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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33화 (33/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33화

팬싸컷은 이전 활동에 비해 2배가량이 넘게 뛰었다.

초동에 집계된다는 이유도 크겠지만, 그만큼 유입도 늘어났다는 방증이었다.

오늘도 새벽 사녹을 진행하고 본방 들러리까지 선 후에야 사인회 현장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저 피곤해서 동태 눈깔 같지 않아요?”

어쩌다가 이 단어를 사용해 버렸는데, 그 후로 동태 눈깔의 의미에 대해서 검색해 본 것으로 추정되는 최승하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팬들에겐 익숙한 단어지만 SNS를 하지 않는 아이돌에겐 익숙하지 않은 단어일 텐데 내 실수…… 흠 실수인가?

역시 실수는 아닌 것 같다.

동태 눈깔에 미리미리 대비하고 조심하면 좋은 것 아닌가.

그리고 동태 눈깔은 피로감으로 생긴 다크서클 따위가 만들어낼 수 있는 바이브가 아니다.

“다크서클이 너무 내려왔는데, 이거 어떡하죠.”

“형님! 저도 눈가가 어둑합니다! 저도 동태눈깔이라는 것일까요?”

어느 순간부터 내게도 형님이라는 호칭을 붙이기 시작한 차윤재가 최승하와 같이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아냐~ 윤재야! 네 눈은 동태가 아니야!”

“형님 눈도 동태가 아니십니다!”

……둘이 아주 쿵짝이 잘 맞는군.

그때, 안대를 낀 채 시트에 널브러져 있던 한수현이 짜증스레 입을 열었다.

“아, 형들 조용히 좀 해요. 가는 동안이라도 자야지.”

“역시 수현이는 사춘기야~”

“알아서 생각하시든가.”

“차, 찬물도 위아래가 있는 법인데……!”

차윤재가 눈을 질끈 감고 뭐라 작게 중얼거렸다.

아, 그리고 드디어 전담 매니저가 생겼다.

“얘들아, 도착했어.”

이름은 김민성.

평범한 이름처럼 그냥 평범하게 생겼다.

친해지고 싶은 건지 만나자마자 바로 반말을 시전해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매니저랑 노닥거릴 것도 아니고, 일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나의 강력한 어필로 옷은 무대 의상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간다.

도착하니 홀 내부엔 이번 앨범의 수록곡들이 연속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입장하라는 스태프의 지시에 발을 내딛기 무섭게 비명에 가까운 함성이 들렸다.

“와아아아아아악-!”

“우오오오으악!”

예상대로 팬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몇몇 좌석엔 홈마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열심히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참고로 인기가 많은 아이돌이야 홈마를 해도 시즌 그리팅, 즉 시그나 굿즈들을 판매해 어느 정도 손해를 메꾸고, 오히려 이득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라이트온같이 성공하지 못한 애매한 아이돌은 그냥 손해다.

정말 애정으로 오셨거나, 아니면 미래를 보며 선견지명으로 미리 발을 담그신 분들일 테다.

“안녕하세요. 라이트온입니다-!”

단상에 올라 다 같이 인사를 한 후에 착석했다.

그 순간이었다.

스슥, 슥!

팬들이 우리가 있는 단상 위를 힐끔거리며 다급하게 편지봉투나 선물들을 순서대로 정리하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걸 까먹다니.’

엊그제까지만 해도 분명 공식계정에 앉는 순서를 올려야지, 하고 생각했는데 바쁜 스케줄 탓에 정말 잊고 있었다.

“팬 여러분. 오랜만이에요.”

“와아아악-!”

류인이 꺼낸 첫마디에 팬석에서 환호가 쏟아져 나왔다.

뒤이어 한수현이 마이크를 잡고 질문을 던졌다.

“노래 이번에 어떠셨나요? ……뭣보다, 팬분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

놀란 건 나다.

팬들 앞에만 서면 사람이 달라지는 한수현은 볼 때마다 놀랍다.

객석에선 환호성과 함께 여기저기서 좋아, 진짜, 너무 등등의 짤막한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핫, 감사해요. 여러분 덕분에 저희도 힘냈어요!”

엄지까지 치켜들며 웃는 최승하에 셔터 소리가 갑작스럽게 늘어났다.

‘저 사람, 최승하 홈마인가 보군.’

찍는 폼도 폼이고 장비가 척 봐도 고급인 걸 보니, 경력이 하루 이틀인 사람이 아니다.

나는 최승하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9시 방향, 파란 니트 입으신 분. 너 찍으신다.”

아이스 브레이킹용 간단한 토크 뒤에 본격적인 사인회가 시작됐다.

“해온아, 너는 왜 맨날 같은 티만 입고 다녀?”

처음부터 이게 나오는 건가.

한창 SNS상에서 유행을 탔던 드립이다. 그렇기에 웬만한 아이돌들은 이미 알고 있을 만한 드립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아 그거 아는데. 프리티?’ 이렇게 아는 척으로 대응해 버리면 머쓱함과 정적만 유발할 뿐이다.

