찰 아저씨… 얼른 본방 주세요…

- 애들 무대 너무 잘해서 진짜로 보면서 벅차올랐다 과몰입 오타쿠 되기 직전

└ 지금은 아닌 척 지려

- 오늘 의상 뮤비에 나온 그 아빠 자켓 뺏어 입은 것 같은 그건데, 실물 무슨 일…? 냅다 개안하고 옴

└ 그러니까 오늘도 반바지 입었다는 거임?

└ 당연하지 진짜 개쩜

전체적으로 반응이 좋았다.

사녹에 온 팬들은 일부니까, 나중에 본방이 나오면 반응이 조금 더 커질 테다.

그때 매니저가 차 안으로 들어왔다.

“본방 인터뷰는 사정했는데, 못 땄어요.”

기대도 안 했다. 줄 거라고 생각도 안 했고.

“앵콜 무대 직전에 올라가야 하는데, 시간이 붕 떠서 어떡할까요. 차에서 눈이라도 붙이는 게 낫겠죠?”

매니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음악 방송 금주의 1위 그룹을 호명할 때 모든 아이돌은 무대에 올라가야 한다.

뒤에 바글바글 서 있는 들러리, 그 노릇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시스템에게 엿을 먹은 나를 제외하고는, 기적적인 차트인으로 다들 기분이 아주 좋은 상태였다.

새벽 2시에 94위로 차트인을 시작해서, 지금은 무려 90위거든.

* * *

생방 시간에 맞춰 방송국 대기실로 돌아가자 해당 음악 방송의 MC들이 나오며 다음 무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 이한) 다음 무대는 정말 오랜만에 돌아온 그룹인데요~ 연주 씨! 누군지 짐작이 가시나요? ]

[ 연주) 어어? 호옥시, 노래만 들어도 고막이 시원시원~ 해지는 청량청량! 노래로 돌아온 분들 맞나요? ]

[ 이한) 네에~ 으윽! 눈부셔요오! 얼굴에서 반짝반짝 빛이 나는 라이트온의 무대입니다! ]

역시 돈 버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극한 음악 방송 대본이었다.

나는 짐짓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며 무대가 어서 나오기를 기다렸다.

“우리 무대인가 봐요!”

최승하가 옆에서 눈을 빛내며 내 등짝을 두드렸다.

대기실에 달려 있는 모니터에 우리의 무대가 나오기 시작했다.

휘이익-!

무대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와 함께 신유하의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와 너무 너무 잘생겼다~”

“…….”

최승하가 신유하를 오늘도 놀려먹고 있었다.

신유하는 무대에선 날아다니지만 아래로 내려오면 버튼이라도 꺼진 듯 말수가 급격히 없어지는 타입이다. 아니, 사라진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성적이라는 단어가 사람으로 태어나면 저 녀석일 정도로 말이다.

지금 류인도 그 의견에 동조해 ‘맞아 잘생겼어’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대답도 없이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귀는 새빨개졌지만 말이다.

나는 모니터에 시선을 집중했다.

조명도 얼굴이 환해 보이는 조명에, 인트로도 꽤 괜찮게 나왔다.

주위를 둘러보니 멤버들의 눈도 기대감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반짝거리던 눈이 안광을 잃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어, 어음……. 오~”

최승하 입에서는 이런 생기 없는 감탄사가 기계적으로 튀어나오고 있었다.

내가 봐도 미간이 찌푸려질 정도의 발캠이었다.

애초에 감탄스러울 정도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파트에 맞춰 제대로 포커스만 맞춰주는 정도를 바랐는데 카메라는 지진이라도 난 듯 이리저리 흔들렸다.

듣보라고 안무 영상을 제대로 숙지하지도 않은 게 틀림없다.

보통 소속사에서는 아이돌이 가슴팍에 대문짝만하게 자기 이름을 붙이고 추는 안무 영상을 방송국에 미리 넘긴다.

‘여기선 제 파트니까 저 제대로 찍어주세요~’를 카메라 감독에게 어필하는 거다.

거기다가 ‘이 파트에선 이렇게 훅 들어와서 찍어주세요!’와 같은 식으로 세부적인 내용까지 모조리 담아 넘긴 걸로 알고 있다.

근데 이렇게 X같이 찍다니. 제대로 보지도 않았을 거라 확신한다. 쯧.

- 와 카감 발캠 지린다

- 카메라 좀 그만 흔드세요ㅜㅠ

- 애들 파트도 제대로 안 잡아주는 거 미쳤나? 왜 류인이 파튼데 다른 쪽을 찍고 지랄 ㅋㅋㅋㅋ

- 무대보다가 멀미 남…

- 개빡쳐 차라리 내가 찍는 게 나을 듯

팬들의 반응도 싸늘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인트로와 포인트되는 부분들은 그나마 잘 살려줬다.

사실 이것도 못 살리면 카메라 내려놓고 퇴직해야 한다.

- 라이트온 얼굴이 복지다

- 아니 이게 진짜야? 이전 앨범은 구렸다가 어떻게 이렇게 좋아질 수가 있음? 명훈이 악마랑 계약함? 진짜 말도 안 되게 좋아졌는데

- 성떤남자 이 부분에서 설마 윙크한 거임? 너무 놀라서 녹화하다가 손 떨었음 아무도 사녹에서 얘 윙크했다고 안 했잖아 나 진짜 놀라서 숨질 뻔했어 (영상)

└ 성해온 미쳤나 오타쿠 무서운 줄 모르고 끼부리네 tlqkf

- 찰칵 파트 너무 귀엽다ㅁㅊ 브이랑 볼콕 했댔는데 볼콕이 방송 탔네

- 와 얘네 진짜 잘생겼네ㅋㅋㅋ

- 대박 걍 칼군무야… 애들 연습 진짜 많이 했나 봐ㅠㅠㅠ

긍정적인 반응이 이어졌다.

나는 스크롤을 빠르게 내렸다.

- 이 녀석들이 할미를 웃게 하는구나… 그래 하루라도 어릴 때 반바지 많이 입어야 한단다

- 반바지 미쳤나 봐 ㅈㄴ 좋음 평생 입어주면 안 되는 걸까?

- 오타쿠들 가슴 떨리게 하는 무대 추천합니다

- 의상 미쳤나 교복 느낌으로 오버핏 자켓에 반바지 입힐 생각한 변태 새끼 누군지 격하게 궁금하다… 제발 계속 코디해 주세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그 변태 새끼는 네가 아니냐고 고개를 갸웃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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