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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34화 (34/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34화

주차장으로 나가니, 미리 차를 대기시켜 놓은 매니저가 손을 흔들었다.

“다 탔지?”

매니저는 뒤를 힐끔 쳐다보더니 곧장 출발했다.

“……?”

나오는 길목에 팬들이 모여 있었다.

‘퇴근길을 보려고?’

나는 팬들을 확인하자마자 매니저에게 급하게 말을 걸었다.

“잠깐, 저기 팬분들 있는데 속도 좀 줄여주세요. 인사하면서 지나갈게요.”

“뭐? 에이~ 그냥 가자. 우리가 모이게 한 것도 아니고.”

“……예?”

정말이지 팬들을 우습게 보는 말투였다.

종종 이런 매니저들이 있는데, 이런 매니저의 사상에 감화되면 아이돌들도 팬들을 우습게 보게 된다.

사인회에 참여한 팬들은 질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직 홀 내에 있을 테고.

이분들은 우리 얼굴 한번 보려고 계속 기다리신 분들이다.

웬만큼 인성 처박힌 놈들이 아닌 이상, 잘나가는 아이돌들도 이럴 땐 창문 열고 손 흔들어준다.

나는 얼굴에서 웃음기를 완전히 지워낸 후 다시 한번 의견을 전했다.

매니저는 자신보다 어린 놈이 반박하는 게 고까웠는지, 성질머리를 참지 못하고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

‘아, 잘못 걸렸군.’

급정거된 차체 때문에 몸이 흔들린 걸 둘째치고 매니저라는 인간이 이래도 되는 건가?

걱정되는 마음에 뒤를 돌아보니, 멤버들도 갑작스러운 큰 흔들림에 놀란 얼굴이었다.

스르륵-

내가 먼저 창문을 내리자, 뒷좌석에 앉은 멤버들도 따라 창문을 내렸다.

짙게 선팅된 창문이 아래로 내려가면서 우리의 얼굴이 보이자, 환호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와아아악-”

“하트 해줘! 하트!”

곧장 손 하트를 만들어 창문 밖으로 흔들자, 비명섞인 환호가 더 커졌다.

“와아아아아아악-!”

“다음에 봐요-!”

우리는 창문 너머로 팬들의 얼굴이 작아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이제 됐지. 창문 닫는다~? 어유 미세 먼지.”

끝까지 재수 없는 놈이다. 미세 먼지가 아무리 자욱해 봤자, 자기한테서 나는 담배 찌든 내가 더 지독한데 말이다.

그냥 한 대 치고 싶었다.

“저기 매니저님.”

“말 편하게 하라니까? 형이라고 불러~”

제멋대로 반말을 쓰며 선심 쓰듯 저러는 게 어이없을 뿐이었다. 나이도 훨씬 많은 상대에게 갑자기 말을 놓기란 쉽지 않다.

배려 따윈 없이 온전히 자기 좋을 대로만 생각하는군.

“저희 이제 어디로 가나요?”

“아 이제 숙소 데려다주려고~ 저녁엔 스케줄 따로 없고, 회사에서도 너희 쉬게 하라고 하던데~”

‘오랜만에 6시간은 잘 수 있겠군.’

내일도 새벽 2시에 일어나서 사녹에 참여해야 하지만 이 정도로 푹 자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반응이나 살펴볼까.’

나는 곧바로 SNS에 접속했다.

팬싸에 참여한 팬부터, 참여하지 못한 팬들까지 난리가 나 있었다.

- 애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쿠키…… 이걸 어떻게 먹어? 우리 집 가보로 내려줄 예정 (사진) (사진)

- 그러니까 직접 반죽도 하고! 굽고! 포장까지! 손수! 한 쿠키가 이거 맞지? 맞지? 맞지? 맞지? (사진) (사진) (사진) (사진)

└ 텍스트에서 광기 느껴진다

- 남의 행복을 축하하지 못하고… 시샘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분노하고… 분개하고… 절망하고… 아파하고…

- 나는 어른이니까 못 간 행사를 부러워하지 않긴 뭐가 안 부러워 tlqkf ㅈㄴ 부럽다ㅠ

- 나는 다음 팬싸 공지만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람 하려고

쿠키의 반응이 생각보다 더 좋았다.

나는 스크롤을 빠르게 내렸다.

팬싸 자체의 반응도 무척이나 긍정적이었다.