나는 당황한 표정과 함께 입을 열었다.

“……어어, 음, 그랬나요?”

힐끔힐끔 옷을 내려다보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감탄합니다!]

이 드립은 일종의 말장난으로, ‘왜 맨날 같은 티만 입어?’라는 질문을 들은 상대방이 어버버거리며 당황하면 ‘프리티’ 혹은 ‘큐티’라고 대답하는 거다.

“프리티~”

역시나.

나는 상상도 못 했다는 듯이 놀라운 표정을 짓다가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럼 저랑 누나랑 커플티네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경악합니다!]

5초간 정적이 흐르더니 팬이 얼굴 근육을 필사적으로 컨트롤하는 게 눈에 보였다.

가까이 앉은 놈들이 이 대화를 듣고 세상 충격받은 얼굴로 나를 힐끔대는 게 느껴졌지만 역시나 무시했다.

곧바로 다음 팬이 찾아왔다.

“애교 보여주세요!”

아, 이건 정말 힘들어서 이틀 동안 거울을 보며 맹연습했다.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바로 애교 3종 세트를 펼치자, 눈앞의 팬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나는 팬의 손에 들려 있던 앨범을 부드럽게 낚아챘다.

“제가 펼칠게요.”

나는 사인을 하면서도 팬과 눈을 맞추는 걸 잊지 않았다.

드디어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팬이 쇼핑백에서 무언갈 다급하게 꺼내 건넸다.

“어, 어어 감사합니다. 어떡해! 저 이거 준비해 왔는데 써줄 수 있어요?”

하얀색과 보라색 꽃이 섞인 화관이었다.

팬싸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바로 화관을 받아 머리 위에 얹었다.

화관을 쓰자 잠깐 내 쪽으로 셔터 소리가 몰렸다.

이런 A컷은 나중에 데이터로 팔아도 짭짤할 가능성이 있으니 일단 찍어두는 거다.

어느새 81~90번 번호를 배부받은 팬들이 지시를 받아 단상 앞에 줄을 섰고, 나는 몸을 흠칫 떨며 침을 꿀꺽 삼켰다.

누군가를 본 순간 이해성, 그러니까 내 친누나의 기억이 떠올랐거든.

누나의 절친한 인터넷 친구로 종종 이분이 올렸던 라이트온에 관련된 트윗이 떠오르기도 했었다.

하지만 얼굴은 모르는 상태였는데, 이렇게 마주치자마자 바로 떠올라 버렸다.

……이분이 곽덕배!

얼굴까지 떠오르는 걸 보면, 누나와 절친한 사이인 듯싶었다.

나는 바로 마음을 다잡고 활짝 웃었다.

“안녕하세요.”

이해성의 친구답게, 내공이 엄청났다.

‘하마터면 나까지 말려들 뻔했군,’

잠깐 정체가 생겨 내 앞에 아무도 없을 때, 슬쩍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가르친 대로 잘하고 있었다.

특히 사회성이 조금 걱정되어 뒤로 배치했던 놈들도 웃으며 다정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어느덧 마지막 번호의 팬까지 사인을 받았지만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었다.

우리는 일어나 단상에서 를 출 준비를 했다.

“와아아아아아아악-!”

음악이 흘러나오자 귀가 아플 정도의 함성이 들렸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이런 무대를 볼 때는 개인 멘트와 지나친 함성을 자제해야 한다는 오타쿠계 강호의 도리가 암암리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의 팬 사인회 시간을 한참 넘겨 버린 상태였는데, 슬슬 스태프 쪽에서 멤버들에게 그만 마무리 인사를 하라는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벌써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네요.”

곧바로 팬석에서 아쉬운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아, 맞다. 저희가 작은 선물을 준비했는데-!”

옆에서 매니저가 박스를 들고 걸어왔다.

이 선물이 무어냐, 하면 첫 팬 사인회에 와주신 팬들에게 드리려고 어제 만든 쿠키다.

요즘 계속 새벽 사녹과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잠도 4시간 이상 푹 자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는데도 멤버들이 다 동의해 줘서 함께 진행할 수 있었다.

류인의 베이킹 실력이 수준급이라는 게 정말인지, 일사불란하게 준비가 완료되었다.

하지만 시간도 없었고, 오븐도 작았던 탓에 많은 양을 굽지는 못했다.

매니저에게 무어라 전달을 받은 팬매니저가 박스 속 내용물을 팬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작은 OPP 봉투에 담긴 쿠키 2개였다.

‘선물’의 정체가 무려 ‘직접 만든’ 쿠키라는 걸 알게 된 팬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죄송해요. 시간만 많았으면 더 맛있는 걸 만들어 드렸을 텐데…….”

“아니야아악!”

“으아아악-!”

류인이 마이크를 들고 멋쩍은 표정을 지었고 팬석에서는 절대 아니라며 괴성이 나왔다.

