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 1군 만들기 프로젝트 42화
카메라 스태프가 사인을 보내기 무섭게 진행을 맡은 나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저희는 지금 뮤직비디오 리액션을 위해 모였습니다! 뮤비에는 드러나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 드리고!”
나는 빔 프로젝터와 연결된 노트북의 마우스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참, 컨트롤은 제가 하니까! 각자 할 말 있으신 부분에서 스탑, 외쳐주시면 됩니다!”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곧 뮤직비디오가 재생되기 시작했다.
달칵-!
영상이 시작되자마자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나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여러분, 너무 잘생겼죠. 와.”
얼굴 칭찬은 하고 넘어가야지.
“그럼요. 약간 유하 얼굴은 세계관 최강자, 그런 거 아니에요?”
“맞습니다! 유하 형님은 정말 같이 사는 저조차도 감탄이 나오는!”
최승하와 차윤재가 곧장 맞장구를 쳤다.
“…….”
“가만 보면 자기 얼굴 칭찬만 하면 말이 없어져? 잘생긴 걸 인정하는 것도 미덕인데~ 하핫!”
나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맞습니다. 인정할 때가 됐죠.”
교실 속 신유하를 비쳤던 화면이 운동장으로 넘어갔다.
달칵-!
나는 곧바로 화면을 멈췄다.
화면 속 한수현은 스코어가 그려진 큰 스케치북을 목에 걸고 있다.
“이거 진짜 귀엽다. 스케치북이 커서 더 귀여워.”
“……별로 안 귀여우니까 넘어가요.”
귀 끝이 약간 붉어진 한수현이 일어나 내 쪽으로 걸어오더니 재생 버튼을 눌렀다.
한수현이 휘슬을 불자 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노래가 시작됐고 화면엔 트랙을 달리는 멤버들이 나온다.
그때, 최승하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 이 부분 질문 있습니다~ 한 5초 전으로 돌아가 주세요!”
“여기? 아님 여긴가?”
“으음~ 이 부분, 스탑! 여기 형들 넘어질 때 안 아팠어요?”
내가 류인 옷자락 잡고 넘어뜨리는 장면이었다.
“아, 이거 찍기 전에 류인이가 저한테 낙법 비슷한 거 알려줬어요.”
“어쩐지 갑자기 너무 자연스럽게 넘어지더라. 이전에 찍을 땐 막 이상하게 삐그덕, 읍읍.”
나는 다급하게 최승하의 나불대는 입을 막았다.
“읍~ 읍~!”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 정신 나간 놈이 내 손바닥 안에 입술을 문댄 것이다.
질색하며 손을 떼낸 나는 최승하의 등짝을 한 대 갈긴 뒤, 어서 멘트를 하라는 듯 류인을 바라봤다.
“낙법이라기엔 부끄럽고, 그냥 안 다치는…….”
“오오오~~ 형 예전에 무슨 운동 했었나?”
“거창한 건 아니고 다 조금씩만 배운 거라.”
류인이 머쓱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뭔가, 운동 잘할, 것 같은.”
신유하가 오늘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고개를 숙여 버렸지만.
나는 적당한 리액션을 한 뒤, 재생 버튼을 누르려다가 멈칫했다.
“아, 그리고 말하고 싶은 게 있었어요.”
이런 TMI는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게 오타쿠 자아의 주장이다.
“……?”
나는 간신배 같은 미소를 손으로 가린 채, 입을 열었다.
“이거 스타트라인에서 단체로 뛰어가는 부분에서, 감독님이 윤재 뛰는 거 보고-”
“……!!”
“마, 말, 말하지……!”
“막 깃털이 날아다니는 것 같다고~”
“여억시~ 우리 그룹의 댄서답게 몸이 가볍죠?”
최승하가 말을 받아치자, 경악스러운 얼굴을 걸친 차윤재가 손을 번쩍 들었다.
“……저, 저도 할 말 있습니다! 승하 형님도 혼자 죽기 살기로 뛰어서 앵글에서 혼자 벗어나고! 다시 찍고!”
“으음! 치사하다! 그걸 말하다니!”
“결론은 둘 다 귀여운 걸로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나는 멘트를 치며 재생 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다시 정지 버튼을 눌렀다.
달칵-!
“저는 이 부분 찍을 때도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교실에 앉아 있는 차윤재를 끌고 가는 장면 직전에, 긴 복도에 멤버들 얼굴이 동시에 빼꼼 나오는 장면이었다.
“여기 고개 내밀고 있는 학생들 누군진 몰라도 아주 귀엽네요.”
“맞아요! 특히 이 친구! 여기 귀여운 친구 좀 보세요. 저희 팀의 맏형인데도 교복이 참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참고로 최승하가 가리킨 건 나다.
어떻게든 멘트를 많이 치라는 내 협박을 떠올린 모양인지, 멤버들이 앞다투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마, 맞습니다! 해온 형님은 진짜 교복이 잘 어울리십니다!”
“맞아. 나는 조금 안 어울렸는데, 해온이는 진짜 잘 어울렸어.”
