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41화
댓글창은 순식간에 물음표로 물들기 시작했다.
- ??????????????
- 왜 울어 울지 마ㅜㅠㅠ
- 지금 들어왔는데 무슨 일이야
- 무슨 일인지 설명해 주실 분
이런 막장 상황에서도 S+ 정신력 덕에 머리는 더없이 맑고 빠르게 회전했다.
‘선생님들, 왜 답을 해주시지 않으시는 걸까요?’
[성좌, ‘새로움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휘파람을 불며 시선을 피합니다!]
‘역시 쓰잘데기없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뒷목을 부여잡습니다!]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 ■ ■■■]
[ERROR ERROR ERROR!]
[시스템 오류!]
[일시적으로 연결이 종료됩니다.]
나는 연거푸 떠오르는 메시지들을 바라보고, 결론을 냈다.
‘……이건 답이 없다.’
설령 제갈량이 관짝에서 살아난대도 이 상황에서 완벽하게 빠져나갈 순 없을 거다.
멤버들도 난데없는 내 행동에 무척 놀랐는지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나는 화면을 바라보며 방금까지 당신들이 본 것은 허상이었다는 듯 싱긋 웃었다.
“제가 오늘 숙소에서 슬픈 영화를 봤는데, 갑자기 그게 생각나서 눈물이 나네요.”
물론 영화 따윈 1분도 본 적 없다. 당장 잘 시간도 부족한데 뭔 놈의 영화.
“……아~ 맞아요! 제목이 뭐였더라? 진짜 슬퍼서 펑펑 울었는데.”
최승하가 눈치껏 멘트를 받아쳤다.
그럼에도 댓글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았다.
‘완전히 망했군.’
더 환장하겠는 건 시청자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거 왠지 싸움 났을 것 같은데.’
이해성의 기억으로 팬들 간의 SNS 싸움 패턴을 알고 있는 나의 뇌리에 불길함이 스쳤다.
“아아~ 저희 점심 뭐 먹었냐고요? 저희는 오늘은 차에서 햄버거 먹었어요!”
이 와중에도 멤버들은 어떻게든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계속 물음표 사이의 댓글을 애써 찾아내 읽고 있었다.
- 햄버거 살쪄~ 먹지 마~ㅋㅋㅋㅋㅋ
이 와중에도 참 꾸준하군.
“햄버, 으음!”
최승하가 댓글을 봐버린 모양인지, 무의식적으로 댓글을 읽으려다가 멈칫했다.
“여러분은 무슨 햄버거 좋아하세요? 저는 치킨 패티.”
내가 자연스럽게 질문을 잇자, 최승하가 바로 대답했다.
“아앗~ 그걸 어떻게 골라요? 저는 다 좋은데! 일단 수현이는 불고기 좋아해요.”
말 안 해도 다른 멤버 취향까지 줄줄 불다니, 아이돌계의 모범이다.
“팬분들은 햄버거보다 우리가 좋으시다는데.”
류인이 작게 웃으며 댓글을 읽자 댓글창이 요동쳤다.
- 한 번만 더 웃어줘 제발
“저희 아쉽지만 이제 연습하러 가야 해서, 다음에 또 올게요.”
“여러분 안녕!”
* * *
알림이 울리자마자 신나게 라이브에 접속한 곽덕배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예의라고는 밥 말아 먹은 게 틀림없는 밀러스 때문이었다.
“……이게 대체 누구 라이브인지 모르겠네.”
- 밀리어스랑 아는 사이예요? 썰 풀어주세요! (웃음 이모티콘)
- 밀리어스 노래 중에 뭐 제일 좋아해?
- 나는 해외팬입니다. 당신은 의현과 무슨 사이입니까?
“그래. 덕분에 차트인까지 했는데 한번 봐주자!”
사실 곽덕배도 당분간은 이런 사태가 이어질 거라 예상했기에 딱히 놀랍거나 그러진 않았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바로 이거다.
- 못생김~ 망해라~
- 탈퇴해 탈퇴해 탈퇴해 탈퇴해 탈퇴해 탈퇴해 탈퇴해 탈퇴해 탈퇴해 탈퇴해 탈퇴해 탈퇴해 탈퇴해 탈퇴해 탈퇴해 탈퇴해
이런 댓글이 복붙 수준으로 계속 올라오고 있었다.
속도도 얼마나 빠른지 멤버들이 무조건 볼 수밖에 없겠다 싶었을 정도였다.
이 상황에서 분노를 참을 수 있는 팬이 얼마나 될까? 일단 곽덕배는 아니다.
