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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35화 (35/300)

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35화

그러니까, 평소와 다를 게 없는 날이었다.

6개의 음악 방송 중에 가장 인지도가 낮은 음악 방송의 사녹이 펑크 났다는 걸 제외하고는 말이다.

그래서 당연히 연습실에서 연습이나 하든가, 아님 휴식 시간을 줄 거라고 기대했다.

“오늘 스케줄 잡혔어~”

어쩐지 재수 없는 매니저 놈이 실실 웃으며 말할 때부터 예상했어야 한다.

“어디 가는데요?”

“좀 멀리 갈 거야. 해안가 쪽 스케줄이거든. 자세히 설명해 줄까?”

“괜찮습니다.”

매니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감았다.

중요치 않은 스케줄이야 당일에 알려주는 경우가 흔하다.

망돌 특성상 불러주는 곳만 있다면 전국 팔도 달려가는 게 이상하지 않으니까 별 의문을 품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낱낱이 물어볼 기력조차 없었다. 짜증 나는 놈과 굳이 말을 섞고 싶지도 않았고.

‘흠, 무슨 행사라도 급하게 잡은 건가?’

컴백 2주 차, 아직 제대로 잠도 못 자고 있는 극악의 스케줄을 견디고 있었다.

이렇게 사녹이 펑크 나면 휴식을 줄 법도 한데, 참 어지간히 굴리는군.

……뭐, 이런 단순한 생각이었다.

* *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아~~ 지금 여기는 푸르른 동해 바다입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애석하게도 내 물음에 명확한 답을 내려줄 사람은 없었다.

다른 놈들의 동공도 팽글팽글 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과연 무엇과 함께할까요? 주인공에 대해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쫄깃~ 하고 탱탱~ 하고 맛도 일~~ 품인 녀석입니다~”

“하하하! 무엇인지 감이 오시나요? 자아! 오늘도 박 선장과 함께 잡으러 가봅시다~”

무슨 상황이냐고.

“아! 그 전에 오늘은 함께할 친구들이 있습니다. 바로~”

툭! 툭!

“지금, 지금!”

박 선장이라는 사람이 멘트를 시작하자마자 작가가 어서 나가라며 등을 떠밀었다.

후줄근한 해상 작업용 비닐 멜빵에 무릎까지 오는 장화를 신은 우리는 세상 밝은 표정으로 입장했다.

아침 방송 감성상 이 부분에서는 분명 ‘한반도를 뒤흔드는 슈퍼스타 LIGHT ON!’ 이딴 자막이 나올 게 분명하다.

촌스러운 패션쇼 BGM과 반짝거리는 효과까지 넣을 거라고 감히 예상한다.

최악의 경우 영상을 느리게 감으며 ‘이 구역의 패션 킹! 동해 바다는 우리가 접수한다!’ 이런 자막이 나올 수도 있다.

상상만 해도 아득했다.

“안녕하세요! 라이트온입니다!”

“와우~ 얼굴에서 빛이 나지 않나요? 오늘은 그럼 이 잘생긴~ 친구들과 함께! 가보겠습니다. 그럼 박 선장과 함께 GO! GO!”

“……GO! GO!”

참고로 이 부분은 같이 외쳐달라는 작가의 당부였다.

40대 초반이라고 믿기지 않는 극강의 발랄함을 보여주던 MC는 컷사인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스스슥.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으로 되돌아왔다.

사회생활은 정말 힘든 거구나.

“……박태산입니다. 오늘 잘 부탁드립니다.”

어쩐지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배에 올라탔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7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스태프에게 이 늦은 밤에 낚시가 가능하냐고 넌지시 물었더니, 오늘 잡을 해산물인 오징어는 어두운 밤에 낚시를 해야 한단다.

심지어 배에 조명이 아주 환하게 달려 있으니 얼굴 못 나올 걱정은 안 해도 된다며 허허실실 웃기까지 했다.

“…….”

지금 우리는 SBC의 아침 프로그램, <박 선장의 바다 체험>에 깜짝 게스트로 참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여러 해산물의 낚시를 생동감 있게 보여주어 중년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래, 낚시 프로그램 좋다.

근데 우리가 왜 오냐고.

타깃층이 다르지 않은가!

펑크 나자마자 이런 X같은 스케줄을 잡아 온 걸 보면, 여기 PD가 대표랑 아는 사이인 건가?

아는 사이가 아니라 해도 타깃층이 정반대인 프로그램에 내보낸 것부터가 미스다.

요즘 회사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씩 오르고 있었는데 없던 일로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미 와버린 것을 어쩌겠는가, 군말 없이 탑승할 수밖에.

싫으면 싫다고 의견을 낼 수 있는 것도 인지도가 있는 상태여야 가능한 거지.

우리 같은 망돌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게다가 아무리 프로그램 속 코너라고 해도 공중파는 공중파.

밉보여서 좋을 건 없다.

“……와! 저 낚싯배 처음 타봐요! 신기하다!”