차윤재와 류인에 이어, 한수현과 신유하까지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맞아요. 저보단 해온 형이 귀여우시죠.”
“맞아……! 우리 팀, 에서 제일 귀여워.”
이봐, 그건 너무 나가지 않았냐.
하지만 속마음과 다르게.
샤라락!
수줍은 낯짝을 걸친 나는 멋쩍게 웃었다.
“애들이 이렇게 띄워주네요. 잘 어울리는 건 자기들이면요.”
[성좌, ‘세상의 파수꾼’이 당신의 가식에 질색합니다!]
나는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가, 곧바로 멈칫했다.
“이 부분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지 않나요?”
자연광이 부드럽게 들어오고, 하얀색 커튼이 휘날리는 교실 안에서 차윤재가 분위기 있게 책을 읽는 장면이다.
차윤재가 질색하는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아 진짜 적당히 좀 놀-”
나는 충격받은 얼굴로 차윤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왜, 왜 그러십니까.”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서 그런지 그림도 말을 하네요.”
내 말에 사방에서 웃음이 터졌다.
기회를 놓치지 않는 최승하가 말을 얹었다.
“그림도 부끄러워할 수 있나요? 지금 얼굴이 막, 불타는데!”
정말 차윤재의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역시, 놀리는 재미가 있다.
달칵-!
화면을 초 단위로 멈춰대니, 몇몇 멤버가 황당하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당연하게도 아무런 타격 없이 무시했다.
재밌는 분량만 뽑으려면 멘트 많이 쳐야 한다고.
“아 이 부분, 윤재가 읽던 책을 승하가 던지잖아요? 근데 막 승하가 이거 다시 찍을 때 구겨지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는 거예요.”
“하핫, 맞아요. 근데 스태프분이 박스 보여주시면서 책 10권도 더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셔서 그냥 편하게 뒤도 안 돌아보고 휙, 던졌습니다!”
“그리고 여기 이제 윤재 질질 끌려가는 게 정말 웃겨요. 정말 아무 저항 없이…….”
“그, 그러는 해온 형님도 여기!”
다가와서 재생 버튼을 누른 차윤재가 발끈했다.
“여기서 해온 형님도 아무런 저항 없이 끌려가지 않으십니까!”
나는 싱긋 웃으며 재생 버튼을 눌렀다.
“진행자의 권한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으이익!”
달칵-!
“잠깐만요. 여기서 이제 대망의 그 장면 나오잖아요.”
내가 화면을 멈추며 기대감이 담긴듯한 뉘앙스의 말을 하니 멤버들이 열심히 호응하기 시작했다.
그때 찌그러져 있던 신유하가 입을 열었다.
“……누, 누가 꽃인지도…… 모르겠다는…… 그 부분?”
아무리 봐도 맨날 자기를 놀려먹는 최승하를, 이번엔 자기가 놀려먹고 싶었던 것 같은데.
안쓰럽게도 상대를 잘못 골랐다.
“뭐어어? 유하야! 너 지금까지 날 꽃으로 생각한 거야? 진작 말을 하지!”
최승하가 얼굴에 꽃받침까지 한 채로 뒤에 있는 신유하에게 얼굴을 들이밀기 시작한 것이다.
신유하는 본전도 못 추리고 질색하며 손바닥으로 최승하의 머리를 꾹꾹 밀어냈다.
이윽고 잔디밭에 앉아 있는 최승하가 웃으며 카메라에 꽃을 들이미는 장면이 나왔다.
“근데 이 장면은 정말 너무 잘 나왔어요. 자연광까지 제대로 받아 가지고…….”
그리고 멤버들이 화면 안에 우르르, 들어와 다 같이 꽃을 내미는 장면이 나왔다.
달칵-!
“이 부분 너무 좋아요. 꽃 중에 저희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되는 거 하나씩 집은 거거든요.”
내가 자연스럽게 멘트를 치자 한수현과 신유하가 입을 열었다.
“꽃 종류가 되게 많았어요.”
“……생화 향기가, 좋았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상을 다시 재생했다.
“아! 저는 여기 스탑!”
달칵-!
햇살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미술실.
구도를 재려는 듯, 한쪽 눈을 질끈 감은 채 붓을 세워 집중하고 있는 신유하 부분에서 화면이 멈춰 섰다.
“이 부분 진짜, 이 친구가 어디서 본 건 있어 가지고~”
최승하가 큭큭대며 뒤에 앉은 신유하의 다리를 퍽퍽 내리쳤다.
“…….”
뒤이어 작품을 완성한 신유하가 유유자적 미술실을 떠난다.
화면 속 잔뜩 기대에 부푼 얼굴의 한수현은 캔버스로 다가가는데-
“근데 솔직히 저 그림은 진짜 아니지 않나요? 눈 코 입만 달렸지, 저게 어딜 봐서 인간이에요.”
한수현의 중얼거림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전문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큰 캔버스에는 미취학 아동이 그려도 저 정도는 아니겠다 싶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일부러 손가락을 가볍게 튕기며 입을 열었다.