“나름 정성껏 만들었는데, 아끼지 마시고 꼭 드세요!”

* * *

‘……이걸 어떻게 먹어!’

곽덕배는 쿠키를 쥔 손을 파들파들 떨었다.

미쳤나?

팬사랑 무슨 일인데?’

곽덕배가 멍한 얼굴로 멤버들을 바라봤다.

모르는 아이돌이 없는 그녀는 여러 아이돌을 덕질한 화려한 고인물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이돌에게 도시락이라든지 카페 트럭 역조공을 받아본 적은 있어도 수제 쿠키 같은 건 상상도 못 했다.

그것도 살인적인 스케줄일, 1주 차에?

온갖 동태 눈깔과 빠혐이 난무하는 이 판에서 이런 건 ‘판타지’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적어도 그녀가 아는 이들 중에 이렇게 지극정성인 팬 사랑을 시전한 남돌은 없었다.

사실 몇 시간 전만 해도 그녀는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운도 X발, 더럽게 없지. 뽑아도 어떻게 이렇게 뒤 번호를 뽑을 수가 있냐.’

[No.87]

87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는 작은 종이가 그녀의 손안에서 잔인하게 우그러졌다.

하지만 그 분노는 금세 씻겨 나갔다.

레전드라고 난리였던 사녹 의상을 그대로 입고 온 천재 아이돌 때문이었다.

하지만 더 미쳐 버리겠는 건, 이 녀석들의 태도였다.

“안녕하세요.”

먼저, 사인을 하면서도 능숙하게 아이컨택을 유지하는 성해온에게 감탄했다.

‘젠장! 어떡하지!’

본인이 행복할 애교를 부탁할지, 아니면 팬들에게 유용한 정보를 물어볼지 고민하던 곽덕배는 팬덤에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겠다는 대의를 품은 채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더 놀라운 건 거의 스피드 게임을 하듯, 질문을 던지면 바로 즉답이 나오는 점이었다.

게다가 성의까지 챙긴 답변이었다.

질문 2개만 성공해도 만족이었는데, 정신 차려 보니 질문을 7개나 성공했을 정도다.

“해온아 좋아하는 아이ㅅ-”

“넘어가실게요~”

공포의 ‘넘어가실게요’가 찾아왔고, 하던 말이 잘렸지만 이 정도면 대성공이라는 생각을 하며 옆으로 넘겨지는 순간이었다.

“……저는 초코맛이랑 치즈맛! 아이스크림, 좋아해요.”

“……어?”

분명 ‘아이’까지밖에 못 말한 것 같은데…… 어떻게 바로 알았지?

다른 녀석들은 또 어떤가!

“승하야, 안녕!”

머리에 씌워져 있는 강아지 머리띠가 굉장히 귀엽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이었다.

“저 보셔야죠! 이거 말고!”

최승하가 섭섭한 얼굴로 머리띠를 툭툭 건들며 말했다.

“어? 어…….”

그 순간 최승하가 상체를 숙이더니 자신에게 가까이 얼굴을 훅, 들이미는 게 아닌가.

“더 가까이서 보세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게 느껴졌다.

엉엉, X발.

속으로는 거의 울고 있었다.

‘얘네 천재 아이돌이에요…….’

옆에 류인에게 넘겨질 때도 잠깐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앨범에 급하게 P.S까지 적어줬다.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아직 심장에 타격이 가시지 않은 채로 류인 앞에 앉았다.

이번에도 공익을 위한 질문을 쏟아낸 뒤, 옆이 딜레이된 덕분에 얼굴이나 실컷 구경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류인이 입을 열었다.

“밥은 먹었어요?”

이런 질문을 받아본 게 얼마 만이더라? 간단한 질문이지만, 보통 물어보는 거에만 답해줄 뿐 이렇게 다정하게 굴어주는 남돌 별로 없다.

곽덕배는 먹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며 자연스럽게 질문을 이어갔다.

“저녁 뭐 먹을 거야?”

“저는 아, 김치볶음밥 먹고 싶어요.”

이날 팬들의 저녁 메뉴가 김치볶음밥으로 통일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신유하나 차윤재는 고인물들끼리는 다 아는 낯가리는 멤버다.

그래서 그냥 간단한 질문만 던질 생각이었다.

……분명 그랬는데!

공백기 동안 성격이 변하기라도 했는지 내가 던진 질문에 플러스알파를 덧붙여 대답해 주는 것으로 모자라 되레 질문을 건네기까지 했다.

분명 얘네는 이전 활동 사인회에서 팬들 눈도 제대로 못 마주쳤던 것 같은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이 모든 게 성해온이 행한 주입식 교육의 성공적인 결과물이라는 걸 모른 채 그녀는 사인 앨범을 손에 들고 자리에 털썩, 앉아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타닥, 타닥-

눈은 라이트온을 지독하게 쫓으며 동시에 손으로는 키패드를 두드려 후기를 쓸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곽덕배는 멍한 표정으로 후기를 써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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