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38화
“……뭐지?”
<연기의 신> 녹화에 참여하기 전, 간단하게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으러 샵에 들렀는데, 앞에 엄청난 인원이 모여 있다.
“쯔쯔, 오늘따라 뭐 이렇게 앞에 진을 치고 있어?”
매니저가 혀를 차자, 멤버들의 시선이 모두 창밖으로 향했다.
“저, 저기 저분들이 혹시 전부 저희 팬분들이십니까?”
차윤재가 중얼거리듯 작게 물었다.
‘그럴 리가.’
라이트온이 아직 저 정도로 어마어마한 인원을 구름떼처럼 몰고 다닐 정도는 아니다.
뭣보다, 우리가 차체 바깥으로 내렸는데 힐끔 쳐다보기만 할 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샵에 새로운 연예인이라도 온 건가.’
이 정도면 어느 정도 유명한 사람인가 본데.
샵의 내부 분위기도 평소보다 뭔가 부산스러웠다.
“아, 이쪽으로 와주세요.”
샵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익숙하게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이동하자, 아는 얼굴이 보였다.
물론 나만 알고, 저쪽은 날 모르겠지만.
“……!!”
뒤이어 들어온 멤버들도 놀란 얼굴로 허리를 숙이기 시작했다.
우리 시야에 들어온 이들은, 밀리어스 멤버.
의현과 도원이었다.
연예인들이 다니는 샵에도 계급이 있다.
밀리어스 정도면 여기보다 훨씬 유명한 샵들만 골라 다닐 텐데?
더 놀라운 건 밀리어스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도 아무 감정이 안 든다는 거다.
막연히 밀리어스를 만나게 되면 이해성의 오타쿠 자아가 얼마나 난리를 피울까, 했는데 이상하게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냥 이 상황에 머리만 지끈거렸다.
저번부터 계속 밀리어스와 엮이는데, 이쪽 팬덤은 큰 만큼 이상한 사람들도 많아서 엮여서 좋을 게 하나 없다.
“형, 형 선배님한테 인사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최승하가 옆에서 다급하게 귓속말을 걸어왔다.
아차.
나는 곧바로 허리를 숙였다.
무표정으로 앉아 있던 의현이 거울 속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도원과 나 말고는 저 비웃음을 못 본 것 같다만.
“……아~ 후배님들, 라이트온 맞죠? 하하. 우리 금방 나갈 거니까 편하게 있어요.”
약간 당황한 기색의 도원이 웃으며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곧 나간다는 말이 정말인지 둘은 금방 일어났다.
“선배님들, 패, 팬입니다! 만나 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도원이 웃으며 차윤재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하, 노래 좋던데요?”
“허어어!”
도원의 말에 숨을 들이켠 차윤재가 정신을 차렸는지 말을 이었다.
“어, 어, 정말 감사합니다!”
“수고해요~”
* * *
“너 뭐 하자는 거야?”
차의 문이 닫히자마자 도원이 냉랭한 눈빛으로 의현을 쳐다보며 물었다.
“뭐가.”
“와보지도 않은 샵을 가자고 고집부릴 때부터 이상했어. 왜 그래?”
깊게 한숨을 내쉰 도원이 기껏 세팅한 머리칼을 사납게 쓸어넘기며 말을 이었다.
“샵 실장님이랑 싸우기라도 했어? 그런 거라면 말해. 전에 다니던 샵으로 다녀도 돼.”
“음, 그냥?”
“그냥? 허, 그냥이라고 했냐? 너 미쳤냐?”
“…….”
“야 무시해? 무시하냐고.”
둘의 언쟁을 지켜보던 밀리어스의 매니저는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하하, 하! 얘들아 싸우지 말자. 스, 스케줄 가야지~”
* * *
“그 말을 믿어요?”
한수현이 짐짓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차윤재를 흘겼다.
“딱 봐도 그냥 하는 말이던데. 그렇게 감동이었어요?”
순식간에 얼굴이 화르륵 붉어진 차윤재가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그런……! 그럴 리가!”
“근데 의현 선배님도 우리 노래 추천해 주셨고, 그럼 도원 선배님이 들으셨을 수도 있지. 하핫, 기분은 좋던데~?”
최승하가 차윤재 편을 들어주자, 한수현이 흐린 눈으로 고개를 몇 번 내젓더니 시선을 돌렸다.