“맞네. 저거 아마 유하가 직접 그렸죠?”
실제로 촬영장에 큰 붓이 있었고 한 5분 남짓한 시간 만에 신유하가 휘적휘적 그린 거다.
팬들은 그냥 촬영팀에서 준비한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
이건 무조건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이런 게 소중한 덕질 포인트가 되는 거라고 누가 그러던데.
그때 어디선가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못 그리지는 않-”
“하하하! 신유하 변명한다!”
“가만 보면 저 형님의 양심에도 약간의 문제점이…….”
차윤재의 중얼거림에 한수현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
“뭐야, 유하 삐졌어? 장난이고 완전히 예술적인데? 컬러 조합이 끝내준다. 윤재야, 수현아. 너넨 어떻게 유하한테 그렇게 심한 말을 할 수가 있어?”
“뒷, 뒷목이…… 이, 이 형님이 제일 문젭니다!”
“……하.”
“저 친구들은 싸우게 두고 영상 계속 볼게요!”
운동장과 체육관에서의 단체 군무 장면이 조금씩 지나가고, 마지막 장면인 교무실이 나왔다.
달칵-!
“불 꺼진 교무실, 생각보다 으스스하더라고요. 이때 좀 겁에 질렸던 멤버들이 있는데, 누군지는 그 친구들을 위해 비밀로 하겠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최승하가 빙글 웃었다.
“하핫! 그런 겁쟁이가 정말 이 세상에 있단 말이에요~? 평생 비밀로 해주기로 하고~ 얼른 넘어갑시다!”
“……최승하.”
“승하 형님입니다.”
“저도 봤어요.”
“맞아, 승하였지.”
신유하에 이어 차윤재와 한수현, 게다가 류인까지.
당황한 최승하가 내 팔을 붙잡았다.
“와아, 와아~ 형. 저 사람들 어떻게 좀 해봐요. 이거 사람을 이렇게 몰아가도 되는 건가?!”
최승하가 믿을 건 나뿐이라는 눈빛을 보내왔다.
나는 잠시 정적을 지키다가 입을 뗐다.
“이거 참, 비밀로 하려고 했는데…….”
“……진짜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
영상이 다시 재생되자, 교무실 안에서 열쇠를 찾고 살짝 입매를 끌어당기는 최승하가 클로즈업됐다.
달칵-!
“승하 참 잘생겼죠.”
“지금 와서 그렇게 칭찬을 해주셔도 제 깊은 앙금은!”
“앙금은요?”
“이미 풀렸습니다~”
약간 미스터리한 여운을 주는 마지막 장면으로 뮤직비디오가 끝이 났다.
“자 오늘 이렇게 뮤직비디오를 함께 봤는데요!”
나는 마무리 멘트를 치며 멤버들에게 눈빛을 보냈다.
대충 얼른 입이나 열라는 뜻이었다.
……파르르!
특히 구석탱이에 있는 내향성 놈들이 흠칫 몸을 잘게 떨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찍으면서도 너무 즐거웠어요. 으음~ 여기 나온 거 이외에도 막 농구하는 것도 찍고 수영장에서도 찍었는데 안 나와서 조금 아쉬워요.”
최승하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고, 류인과 한수현이 말을 이었다.
“이걸 하루 만에 다 찍을 수 있나 싶었는데, 되더라고요. 정말 즐기면서 찍었는데 팬분들도 좋아해 주시니까 행복했습니다.”
“맞아요. 팬분들이 뮤직비디오 예쁘다고 좋아해 주시니까…… 더 기뻐요.”
“……이번 활동, 즐겁게 하고 이, 있으니, ……지켜봐 주세요.”
신유하치고 어마어마하게 긴 소감문이었다.
“정말입니다. 팬분들 덕에 힘든 것도 잊어요.”
내가 적당히 받아치자 신유하가 고개를 세차게 끄덕거렸다.
“저도 찍는 내내 무척 재밌었습니다! 아, 활동도……! 활동도 너무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항상 가, 감사드립니다!”
차윤재의 소감을 마지막으로 촬영이 끝났다.
* * *
3일 정도 지나자 겉으로 보이는 진흙탕 싸움은 자연스럽게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LIGHT ON ⓥ
LIGHT ON ‘Running mate’ MV Reaction
(캠코더 이모티콘) youtobe/YMFSoLnJK……
사그라든 분위기 속에 컨텐츠까지 업로드되니, 들끓었던 팬덤 분위기는 어느 정도 진정이 된 듯 고요해졌다.
그리고 예상치도 못했던 찌라시가 터져 나오게 된다.
- Nnet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 To The Top 새 시즌 나옴? 진짜로? 뇌절 아님?
Nnet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의 새 시즌 섭외가 들어가고 있다는 찌라시가 물 밑에서 잔잔하게 퍼져 나가기 시작한다.
- 에휴 아무리 그래도 라이트온 나온다는 궁예는 선 넘었지
문제는 그 찌라시에 라이트온이 들어가 있다는 것이었다.