- 오늘 팬싸 후기 보니까 성해온 그냥 아이돌 인생 2회차 아님? 갔다온 사람들 다 감탄하고 있엌ㅋㅋㅋㅋ

└ 근데 진짜 뭐가 다르긴 다름;; 다른 애들도 진짜 갓기천사팬싸천재거든? 근데 성해온은 ㅈㄴ 달라… 그냥 정체를 모르겠어… 뭐 하는 놈인지… 나 진짜 영혼 끝까지 털리고 왔어 오늘

-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전 재산을 처분하고 지금 입고 있는 옷까지 싹 다 팔아서 어떻게든 팬싸 갔지 지금 화나고 질투 나서 짐승돌처럼 옷 벅벅 찢어버리는 중

- 라이트온 팬싸 천재야 그냥… 그냥 진짜 천재임… 어떻게 천재냐면 지금 벅차서 못 쓰겠음… 그냥 천재임

- 분위기 진짜 좋았음 막 옆으로 넘기려는데 애들이 막아주고 진짜 미침ㅅㅂ

- 아니 류인이가 김볶밥을 먹고 싶다는 거 보고 실수로 손 미끄러져서 김볶밥 만듦 에구구…

- 진짜 내가 준비해 간 말 다 했어ㅠ 사시나무처럼 발발발 떨었는데 웃으면서 기다려 주고 먼저 말 걸어주고… (우는 이모티콘) 솔직히 팬싸 많이 다녔는데 이런 애들은 처음임 라이트온해서 너무 행복해

- 팬싸 광탈한 거 슬퍼서 눈물 남 조금만 더 살걸 지금 내 눈물로 강 만들어서 그 속에서 헤엄치는 중임 걍 임종할란다

- 와 대박 우리 실트 올랐어

‘……실시간 트렌드?’

사실 라이트온 팬덤은 단합해 떠들어도 실시간 트렌드에 오르기 힘들다.

살펴보니 ‘수제’라는 키워드가 라이트온 팬덤에 속하지 않은 이들의 놀라움을 동시에 일으킨 듯하다.

그들이 하나둘씩 말을 얹다보니 실트에 오른 것이다.

- 팬싸면 100명은 됐을 거 아냐 그 인원한테 다 돌린 거임? 수제 쿠키를?

- 수제 쿠키라니 진짜 부럽다…

- 와 앞치마남이 만든 수제 쿠키임?

└ 다 같이 만든 듯?

└ 잘해주긴 잘해준다… 이래서 망돌 빠나

이런 식으로 말이다.

실시간 트렌드가 뭐 별거냐는 의문을 품을 수도 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인기만 있으면 머리칼 염색한 것만으로도 실시간 트렌드 1위 올라가고 그러니까.

하지만 어정쩡한 망돌인 라이트온에게는, 이런 사소한 것이라도 중요하다.

이런 작은 관심이 착실하게 불어나 언젠가 되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다.

사실 아이돌 판엔 이미 애정이 어느 정도 식었는데, 본인도 알면서 그저 관성으로 붙들고 있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식은 이유는 병크, 열애설을 비롯한 팬 기만, 예전 같지 않은 태도, 긴 공백기 등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

그럴 때 무대도 잘하는 데다가 팬 사랑까지 지극한 아이돌을 만나게 된다면?

순식간에 갈아타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이해성의 덕질 기억에도 그런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실제 이해성의 기억을 훑어봤을 때, 어느 아이돌이 갑작스레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타임라인은 이런 내용으로 물들곤 한다.

- 아니 또 쟤네가 내 친구들 잡아가네

- 뭐야 내 트친 돌려줘요

- 가족이 이렇게 한순간에 떠나가도 되는 거임?

- 평생 함께하자고 해놓고 또 나만 진심이었던 거지

게다가 라이트온은 어리고 잘생기기까지 했으니, 덕후들이 갈아탈 아이돌을 물색할 때 우선순위에 걸릴 확률이 크다.

숙소에 도착한 멤버들은 비척비척 걸어와 침대에 엎어진 상태 그대로 기절했다.

물론 나도 침대에 누운 것까진 기억나는데, 그 후 기억이 없다.

미친 듯이 울려대는 알람에 눈을 떠보니 6시간이 사라져 있었을 뿐이다.

“…….”

아이돌은 정말이지 극한직업이 맞긴 하다.

인간의 체력을 한계까지 시험하는 느낌이랄까.

* * *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라이트온이 팬 사랑 아이돌로 조금씩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댓글 반응도 대부분 우호적이었다.

레이스가 달린 분홍색 앞치마를 입은 류인 사진과 팬들이 받은 쿠키 사진을 나란히 붙여놓으니, 절로 눈길이 갈 정도의 강력한 어그로였다.

그리고 어느덧 초동 성적도 집계됐다.

[30,412장]

데뷔곡인 미니 1집의 초동은 1만 장을 겨우 넘겼던 걸로 미루어볼 때 3배나 오른 거다.