“윤재야, 너 얼굴이 그냥 토마토색인데? 한 입 먹어봐도 돼?”
“혀, 형님은 도, 도대체 누구 편이신 겁니까!”
“나? 나~ 음, 나는? 류인 형 편~”
최승하가 류인의 어깨 뒤에 숨으며 실없게 웃었다.
“승하 형.”
“어?”
“시끄러워요.”
최승하가 성큼성큼 내 쪽으로 다가왔다.
“형! 아무래도 우리 막내가 사춘기를 겪고 있는, 읍읍!”
탁상을 굴러다니던 과자 봉지를 까 최승하의 입에 욱여넣었다.
우물우물
……꿀꺽.
“……맨날 뭐만 하면 입을 막아……!”
과자를 삼킨 최승하가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쳤지만 나는 들은 체 만 체 넘겨 버리고 샵 스태프를 바라봤다.
“이제 밀리어스 선배님들도 여기로 오시는 건가요?”
“아아~ 오늘만 온 거 같던데요? 다니던 샵에 무슨 문제가 생겼나? 음~ 자세히는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래서 샵도 비상이었다며 스태프가 나를 바라보며 조잘대기 시작했다.
“너도 밀리어스에 관심 많은가 보네? 하긴, 나도 신기했어.”
옆에 앉은 류인이 말을 걸어왔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생각에 잠겼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관심이 아니라 찝찝함이다.
적어도 내 상식선에서 이해되지 않는 일이거든.
* * *
“안녕하세요, 라이트온입니다!”
프로그램 고정 패널들의 대기실과 심사 위원들의 대기실을 바쁘게 돌고 PD에게까지 인사를 마쳤다.
인지도가 없어서 그런지 별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곧 녹화가 시작됐고 예상과 같이 우리는 소개 멘트 한 줄 없이 넘어갔다.
그럼에도 혹여나 리액션 단독컷이 잡히진 않을까, 녹화 내내 긴장된 상태로 참가자들을 응시했다.
단독컷이 잡혔을 때 지루해하는 표정이면 안 되니까.
공중파에서 진행하는 서바이벌인 만큼 우승자와 준우승자는 무슨 드라마에 비중 있는 역할로 꽂아준다는 거 같은데, 그래서 그런지 참가자도 더럽게 많다.
방송에 나오는 건 고작 1시간이지만, 지금 녹화가 시작된 지 4시간이 넘었다.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졌다.
부릅!
순식간에 눈을 부릅뜬 나는 무대를 뚫을 기세로 응시했다.
……졸려 죽겠네.
“즈어어어언하-!”
“흐윽, 전하!”
오늘의 주제는 사극, 참가자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전하를 울부짖으며 엎어졌다.
연기를 시작하자마자 눈물범벅이 되는 사람들도 꽤 있어서 신기했다.
타악!
그때, 슬레이트가 맞부딪히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조연출이 소리쳤다.
“30분! 30분간 휴식 진행하겠습니다~”
식사시간 겸 휴식이었다.
대기실에 앉아 있으니, 매니저가 샌드위치를 사 들고 찾아왔다.
“자아, 하나씩 받아!”
그나마 밥은 잘 챙기는 놈이라 다행이다.
* * *
휴식 시간을 마치고 녹화 재개를 위해 자리에 앉았다.
“아~ 오늘은 사실 특별한 게스트가 있는데요.”
아나운서에서 프리랜서로 이적한 뒤 승승장구하고 있는 MC가 특유의 유쾌한 말투로 멘트를 쳤다.
‘흠, 누구지.’
나는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인지도 없는 연예인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오늘은 이렇게 따로 소개할 만한 게스트가 없는데?
암울한 분위기의 패널석에서 그나마 인지도라는 게 있는 건 우리뿐이다.
피식.
나도 자의식이 너무 커졌군.
누가 뭐래도 연예인에게 가장 치명적인 병은, 연예인 병이다.
‘조심해야겠어.’
고개를 털레털레 저은 나는 MC를 응시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기대감이 깃든 얼굴로 내려다봅니다!]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낄낄댑니다!]
“……?”
미간을 설핏 찡그린 나는, 메시지들을 흘려보냈다.
아무래도 오늘은 KBC랑 연줄 있는 패널을 소개하려나 보군.