“미친, 미친놈들 아닌가?”
특히 의현이 직접 언급한 성해온에게 관심과 악플이 가장 쏟아지고 있다.
설상가상, 멤버들도 악플을 읽었는지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진 게 눈에 보였다.
자신도 (구)밀러스로서, 이 팬덤 정병이 무언가를 한번 물어뜯으면 얼마나 지독한지 알고 있다.
‘……괜찮으려나? 애들 멘탈 걱정되는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성해온이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고개를 번쩍 들고 카메라를 응시하며 입을 열려는 순간!
주르륵-
눈물이 흘러 버린 것이다…….
동시에 곽덕배의 뇌도 굳어버렸다. 아예 정상적인 사고라는 걸 할 수 없었다.
“……어라?”
사실 이 상황 속에서 모든 팬은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1. 오늘따라 U라이브 댓글창에 밀러스가 많았다.
2. 심지어 못 보는 게 이상할 정도로 악플의 빈도가 잦았다.
3. 악성 댓글을 본 멤버들의 얼굴이 굳어가는 걸 팬들은 초반부터 캐치했다.
4. 직접 언급당했기에 성해온에 대한 질문과 조롱, 악플이 가장 많았다.
5. 무언가 말을 꺼내려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려 버린 당사자!
착! 착! 착!
영화니 뭐니, 티나는 변명을 해봤자…….
팬들의 머릿속에서 이미 퍼즐은 맞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 * *
바로 라이브를 꺼버리면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서 일부로 웃으면서 더 이야기를 하고 종료했다.
라이브가 종료되자마자, 상황을 살피려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음. 잠깐만, 심호흡 좀 해야겠는데.’
어떤 난장판이 벌어져 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나는 마음을 평온하게 가다듬은 후 SNS에 접속했다.
‘……빌어먹을.’
언감생심 꿈도 못 꾸던 상위권 실시간 트렌드를 내가 점령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실트에 올라가는 건 바라지 않았는데.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 진짜 밀러스분들 정도가 지나치십니다.
제가 오늘 U라이브 보면서 캡처한 악플 수위가 이 정도인데, 대체 얘네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시나요? (사진) (사진)
이미 몇몇 팬은 계정까지 파서 공론화를 진행 중이었다.
- 해온이 우는데 내 가슴도 찢김
- 진짜 오늘 댓글 가관이더라ㅋㅋ 그 팬덤 진짜 지랄맞은 건 알았지만;;
- 밀러스는 정병밖에 없냐?
‘……이런 말은 조금 위험한데.’
악플을 단 밀러스는 어쨌든 극소수, 이렇게 싸잡아서 욕하는 건 팬덤 싸움에 불붙이기 딱 좋다.
아니나 다를까, 밀리어스의 팬덤도 슬슬 열이 오르는지 팬덤 싸움에 제대로 불이 붙기 시작했다.
- 성해온 씨~ 저희가 죄송하ㅂㅅ니당
- ㄹㅇㅌㅇ이 영화 보고 울었다고 말까지 했는데 왜 뇌절의 뇌절까지 해서 화살이 여기로 옴?
- 우는 꼬라지ㅋㅋ 관심받고 싶어서 쳐운 듯?ㅇㅇ
- 난리 친 건 정병들인데 싸잡아서 욕하는 꼴ㅋㅋㅋ 우리 덕에 차트인했으면서 양심도 없음~~ ㄹㅇ양심도 없는 망돌~~ 수준 자알 알겠습니다~~
“……음.”
팬덤 싸움이 다 그렇다지만, 밀러스 팬덤도 세 개로 분화됐다.
아예 관심을 끈 쪽, 평화롭게 잠재우고 싶어 하는 쪽, 마지막으로 그냥 싸우고 싶어 하는 쪽.
- 라이트온 팬덤 여러분들도 화나신 건 알겠지만, 팬덤을 통틀어서 욕하는 행위는 자제해 주세요. 저희는 라이트온 응원합니다. 그리고 저희도 저런 사람들 밀러스로 취급 안 합니다.
물론 이렇게 평화로이 해결하고 싶어 하는 밀러스는 극소수.
대부분 가시 돋친 조롱 여론이 거셌기에, 라이트온 팬덤도 열이 바짝 올랐다.