“저도 처음 타봐요! 너무 기대됩니다.”

최승하의 말에 한수현이 특유의 귀여운 얼굴로 생글 웃으며 호응했다.

멈춰 있던 카메라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아! 낚시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 배만 보고 오늘의 주인공을 눈치채실 텐데요~”

“이 어두운 하늘! 그리고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요 집어등!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바로~”

MC가 양동이 안에 있던 오징어를 단숨에 쥐어 잡고 얼굴 근처에 붙였다.

“오징어, 오징어입니다~! 이제 금어기가 끝나고 오징어를 맛볼 수 있는 시기인데요! 여러분은 오징어 좋아하나요?”

그 순간, 선내에 있던 카메라가 모두 우리에게 집중됐다.

척! 척! 척!

“하핫! 오징어 정말 맛있잖아요. 좋아합니다~”

“오우~ 생으로 먹어도, 볶아 먹어도, 쪄 먹어도 아주 끝~~ 내주는 바다의 왕자! 오징어! 라이트온 친구들은 어떤 오징어 요리를 좋아하나요?”

사교성이 남다른 최승하가 대화의 문을 열자 바로 연계 질문이 들어왔다.

“저는 오징어 볶음 좋아합니다.”

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류인이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음. 역시 어떻게 먹어도 맛있죠.”

“맞아요. 어떻게 먹어도 맛있습니다.”

한수현까지 방긋 웃으며 대답을 마쳤다.

스윽-

나는 카메라에 보이지 않게 고개를 돌려 차윤재와 신유하를 바라봤다.

허공에서 시선이 얽혀들기 무섭게 나는 싱긋 웃었다.

낯가릴 시간 없으니 어서 대답이나 하라는 눈빛이었다.

파르르!

나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몸을 떤 녀석들이 어버버거리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오, 오징어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바, 바다의 왕자! 싫어하는 사람은 어, 없을 겁니다!”

“……저도, 조, 좋아합니다.”

멘트를 기다리던 MC도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며 바다를 향해 손짓했다.

“자아~ 준비되셨다면 바아~ 로 출항합니다~~”

부우우!

선체의 엔진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배는 바다를 가르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도 공중파니까 좋은 게 좋은 거겠지.

잘 보이면 괜찮은 프로그램 섭외 들어올 수도 있는 일이다.

이왕 온 거 즐기는 걸로 마음을 고쳐먹자.

-라고 생각한 지 정확히 1시간 반.

배에서 뛰어내리고 싶어졌다.

카메라들은 어부들이 건져 올리는 오징어만 찍고 있었다.

착실히 방치당하고 있는 우리는 선체의 구석탱이에 찌그러져 있었다.

다양한 어업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내는 게 해당 방송의 취지다 보니, 우리가 주인공이 아닌 건 당연했다.

“우욱……. 형, 저 토할 거 같아요.”

“형님 저, 저도 위장이 뒤틀립니, 우읍.”

“나도 슬슬 힘드네.”

류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신유하가 입을 틀어막았다.

“……우윽.”

안타까운 것은 나도 별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쉴 새 없이 꿀렁대는 파도 위에 올라가 있는 오징어잡이 배는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으니까.

“욱.”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골드상점을 둘러보다가 이내 포기했다.

‘쓸 만한 게 없군.’

지금 멤버들 중 멀쩡해 보이는 건 한수현뿐.

죽어가는 다른 놈들과는 다르게 혼자 멀뚱멀뚱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멀미로 죽어가는 와중에도 최승하가 비척비척 차윤재에게 다가가더니 무언가를 속삭이기 시작했다.

“윤재야……. 으웁, 너 지금 약간 눈이 동태, 우웁…….”

“예?! 그, 그럴 수가! 지금은 어떻습니까?”

차윤재가 팔소매로 눈을 한 번 비비더니 피곤에 절어 있던 눈을 크게 떴다.

“지금은, 으으……. 괜찮은 것 같아.”

‘…….’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동태 눈깔이 된 아이돌의 가수 인생은 끝난 것과 다름없다는 식으로 이상하게 세뇌가 됐다.

하지만 경각심을 가지고 있어서 뭐, 나쁠 건 없으니 가만히 두도록 하자.

그리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찰칵, 찰칵! 차차차차찰칵-!

이 와중에도 셀카를 찍고 싶냐는 눈빛을 가볍게 무시하고 밤샘 촬영에 얼굴이 더 초췌해지기 전에 연사를 찍어 갈겼다.

방송 나오고 나면 공식 계정에 올려야지.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돌로서 해야 할 건 해야 했다.

셔터를 누르는 동안에도 위장이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출렁!

“아, 읍. 흔들렸는데, 우욱, 다시.”

차차차차찰칵-!

……출렁!

“으읍.”

내 안색이 허여멀건하게 질려가는 게 느껴졌다.

배 자체가 흔들거리다 보니 초점을 제대로 잡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라이트온 여기로 와주세요!”

방치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작업하는 어부들의 컷을 웬만큼 다 딴 모양인지 우릴 불러냈다.