3만 장, 이 정도면 망돌치고 굉장히 많이 팔긴 했다.

아직 여름은 오지도 않았고, 망돌의 활동은 길고 길기에 총판 기록을 기대해 볼 만했다.

게다가 음원 성적도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추세였다.

확실히 곡 자체가 좋으니 대중들의 귀까지 사로잡은 거다.

본격적인 여름이 오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기대됐다.

“와아, 진짜 3배나 늘었어요?”

멤버들은 초동 성적을 전해 듣고 내심 기뻐하는 눈치였으나, 나는 차마 진심으로 좋아하지 못하고 가짜 웃음을 지었다.

현재 가요계의 대표적 1군, 밀리어스의 최근 정규 앨범의 초동 성적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1,708,211]

그래. 170만 장이다.

우리의 초동 성적이 얼마나 귀여운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밀리어스는 워낙 독보적인 위치라서 비교할 게 아니긴 하다.

함께 1군으로 묶이는 그룹임에도 100만 장도 안 나오는 그룹들이 널렸으니까.

하지만 엄청난 성장세임은 확실했고, 회사에서도 크게 기뻐했다.

“아, 오셨군요. 기다리고 계시니 바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그래서 지금 연습하다가 대표이사실로 불려 왔다.

“흠흠, 어서 앉거라. 너희는 잘할 줄 알았대도? 크흐흠!”

오늘도 한결같군.

그는 장장 30분 동안이나 자신의 안목을 칭찬하는 자랑을 떠들어댔고…….

“크흠, 바쁜 와중에도 연습까지 열심히 한다고 전해 들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많이 야위어 보이는구나.”

-라고 말하며 내게 개인 카드를 내려줬다.

* * *

나는 곧장 멤버들을 이끌고 사옥 근처 한우집으로 향했다.

아늑한 프라이빗 룸으로 들어오자 웨이터가 곧바로 따라 들어왔고, 나는 망설임 없이 주문을 시작했다.

“한우 스페셜 A 세트로 12인분 주세요.”

무척이나 당황스러워 보이는 차윤재가 이렇게 귓속말을 걸어왔다.

“이, 이렇게 무작정 주문해도 되는 겁니까?”

끄덕!

나는 망설임도 없이 곧장 고개를 주억거렸다.

“대표님이 먹으랬어.”

그냥 고기 사 먹으랬지 소고기라고 말한 적은 없으나, 마음 편하게 먹으라고 대충 지어내서 말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당신에게 호감을 보입니다!]

잠도 제대로 못 자는 바쁜 스케줄 속에 명훈이의 자랑을 30분이나 들어줬는데 12인분이 아니라 20인분을 먹어도 무죄다.

닭가슴살이 아닌 고기를 먹는 게 얼마 만인지.

특히 최승하는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먹고 있었다.

……많이 먹어라.

“652,000원입니다.”

“일시불로 부탁드립니다.”

계산까지 마치고 나가려던 차였다.

한 남자가 내 팔을 덥석, 잡아왔다.

“혹시, 연예인 아니에요?”

솔직히 길거리 돌아다니다가 이런 말 듣는 거 이번이 처음이었다.

보통 그냥 힐끔대기만 했지, 아는 척하는 사람이 등장하다니.

‘……인지도가 올라가긴 했군.’

일단 팬은 아닌 것 같고, 어디서 우연히 우리를 본 모양이었다.

그룹명은 입에 담지도 않은 채 계속 연예인이 아니냐고만 되물었다.

“사진, 사진 찍어주세요!”

그렇게 말하며 막무가내로 카메라 켠 스마트폰을 들이밀었다.

손사래를 치며 사진은 안 된다고 좋게 말했는데도 계속 한 장이면 된다며 억지를 부렸다.

보통은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면 바로 나가떨어지는데, 이 사람은 아니었다.

‘잘못 걸렸군.’

메이크업도 안 한 상태에다가, 사진 찍을 몰골도 아니다.

사진 한 장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못 나온 사진을 가지고 실물이라며 어딘가에 퍼뜨리면 곤란하다.

정재진도 사진 촬영 요청에는 절대 응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고.

“죄송합니다. 저희가 사진은 안 되고, 종이 있으시면 사인은 괜찮습니다.”

정중하게 말했으나, 사인은 필요 없고 사진 한 장만 찍어달라는 난리에 그냥 나는 계산을 마치고 식당을 나왔다.

저렇게 말 안 통하는 부류는 그냥 지나치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그 업보를 받은 것 같다.

……그냥 사진 한 장 찍을 걸 그랬나.

“우, 우욱……. 형, 저 속이 뒤집혀요.”

“…….”

출렁!

우리는, 지금 바다 위에 떠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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