- 와 놀랍다ㅎㅎ~ 영화 보고 울었다는 걸 진짜 믿는 사람이 있네
- 밀러스 아이큐 두 자릿수라는 게 학계의 정설
- 밀리어스가 1군이라고 너희도 1군 같아? 주제를 알렴 자의식 과잉 ㅆㅅㅌㅊ라서 뭔 말을 못 하겠네 ㅋㅋ
처음엔 논리적으로 잘못만 짚는 공론화였다면, 지금은 인신공격까지 서슴지 않는 난장판이 된 지 오래였다.
여기에 두 팬덤에 속하지 않은 타 팬이나 잡덕들까지 하나둘 말을 얹기 시작하면서 싸움은 더 커져갔다.
이쯤 되니 멤버들도 이 사태를 모를 수 없었다.
다들 심각한 얼굴을 걸치고 있는 주제에 내 쪽을 힐끔대며 걱정이 담긴 눈길을 보내는 게 느껴졌다.
“……형, 괜찮아요?”
“무슨 일이신지 말씀해 주시면, …… 최, 최선을 다해 도움을! 악성 댓글은 신경쓰지 마십시오!”
차윤재의 말이 끝나자마자, 구석에서 몸을 풀고 있던 한수현이 피식 웃었다.
“저 형이 어디 악플 신경 쓸 사람인가?”
차윤재가 금방이라도 뒤로 넘어갈 듯 새빨개진 얼굴로 한수현에게 삿대질을 했다.
“저, 저, 저! 저!”
“신경 안 써.”
불현듯 튀어나온 내 대답에, 최승하가 볼을 긁적였다.
“……그럼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돼요?”
“눈에 먼지가 들어갔어.”
“……네?”
“눈에 먼지가 들어갔다고.”
순식간에 시선들이 모여들었다.
해석하자면 무슨 개소리냐는 뜻이 깊게 담긴 눈빛들이었다.
“내가 악플 때문에 울 사람인가?”
성해온의 과거 인성을 하나씩 곱씹는 듯, 한참 말이 없던 최승하가 대답했다.
“……그건 아니긴 하죠.”
나는 안광 따위 없는 눈으로 말을 이었다.
“진짜 눈에 먼지가 들어갔어. 갑자기 눈물이 나와서 나도 적잖게 당황했지.”
“아잇! 눈에 먼지 들어갔다고 눈물을 그렇게 흘리는 사람이 어딨어요! 하마터면 고개 끄덕일 뻔했네!”
최승하가 따지자 차윤재도 동조했다.
“그, 그리고 그 후에 눈도 한 번 비비지 않으셨으면서 무슨 먼지랍니까?! 거짓말을 해도 성의가 있게-!”
쓸데없이 예리하군.
“다들 내 얼굴 봐.”
“……??”
탁 트인 연습실인지라 모든 멤버들이 내 쪽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아! 울고 싶다!’
[천상천하(天上天下)]가 발동됩니다!
주르르륵-!
“……?”
“나는 눈물이 좀 자유자재인 편이야. 뭐, 이런 사람도 있는 거지.”
갑자기 눈물을 줄줄 흘려대는 크리피한 모습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닌지 넋이 반쯤 나간 얼굴들이었지만, 지금 그것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형은 <세상에 저런 일이> 나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님 <영재 발굴팀> 이런 프로그램…….”
최승하의 중얼거림에 신유하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눈에 먼지가 들어간 척, 라이브에서도 자유자재 눈물을 보여줄 걸 그랬나.
‘그게 더 납득이 됐을지도.’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나는 머리를 탈탈 털었다.
‘아니, 아니다.’
그랬다가는 미친놈으로 클립 돌아다닐 게 뻔했다.
……답도 없는 상황에서 그건, 나름 최선의 선택이었다.
* * *
난리 난 팬덤을 진정시키기 위해 예정에 없던 컨텐츠 촬영이 진행됐다.
실제 논란이 있는 거라면 얌전히 자숙을 하는 게 맞지만, 이건 억지로 짜맞춰진 논란에 가깝다.
이럴 땐 오히려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 낫다.
사옥에 있는 회의실 중 한 곳을 빌렸고, 긴 회의용 테이블을 뒤로 밀어버리니 어느 정도 촬영 각이 나왔다.
사측에서 카메라와 조명 스태프도 보내줬다.
어젯밤, 일이 터지고 정재진에게 급히 연락했었다.
다행히 회사도 이 상황을 알고 있는 듯했고 그 덕인지 컨텐츠 촬영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멤버들에게도 어제 그 사태를 잠재우려면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여기서마저 우중충한 분위기면, 그건 정말 X된다.
……끄덕!
다들 납득했는지 사뭇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얼른 촬영 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