방송국과 연줄이 있다면, 인지도가 없어도 분량을 차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과연 누구일까.
음, 저기 저 신인 배우?
아님 저기 저 트로트 가수?
아님 저어기 앉은 뮤지컬 배우?
“이번에 여름을 시원하게 해줄 노래로 찾아온 친구들입니다~ 아이고, 인물이 훤하네요.”
MC가 멘트를 치자 여러 대의 카메라가 순식간에 우리가 앉아 있는 쪽을 잡는 게 느껴졌다.
‘……왜?’
척! 척! 척! 척!
순식간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심장부터 시작된 긴장감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머릿속엔 단 세 글자만 떠올랐다.
……X됐다.
“바로 라이트온-!”
당황스러움을 넣어둔 채 조용히 하나, 둘, 셋을 읊조렸고, 그걸 캐치한 멤버들이 동시에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라이트온입니다!”
뒤이어 MC가 이상한 뉘앙스로 진행의 가닥을 잡기 시작했다.
원래 <연기의 신> 프로그램에 인지도 있는 연예인이 나오면 방송의 분위기 환기를 위해 연기를 시켜 짧게 방송에 내보내 준다.
물론 연기를 시킬 거면 회사에선 미리 연습을 시킬 거다.
방송 나와서 개망신당할 수야 없으니까.
근데 라이트온은 그 급도 안 될뿐더러, 아무런 전달도 받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앉아만 있었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정말 시킬 거였으면 대본을 줬을 텐데?
……제작진이 실수로 전달을 안 한 건가?
생방송이 아니어서 방송사고감은 아니더라도, 우리가 못 하겠다고 어버버거리면 방송에 차질을 빚는 거다.
방송국의 사정 따위 알 바 아니지만, 평판이 나빠지면 우리에게 큰 타격이다.
심지어 여기 PD는 영향력까지 있는 사람이라고.
방송계는 암암리에 소문도 잘 도는 데다가, 은근히 폐쇄적인 분위기까지 있어서 메인 PD쯤 되는 사람한테 밉보이면 큰일 난다.
“자아~ 어떤 분이 연기를 보여주실까요?”
멤버들을 둘러보니 모두 다 당황스러운 얼굴로 눈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모 2군 아이돌도 이 프로그램에 나와 연기를 펼쳤다가 발연기로 한참을 조롱당했었지.
망신살 껴버리기 딱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빌어먹을!
망신살, 망신살만은 안 된다……!
등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기분이었다.
성해온의 정신력 덕에 실제로는 건조하기 그지없었지만 말이다.
대답이 곧장 나오지 않자, MC의 얼굴이 미묘하게 딱딱해지기 시작했다.
“…….”
“오오-!”
짝짝짝짝!
고정 패널과 게스트들의 기계적인 호응과 더불어 웅장한 박수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내가 손을 번쩍 들었기 때문이다.
모두 마이크를 몸에 붙이고 있기에, 나한테 뭐라 말은 못 하지만 미쳤냐는 눈빛을 보내고 있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미안하지만 가장 미치겠는 건 바로 나다.
한편, 나는 다급하게 상태창을 불러내 골드 상점의 스크롤을 내리고 있었다.
슥! 스윽!
눈짓으로 황급히 스크롤을 내렸다.
촉박함에 짓눌린 심장이 무겁게 뛰었다.
‘찾았다.’
……구매! 구매!
‘이렇게 쓸데없는 데에 쓰려고 모아둔 게 아닌데……!’
분명 새로운 특성을 뽑으려고 아껴둔 거였다.
[……그런가?(B)]를 얻은 뒤엔 이렇다할 특성이 없었으니까.
[천상천하(天上天下)]
: 온 세상이 내 발아래!
원하는 분야에서 기간 동안 정점이 될 수 있습니다.
▲ 48시간 지속 후 자동 소멸
10분, 딱 10분이면 되는데!
48시간 이하로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
더 찾아보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찾아볼 시간도 없을 만큼 상황이 긴박했다.
심지어 1,500골드, 고작 48시간 이후에 소멸될 특성치고 더럽게 비싸다.
‘……빌어먹을.’
나는 눈물을 삼키는 심정으로 구매 버튼을 눌렀다.
[구매가 완료되었습니다!]
[원하는 분야를 설정해 주세요!]
‘……연기.’
[등록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