“자아~ 우리 낚시 초보 라이트온에게 이춘덕 선장님이 설명해 주실 겁니다.”

MC가 자연스럽게 선장에게 발언권을 넘겼다.

“오징어는 멸치를 먹어요. 이 줄 끝에 멸치 같은 게 달려 있는데, 이거를 이렇게! 이렇게! 흔들면서 줄을 잡아댕기면 딱 느낌이 옵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되지만 일단 열심히 끄덕였다.

“알아들었으면 얼른 잡아! 으허허!”

알아듣지 못할 설명만 남기고 선장은 어군 탐지기를 보러 가야 한다며 자리를 떠났다.

“…….”

홀연히 남은 우리는 멍하니 선장이 떠난 자리만을 바라봤다.

무척이나 어이없었다.

어업의 천재가 환생한대도 이 설명을 알아들을 수는 없을 테다.

그 순간이었다.

“……어?”

선원의 가르침으로 줄을 당기던 류인의 중얼거림에 카메라가 순간적으로 집중됐다.

덩달아 류인의 손놀림도 다급해졌고, 줄 끝에는 오징어가 달려 있었다.

“오. 통통한 녀석이구만.”

옆에서 능숙하게 낚싯바늘을 제거하던 선원이 처음 잡은 이 녀석으로 회를 떠주겠다며 우릴 이끌었다.

딱 보아하니 우리가 첫 오징어를 잡으면 이런 멘트를 쳐달라고 대본을 받은 것 같다.

배의 상판에 주저앉은 우리는 어부의 현란한 칼솜씨를 보며 감탄사를 기계적으로 내뱉었다.

“이거는 내가 집에서 가져온 야채랑 초장!”

“오오오!”

“인원이 많으니까, 더 썰어야겠다!”

선원이 오징어 한 마리를 추가로 손질하려 움켜쥐는 순간, 근처에 있는 작가가 급하게 스케치북을 들어 올렸다.

[칼질 젊은 친구들에게 한번 넘겨주세요!]

“……에잇! 너희가 썰어! 귀찮다!”

너무 티 나게 칼 넘기시는 것 같은데요.

당연하게도 칼은 류인에게 갔고, 능숙하게 손질을 시작했다.

“허어, 여자도 아니면서 어찌 이리 칼질을 잘해! 시집가도 되겠어!”

이게 무슨 ‘열림교회 닫힘’ 같은 발언이지.

어쨌든 옆에 다른 선원들까지 모여 앉아 회무침과 오징어 라면까지 먹었다.

그리고 촬영은 다시 시작됐다.

[왜 불빛이 있는 거냐고 질문]

작가의 스케치북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밤에 불빛을 환하게 켜고 작업하시는 거예요?”

“이 녀석들은 불빛을 좋아하거든. 그래서 이렇게 어두울 때 집어등을 탁! 켜고 잡는 거지. 보름달이 훤하게 뜬 날에는 잘 안 잡혀!”

“이야~! 그럼 이 친구들 얼굴에서 빛이 나니까 오늘은 오징어 풍년이겠네요~ 집어등 꺼도 되겠는데요!”

박 선장은 지치지 않는 에너자이저처럼 애드립 멘트를 쳐댔고, 이제 존경스러울 지경이었다.

우린 다 죽어가는 피리한 안색으로 필사적인 리액션을 이어갔다.

뱃멀미와 피곤함의 콜라보였다.

어느새 시간은 완전한 새벽녘이었다.

“해 뜨기 전에 오징어랑 컷 찍을게요!”

방송에 짤막하게 넣을 예정인지, 오징어 두 마리를 양손에 움켜쥐고 개인 컷을 촬영하자는 지시가 내려왔다.

오징어를 양손에 움켜잡고 활짝 웃는 표정을 지어달라는데 이게 쉽지 않았다.

상상만 해도 웃긴 조합이지만, 실제로는 웃기다 못해 비참하다.

“…….”

찰싹!

찰싹!

오징어의 긴 다리들이 턱과 뺨을 연거푸 찰싹, 찰싹 때리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치익!

……화가 잔뜩 났는지 물총까지 쏴대고 있었다.

첫 타자를 자원한 내가 사정없이 오징어에게 얻어맞자 사방에서 웃음 참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멤버들은 몸을 사정없이 들썩거리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참고로 내 촬영이 끝나면 저 녀석들도 같은 촬영을 해야 한다.

‘어디, 그때도 웃을 수 있나 보자고.’

그때 작가가 머리를 쓸어넘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생각보다 그림이 안 나오네. 해온 씨 오징어 내려도 괜찮아요. 그냥 잡힌 오징어 보면서 감탄하는 걸로 갈게요.”

뭐라고?

툭…….

나는 양손에 꽈악 잡고 있던 오징어를 황망하게 떨어뜨렸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낄낄댑니다!]

놀릴 거면 돈 주고 놀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100G를 후원합니다!]

……어쩐지 더 비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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